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답고도 고운 목소리와 절묘한 화음이다.
이 음악은 몇년 전에 개봉된 "신과함께 가라"(원제: VAYH CON BIBS)의 삽입곡이다.
이 영화는 아래의 내용에서 설명 한 바와 같이 아름다운 배경과...
게시자는 음악에 한측 더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어느곡 하나 놓치고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곡들이다.
삽입된 17곡 모두를 회원들에게 선사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저작권...등의 이유로
딱 한곡만 올려본다. 반응이 좋으면 한곡 더 선별해서 올려보던지...
[영화내용]
사랑에 빠진 수도사의 '천상의 노래'
졸탄 슈피란델리(Zoltan Spirandelli)라는 신예감독이 발표했던 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가 바로 그 영화.
독일 서남부 슈바르츠 발트(검은 숲이라는 뜻의 울창한 숲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교회로부터 파문 당해 단 2개의 수도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칸토리안 교단'의 수도사들.
후원자의 후원 거부와 원장신부의 사망으로 수도원이 위기에 몰리자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과 한 마리 남은 염소를 데리고
마지막 남은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향한 여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무비다.
그러나 세상과 담쌓아 온 순진한 수도사들의 세상 나들이가 과연 쉬울까?
게다가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무모함을 고집하던
이들 세 사람의 수도사(아르보, 타실로, 베노)는 길을 떠나자마자 집에 두고 온 가족,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 세속적인 출세 등 속세의 온갖 번뇌에 발목을 잡히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함께 미소짓고 공감하고 함께 가슴 아파하게 될 아름다운 영화이다.
무엇보다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것은 천상의 선율같은 아름답고 순수한 수도사들의 노랫소리.
찬양을 신에 대한 최고의 경배로 여기는 칸토리안 교단의 수도사들인 만큼
이들이 한번 입을 열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멜로디와 화음이 밝은 빛처럼 쏟아진다.
'칸토리안'이란 'cantus(노래·선율)''cantor(성가대의 선창자)'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
때문에 칸토리안 교단에는 가톨릭의 대표적 성가인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가 항상 메아리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AD 590~604)에 의해 정리되어
'그레고리안 찬트'로 불리는 이 성가들은 라틴어 가사를
남성이 무반주로 부르는 가톨릭 교회의 예배음악.
7세기 초 유럽지역에 구전되던 음악들을 모아 채보한 것이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이다.
성당에 가 보면 사제의 강론을 제외한 미사의 거의 모든 부분이 회중(또는 성가대)과
독창자의 노래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노래라기보다는 가락이 있는 낭송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아무런 반주나 화성 없이 불분명한 가사로 이어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끝나는 선율, 감정이 배제된 남성들의 양감 없는 목소리,
오래된 성당을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분위기 등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음악이라 종교성을 떠나
음악 그 자체 만으로도 오늘날 사랑받고 있는 장르 중 하나다.
그러한 그레고리안 찬트의 매력이,
게다가 찬양을 최고의 경배로 여겼던 종파인 만큼
그 수도사들의 노래가 그야말로 최고일 것임은 당연한 일일 테고,
하여 영화는 이 번잡스럽고 죄 많은 세상에서 잠시 떠난 천상으로의 여행 같기만 하다.
특히 지식욕에 빠져 일탈한 베노 수도사를 데려오기 위해
나머지 두 명의 수도사가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노랫소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름다움 그 자체다.
최영옥: 음악칼럼니스트
엉뚱하고 순수한 수도사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웃다가 울었다.
젊었을 때 '좀 놀았다'는 벤노 수도사.
칸토리안의 교단규범집(?)인 '우르반의 교본'을 30년째 연구하고 있다.
새아버지와의 불화로 14살 때 집을 나와 수도사가 된 타실로.
그가 아는 유머는 세 가지 뿐. 수도원의 요리사다.
갓난 아이때 수도원에 맡겨진 미소년 수도사 아르보.
그가 알고 믿는 것은 찬양 뿐. 순수한 동정남이다.
그들은 칸토리안이다.
