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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온 천하보다 귀한 내 목숨(막8:36-37,170416/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17.04.16|조회수235 목록 댓글 0


온 천하보다 귀한 내 목숨

170416(부활주일 한영혼사랑예배)

 

(막 8:36-37)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오늘 한영혼사랑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방금 전 여러분들은 체코의 단편영화 "MOST(다리)"를 보셨습니다.

이 영화는 체코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2,003년도에 만들어진 단편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아빠의 일터로 함께 갈 것을 허락받은 아들은

방안을 떠나는 아버지에게 조금만 더 있어 달라며 조릅니다.

아들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자리에 같이 눕는 아빠는 한없이 따뜻하기만 합니다.

 

다음 날

아들은 아빠가 일하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강 아래에서 낚시대를 던지며 놀고 있습니다.

 

다리 위 기계실에서는

아들이 있는 곳을 한번 씩 내려다보며, 그의 안전을 살피는 아빠는

아들을 아주 사랑하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때

기계실 전화를 통해 배가 지나간다는 연락이 들어오고

아빠는 자연스럽게 레버를 움직여 다리를 올리고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합니다.

아빠의 직업은 이 개폐식 다리를 조작하여

기차와 배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돕는 관리자였습니다.

 

배가 다리 밑을 통과하여 벗어나고 있는 그 즈음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차의 기적소리와 연기가 있습니다.

기차의 기관사는

배가 지나가고 있으니 속도를 줄이고 기다리라는 빨간불을 미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계실 안에서 다른 일을 하는 아버지는

다가오는 위험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긴박한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때

어린 아들이 아빠보다 먼저...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아빠, 아빠 기차가 들어와요”

소리쳐 외쳐보지만

기계실 소음에 뭍혀 아빠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위험을 감지한 아들은 자신이 다리 위로 올라가

다리 밑 쪽에 있는 수동 레버를 당기기 위해 엎드리고...

겨우 레버에 손이 닿으려는 순간, 다리 밑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한 편

그제서야 위험을 감지한 기관사는 긴급한 기적을 울리고...

기적소리를 듣게 된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다리 밑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살피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아~ 아들아~”

 

그런 사이 기차는 다가오고

신속히 레버를 당겨야 하는 아버지는 사방을 둘러보며 아들을 찾다가

그만 다리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손 쓸 새도 없이..

"아들"과 "기차"의 상반된 운명은 아버지의 선택의 손에 얹혀집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탄 그 기차는 강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이고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죽어야만 하는 긴박한 상황...

 

안절부절하며 울부짖는 아버지...

레버를 잡은 손은 무섭게 떨리고...

죽음과도 같은 그 짧은 시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아버지는 결국 다리의 레버를 내리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는 절규합니다.

 

한 편

다리를 통과하는 기차 안의 풍경은

그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웃고 떠드는 승객

사랑을 나누는 남녀

자기만을 생각하는 우울한 사람들

마약에 찌든 공허한 눈빛들...

무심하게 앉아있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의 이 평범한 일상을 위해

밖에서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조차 하지 않습니다.

 

기차가 지나가자

아들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

 

그리고, 그 순간

마약을 주사하려던 공허한 눈빛의 한 여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영화를 보시면서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철도가 끊어진 상태이니 “즉시 멈추라”는 “빨간 신호등”을 놓치고, 죽음의 순간을 향하여 무사태평으로 계속 달려가던 그 “기차”의 모습 속에서, 죄악을 범하면 결국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죄악 된 길을 달려가는 우리인생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시 멈추라.”는 “빨간 신호등”의 경고를 놓치고 죽음의 순간을 향하여 겁 없이 전진해가는 기차의 승객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사랑스러운 아들 “라조"의 모습 속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경고를 놓치고 지옥의 저주를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기차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 라조를 가슴 저림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쓰라린 모습은, 죄악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어가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해야만 하셨던 하나님아버지의 가슴 저미는 사랑과 피 눈물을 삼키시는 그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죽어 지옥에 떨어져야만 하는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처참히 죽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방치해야만 하셨던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고, 온 우주만물도 함께 통곡하였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던 정오의 12시,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죽음으로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게 되었던 기차 안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죽음과 지옥의 저주를 벗어나게 된 우리들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까닭에 죽음과 지옥을 향하던 온 인류에게 생명과 천국의 탈출구가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비록 이 영화는 희생된 아들이 죽고 말았다는 너무도 큰 비극과 안타까움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과 그를 바라는 모든 자들의 기쁨이요 생명이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오늘을 부활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까닭에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게 되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이번 한영혼사랑예배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설교가 여러분과 저에게 마지막 설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설교가 제가 하는 마지막 설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의 요소들이 저를 감싸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끔은 차 사고로 죽을 뻔하기도 했고, 길을 지나가다가 고층건물의 엉뚱한 낙하물에 맞아서 죽을 뻔하기도 했고..., 욥기 기자의 말대로 “죽음과 나는 한걸음 사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설교일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압구정동에 있는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수요일에 설교를 끝내고 기도할 때가 되었는데, 모여 있는 성도 중 한 사람에게 이 예배가 마지막 예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목회자들에게 가끔 주시는 하나님의 싸인(sign)이 있음을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이 마지막이 될 사람이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길게 10분 동안 기도하고 성도들을 집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과연 예배 후 교회 문을 나서다가 결혼한 지 1년 밖에 안 되는 새색시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예배는 그 여자를 회개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마지막 예배였던 것입니다.

