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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언제나 전도하라 하십니다(딤후4:1-5,161009/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16.10.09|조회수226 목록 댓글 1

언제나 전도하라 하십니다.

161009(주일오전)

딤후 4:1-5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년 4월 10일 ~ 1912년 8월 20일)대장이 어느 날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큰 환상을 보았습니다. 검푸른 바다에 먹구름이 무겁게 드리웠는데 큰 물결이 높이 솟아올라 흰 거품을 내며 사라지고 또 물결이 높이 솟았다가 흰 거품을 내며 사라지는데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떠다니면서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어떤 이는 욕을 하며 물결을 따라 올라왔다가는 내려갔습니다. 어떤 이는 파도를 따라 올라왔다가 가라앉은 다음에는 다시 올라 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큰 바위가 검은 구름위로 높이 솟아 있었는데 그 큰 바위에는 평평한 넓은 바닥이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이 몸부림치면서 그 성난 바다에서 올라오려고 죽을힘을 쓰면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전한 바위 위에는 바다에 빠졌다가 구출 받은 사람들이 사다리를 내리기도 하고 밧줄을 던져 주기도 하고 보트를 내려주기도 하며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무서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에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애타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는 자기 남편도 있고, 자기 아내도 있고, 형제와 자매도 있고, 사랑하는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자기들도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도 그 안전한 바위위에 앉아서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지내고 있고 어떤 이는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하며 즐기고  있었습니다.


  윌리엄 부스가 본 환상 속의, 그 큰 바위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악의 바다에 빠져 떠다니다가 영영한 지옥 불에 들어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죄의 바다에 빠졌다가 구원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세상쾌락과 썩어질 물질에 빠져 있고 극히 적은 사람만이 영혼의 추수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생명까지 바쳐 멸망해 가는 영혼을 구원하려고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난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죄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더욱이 사탄은 십자가의 복음과 심판과 천국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요한복음 4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불쌍한 영혼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많이 애쓰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편을 여섯 번이나 바꾸어야 했었던 불쌍한 한 여자의 영혼을 구원 하시려고 일부러 사마리아 수가성에 들어가 우물가에 앉아 기다리다가 수가성의 그 여인이 물을 길러 왔을 때 전도하시는 대화중에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성에 들어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고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5절에 보면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곡식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수 있게 되지만 영의 눈을 들어 영혼의 밭을 바라보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곡식이 누렇게 익었는데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땅에 떨어져 썩고 맙니다. 이와 같이 영의 눈을 떠 영혼의 밭을 바라보면 희어져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빨리 구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의 눈을 들어 영혼의 밭을 바라보라” 고 하신 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낫을 휘둘러 영혼을 추수 해 들여야 합니다. 빨리 빨리 전도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멸망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선교 사업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어떤 사업이나 이벤트보다 우선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추수의 낫을 휘둘러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16절에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재림이 가까웠을 때 영혼추수를 서두르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8장 20절에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한 말씀대로 우리가 만일 추수 할 때를 놓쳐 버리면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계 5대양 6대주에 사는 인구 중 55%가 아시아에 살고 있는데 그 중에 7%만이 기독교인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한국도 다 복음화 하지 못 했는데 사치스럽게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느냐?”고 합니다.


  1884년 미국의 아펜젤러(Appenzeller)와 언더우드(Underwood) 선교사가 한국에 왔을 때에도 미국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한국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한국에 1,200만 성도와 6만 교회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친첸도르프(Zinzendorf) 백작은 “이제부터 복음이 필요한 나라는 다 내 나라이다.” 라고 했습니다.  마이어(Meyer) 목사는 “12제자 중 오직 한 제자만 선교를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배신자 가룟 유다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언제나 전도를 해야 합니까?


  오늘 아침에는 이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시급한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겠습니다.

 

1. 인생은 짧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주전자나 솥에서 물이 끓을 때에 뚜껑을 열면 수증기가 올라가지만 2-3m도 못올라가서 다 없어지고 맙니다. 성경말씀은 마치 인생은 그와 같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혹은 수증기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욥기 7장 6절에는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라고 했습니다. 베틀에서 왔다갔다하는 북처럼 인생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허무하게 갑자기 죽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침에 살았는가 했더니 저녁에 없어지고 어제 반가이 만났었는데 오늘 죽었다고 부고가 전해지는 허무하고 짧은 것이 인생입니다.

 

  90살 내지 100살을 살면 장수한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무드셀라처럼 969세를 산다고 할지라도 영원에 비하면 극히 짧은 한 정점에 불과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오늘 당신의 생명이 끝난다면 그 후에 슬픔이 오겠습니까? 기쁨이 오겠습니까? 후회가 오겠습니까? 아니면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는 기쁨이 오겠습니까?