"목소리를 따르라" 라는 가르침을 섬기며, 찬양(성가)만으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데,
그 교리 때문에 17세기 후반 카톨릭 교단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계속 '왕따'를 당해왔다.
세월의 풍파 속에 독일에 하나, 이탈리아에 하나, 세계에 단 두 개의 수도원만 남아 있는데....
그나마 '신의 목소리를 따르라'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두 수도원도 지난 200년간 불화였다.
수도원은 검약과 침묵을 계율 삼아 찬양으로 신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가난과 빚에 쪼들리는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수도사가 숨을 거두며 남긴 말.
"우르반 교본을 이탈리아 수도원으로 가져가서 그들과 함께 하세요"
원장님의 유언에 따라 수도원의 전 재산인 교본과 염소, 힐데가르트를 데리고 길을 떠나는 세 수도사.
그렇다. 이것은 일명 '로드무비'다!!
30년 만에 세상을 나선 두 장년 수도사들에게도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죽하면 달리는 기차를 손을 흔들어 세우려 하겠는가.
게다가 '문명'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르보에게는 달려오는 자동차도 무섭지 않은판인데...
그렇게 그들의 이탈리아행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성격 괄괄한 젊은 여성, 키아라에게 차를 얻어 타게 되고, 엉뚱한 여정은 갈피를 못 잡는다.
타실로는 30년 만에 찾은 고향 농장에 홀로 남은 노모를 떠날 수가 없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한 너 만큼, 염소 젖을 짜던 나도 신에게 가까이 가 있었다구!!"
벤노와의 갈등으로 뒤에 남겨진 타실로.
벤노와 아르보는 '기차 갈아 타는 법'을 몰라 노숙자 신세가 되고, 속인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다가 과거의 연적이자 친구였던 카톨릭교단의 한 자리하는 거물, 클라우디우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신학교의 권위와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 앞에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한편, 클라우디스는 이단인 칸토리안의 맥을 끊어 놓을 음모를 꾸미고...
그 모든 혼란 속에 폭풍의 눈처럼 고요한 아르보.
타실로와 벤노를 통해 절망하고 상처 받지만
한편, 키아라를 통해 전혀 새로운 감정과 세상에 눈을 뜨기도 한다.
아르보의 순수함과 영적인 매력에 폭 빠진 키아라,
그러나 아르보의 찬양을 통해 그녀 역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데...
"벤노 형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수도사로 남을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만 결정하면 됩니다."
"아르보 형제, 매일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수도사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것이지요."
"아닙니다. 저는 이 길을 선택한 적 없습니다. 그저 이 길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르보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에게 진정 '신의 목소리를 따르라'에 대한 주체적 해석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신의 교리나 믿음에 대해 설교하는 종교 영화가 아니다.
신의 희생과 섭리를 일방 찬양하는 영화도 아니며,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냉소와 허무의 각본도 아니다.
세속화된 교회와 속인보다 더 속인이 된 종교인들을 풍자하고 희화하며
순수한 수도사들이 어떻게 유혹에 맞서 흔들리는지,
또 그들을 통해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과 함께 가는 길은 다양하다는 것,
무엇을 믿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실천하는 것에 미덕을 두고 있다.
여기서 당연히 '신'은 굳이 한 종교나 종파로 좁힐 필요도 없다.
세 수도사가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세속을 떠난 수도사의 눈을 통해 세속을 바라보고,
세속의 눈을 통해 세속을 떠난 수도사를 바라보는 것.
나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안에서도 '영적인 삶'과 '세속적인 삶'이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출처] 웃다가 울다 - 신과 함께 가라 / 졸탄 스피란델리|작성자 지니 락
※첨부파일(찬341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만 바라면
너 어려울때 힘 주시고 언제나 지켜 주신다
주 크신 사랑 믿는자 그 반석 위에 서리라
너 설레는 맘 가다듬고 희망 중 기다리면서
그 은혜로신 주의 뜻과 사랑에 만족 하여라
우리를 불러 주신 주 마음의 소원 아신다
주 찬양하고 기도하며 네 본분 힘써 다하라
주 약속하신 모든 은헤 네게서 이뤄지리라
참되고 의지 하는자 주께서 기억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