 

어느 한 수간 돌이켜 볼 때,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던 몇 몇은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번 한영혼사랑예배의 이 설교가 어떤 사람에게는 마지막 설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설교라는 자세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한 사람을 향한 마지막 들려줄 설교라는 자세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는 자가 마지막으로 듣는 자에게 전할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린다 해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 다른 것은 다 포기한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치! 바로 그것을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 결코 잃을 수 없는 것,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에 관한 것”, “영혼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 구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자기가 영혼의 무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방법이 어떤 방법이었습니까? 죽어가는 사람을 예민한 저울에 올려놓고, 죽는 순간 몸무게의 변화를 살피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실험 결과, 사람은 죽는 순간에 약 21g의 무게가 감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의사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고 했습니다.

 

그 프랑스 의사의 관심사는 영혼의 무게였으나, 우리의 관심사는 영혼의 무게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영혼의 가치입니다. 영혼구원의 필요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 8:36-37)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 자기의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온 천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 즉, 돈, 부귀, 명예,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것들을 획득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 경쟁하고, 이것을 위해 인생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한 갈증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어리석은 것이요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 부귀, 명예는 얻었으나 생명을 잃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너무 많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한 때 선풍을 일으킨 스필버그 감독의 ‘E.T’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9살짜리 소녀 ‘두록 베리어’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진한 소녀는 마약 중독의 폐인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녀는 ‘E.T’의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사인(sign) 공세를 받았으며 온갖 명성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돈, 부귀, 명성이 그 소녀를 죄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10살 때에 마리화나를 피우고 12살 때에 코카인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E.T 때문에 인기와 부귀는 얻었으나, 나의 영혼은 황폐화되었다.”

 

그녀의 뼈아픈 고백입니다. 부귀영화는 다 얻었으나 영혼을 잃은 것입니다.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의 말로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은 우리를 모두 향하신 우리 주님의 외침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싸움은 내가 얼마나 더 축적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당면한 영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영혼의 구원을 얻었으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십자가상의 오른편 강도입니다. 그는 한평생을 개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동안 하나님이 두려워졌기에,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철든 소리했습니다.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

 

이 한마디 외침이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부귀, 영화, 목적을 다 이루었다 해도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 그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여한이 없다.”

 

헛소리 말라고 하십시오. 천추의 한이 맺힐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운명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 범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간의 말로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겁 없이 그렇게 떠드는 것입니다.

 

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합니까?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순종을 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인간들은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악마가 시키는 대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악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무서운 악을 저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6:23)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성경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지옥으로 떨어져야만 할 저주스러운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이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오르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1946년 12월 7일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란타에 있었던 15층짜리 위네코프 호텔에 큰 불이 났습니다. 새벽 3시 15분 3층에서 발화된 불이 15층까지 타고 올라갔습니다. 호텔 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방송으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날 화재로 116명이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입니다.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25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동의 '대연각(大然閣) 호텔'에서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때 총 166명이 죽음을 맛보았는데, 역시 무작정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은 사람들이 또 그렇게 많았다는 것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쌍둥이빌딩이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자들에 의해 항공기와 충돌하여 그곳에 큰 불이 일어났습니다. 이 쌍둥이무역빌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방송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날 화재로 약 2,800~3,500여명이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이 때에도 그 110층의 높은 창문으로 무작정 뛰어내려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화재현장의 공통점들은 고층건물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끔찍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끔찍하게 죽는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왜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내리는 것입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어찌하든 그 뜨거운 불길의 고통만큼은 피해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지옥의 불길이 위네코프 호텔, 대연각 호텔, 뉴욕 쌍둥이 세계무역 빌딩의 불길들처럼 실제적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상의 화재사건현장들에는 뛰어내릴 창문이라도 있었지만, 지옥에는 뛰어내릴 창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원래 지옥은 인간을 위해 예비 된 곳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을 보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이 악한 영인 마귀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마귀가 제시하는 죄악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도 그곳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다 구원받아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범죄한 인간,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의 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심판을 대신 담당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주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져 주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패자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우리의 실패를 대신 져 주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십자가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다 이루었도다!”라고 외쳤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모든 일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완전한 길은 십자가란 뜻입니다. 이 십자가가 나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으면, 예수의 피가 나의 죄를 씻어준다는 것을 믿으면, 구원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께서 확증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5)

