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이후]평양대부흥운동 서평(참조용)

작성자lsg|작성시간06.05.28|조회수354 목록 댓글 0
 

         과목명 : 평양대부흥운동

              담당교수 : 박용규님



             과제명 : 「평양대부흥운동」서평

             제출자 :

             학  번 :

             학년반 :

             제출일 :


총신대학교 신학 대학원


평양 대부흥운동 서평

1.  서론(序論)

박용규 교수님의 「평양대부흥운동」을 읽고... 박용규 교수님의 풍부한 식견과 열정적인 강의,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저술된 「평양부흥운동」을 읽게 되면 마치 20세기 초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착각에 빠질 만큼 몰두하게 된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실감이 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 박용규 교수님이 책에서나 강의 중에 언급하신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일련의 부흥운동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강한 소명 의식”과 “시대적 사명감”이 책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우러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저자의 열정과 치밀한 구성과 사실에 입각한 자료 수집과 그 자료들의 정확한 출처 제시, 그리고  미려한 필체가 어우러져 책의 가치를 더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 박용규 교수님은 「평양대부흥운동」을 제1부-원산부흥운동(1903-1906), 제2부-평양대부흥운동(1907-1908), 제3부-백만인 구령운동(1909-1910)으로 구성하고 있다. 원산부흥운동에서는 선교사 하디의 역할과 한일간의 을사 보호조약을 전후한 한국민들의 위기의식과 함께 영적 각성 운동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은 평양대부흥운동에서는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는 영적 대각성운동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도록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 박용규 교수님은 백만인 구령운동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운동의 성격이 무엇이며 결과는 어떤 것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평양대부흥운동」에서는 이 세 가지 사건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운동들을 잘 이해한다면 한국 초대교회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며, 20세기 한국 기독교 사의 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서평도 이런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면서 필자의 느낀 점을 덧붙이려 한다.

2.  본론(本論)

이 책에서, 저자 박용규 교수님은 원산부흥운동에서 평양대부흥운동까지를 성령이 역사 하신 “영적 대각성운동”으로 보고 있다. 저자가 왜 이 운동을 영적 대각성운동으로 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기독교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은 해외에서 파송된 선교사를 빼놓고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에서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던 나이아가라 사경회, 무디 부흥운동, 학생 자원운동, 성결교 운동 등이 직간접 적으로 교회와 선교사와 부흥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신학 교육을 받았던 사명자들 이었기 때문에 ‘부흥운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들 중에는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이 많았다. 신학적으로는 구학파 전통을 계승한 이들은 당시 남감리교 선교사들과 복음주의 신앙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남감리교 출신 의료 선교사 하디와도 잘 어울릴 수 있었다. 당시 하디 선교사는 한국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인 원산부흥동의 발원자 였던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안팎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다. 을사조약으로 황제의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헤이그 밀사 파견’은 실패로 끝이 나면서 고종 황제는 퇴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저자는 이를 “당시 한국은 강대국이 노리는 나봇의 포도원이었다.”라는 말로 강의 중에 자주 묘사하였다. 당시 한국은 그만큼 주변 강대국들과 외래문화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당시 대다수의 한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학문적 무지 속에 살고 있었다. 이때 해외에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모습은 야만인 그 자체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 선교사들이 우리보다 못한 미개 지역에 파송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도 이럴까?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자신들을 우월한 존재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1903년 하디의 영적 회심과 대각성으로 선교사들의 태도는 변했다. 그때 하디는 한국인들에 대한 자신의 교만을 동료 선교사들에게 뿐만 아니라 한국민 앞에서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철저히  눈물로 회개하고 낮아지므로써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 부흥운동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보았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교만하고 강팍했던 선교사들이 철저히 낮아지고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낮아지자 성령께서 이들에게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선교사들은 진정으로 한국을 복음화 시키려는 열정으로 가득 찼고, 이 열정은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희생하고도 감사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변화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인 원산부흥운동이 전개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평양대부흥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양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사경회’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경회는 우리가 지금 상황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성령의 역사가 강권적이었던 것 같다. 이 사경회에 참석자들은 영하 수십 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싸우면서 수백 리의 비포장도로를, 것도 사경회기간 동안 자신이 먹을 식량과 모든 경비 등을 등에 지고 오는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오순절이요, 한국의 예루살렘인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헌트의 폐부를 찌르는 설교가 있은 후 그래함 선교사의 인도로 그날 밤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회중들은 합심하여 뇌성 같은 통성기도를 시작했고, 그 통성기도를 통해서 하늘 보좌가 움직이고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는 성령의 강한 회개의 역사가 각 사람에게 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는 2주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이곳에서 타오른 성령의 불길과 영적 대각성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사경회의 특징은 기도와 성경 공부와 전도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고자 하는 철저한 회개 운동과 신앙에 대한 열정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태동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이전의 수많은 크고 작은 영적 각성 움직임들이 연합되어 거대한 운동으로 발흥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긍적적이고 열정적이며 말씀에 바로선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평양 대부흥운동은 자신을 헌신한 선교사들과 영적 대각성운동으로 철저하게 깨어진 한국 교인들의 민족을 복음화 시키려는 열정을 성령이 강하게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열정들이 지속된 힘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그 열정들의 힘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로 평양 지역에서 시작된 회개 운동과 영적 각성 운동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전국으로 펴졌던 것이다. 이 운동은 물론 ‘사경회’라는 독특한 모임을 바탕으로 기도와 말씀연구와 전도가 그 불길을 지속시켰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기도는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강권적으로 역사 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그 길을 통해서 우리의 영성을 키워,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 후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기 위한 사역을 행하신 것이다. 그러면 은혜 받은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에 따라 활동하게 는데 전도의 결과는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도 말씀 연구(성경 공부) 전도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지고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의 결과였지, 우연한 사건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은 민족의 복음화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었음을 인했다. 그래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장감연합공회를 열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평양부흥운동에서 은혜 받은 길선주 등의 기독교계 민족 지도자들이 합세하여 민족복음화에 참여했다. 이것이 바로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일어난 백만인 구령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지 25정도에 신도수는 약 20만명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년 기간에 백만인 구령 운동은 그 목표 자체부터 조급한 인간적인 생각이 가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목표가 달성된다 해도 제반 여건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백만인의 구령 운동은 문제가 있었던 것같다. 그것은 늘날 아무리 전도해 보아야 교회가 새신자들을 정착시키지 못하면 별 소용이 없는 것과 다를없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시급했던 것은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영적으로 거듭나도록 훈련 시켜서 올바른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3.  결론(結論)

