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한 번에 설교하기
본문 : 2:1-5절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주제 : 교회 내의 문제들을 복음으로 치유함
강론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당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 기사가 사도행전 18장에 있는데 11절에 의하면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합니다. 바울은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왔습니다. 당시의 심경을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2:3)고 진술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진술하는 대목은 흔치 않은데 어찌하여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말씀할까요? 첫째는 도덕적으로 문란한 고린도라는 거대한 항구도시에 복음을 전할 것을 생각할 때에 떨리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방금 경유해온 아덴 선교에서의 빈약한 성과(행 17:34) 때문으로 “두려운” 심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2:4절에서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 즉 성령의 능력만을 의지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4:15)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말씀함은 그들이 “자라야 하고, 양육되어야”함을 나타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은” 후 고린도전서를 보낸 것은 약 5년이 경과한 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린도교회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①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 1:11절입니다. 첫째는,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쟁만이 아니라,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5:1)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6:1)한 형제간의 법정 소송사건입니다. 바울은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 둘째 동기는 7: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한 고린도교회가 질문한 것에 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질문한 내용들은, “결혼과 독신 문제”(7: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8:1) “신령한 것에 대하여”(12: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16:1)등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는 로마서와 같은 교리적인 서신이 아니라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問題)에 해답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실제적인 서신입니다.
② 고린도교회는 분명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전서(前書)를 열면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점은 바울은 교회가 직면한 문제로 직행(直行)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문제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서두인 1장 안에는 의외라 싶게 “그리스도”가 10번(1:1, 2, 4, 6, 12, 13, 17, 23, 24, 30), “십자가”가 6번(1:13, 17, 18, 23, 2:2, 2:8)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가 시험에 빠지게 된 것은 복음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치유될 수가 없다.”
㉡ 이런 맥락에서 고린도전서의 전체적인 구조(構造)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1:18)하고 “십자가”로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15:12)한 “부활”로 마치고 있는 구조라는 점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문제의 해답(解答)을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복음에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은 현대교회가 간과해서는 아니 될 중요한 요점인 것입니다. 만일 이점을 소홀히 다루게 되면 고린도전서의 핵심을 놓친 것이 되고 현대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내에 문제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에 해답이 있습니다.
③ 고린도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듯이 현대교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실망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하신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셔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인 1:1-9절은 도리어 영광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 1: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그리고 1:8절에서는 지금은 연약에 쌓여 있어도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소망을 말합니다. 이를 믿기에 바울은 1:4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를 생각할 때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고,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④ 이처럼 먼저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말씀한 다음에 3:3절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하고 문제로 접근합니다. 고린도 형제들 중에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합니다. “육의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3:1)이라는 뜻입니다.
㉠ 이런 문맥에서 3:21-23절을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바울이니, 아볼로니, 베드로니 하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하면서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3:4)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어린애들이 소꿉장난감 가지고 다투듯 하느냐? 눈을 크게 뜨고 보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합니다.
㉡ 그 이유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3:22-23), 즉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만물이 다 우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통 큰 믿음입니까? 우리 믿음의 통이 언제나 이만큼 커질 수가 있을 것입니까?
⑤ 그러므로 바울의 치료방법을 보십시오. 바울은 질문하는 형식으로 말씀하는데 이는 그들이 받은 복음을 상기시키고,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 3:16절에서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분열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고린도 형제들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배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한 “너희”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전”이라고 번역된 말은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이 아닌 나오스”, 즉 지성소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신 지성소임을 인식한다면 어찌 사분오열(四分五裂) 찢을 수가 있단 말이냐는 것입니다.
㉡ 6:2-3절에서는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형제간의 소송사건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임을 가르쳐주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형제들은 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6:19절에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형식의 치료법은 “음행”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고린도 형제들은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행해주신 “십자가복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병든 신앙을 치료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점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⑥ 이처럼 복음으로 저들의 문제를 치료한 다음에 7: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하고 고린도교회가 질문한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합니다. 고린도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 개개인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해답,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고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이점에서 저는 7:25절과, 40절을 주목하자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25절에서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합니다. 어찌하여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응답을 받아 대답하지 않고 “내가 의견(意見)을 말하노니”할까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하나님은 오만가지에 일일이 계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7:40절에 있습니다. 바울은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2: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을 이미 보내주셔서 성도들 속에 “내주”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분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새 언약은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가 미스터 박과 미스터 김 중 누구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마음에 기록이 된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3:1) 상태에서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한 “장성(長成)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성한 자가 바울이 말한바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7:25)한 “충성스런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스런 자”가 아니면 비록 하나님의 뜻을 말해준다 해도 그대로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 8:1절입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성경“지식”적으로 말한다면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배려(사랑)하는 뜻에서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식과 은사를 자랑(1:5, 7)하는 고린도교회를 행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장이 “은사와 은사”를 언급하는 12장과 14장 중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⑦ 한국교회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교회 중에서 고린도교회를 제일 많이 닮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앞에 광야교회(출애굽 당시)를 거울로 제시하여,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0:11)고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광야교회가 당한 일과, 고린도교회가 당한 이런 일들”(고린도전후서)이 거울이 되어,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적용하는 것은 동일하게 옳은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한국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한국교회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진단하고, ㉢ 바울의 치료방법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치유하는 해답을 얻어야만 고린도전서가 헛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한마디로 십자가 복음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답은 복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15:57-56절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것이 “교회 내의 문제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고린도전서입니다.
나 항상 주님을 멀리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주께서 몸 버려 죽으셨다
속죄의 큰 사랑 받은 이 몸 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21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