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이후]시편 29편 : 가나안적인가 히브리적인가

작성자lsg|작성시간06.10.27|조회수178 목록 댓글 0
 

시편 29편


Yitzhak Avishur, Studies in Hebrew and Ugaritic Psalms


1. Psalm 29: 가나안적인가 히브리적인가?

이전 연구들에 대한 비평적 개관


  Ginsberg는 Ugaritic text에 근거해서 본문이 외국 hymn의 파생물(offshoot)이라고 주장한 첫 번째 학자이다. 즉 본문이 원래는 가나안 북부에서 지어지고, 더 후대에는 가나안 남부에서 떠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거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인들이나 아람사람들에게서 이것을 취했다는 것이다. Ginsberg는 이 주장을 지지하는 다섯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1. 본 시편은 이방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bny 'lym(신들의 아들들)을 부름으로 시작되는데 이 표현은 우가릿 종교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난다.

  2. 세 개의 지명이 본 시편에 나타난다: lbnwn (Lebanon), śrywn (Sirion), mdbr qdš (the wilderness of Kadesh). 이 모든 지역은 시리아에 위치해 있고 모두 우가릿 본문들에 언급되어 있다.

  3. 본 시편은 North-Phoenician linguistic features, 즉 wyrqydm이란 단어에서, the enclitic m을 포함하고 있다.

  4. 본 시편은 왕이 그의 보좌에 앉기 위하여 어떻게 돌아오는지 묘사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는데, 그러한 묘사는 우가릿 본문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5. 본 시편에서 발견되는 점층법의 평행구(the climactic parallelism)가 우가릿 본문들에서도 나타난다.


  본 시편의 가나안적 유래(Canaanite provenance)에 대한 관점이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 졌었다. 이런 학자들의 견해들을 더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Gaster는 많은 성경의 시편들, 특히 본 시편이 the god Hadad에게 바쳐졌던 hymns이었다고 주장한 첫 번째 학자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바알에 대한 시와 enūma eliš와 공통적인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들 서사시들은 유사한 패턴을 사용한다: 기후의 신이 반란하는(rebellious) dragon 이나 monster를 패배시고, 그것으로 인해 지배권을 얻고 새로운 신전에 취임한다.

  본 시편의 결론은 본래의 것이며, 본 시편의 결론에 있어서 이스라엘적인 수정을 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Gaster는 주장한다. 유일한 수정은 Baal 대신 YHWH로의 대치이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본 시편은 이스라엘의 신년 축제에서 hymn으로서 사용되었다. 마치 바벨론 창조 서사시가 바벨론 신년에 사용된 것 처럼 말이다.

  Ginsberg의 관점은 Albright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그의 제자인 F. M. Cross는 Ginsberg의 생각을 받아들여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하였다: 본 시편은 가나안적(우가릿의) 운율(meter)로 쓰여졌다. hdrt qdš라는 표현은 우가릿 본문에서의 hdrt를 상기시키는 것(reminiscent) 이다.

  Ginsberg에 의해서 제공된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증거가 추가된다: 시29에 여러 절들이 qtl/yqtl 패턴에 따라 구성되었다. 이것은 우가릿 문헌과 성경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Dahood는 Ginsberg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가릿에서 계속적인 발견을 하였다: ①시 29의 전체 어휘가 우가릿 본문들과 평행된다. ②시 29은 우가릿 문헌에도 나타나는 13개의 word pairs가 있다.

  Fitzgerald 역시 Gaster의 견해에 따라 시 29이 가나안적 기원(provenance)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결론을 포함한 본 시편 전체가 가나안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b'l의 이름을 YHWH로 대치한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증거로는 만일 역으로 YHWH 대신에 b'l을 대치시키면 본문을 훨씬 두음의 운율(alliterative)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즉 본래는 두운을 살린 가나안의 시였으나 이름을 대치해 버림으로써 그 두운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Johnson도 역시 마찬가지로 Ginsberg를 따라 시 29이 가나안 기원을 둔 시편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결국 Ginsberg의 시 29의 가나안적 기원에 대한 관점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에 반대하여 이스라엘적 기원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나안적 기원에 대한 증거를 논박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몇몇 학자들은 시 29에 가나안적 요소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이 저작이 이스라엘적 기원(Israelite origin)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주장하기를 시 29은 초기 가나안 시에 대한 극단적인 이스라엘적 개작이라는 것이다. 혹은 이 시편에 가나안적 요소들이 이 시편 발달의 초기단계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한 학자가 Fensham인데 그는 앞에서 언급된 학자들이 주장한 본 시편 속에 있는 우가릿 요소들을 분석하고 추가적인 증거를 더한 후에 제안하기를 “본 시편은 가나안인들 중에 개종자들 (proselytes)을 만들기 위한 선교적 시로서 의도되었거나 배교자 이스라엘인을 바알의 종에서 Yahweh의 예배자로 회심시키기위한 evangelizing psalm으로서 의도되었다는 것이다.

