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5절 분석도표
주제 : 누구를 위하여 적을 먹일 것인가
레위인부부 | 1-4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
나를위하여젖을먹이라 | 5-10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
애굽 사람을쳐죽이다 | 11-15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
설교 작성노트
출애굽기의 대 주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어떻게 바로의 속박에서 구출될 수가 있는가? 어떻게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 70명을 애굽으로 내려 보내셔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하심은 출애굽이라는 예표를 통해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히 2:15)이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영적 출애굽을 계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비록 그림자로, 모형으로, 예표로 주어지고 있으나 중심점은 복음인 것이다.
본 설교를 통해서 두 가지를 추구하고자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창 46:3) 하시면서 애굽으로 내려 보내신 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바로의 딸은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구출한 후 유모가 된 그의 생모에게,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출 2:9)고 말하는데 요게벳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젖을 먹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증언하고자 하는 것이 내용목적이요,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위하여 밥을 먹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적용목적이라 하겠다.
강론
봉독한 본문에서 중심점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한 9절 말씀입니다. 이를 통해서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점은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동기와, 고난을 당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창세기에서 형들의 시기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점을 시편에서는,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시 105:17, 19) 하고 하나님의 섭리 중에 된 일이었다고 진술합니다.
한 사람을 선발대로 보내신 하나님은 때가 되매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46:3)고 애굽으로 내려 보내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자가, “모두 칠십”인이었다 하는데,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 합니다.
그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박해를 당하게 되는데,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다”(12)는 것은,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바로는,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이점에서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이런 고난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상기시켜야만 하겠습니다. 이 고난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 15:13) 하고 예고된 바인데,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창 46:4) 하신, 출애굽을 통해서 “영적 출애굽”을 예시하시려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사명에는 고난이 수반한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어떤 레위인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석 달 동안은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아기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두게 되고, 이를 바로의 딸이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의 딸은 유모가 된 모세의 생모 요게벳에게,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9)고 말합니다.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10) 합니다.
바로가 “아들이 태어나거든 나일 강에 던지라”한 것은 극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어 장차 애굽 천지를 뒤흔들 모세를 애굽 궁궐에 침투시키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생모 요게벳은 아기 모세가 몇 살이 되도록 젓을 먹였으며 누구를 위하여 젖을 먹였는가 하고 묻게 되는데, 학자들은 길게 잡아도 5살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11)라 하는데 이점을 스데반 집사는,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행 7:22-23)이 되었을 때라고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영아시기 5년 동안 양육을 하고, 바로의 딸은 모세를 35년 동안 애굽의 학술과 사상으로 세뇌를 시킨 셈입니다.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11) 합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 중간에 서 있는데 어느 편을 들 것인가? 자, 요게벳은 누구를 위하여 젖을 먹였는가 하는 점을 시험(테스트) 볼 날이 온 것입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12) 합니다.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라고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형제가 모세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순간 모세는, ㉠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부귀와 출세를 던져버린 것이 되고,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한 것이요, ㉢ 이 고난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히 11:26)고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받은 고난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가 된단 말인가?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이요, 죄 값에 팔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대신 죽어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입니다.
요게벳은 누구를 위하여 젖을 먹였는가 하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젖을 먹인 것이 됩니다. ㉠ “믿음으로 모세는” 하는데 모세의 믿음은 누가 심어진 믿음인가? 이점에서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다”(출 2:1)는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오늘의 레위인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 한 형제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바로의 딸은, “내가 그 삯을 주리라”(출 2:9)고 말하였으나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 즉 하나님께 받기를 원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위하여”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계시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고”(1:11), 바로의 딸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2:9)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주님은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면서 나귀새끼를 내게로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하십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21:3-4) 하는데, 그렇다면 나귀 새끼까지도 구원계획을 이루시는데 쓰시기 위하여 그 때 그 자리에 예비해두셨다는 것이 됩니다.
이를 통해서 각성하게 되는 것은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이때에 세움을 받았는가” 하고 묻게 됩니다. 성경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