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진짜 많았다.
월요일 춘양초 백년사 인터뷰 일정이 있었다.
14회 15회 21회 20회 27회 18회 29회 되시는 선배님들을 만났다.
참 한이 서린 학교 생활, 살아 나온 이야기를 해 주셨다. 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당시의 어린 학생
지금은 어엿한 어른이 되신 분들이다.
14회 졸업생 역시 죽음 속에서 살아 나오던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불평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저녁에 남편이 내일 새벽 대만 여행을 하기 위해 복내로 갔다.
막 떠나고 난 뒤에 보니 휴대폰이 쇼파 위에 있다.
이걸?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모르고 복내까지 간다면 가져다 주던지 본인이 알아서 오던지 하겠지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고 옥상에서 빙빙돌며 기다렸다.
한 참 뒤에야 남편이 들어 왔다.
"어디까지 가다 왔어?"
"광주대 지나서."
그렇게 7시가 되어서야 갔다.
9시 쯤 전화가 왔다.
2시 반에는 나가야 하는데 잠 들면 어떻게 하지 나 좀 깨워줄랑가?
하이고 이 양반 아내 없으면 어찌 살지?
2시 반에 전화를 하니 일어나 있었다.
그렇게 남편은 대만여행을 떠났다.
화요일은 문화원 심사를 정해 놓은 날이다.
생각보다 심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 마무리 하고 나니 4시가 넘었다.
복내로 향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풀 긁어 둔 곳을 검정비닐로 덮어 버려야 풀이 못 자라게 한다.
뒤 밭에 들어가니 앞으로 3일만 지나면 또 풀밭이 되게 되살아나 있었다.
가져간 넓은 비닐로 덮어 두었다.
6월 10일 일정이 만만치 않다.
오전에는 학생이 있어서 수업을 했다.
오후에 천상재에서 정호승 시인이 오기로 되어 있다.
스님이 갈 것이냐고 해서 간다고 하니 가보실 의향을 가지셨다.
스님 기다리는 사이 성모각에 다녀왔다. 누군가 기도를 하고 있어서 그냥 문턱에서 기도하고 내려왔다.
모시고 갔더니 황당
안에 안 들어 오신단다.
그렇다고 밖에 계시게 할 수가 없어 다시 대원사로 모시고 갔다.
찻집에서 차 한잔 하면 좋겠다고 해서 바빠서 안 된다고 했다.
다시 천상재로 왔다.
정호승 시인에게 [나비야 날아라] 한 권드리고차 한 봉지 드렸다.
23년 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은 하나도 안 변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 우리는 만났었다. 세월이 무상하다.
힘들어서 집으로 바로 오는데 자꾸 오선생이 걸렸다.
전화를 하니 손 샘을 모시고 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화순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황금코다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선생이 결재를 했다. 내가 사 디리려고 했는데.
저녁에 서류를 보려고 하는데 인텁십 지원자 서류가 없다.
아뿔사! 내가 서류를 어디에 두었을까?
6월 11일
아무리 생각해도 서류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원사 사무장에게 전화를 해서 살펴보라고 해도 안 보인단다.
헉!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해. 나는 개인정보 유출자가 되어서 벌을 받을 수도? 황당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주문해 놓은 잉크를 사들고 대원사로 향했다.
문학관에 가서 서류 다시 한 부 뽑고 대몽각으로 오르는데 와
연못가 탁자에 있었다.
차에 싣는다고 가지고 내려갔다가 연못에 피어 있는 노란 어리연꽃을 보다가 그대로 성모각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다행히 안 잡혀가도 되었다.
서류를 보니 박사과정까지 마친 지원자도 있었다.
사람을 잘 골라서 뽑아야 겠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일찍 집에 왔다.
오늘은 개미약을 가져와야지
경수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회의에 들어 간다는 사람이 치과 다녀와서 쉬느라 회의 안 들어 갔단다.
2시 30분 쯤 사무실에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 맞춰서 걸어 갔다.
그런데 바이오젤을 한 박스 주마고 했다. 사용기간 지난 것이라 판매를 할 수 없단다.
그러나 사용하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부지런히 차를 가지러 오는 길에 남구청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막 말을 떼는 순간 왼쪽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나며 갑자기 신경이 끊어진듯 통증이 오며 주저앉을 뻔 했다.
어찌 몸을 가누고 신호등을 건너서 오는데 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래도 차 운전은 할 수 있어서 준다고 할 때 가져와야 한다.
아픈 곳을 볼 시간 없이 차를 가지고 가서 두 박스를 차에 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아픈 부위가 부어 올라 있다.
걷지도 못하게 아팠다.
어떻게 하지? 병원을 가자도 혼자 걸어 갈 엄두가 안 났다.
이럴 때 병원은 어디를 가야하는지도 난 모른다.
쳇에게 질문을 했더니 냉찜질을 우선 해 보라고 했다.
냉찜질을 하고 다리를 주무르며 약을 먹었다.
좀 강한 진통제를 먹었더니 아뿔사 위경련이 왔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프고 아픈 밤을 지냈다.
자고 일어나니 진통제의 영향인듯 5%는 좋아 진듯 조금 수월하기는 했다.
조심스럽게 옥상에 올라가 물을 주고 여래장 보살님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금요일 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오전에는 약차 만드는 것을 보기로 했다.
보살님을 공양간에 내려 드리고 문학관으로 가려는데 박실 언니가 와 있었다.
나를 보다니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했다.
그것은 걱정이고 난 아프다.
군에 가서 아트홀 전시 관련 계악을 해야 한다.
보성문인협회 것은 내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회봉 안선생기념사업회는 단체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오고 싶은데 간담회 뭐 참석을 해야 한다는 군의 전화가 있었다.
4시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절둑이며 걸어서 아이엔지 광고사로 갔다.
플레카드 두 장을 주문했다. 하나는 군수 당선을 축하하고 하나는 아트홀 전시 안내 현수막이다.
그렇게 행복마루 개관행사가 마무리 되고 있는 곳으로 갔더니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두 개를 얻었다.
세상에 간담회다고 갔는데 엉뚱한 사회적기업 설명회였다.
나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군에 전화해서 항의를 할까하고 뒤를 돌아 보는데 예총사무국장이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톡으로 "우리 뭐야?" 했더니 마침 그들도 황당하다고 했다.
같이 나가자고 하고선 일어나서 나왔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끝나는 시간이 19시였다. 그 때가지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
오는 도중 군에 전화해서 군수 의장 인사말을 받아 달라고 하려다가 한가지 사실을 알았다.
인삿말도 중요하지만 교부도 안 받았는데 책이 만들어 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담당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 되었다.
시집 발간을 미루기로 하였다.
집에 오니 5시 30분이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다리는 아프지 일은 많지 사람들은 병원에 안 가보냐고 하는데 갈 시간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거야 참
그 동안 얼마나 내가 내 몸에 고마워해야 하는지 새삼 고마웠다.
https://youtube.com/shorts/oJBcslqu6CI?si=-wxVA4exasH_oyy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