지금까지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백만인 구령운동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는 성령께 의지할 때, 그리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기다릴 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인간의 술수와 위선이 개입될 때는 결코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국의 부흥운동은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한국민들의 위기 의식이 무엇엔가에 의지하고픈 음을 신앙에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박용규 교수님은 평양대부흥운동을 단순한 민족운동이나 부흥 운동이 아니라 ‘영적 각성운동’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영적 각성운동은 20세기초에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필자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2천년사를 조명해 보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가 안정되고 평온할 때보다도 극한 상황일 때 기독교가 부흥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인간은 환경이나 자신의 힘에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고 오직 절대자 하나님만을 의지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 될 때인데, 한국의 일련의 부흥운동은 바로 이 때였던 것이다.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기도와 말씀 연구와 전도를 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므로 성령께서 역사 하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학과 영성으로 무장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한민족의 영혼 구령에 자신을 바쳤던 것이 시대적으로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바로 이때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때가 찬 것이다. 그 적절한 때에 영적 각성운동과 일련의 부흥운동을 통해서 성령의 폭포수 같은 은혜가 한민족에게 임했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견해에 동의 한 필자의 견해인 것이다.

성령은 오늘날도 역사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멀티미디어와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성령이 역사 하실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는 성령이 역사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일련의 부흥 운동은 기도와 말씀 연구와 전도가 주축을 이루는 ‘사경회’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각종 컴퓨터 장비에 의존하려고 한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의지하고 연구하려고 하기보다는 몇몇 저명한 신학자의 신학이나 사상에 더 무게를 두려고 한다. 전도는 바빠서 하지도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평양대부흥운동」을 읽으면서 확실히 알았다. 이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이 할 도리를 최선을 다했던 부흥운동과, 인간의 조급함이 개입된 백만인 구령운동의 결과를 볼 때에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교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보였고 사회가 개혁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어있어서 민중의 지도자로서 또는 도덕적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민중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에 바로 서서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 평양대부흥운동이 총신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해야 겠다. 그럴 때 ‘온백성에게 칭송 받고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실’(행2:47)교회가 될 것이다.



현대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일반 대중들의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무게가 없고,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구성은 평양대부흥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마감되었는지를 시대순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원산부흥운동의 주요인물은 하디이다.

는 읽는이로 하여금 감동을 더하게 한다.