  어쨋든 결론적으로 단언된 가나안적 기원을 인증하기 위해서는 더 한층의 면밀한 조사(scrutiny)가 필요하지만 본 시편의 많은 부분이 가나안 문헌과 가깝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1) 본 시편에 있어서의 이방적 요소들

  Ginsberg는 본 시편에서 두 가지 이방적 요소를 언급하였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찬과 bny 'lym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자신도 bny 'lym이 설득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그밖에 성경 다른 곳에서도(Ps. 89:7) 나타나고 있고 비슷한 표현인 bny 'lhym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장하기를 bny 'lym이라는 표현이 이형태로는  시 89:7에만 나타나고 있고, mšpḥwt 'mym이라는 표현이 시 96:7과 I Chr. 16:7에서 나타나며, the congregation of bn il(m)이 우가릿 종교문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bny 'lym은 시 89:7에서만 언급되었는데 이 시편은 어떤 학자들도 가나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lym이라는 표현은 bny 'lym과 동의로서 "Song at the Sea"에 나타나며 이 노래가 가나안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없다. bny 'lym에 대한 mšpḥwt 'mym(Ps. 96:7)로의 대치는 후기인 Second Temple period에 일어났다. 결국, 이 표현이 우가릿 문헌(그리고 페니키아 비문)에 나타난다는 사실이 시 29이 가나안 기원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거기서 언급된 bny 'lym이 God보다 낮은 지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시 89의 bny 'lym과 출 15의 'lym에서 처럼). 시 29에서 언급된 bny 'lym은 다른 나라들의 신들이다. 그들중에 누구도 God과는 비교될 수 없다. 반대로 우가릿 문헌에서는 bn ilm이 El 앞에서 자신들을 낮추는(prostrate) 집단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시 29의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찬양’이 “Baal Hadad (the Syrian storm god)의 목소리에 대한 찬양”이라는 Ginsberg의 주장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찬양은 본 시편에서 뿐만아니라 다른 시편들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다른 시편들의 하나님의 목소리에 관해 언급된 모든 구절들이 가나안 문헌에서 취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 시 29의 지리적 배경

  본 시편에서 언급된 세 개의 지명(toponyms) 즉 Lebanon, Sirion, the wilderness of Kadesh)는 이 시편이 북부, 즉 비 이스라엘 기원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레바론과 시리온이 있는 곳은 분명하지만 the wilderness of Kadesh의 경우는 분명치 않다. Ginsberg는 이 지명이 우가릿 본문들에 있음을 관찰하였다. 즉 mdbr qdšilm n'mm wysmm의 신화에 언급된다. 그리고는 mdbr kdš와 Syrian desert를 identify하였다.

  그런데 Ginsberg가 이 논문을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Goitein이 시 29에서 mdbr qdš를 우가릿 본문에서 언급된 것과 동일시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말하기를 시리아에는 kdš라 이름한 곳이 없으며, 오히려 mdbr qdš는 남부의 Kadesh, 즉 the Kadesh of Moses와 관련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Ginsberg는 남부와 북부 양쪽 다 Kadesh라 이름하는 곳이 있으며 southern Kadesh 근처에는 Kadesh라 이름하는 사막이 없다고 응수하였다.

  여기에 대해 필자는 지명들이 본 시편의 가나안적 기원을 밝히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증거가 되지 못하다고 전제한다. 왜냐하면 Lebanon과 Sirion이 성경의 그밖에 곳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Senir(Senir는 Sirion에 대한 작은 변화이다) / Lebanon (Ez. 27:5); Lebanon / Senir (Cant. 4:8), 그리고 이 pair는 길가메쉬 서사시, 즉 아카드어 문학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Sirion과 Lebanon이란 지명은 시리아 기원의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Sirion과 Lebanon이라는 용어는 가나안의 북부 경계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지명들은 분명히 이 시편이 저작되었을 당시(during the united kingdon, under David and Solomon)에 이스라엘의 경계와 관련된 지명이다: 즉 Sirion과 Lebanon은 북부 경계를 mark하며, Midbar Kadesh는 동쪽 경계(Ginsberg의 해석을 따를 때) 혹은 남쪽 경계 (지배적인 견해)를 mark한 것이다.


