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한 번에 설교하기
본문 : 1:1-6절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1: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주제 : 복 받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강론
시편은 150편의 다양한 시가 다섯 권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 중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것이 73편이나 됩니다. 표제가 없는 시 중에서도 신약성경은 다윗의 시로 인정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시편을 기록한 중심인물은 다윗입니다. 이점이 왜 중요하냐 하면 구속사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이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준 글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또 한 사람의 언약 당사자인 다윗이 기록하여 전해준 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시편(詩篇)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다윗을 가리켜, “그는 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행 2:30-31) 그리스도를 증언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점을 구약의 많은 책 가운데서 시편 두 편을 들어 입증(立證)했던 것입니다.
㉠ 첫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시 16:10)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1-32)합니다.
㉡ 둘째는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 받으심을 증언합니다.
저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예수”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점을 성경을 들어 입증한 후에 결론을 맺기를,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나니라”(행 34-36)합니다. 그러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시편이 단순한 시나 노래가 아니라 시편의 중심주도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친히,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詩篇)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을 대할 때 시인은 “시”의 양식을 보고 교육자는 “교훈”을 찾을 것입니다만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에는 그리스도의 일대가 다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2:7)고 주님의 탄생과,
㉡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22:16)한 고난당하심과,
㉢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6:10)한 부활과,
㉣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한 우편재위입니다. 현재 여기까지가 성취가 된 것입니다.
㉤ 이제 하나 남은 것은 110:5절입니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한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언입니다. 여기까지 이루어주신 하나님께서 하나 남은 약속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언약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선지서들은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겔 37:24)고, 다윗을 “왕과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3방면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데 첫째는, 사울로부터 무고히 박해를 당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시편을 기록했는데 이 시가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5:25)고 무고히 고난당하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예언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압살롬과 모사인 아이도벨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쓴 시인데,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고 주님께서 배신을 당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 되었고,
셋째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등 많은 승리를 하면서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이 시편들이 주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 2:14) 승천하실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을 대할 때에 세 방면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 첫째는 시편을 기록할 당시의 상황입니다. 다윗이 어떤 역사적인 배경과 상황에서 이 시를 기록하였는가를 관찰해야만 합니다.
㉡ 둘째는 다윗이 겪은 것을 예표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것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이를 외면한다면 그림자는 보고 실체(實體)는 보지 못하는 것이 되어, 시편을 통해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영광스러움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 셋째는 시편 기자의 경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일들을 통해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適用)되는 점입니다. 시편만큼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준 말씀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에 수록되어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성도들의 생활현장에서 재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문학양식이 “시”(詩)라는 형식으로 기록하게 하신 데도 의도하신 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길 것”(신 31: 19-20)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잊지 않도록 “부르게 하라, 증거가 되게 하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시에다가 곡을 붙여서 찬양하게(대상 16:4)했던 것입니다. 다윗 당시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대상 23:5)합니다. 찬양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16:15-17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메시아언약 곧 복음을 찬양했습니다.
히브리서 13:15절에서는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합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는데 여러분은 쉬지 않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입니다. 입술에 찬양이 없다는 것은 열매 없는 나무와 같고 그만큼 심령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 그러면 시편 중에서 몇 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40편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다”고 진술합니다. 그래서 감사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6)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깨달음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석으로 상번제를 드리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7)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두루마리”는 성경을 가리키는데 성경이 “다윗”을 증언하는 책입니까?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고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한 몸”은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을 예표로 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 113편을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1)합니다. 1-3절 안에는 찬양하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왜 찬양하라 하는가? 4-5절에는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고 “높으시다”는 뜻이 3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겠습니다. “스스로 낮추사”합니다. 그토록 높으신 분이 스스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왜 낮아지셨는가? “천지를 살피시고”, 즉 누군가를 찾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7-8), 즉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에 버려져진 자를 어깨에 메고 오셔서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셨다”(8)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해주신 이분이 누구신가요?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고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행해주셨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자가 누구들입니까?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영원까지(2),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3)하는 것입니다. 이제 형제의 입에서도 “해 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주 이름 찬양받으리”하는 찬양이 우러나오게 되었습니까?
㉢ 32편을 보겠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밧세바로 인한 죄를 범한 때에 지은 시라는 표제가 있는데 첫 절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고 선언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복을 받은 자는 다윗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롬 3:24)인 우리들인 것입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허물 사함을 받고 죄 가림”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는가를 보십시오. 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다윗은 죄를 범하고도 1년 동안이나 죄를 자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절은 당시의 괴로움을 나타내는 말이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한 4절은 어서 토해내라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손”인 것입니다.
그러면 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지적하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7, 13)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속한가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하고 즉시 흉악한 죄를 사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겠다”는 것은 전도(傳道)하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허물 사함을 받고 죄 가림”을 받은 감사와 감격이 있는 사람은 전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32:9)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나도 당신들처럼 고집을 부리면서 회개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집을 부리게 되면 “많은 슬픔이 있으나” 회개하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10), 즉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1)고 “허물과 죄”로 시작이 된 32편은 “너희 의인들아”하고 “의인”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 “의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한 “의롭다 함”을 얻은 바로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11)고 32편은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 87편 한 곳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1)합니다. “터전”을 중문에서는 “根基”로 번역하고 있는데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된다는 뜻입니다. 성산에 있다는 “터전”이라는 주제를 구속사적으로 더듬어 보면 의미가 깊은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명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번제로 드리라 하시는가?
다윗에게도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대상 21:18)하십니다. 훗날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아 산, 오르난의 타작 마당”(대하 3:1) 곧 하나님이 정해주신 곳에 성전을 건축했던 것입니다.
이 “터전”을 신약성경에서는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고 증언합니다. 이 “터전”이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계 11:8)인 것입니다.
“터전”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87:5절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씀합니다. 4절에서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합니다. 6절에서도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육적인 출생지는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거듭난 영적인 출생지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씨가 퍼지게 된 갈보리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1)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태어난 자들을 “등록”(登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태어나자 출생신고를 하듯이 거듭난 자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등록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수를 세시며”합니다. 주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하십니다. 형제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거듭나던 날 하늘에서는 또 “한 사람”의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기뻐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형제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시편 1편이 시편 전체의 서론이라면, 마지막 150편은 전체의 송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은”(1:1)하고, “복 받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춤추며 찬양하는 사람”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87편 마지막 절에서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과 상통합니다. 이처럼 고백하며 기뻐 뛰며 찬양하는 자가 바로 형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복 받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한 시편입니다.
우리 받은 주님 은혜 한량 없도다 주님의 영광 할렐루야
기쁜 찬송 부르면서 천국 가겠네 주님의 영광 할렐루야
하나님의 자녀요 크게 찬송 부르며 밝고 거룩한 길로
기쁨으로 나아가 주의 보좌 앞으로 속히 들어가겠네
주님의 영광 할렐루야 (4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