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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 8:32, 하나님의 사랑에 도전할 자가 있느냐

작성자바람이어라|작성시간15.12.02|조회수1,523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사랑에 도전할 자가 있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8:32).

 


재차 강조합니다만 사도는 최종적으로 구원에 대한 확실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한 사도의 논증(論證)은 큰 것이 사실이라면, 그 보다 작은 것은 더욱 확실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셨다면, 그보다 못한 “모든 것”은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다면”, 이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놓을 자가 있단 말이냐?

 

 

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32상), 하고 말씀합니다.

 

㉠ 먼저 확인해야할 점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누구신가 하는 점입니다. 이렇게 행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確證)하셨느니라”(5:8하) 하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말하고, 자주 듣다보니 예사로, 또는 당연한 일처럼 여기기가 쉽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사건인 것입니다.

 

㉡ 우리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3) 우리 대신 자기 아들에게 정죄를 하신 갈보리 십자가를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렇다고 사도가 증거 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것이냐 하는 “구원의 확실성”에 있는 것입니다.

 


② 본문을 대할 때에 우리의 시선과 마음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한, 하반 절에 쓸리기가 쉽습니다. 즉 “모든 은사”(恩賜)로 곧바로 달려가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모든 은사”란 부수적인 것입니다. 우선적인 것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다” 하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진리를 붙잡고, 그 위에 굳게 서 있을 때에만이 뒤에 것도 따라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 가룟 유다의 배신, 군중들의 무지함, 빌라도의 소신 없는 판결이 있었다 해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는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3:25절에서도,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합니다.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시고 그 위에 자기 아들을 못 박으신 이는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누구를 내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흠 없는 양입니까? 송아지였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아들”입니다.

 


③ 우리는 양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하신 “독생자”이십니다.

 

㉠ 요한복음에서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요 1:18)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분은 “자기 아들”이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신분입니다.

 

㉡ 누구를 위해서 내어 주셨으며, 누구를 위해서 죽어 주셨습니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에 대한 설명입니다.

 


④ 이렇게 행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32하)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 내가 “아들은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었지만 이것만은 안 된다, 이것만은 줄 수가 없다” 하시는 것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시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끼셔서가 아니라, 주어서는 아니 될 해로운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⑤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편구원론적인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28절에서 말씀한,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들을 위해서 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 자기만 특별(特別)이 사랑하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하나님은 자기는 사랑하시지 않는가 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고, 일한 것도 없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5:10) 라는 말씀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 형제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 드리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우선해야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그 만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그 만큼”의 사랑이 아니라, 무한대(無限大)한 측량 못할 사랑인 것입니다.

 


⑥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인 것입니다.

 

㉠ 39절에서는,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십니다. 형제여, 이 이중적(二重的)인 사랑의 줄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끊을 수 있는 자도 없습니다. 형제의 구원이 얼마나 안전(安全)합니까? 형제가 영화롭게 될 것이 얼마나 확실(確實)합니까?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31상), 그래도 형제는 무슨 할 말이 남아 있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도전할 자가 있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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