  (3) The North-Phoenician Language of Psalm 29

단어 wyrqydm에서 emphatic ma (enclitic m)가 북부 페니키아어의 사용을 반영한다고 Ginsberg는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해석은 m을 제거하지 않고도 본문을 무리없이 해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He makes Lebanon skip like a calf, / Sirion, like a young wild ox). 이와 같은 Ginsberg의 제안은 모든 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고 우가릿 본문에서 본 성경의 enclitic m에 대한 다양한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런데 Hummel과 같은 학자들에 의하면 enclitic m이 성경에 수십 차례(dozens)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enclitic m의 증거를 통해서 시 29을 가나안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Ginsberg의 입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4) The Motif of God's Kingship

  Ginsberg는 시 29이 원래 10절로 결론을 맺는다고 하면서, Lambert의 견해를 따라 10절을 개정하였다: YHWH limlok [lammabbul 대신에] yašab / wayyešeb YHWH melek le'olām. 그래서 바알이 그의 승리 후에 그의 보좌로 앉기 위해 돌아오는 우가릿 본문과 관련시켰다.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적을 정복한 (vanquishing) 후에 군림하시는 주지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시 29의 가나안 기원을 주장하는 근거로서는 설득력이 없다(inconclusive).


  (5) Climactic Parallelism in Psalm 29

  Ginsberg는 우가릿의 한 절 (ht ibk b'lm / ht ibk tmḫṣ / ht tṣmt ṣrtk; "Now your enemy, O Baal, / Now your enemy will you smite, / Now will you cut off your adversary")과 시 92:10 ("For behold, Your enemies, O Lord, / For behold, Your enemies will perish, / All evildoers will be dispersed")을 비교함으로써 추가적인 support를 제공하려고 했다. 이 두 절의 첫 번째 두 구(cola)의 운율 (meter)은 시 29의 1, 5, 7, 8, 10절의 운율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다섯 절의 운율이 시 92:10과 Ginsberg가 인용한 우가릿의 절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다섯 절과 시 92:10의 유일한 유사성은 이 모든 절들이 단어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Ginsberg가 주지한 것처럼 시 92:10과 우가릿 구절은 abc/abd (a classical expanded colon)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시 29 어디에도 이러한 구조는 없다. 설사 시 29이 우가릿 구절과 정확하게 같은 방법으로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우가릿 기원을 증명하는 단서는 아직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가릿 구절에서 발견되는 패턴은 성경에서 수십군데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6) The Conclusion of Psalm 29

  Ginsberg는 시 29의 마지막 절이 후대의 첨가(a later addition)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종류의 blessings(11절의 내용-a national benediction)은 다른 시편들에서 발견된다고 주지하였다. 따라서 그는 결론 짓기를 시 29이 원래는 10절로 종결되었다고 한다. 가나안 기원을 주장했던 Gaster는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이 제안을 거부한다. Gaster에 따르면 11절이 original Canaanite psalm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한 “national" 언급(reference)은 바벨론 창조 서사시의 말미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런 이유뿐만 아니라 11절은 본 시편의 머릿돌이라는 것이다. 이 절을 빼버리면 본 시편의 structural symmetry를 파괴하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종류의 bressings은 non-liturgical texts에서도 발견된다.


  (7) Canaanite Meter in Psalm 29

  Cross는 반복적 병행구(repetitive parallelism)가 우가릿 서사시와 시 29의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early Canaanite style에서 전형적인 시 29의 또다른 작시법적 특징, 즉 the use of mixed metrical patterns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building blocks으로서 사용된 metrical units은 보통 3:3 혹은 2:2 (bicolon)이며, 3:3:3의 tricola 혹은 더 드물게 2:2:3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Cross의 말대로 혼합된 운율은 우가릿 서사시 스타일에서 드문일이 아니다. 그러나 Cross의 본문에 대한 운율 분석에 문제가 있다. 먼저 절 (strophe)은 실제로 한 절이 아니라 tetracolon verse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하나의 colon은 완전한 생각을 표현하는 온전한 colon이 아니다. 예를 들어 hbw lYHWH와 bny 'lym은 두 개의 cola가 아니라 single colon이다. 왜냐하면 그가 설정한 하나의 colon이 완전한 사상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YHWH를 찬양하라, 신들의 아들들아!”를 한 묶음으로 한 colon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본 시편은 가나안적 기원이 아닌 고대 히브리 시로 보아야 한다.