 

  토마스페인(Thomas Paine) 이라는 무신론자가 있었는데 그는 살아있을 때 "하나님은 없다. 내세도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내가 ‘理性의 時代’라는 책을 써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오 그리스도시여, 나를 도우소서. 나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 주시옵소서. 어린아이 하나라도 함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나홀로 지옥에 가게 되었나이다. 악마가 부하들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중에 하나는 바로 나일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그는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운명하였다고 했습니다.

 

  파스칼(Pascal)은 말하길 인생은 도박과 같다고 했습니다. 짧은 인생을 투자해서 영원을 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좁쌀 한 알을 심어 수백개의 결실을 맺는 것처럼 짧은 인생동안에 영원을 따는 영생을 버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영원의 길이를 설명하시는데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이 지구만한 강철공을 독수리가 l00년에 한 번씩 날아와서 한 번 쪼고 가고, 또 쪼고 가고 이렇게 해서 이 강철공이 다 달아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 소요된 시간은 영원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길 참새 한 마리가 저 대서양에서 물 한 모금을 물어다 대륙을 건너서 태평양에 갖다 부어 대서양이 다 말라진다 해도 이 시간을 영원에 비하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영원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짧은 현재의 삶에만 관심을 쫓고 죽음 이후에 오는 영원한 세계 내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살다 죽은 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면서 1년이 지나면 이 괴롬이 끝나겠지, 그 후 또한 5년 후면 끝나겠지 하면서 고통 속에 지낸지 언 백년이 지나도 죽지도 않고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만약 “언제쯤 이 고통이 끝이 납니까?”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히 “영원히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는 대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 사람이 죽어 주님의 품에 안겼을 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는 말씀과 같이 천국에 들어가 모든 것이 영광스럽고 평화롭고 놀랍고 아름다운 것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몸이 되어 고통도 없고 늙는 것도 슬픔도 없이 지내게 됩니다. 그 때 바울을 만나서 사도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제가 얼마나 오래 살게 됩니까? 하고 물어 보면 이 때 대답은 주님과 영원히 사는 것을 모르느냐 할 것입니다. 또 주님께 물어봐도 그것은 영원한 삶이다. 너는 이 즐거움을 영원히 누리게 된다고 하실 것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두렵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 것이냐 아니면 천국에서 영원히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냐 하는 중대한 선택을 세상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해야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올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사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심리학자들 의학 박사들도 4차원의 세계니 영혼의 세계니 사후의 세계니 하여 신문에 연재도 하고 책도 냈습니다. 거기 보면 사람은 죽어서 그만이 아니라 영혼은 육체를 빠져나와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영생하는 존재입니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영혼을 받아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마치 알에서 똑같이 깨어난 오리와 병아리지만 병아리는 물을 봐도 본체 만체하나 오리는 본능적으로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이 사람도 영생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죽지 않는 약을 구하려고 동남동녀 500인을 보냈던 일도 있고 한무제 같은 사람은 이슬을 먹고 살면 안 죽는다 해서 옥로반에 이슬을 받아먹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우리 사람들의 영혼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은 매우 긴 것입니다. 이 진리를 몰라서 많은 사람들은 100년 미만의 인생을 위해 그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현세의 즐거움만 추구합니다. 영원한 삶의 길이신 예수님을 안 믿고 멸망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사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죄가 우리들 모두의 가슴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옛날 사탄인 뱀이 에덴동산에 죄악을 끌어들인 다음부터 온 세상 사람들은 다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였고,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황인 갈색인 등 여러 가지 피부의 사람이 있으나 그 가운데 죄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유한 사람, 빈곤한 사람,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으나 죄없는 사람은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죄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법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법을 어기면 누구든지 벌을 받습니다. 마치 교통법규를 어기면 벌금을 물 듯이……


  또 죄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또한 죄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보면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했습니다. 사람이 살인죄 도적질죄 간음죄는 안 지었다 할지라도 선을 알고도 행치 않은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죄중에 가장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죄는 용서받을 길이 있으나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무슨 죄로 왔느냐고 묻는다면 도적질이나 간음죄와 살인죄로 왔다고 하지 않고-이런 죄는 모두 용서받을 수 있으므로-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죄 때문에 왔다고 할 것입니다.