이책은 

‘평양부흥’과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는 평양 지역 교회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양대부흥운동 이라는 강의를 에다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강의에서 체택한 교제는 교수님의 저술서로, 그 분량과 내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방대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용하는 두 교제(「초대교회사」와 「평양대부흥운동」)는 학계에서나 출판계에서 크게 인정 받고 있는 것들이다. 필자가 그의 저술을

한국의 교회가 오늘과 같이 세계사에 전례없는 발전을 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 한국 기독교사에는 한국 시대상황에 가장 잘 맞는 선교사들이 가장 시기 적절하게 파송되었고, 한국 민중들의 순박함이 영적 각성운동을 통하여 말씀을 받아들이고 과 영혼 구령에 대한 열정,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어울어에는

연구하게 된 동기-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 때문에

한국의 영적 각성운동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연구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역사를 체계화하는 데 성령의 강림을 사실적으로 써 내려가는 필치가 유난히 돋보인다. 거기 그의 학문과 동시에 그 표현력의 탁월함을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데 반드시 사람을 불러 그에게 맡기시는 소명으로 하신다는, 그런 역사 이해의 기조를 분명이 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한국인 사역자들이나 선교사들의 인간적인 고투의 모습들과 그들의 아픔과 죽음 그리고 환난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디와 원산부흥운동-영적각성의 시대적 배경, 하디의 회심과 원산부흥운동의 발흥

원산부흥운동의 확산-타지역으로 확산되는 성령의 바람, 연속적인 하디의 부흥집회

을사보호조약 전후의 영적 가성운동- 을사보호족약과 주권상실, 민족복음화:민족의 유일한 소망, 기독교, 전역에서 감지되는 영적 각성의 움직임, 장감연합공회 결성과 신년 부흥외 개최결정

신년 부흥외와 하디의 귀환-계속되는 하디의 부흥집회, 신년 부흥회, 어디서나 눈에 띄는 급속한 교히성장

평야대부흥운동의 준비-하워드 존스톤의 입국과 일련의 사경회, 목교에서의 영적 각성운동, 선교사의 정오 기도회


2부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평양부흥운동의 발단, 평양의 오순절 그 첫날, 둘째날

평양 전역으로 확산되는 성령의 불길-사경회 이후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 2월의 장로교 남녀 사경회, 평양 시내 감리교내의 성령의 불길, 미션 스쿨에서의 성령의 역사

전국으로 확산되는 성령의 불길-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길선주의 등장, 길선주의 서울 부흥회, 평양 근교 지역(선천, 해주 영변, 재령)의 부흥운동, 대구에서의 성령의 역사, 기타 지방에서의 서열의 역사, 중국으로 번져 나간 성령의 불길

대부흥운동과 자전 자립-선교사들과 구령에 대한 열정, 한국인의 전도열 자전 실천, 처음부터 실천한 자립

대부흥운동과 교회성장-대부흥운동과 놀라운 교세의성장, 대부흥운동과 각 선교회의 성장, 미션 스쿨 및 의료 사역의 증대, 급속한 성장과 자원의 결여, 한국 교회 부흥운동과 성장의 몇가지 특징

대부흥운동과 사회개혁-대부흥운동과 영적 가성, 배움에 대한 갈망, 철저한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구현, 여성의 지위 향상, 우상숭배에서의 해방, 기독교에 대한 비기독교인의 시각변화, 환국에 대한 선교사들의 시각변화

복음주의 연합운동-교파간의 연합운동, 장감연합공회 조직, 연합의 목표 하나의 민족교회, 연합운동의 결실들

평양대부흥운동 그 성격과 평가


3부 백만인의 구령운동

민족복음화운동과 백만인 구령운동-민족복음화로 이어진 구령의 열정, 백만인 구령운동의 발흥

백만인 구령운동이 진행-1909년 초 백만인 구령운동, 전국으로 확산되는 백만인운동, 저변 확대되는  백만인 구령운동 1910년 봄, 열기를 더하는 백만인 구령운동 1910년 여름

백만인 구령운동의 재편과 형향-새롭게 재편된 백만인 구령운동, 백만인 구령운동의 영향, 백만인 구령운동의 평가



참고할 것

리포트 제출자(이하 필자)는 박용규 교수님 강의를 1주에 두 번(1,2교시-초대교회사, 5,6교시-평양대부흥운동) 듣는다. 두 강의에서 느낀 것은 교수님의 강의는 풍부한 식견에다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강의에서 체택한 교재는 교수님의 저술서로, 그 분량과 내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방대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용하는 두 교재(「초대교회사」와 「평양대부흥운동」)는 학계에서나 출판계에서 크게 인정 받고 있는 것들이다. 필자가 그의 저술을


필자(서평 제출자)는 「한국 기독교 100년사」를 통해서 한국 초대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던  ‘평양부흥’과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는 평양 지역 교회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양대부흥운동 이라는 강의를

저자의 주제, 그 책을 썼던 동기를 언급하라(서언과 마지막장)

저자가 제시한 증거를 간단히 요약하라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라

저작에 대한 감정적인 공격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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