  (8) bhdrt qdš

  Cross에 따르면 시 29의 어휘에 있어서 또 다른 Canaanitism은 behadrat qodeš이다. Cross의 관점에서 이 표현의 MT에 대한 지지가 Ugaritic Krt epic에서 예로 들어진다. 이 서사시에서 hdrtḥlm ("dream")과 평행되어 나타난다. Cross는 설명하기를 hdrt가 우가릿 문학과 성경에서 ‘신의 현현’(divine appearance)이며 hdrt qdš는 ‘그가 거룩함가운데 나타나신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Caquot, Donner, Loretz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①우가릿의 hdrt는 애미하며 “appearence”로서 해석하는 것은 단지 ḥlm과의 대구법에만 의존한 것이다. ②히브리어 단어의 형태와 의미는 성경에서 잘 증명되기 때문에 이 단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없다. 결국 bhdrt qdš는 본 시편의 가나안적 기원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9) The qtl / yqtl Pattern in Psalm 29

  Held는 Ginsberg의 시 29의 가나안적 기원이라는 논쟁점(contention)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시 29에 있는 현상 (qtl / yqtl Pattern)에 대한 Cassuto의 예를 인용하면서, 이 패턴에 맞추기 위해 몇 개의 절을 개정하도록 제안하였다: 5절의 ר󰔪󰚇>ר󰔪󰚄, 7절의 복원, 즉 뒷절이 없는 것을 복원, 3절, 그리고 8절의 לי󰖐󰖸>ל󰖐󰕛, לי󰖐󰖸>ל󰖑󰖸󰕰으로 개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대 스타일적 패턴으로 바꾸면서 이것이 본 시편의 가나안 기원을 확증한다고 Held는 생각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특별한 패턴에 따라 letters나 words의 개정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개정이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10) The Vocabulary of Psalm 29

Ps. 29의 모든 단어들이 우가릿 본문에 나타난다는 Dahood의 주장은 본 시편의 가나안 기원을 증명하지 못한다. 설사 이 주장이 옳다하더라도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같은 어근(roots)과 단어들이 우가릿과 성경 히브리어에 나타난다할 지라도 이들 단어가 반드시 두 언어에 있어서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제의적 용어와 종교적 개념을 다룰 때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Dahood의 주장은 옳지 않다. 시 29의 어떤 단어들은-본 시편의 중심단어들은-우가릿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즉 hbw, kḥ, ḥyl, mbwl, and lhbh 등은 우가릿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 표현들은 우가릿어에서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용어로서 사용되지 않는다.


  (11) Word Pairs in Psalm 29 and in Ugaritic Literature

  Dahood는 시 29과 우가릿 본문에서 공통적인 word pairs를 11개를 발견하고 본 시편의 가나안 기원을 반대하는 자들을 논박했다.

  Craigie는 이 주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Dahood를 도전했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11개 중에 5개는 완전히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관련된 단어들이 명확한 댓구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6개 중에서도 다섯 개는 아카드어 시에서 나타나며 세 개는 아랍어 시에서 나타나고, 한 개는 이집트어 시에서 나타난다. 이들중에 어떤 것도 우가릿 본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 word pairs는 우가릿 기원과 시 29의 배경을 증명할 수 없다.

  Loretz도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은 Craigie의 관점을 인용하면서 단지 네 개의 word pairs만이 본 시편과 우가릿 본문에(그리고 다른 셈어들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 시편을 두 부분, 즉 1-2절과 10-11절을 한 부분으로(El에 대한 전승에서 유래), 3-9절을 한 부분으로(Baal에 대한 전승에서 유래) 나누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위의 네 개의 word pairs가 두 부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한 부분에 두 개의 word pairs. 결국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이 시편의 두 부분 중 어느 부분이 우가릿 본문과 특별한 밀접성을 갖느냐 였다.