 

실제로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위하여 대신 죽어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부활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렇기에 주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멸망당할 자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나,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이것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젊어서, 어떤 사람은 늙어서 깨닫습니다. 그리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결국 죽은 후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라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미룰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을 놓고 내기하는 그런 엄청난 도박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영혼의 구원 문제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영어를 공부하고 연습한 사람만이 영어가 필요할 때 영어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평소에 예수님을 공부하고 예수님 믿었던 사람만이 죽기 직전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다가 어느 날 죽기 직전에 갑자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느 장로님의 임종 때에 벌어진 일입니다. 돌아가시게 되자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장로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예수님을 압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힘주어 물었습니다.

“장로님, 예수님을 믿습니까?”

역시 대답은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예, 예수님을 압니다.”

 

당황한 목사님이 더 크게 외쳤습니다.

“장로님,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당신의 모든 죄를 사하심을 믿습니까?”

 

다 죽어가는 장로님이 어디서 나온 힘인지 모를 정도로 소리를 버럭 지르며 외쳤습니다.

“아 글쎄, 예수를 안다니까요.”

 

그리고는 꽥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평소에 예수님을 알고도 믿고 의지하지 않던 사람은 죽음의 순간이 와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능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 강도처럼 평소에는 예수님을 잘 몰랐지만, 죽음의 순간에라도 회개하려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 믿지 않는 사람이 죽을 때 믿는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100년 안에 프랑스에서 모든 성경이 사라질 것이라던 무신론자 볼테르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는구나!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무신론자 토마스 스코트는

 

“나는 하나님도 지옥도 없는 줄 알았노라. 그러나 지금은 그 둘이 모두 있음을 느끼노라. 나는 지옥으로 간다. 내 영혼은 어찌하는가?”라고 외치며 죽었습니다.

 

1993년 11월, 80평생을 입산수도하고 난 한국불교계의 최고지도자 조계종의 종정 성철스님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 위에 걸려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피 묻은 손길을 외면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이 시간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지옥이라는 표현을 쓰면 지성인의 수치라고 합니다.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이 실재한다고 말씀하신 동시에 지옥도 실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은 지옥의 존재도 믿어야 합니다. 지옥은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예전에 어떤 보도를 보니까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다리의 연골을 잘라 버리는 사람이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지옥은 눈 하나 없애서라도, 팔 하나 없애서라도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차마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독약이 든 컵을 놓고 “이것은 독약입니다.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범죄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먹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멱살을 잡고라도, 머리채를 잡고라도 말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붙들어야 할 생명이십니다.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이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단 한 분도 주님이 내미시는 피 묻은 손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롬 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시간에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의 교우들이 찬양을 한 곡 부르겠습니다. 가사를 보시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네 추악한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 흘리신 그 피로 나의 죄 눈같이 씻겼네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2. 예전엔 어려운 일 많았었고 괴롬도 컸었습니다.

지금의 나의 맘 속에는 기쁨이 넘치네 넘치네

3. 당신은 무엇을 믿고 가나 무엇을 바라며 사는가

고달픈 인생의 험한 길을 예수님 그대 짐 지신다오

4. 괴로운 인생길을 다 버리고 고통도 괴롬도 버리고

그 모습 그대로 오시오 예수님 그대 짐 지셨다오

5. 당신도 이제는 알게 되리 예수님 그대 짐 지심을

기쁨이 넘쳐서 찬양하네 생명을 주신 주님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구원함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단 한 사람의 영혼도 지옥의 백성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바라기는 다음의 기도를 한 분도 빠짐없이 다 같이 따라 하심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 함께 기도 합시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죄를 처리하심을 믿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옵소서. 지금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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