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함
느헤미야 1장 본문을 먼저 통독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후에 주제가 무엇일까를 관찰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한 어려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제를 정하였다가도 몇 번이고 바꾸기도 합니다.
본 연구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있습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경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책임, 교훈, 축복 등보다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며 그러한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이 무엇인가에 우선순위를 두고 거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의미에서 1장의 주제가 무엇일까요?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들을 통해서 그곳 형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울면서 금식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늘의 하나님”(4)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5)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8-9)하고 말씀대로 흩으셨던 하나님께 말씀대로 모으셔서 택한 곳에 안전히 거하게 하소서 하고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장의 주제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함”이 될 수가 있습니다.
본 장은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 단원(1-3)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음
둘째 단원(4-11) 금식하며 기도함
첫째 단원(1-3)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음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2)
첫째 단원(1-3)을 읽어보십시오. 어떤 내용들입니까? 제목을 무엇이라 붙이면 될까요?
수산궁에서 왕의 술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에게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어봅니다(2). 도표에서 보는 바대로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이것이 제목이 됩니다. 이것을 네모로 묶어 표시를 합니다.
형편을 물었더니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3) 도표에서처럼 이것들을 둘래 씌우기를 합니다. 이것들이 내용입니다.
자 도표를 보면서 요약해 봅니다.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대답하기를 큰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훼파되고 소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첫째 단원의 대의입니다.
둘째 단원(4-11) 금식하며 기도함
둘째 단원(4-11)을 읽습니다. 어떤 내용들입니까? 제목을 무엇이라 붙이면 될까요?
예루살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는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4)
도표에서 보는 바대로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것이 제목입니다. 이를 네모로 묶어 표시합니다. 무엇을 기도합니까? 첫째는 범죄함을 “자복”(6)합니다. <자복>을 둘래 씌우기 합니다. 그런 후에…하신 “말씀”을 이제 기억하옵소서(9)하고 기도합니다. <말씀>을 둘래 씌우기 합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죄를 “자복” 하고 다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첫째는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8)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렇게 경고하셨는데(신 28:64) 그대로 되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회개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돌아오게 하리라”(9)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점도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신(신 30:4)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합니다.
이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담대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하고 간구하므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란 누구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은혜를 입게” 해달라”가 무슨 뜻입니까?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가서 훼파되고 소화된 성을 수축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에다가도 둘래 씌우기를 하십시오.
이제 요약을 해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죄를 <자복>합니다.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느헤미야가 몸은 수산궁에 있지만 예루살렘 형편이 염려되어 물은 것은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물은 것만이 아니라 듣고 울면서 금식하여 기도한 것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한 것은 믿음의 결단입니다.
그는 울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며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하고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란 여기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기도 중에 이 상황 이 형편에서 하나님께서 자신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빌 2:13)을 깨닫고 헌신과 결단하는 기도를 드린 것은 산 믿음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자신은 수산궁에서 호의호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히 11:25)했습니다.
이점이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자녀와 사업과 교회 문제 등으로 금식하며 기도를 드렸다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헌신의 결단이 뒤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변화가 일어납니다.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 기도는 죽은 기도>일 수가 있습니다.
이제 도표를 보면서 설명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