  결국 Dahood는 히브리어와 우가릿어의 공통적인 word pairs에 대한 문제의 접근에 있어서 maximalistic approach를 하였다. 그가 우가릿과 본 시편에서 공통적인 word pairs를 11개나 발견한 이유는 문장론적이고 스타일적 패턴을 고려함없이 두 개의 전치사 혹은 두 개의 consecutive words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kmw / kmw, l / l와 같은 전치사와, 병행구(parallel cola)에서 반복되는 단어들을 word pairs로 생각하여 ql / ql, ṯbr / ṯbr, yṯb / yṯb 등을 포함시켰다. 그는 또한 우가릿 본문과 시 29 양자에 있어서 대등관계에(coordination) 있지 않은 단어들의 짝들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10개의 word pairs를 발견하였다. 나머지 세 개는 (lbnn / šryn, šḥy / kbd, y'lm / aylm)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어쨋든, 우가릿과 시 29에 공통적인 word pairs의 존재가 본 시편의 가나안 provenance를 증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공통적인 단어 짝들이 매우 빈번하게 고대 문학 작품들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12) B'l and the Alliteration in Psalm 29

  Gaster에 따르면, Fitzgerald는 YHWH 대신에 b'l로 대치해서 두운(alliteraion)의 결과를 얻었다. 이 읽기는 MT의 읽기보다 더 적절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본 시편의 모든 cola가 ב, ע, ל 문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Fitzgerald의 주장은 tetragrammaton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다섯 개의 cola에 의해서 지지받지 못한다.


  (13) The Psalm and the Jebusite Cult

  시 29은 원래 여부스 족 제의(Jebusite cult)에서 사용되었다가(served) 후에 이스라엘 제의에 의해서 채택되었다는 Johnson의 주장은 어떤 증거의 지지도 못받는 완전한 추측에 불과하다. 여부스 예배나 여부스 예배와 이스라엘 예배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2. Psalm 29 and Ancient Hebrew Poetry


  (1) Psalm 29 and Ex. 15

이 두 작품은 유사한 themes을 다룰 뿐만아니라 형태, 내용, 스타일과 어휘에 있어서 다양한 유사성을 나타낸다.

①양 작품에 공통되는 중심 주지는 warrior God의 출현이다. 즉 양자에서 하나님이 전사로서 묘사되고 있다. 양 작품에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내용과 어휘에서 비슷하다: 시 29-strength (bakkoḥ), glory (beḥādār), 출 15-bakkoaḥ, ge'onekah.

또 양 작품에서 하나님의 적들을 붙잡는 trembling의 주지가 공통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미필적(incomparability)의 주지가 양자에서 강조된다. 그리고 양자의 묘사는 공통적인 stylistic pattern, 즉 the expanded colon을 이용한다. 그리고 결론은 둘 다 하나님이 그의 승리 후에 영원히 보좌에 앉으시는 것을 강조한다.

②unique meanings를 가진 words와 phrases가 양자에 나타난다. the word "‘z“가 시 29에 두 번 나타나는데, 출 15에서 역시 두 번 나타난다. 그리고 둘 다 opening verses에서 하나님의 행위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유사한 맥락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동의어적 표현이 나타난다: 시 29의 mym rbym("mighty waters")=출 15의 mym 'dyrym("mighty waters").

③biblical poetry에서는 드문 the pattern of the expanded colon이 나타난다.

④biblical poetry에서는 드문 x // x+y parallelism이 양자에서 나타난다: 출 15 - 'ly // 'lhy (v.2); ym // ym swp (v.4), 시 29 - mym // mym rbym (v.3); 'rzym // 'rzy hlbnwn (v.5); mdbr // mdbr qdš (v.8).


  (2) Psalm 29 and Hab. 3

form, content style 의 유사성이 양자에 극단적으로 두드러진다.

①In both psalms, God appears as He battles the forces of nature with tremendous might; His awesome appearance terrorizes them. In Ps. 29, God appears in 'kḥ' and 'hdr' (v.4), and in Hab. 3, God appears in 'z and hwd (vv.3-4); the words kḥ, 'z, hdr, and hwd are essentially synonymous.

②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행위가 양 시편에서 묘사된다.

③양 시편은 form의 유사성을 드러낸다. 양 시편은 드문 스타일적 패턴, 즉 an expanded colon을 가지고 절에 적용한다. Ps. 29은 그러한 verse (vv. 1-2)로 시작되고 있으며, 합 3은 그러한 절(v. 8)로 두 번째 부분을 시작하고 있다.