 

  J. J. 브러더스 박사라는 분이 성지 순례를 하는 중에 어느 풀밭에 예쁜 아기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 애기가 어찌나 예쁜지 입도 맞추고 뺨도 비비려고 안아 들었더니,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안 돼요 더러워요!” 하고 만류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그 부모가 모두 문둥이이기 때문에 그 아기는 문둥이로 태어났으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건 모르건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럼 죄의 삯은 무엇이냐? 죄에 대한 벌은 무엇이냐?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고 에스겔 18장 20절에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고 했고 야고보 l장 15절에 보면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으며 계시록 20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사망이란 뭐냐, 죽는 것인데 죽는 것은 영생의 근원이 되시며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망인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종교가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각자 자기들의 종교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발표하게 됐는데 먼저 이슬람 모하멧드 교도중의 한 사람이 자기 종교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유교 교도중의 한 사람이 공자의 교훈에 대해 설명하고 역시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교도가 불타의 도덕률에 대한 것을 설명하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죠셉· 쿠크(Joseph Cook)라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개인을 파멸케 하고 가정을 깨뜨리고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이 죄라고 설명하고서 이슬람 모하멧드 교도에게 죄에 대한 치유책이 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교에도 불교에서도 죄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독교는 죄에 대한 치유책이 있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셨는데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박수와 환호성이 그 집을 뒤흔들었다고 합니다. 죄는 검지만 그 죄를 깨끗히 씻어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지옥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셀·포드(Herschel Ford)라는 목사님께서 미국 애쉬빌(Asheville)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어떤 신문 기자가 매일 설교를 신문에 냈습니다. 하루는 “지옥에 대한 성경의 진리”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더니 그 다음에 편지가 왔는데 "지옥은 미개인 바보나 믿는 것인 줄 모르오? 현대의 설교자들은 성경에서 이미 지옥을 빼버렸오! 그런데 아직도 어리석게 지옥에 대해 설교를 하오?" 하며 야비한 투로 글을 보내 왔더랍니다. 그들이 지옥이 없다고 해서 지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더 많이 있습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올바로 깨달아야 하고 또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믿지 않으면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1948년에 116명의 사람들이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있는 와인코프(Winecof) 호텔에서 불에 타 죽었는데 그 화재사건이 라디오 방송에 생생하게 중계 되었고,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테러로 건물이 불에 휩싸이고 2,800-3,500여명이 죽어갔고 그 모습이 T.V로 중계되었습니다.

 

  그 두 사건 모두,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불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어떤 사람은 포장도로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고, 어떤 사람은 창문에서 뛰어 내리다 머리가 깨져 죽었고, 어떤 사람은 고압선에 닿아서 죽었고, 어떤 이는 나뭇가지에 걸려 배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소방대원들이 최선을 다 했으나, 그러는 와중에도 불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무작정 뛰어 내리다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불길을 참지 못해 창밖으로 뛰어 내려 아스팔트에 머리가 부딪혀 죽은 사람, 허리뼈가 부러져 죽은 사람, 고압전선에 닿아 타 죽은 사람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불의 뜨거움을 참지 못해서 그렇게 뛰어 내리다 비참하게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욕 쌍둥이 빌딩의 불과 와인코프 호텔의 불이, 펄펄 끓어오르는 영원한 지옥의 불과 유황 못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지옥 불과 유황 못에 떨어지면 뛰어내려 자살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생애에 영혼구원을 위해 목숨 바쳐 전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마일 이상의 속도로 차를 몰고 오는 친구가 있고 그 앞에는 도로가 끊겨 절벽이 되어 있어 만약 차를 세우지 못해 친구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차를 세워 그 친구를 구할 것입니다.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교수들이나 목사님들 가운데도 지옥을 안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이니 사회정의의 구현이니 하며 훌륭한 말은 많이 하지만 지옥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지 않기에 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혼을 죄악에서 구원하여 영생 얻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요 제일 귀한 사랑인데 이것이 없는 사랑을 아무리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옥은 모든 복된 것과 분리시키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분리시키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분리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분리시키는 곳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여 나를 떠나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태 25:41)고 명령이 떨어지는 곳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를 다 받았어도 하나님 없이 살다가 지옥에 간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지옥은 끝없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 이는 “정말 지옥이 있습니까? 어떤 추상적인 묘사나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지요?” 라고 하지만 실체는 묘사보다도 더 나쁜 곳입니다. 그림이나 TV로 보는 화재의 현장은 별것 아닌 것 같으나 실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지옥은 확실히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당신의 모친이나 부친이나 사랑하는 친구나 식구가 천국에 먼저 가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천국은 눈물도 없고 고통도 절망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주님 발앞에 엎드려 그 곳으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한없이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텍사스에 돈 많은 목장주가 세계 여행을 하며 영국의 버킹검 궁전 앞까지 왔습니다. 그는 문지기한테 1,000불(130만원)짜리 지폐를 주면서 이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지 하며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이 때에 문지기가 하는 말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돈을 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 초청을 받은 사람은 1불도 없어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은 증거가 있으면 돈이 없어도 공적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끝으로 이 귀한 구원의 소식을 시급히 전파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4절에 보면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왜 문안하지 말라 했냐 하면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여 말을 오래하면 전도의 시간을 다 뺏기기 때문에 이 전도의 시급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 이하에는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쓰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소식을 시급히 전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전도하는 곳에 치유와 부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막 16:15-22)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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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성은 | 작성시간 16.10.09 은혜받았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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