  (3) Psalm 29 and Psalm 89:6-19

①양 시편은 하나님의 자연속에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시편이다. 두 시편에서 bny 'lym이 나타날 뿐만아니라 Smym, qhl qdšym, swd qdšym rbh ("council of holy beings"), sbybyw ("those around Him")이 나타난다.

②시 29에서는 Lebanon and Sirion 산이 묘사된다. 반면 Ps. 89은 다른 산들-Tabor and Hermon, and perhaps also Zaphon and Yamin을 묘사하고 있다. 양 시편은 하나님 앞에서 산들이 excitement하는 것을 묘사한다.


  (4) Psalm 29 and Psalm 77:14-21

  시 29은 시 77의 두 번째 파트와 비슷하다. 양자의 유사성은 terms of structure, content, stylistic patterns, and vocabulary에 있다.

①시 77:14-21은 independent literary unit로서 시 29과 비슷하게 chiastic symmetry를 가지고 있다.

②양자는 the pattern of an expanded colon이 나타난다: 시 29:1-2, 시77:17

③양 시편은 하나님의 appearance와 자연의 힘에 영향을 묘사할 때, 공통의 motif와 patterns of language를 사용하고 있다.

④양 시편에서 the national motif가 a cosmic event에 대한 묘사로 집약된다.


3. The Date of Psalm 29-Early or Late?

19세기 후반(the second half of 19C)에 대다수의 학자들은 모든 시편(Ps. 29도 그중에 하나)을 제2성전시대-the post exilic period로 돌리는 경향이 강했다. 그중에 Briggs(ICC)가 시 29을 2성전시대로 돌렸다. 그는 bny 'lym이 Persian angelology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hdrt qdš와 mbwl은 priestly source(포로기 이후 작품)에서 취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 시편은 Persian period에서 왔으며 Nehemiah's time이후에 쓰여졌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Graetz는 초기 저작설을 주장하는 소수의 19C 학자들중의 하나이다. 그는 본 시편을 상대적으로 초기 사건-유다의 King Uzziah의 통치동안에 일어났던 지진과 관련시켰다. 그래서 그는 본 시편을 가장 이른 biblical psalms 중에 하나였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에 Gunkel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여 시 29을 포함한 어떤 시편의 그룹을 제1성전 시대로 dating하였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우가릿 본문의 발견이후, 특히 Ginsberg가 본 시편의 가나안 기원에 관한 그의 생각을 출판한 이후에 본 시편의 연대에 대한 관점이 의미있게 변화하였다. Ginsberg는 제안하기를 본래의 가나안 시편이 이스라엘의 정복이나 왕국기(monarchic period) 동안에 이스라엘 저자에 의해서 취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후자를 더 선호한다.

  몇몇 학자들은 Ginsberg의 첫 번째 주장을 선호한다. Albright는 주장하기를 본 시편이 초기(early)라는 것이다. Albright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매우 초기임을 주장한다. Freedman은 본 시편이 the twelfth century B.C.E., 1100 B.C.E.보다 늦지 않을 때에 저작되었다고 한다. Cross-no later than the 10 C B.C.E. Dahood-David's time.

  Loretz는 본 시편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절과 9절(a framework), 그리고 3-9b절(the body of the psalm). 이 두 sections은 다른 독립적인 전승에서 유래한다. 첫 번째 부분은 El에 대한 전승, 두 번째 부분은 Baal에 대한 더 이른 전승. 그에 따르면 이 시편은 Baal과 El의 motifs가 합체되기(calesce)까지 전달의 확장된 과정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주장하기를 이 두 본래의 독립적인 요소가 합병(amalgamation)된 것은 post-exilic times,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 전승을 부흥하려고(resuscitate) 했던 강한 문학적 활동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Albright와 그의 제자들과는 달리 Deissler와 Loretz는 Ps. 29가 the post-exilic period에 연대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필자(Avishur)는 중간입장을 취한다(the truth lies somewhere in the middle). the verse structure에 근거를 두어서 후기를 주장한 입장(theological considerations)은 unconvincing하다. hdrt qdš, kbwd šmw, mbwl과 같은 신학적 개념은 1성전 시대에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 시편의 가나안 기원설에 대한 필자의 비평(remarks)라인에서 볼 때, 본 시편은 고대 히브리 시의 일부분이거나 parcel이다. 이것은 본 작품의 themes, motifs, formal and stylistic patterns에 의해서 증거된다. 본 시편의 고대 근동문학적 기질(substrate)은 다른 고대 히브리 시에서도 나타난다. 성경에 보존된 고대 히브리 시들은 (출15, 삿 5, 발람신탁, 야곱의 축복, 모세의 축복, 등등) 명백히 the united Israelite kingdom이라는 the golden age에 연대를 두고 있다(date from). Avishur는 확신하기를 본 시편도 이 시기에 저작되었다고 한다. 즉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the royal grandeur와 splendor가 이 시편의 저작을 prompt시켰다. 이 시편에는 하나님이 모든 다른 신들위에 exalted되시고 그의 적들을 vanquish하시며 eternal kingship을 획득하고 계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그 당시의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4. The Structure of Psalm 29 - Uniform or Complex?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본 시편의 구조와 운율이 변조되었다(corrupt)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본 시편의 일반적 구조와 verse와 cola의 구조와 위치에 대해 많은 변경(alterations)을 제안하였다.

  Margulis는 본 시편이 a liturgical meter par excellence인 (4+3) meter로 지어졌다고 주장한 후에 MT에 대한 많은 개정을 제안하였다.

  Gradel 역시 bicolon verses라는 uniform을 획득하기 위해서 tricolon에서 한 colon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9절과 같은 경우는 tricolon을 한 colon을 더 첨가하여 tetracolon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추정적(putative) 본래의 구조를 복원하였다.

  마찬가지로 Loretz는 단일의 meter와 structure를 얻기 위해서 본 시편 중에 일부분을 잘랐다. 6-7절을 제거했으며 3절과 10절의 일부분을 잘라냈고 많은 개별 단어들을 제거하였다.

  Avishur는 우가릿 패턴에 따르는 이런 극단적인 묘사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3/4 운율을 본 시편에서 발견하려는 시도가 괴이한 일이라는 것이다(bizarre). 더욱이 이 운율이 우가릿 시에서 유일한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운율은 우가릿 시에서 드문 것이다. 본 시편에 대한 MT의 형식적이고 언어적인 분석은 이 시편이 흠없는(flawless) 교차적 대칭구조(chiastic symmetry)라는 것을 드러낸다. Stylistic analysis는 이 시편이 의도적으로 단어와 표현들을 반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본 시편의 개별적 절(the individual verses in Ps. 29)은 교차적 대칭구조로 통합되었다(incorporated): p. 73 참조.

  본 시편은 도입과 몸통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결론은 도입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즉 도입과 결론은 각각 두 개의 bicolon verses로 consist of 되어 있다. 그리고 신명사문자는 모두 여덟 cola에서 나타난다.

  양자의 교차적 connection은 형식에서 뿐만아니라 유사한 어휘와 내용의 사용에서도 발견된다. 도입절에서의 hbw lYHWH...kbwd w'wz는 결론절의 YHWH 'z...ytn과 평행을 이룬다. 그리고 도입부에서의 하나님께 영광과 힘을 돌리는(ascription) 신적 존재들(bny 'lym)에 관한 내용이 결론부의 그의 백성에게 힘과 평화를 수여하시는 하나님과 평행된다.

  이런 theme은 또 다른 초기 시편인 시 68에서 언어적 주제적(thematic) parallel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motif의 두가지 요소도 시 68에 병렬되어 있다. 더욱이 literary-conceptual pattern에 대한 평행도 발견된다. 이것은 시 68의 도입과 결론 양자에서 발견된다.

  결국 본 시편의 도입과 결론에서 언어, 내용, 구조에 있어서 교차적 병행구조의 존재는 본 시편의 개정에 대한 정당성을 잃게 한다.

  본 시편의 body인 3-9절 역시 교차적 대칭구조로 구성되었다. 몸통 부분인 3-9절 중에서 3절과 9절의 form과 language가 평행된다. 이 두절은 구조적으로 tricola이다. 양 절은 또한 평행 어휘를 사용한다: 즉 kbwd. 여기서 대칭 구조의 중요한 구성요소(component)는 qwl YHWH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모두 일곱 번 나타나는데 body의 첫 번째부분(세번, 3-4절), 두 번째 부분(세번, 7-9절), 그리고 가운데 부분(한번, 5-6절)로 대칭적으로 나뉘어 있다. 결국 이 증거도 본 시편을 개정하려고 하는 제안의 정당성을 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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