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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창18:11-15,180819/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18.08.20|조회수964 목록 댓글 2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180819(주일오전)

창세기 18:11~15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우물 밖의 넓고 넓은 세상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면서, 또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저 하늘의 해와 달과 수억만 개의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만큼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줄로 생각합니다.



가령 개미에게 수백 명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든다고 말하면 그런 불가능한 말은 하지도 말라고 할 것입니다. 개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도는 썩 잘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우리 생각대로 힘이 없는 작은 하나님으로 제한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이고, 그의 아내 사라가 89세로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일 년 후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고 일러주자, 처음에는 웃고 잘 안 믿으려 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Gn 18:14, NIV) 『Is anything too hard[difficult/NASB]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하나님이 지으신 은하계(Milky Way Galaxy)가 여러 개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우주에 은하계 하나만 하더라도 수십 억 개의 별이 있고 그 은하계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하면 빛의 속도,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그 속도로, 10만 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또 1초에 별을 하나씩 센다고 하면 2,000년 걸려야 은하계의 별을 다 셀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시고 광대무변하신지 아시겠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만나만 먹게 되니까 원망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민수기 11장 5~6절에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불평하며 고기를 먹고 싶다 하니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나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 책임이 너무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호소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70명을 선택하여 회막으로 데리고 오라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고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리라.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라 하라.” 모세가 즉시 말하기를 민수기 11장 21-22절에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민 1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Nm 11:23, NIV) 『The LORD answered Moses, "Is the LORD'S arm too short? You will now see whether or not what I say will come true for you."

 

이에 모세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알리고 장로 70인을 장막에 세우자 모세에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니 아니하였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오자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에 두 규빗(약1m)이나 쌓여서, 적게 잡은 자도 열 호멜(약2.2kl)이나 거두게 하셔서, 그들이 실컷 먹고 사방에 널어 말리기까지 했습니다.

 

믿음 좋은 모세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60만 대군이 한 달 동안 실컷 먹게 하신다고 하셨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저 하늘의 해와 달과 수억 만 개의 별들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작은 두뇌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Can God do it? 그것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을까?”하고 기도의 힘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길을 가시다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그 이튿날 그 옆을 지나가다가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죽은 것을 보고 베드로가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마가복음 11장 22~23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원어직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시고 이어서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너희 생각대로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믿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기도하면, 즉 하나님의 믿음으로 기도하면, 태산이라도 능히 옮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그냥 쓸데없이 이 산, 저 산 옮겨가라고 명령하는 대로 해주시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지 하나님을 시험해보기 위해서나 하나님을 식모처럼 부려먹기 위해서 아쉬울 때마다 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기도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때 태산을 옮기는 것 같이 어려워보여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때로는 명령하라는 말씀입니다.


88올림픽 현장에서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 나갔는데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비가 멈출 것을 기도했더니 그 시간 비가 멈추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때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그와 같은 기이한 체험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if you believe, you will see the glory of God?] 하지 아니하였느냐?”하셨고,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느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던 홍대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분이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을 때 시집보내야 할 딸이 있어서 조선에 계신 부모님께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여비가 50원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홍대위 목사님은 돈을 저축하는 법이 없고 꾸는 법도 없는 분이어서 그 때부터 50원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딸은 아버지를 비웃으며 “돈을 어디서 꾸어오든지 해야지 기도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를 했는데 떠날 날이 임박해서 여 선교사 한 사람이 돈을 50원 가지고 왔더랍니다.


웬 돈이냐고 했더니 조국에서 돈 100원이 왔는데 그날 밤에 밤새도록 잠이 안 오면서 “홍대위 목사님, 50원 갖다드려라.”하는 마음이 계속 들어와서 아침이 되자마자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출발했는데, 막상 출발을 했더니 돈이 6원이 또 부족하더랍니다. 청도에서 배를 타고 가는 데 배 삯 6원을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점이 가까워 오는데 6원을 더 달라고 또 기도하니까 딸이 또 비웃으면서 내려서 빌리든지 해야지 기도만 하면 되느냐고 하는 것을 계속 기도하는데 정거장에 기차가 멎으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 교회 교인이 목사님을 알아보고 목사님한테 뛰어오더랍니다. 반갑게 인사하면서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가시다가 식사나 한번 하세요.”하고 주고 가는데 펴보니까 꼭 6원이더랍니다. 그래서 고향에 잘 다녀왔다는 간증입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아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시는 세밀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말대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공급방법과 능력을 결코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주어진 계약을 “옛 계약”(old testament) 즉 구약이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새롭게 주어진 약속을 “새 계약”(new testament) 즉 신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착한 행실을 봐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죄가 하나도 없이 거룩해진 다음에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해 죄 없는 살과 피를 가진 몸을 입고 오셔서 대속의 피를 다 쏟아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악을 버리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나아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핏 값이 우리에게 적용되면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며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봉사하시다가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그 몸을 찢어 보배 피를 다 쏟아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기에, 주 예수를 믿는 자마다 구원받게 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 위해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이며 해와 달과 수억만 개의 별들을 지으신 것보다 더 크고 넓은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던 강도는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지만 죽기 직전이라도 그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 예수를 믿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낙원에 들어가는 복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넓고 큰 사랑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기준으로 제한하고 마음이 좁은 하나님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가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탕자의 귀향”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그 탕자는 신발은 다 헤어져 왼쪽 신발은 밑창이 다 떨어져 아예 벗어져버렸고, 오른쪽 신발은 윗창이 없으며, 굳은 살 투성이인 맨발이 더럽게 드러나 있으며, 신분을 상징하는 겉옷은 너무 낡아 벗어버렸고 남루한 속옷만 걸쳤으며, 머리는 노예처럼 빡빡 깎아 버렸으나 얼굴은 더러운 때 국물이 흐르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기에 늘 불안한 모습으로 오른쪽에 칼을 차고 있습니다. 거지 중의 상거지인 그 아들을 으리으리하게 차려입고 금팔찌, 금가락지를 낀 아버지가 냄새 나는 그 아들을 따뜻하게 안고 마냥 기뻐만 하는 모습입니다.


몇 년 동안 양치질도 못하고, 몇 년 동안 샤워 한 번도 못하고 돼지우리에 살던 아들을 안고 더러운 얼굴에 키스를 퍼붓습니다. 아들은 그저 품꾼의 하나로만 써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못하게 입을 가로막았고 살아 돌아온 것만 기뻐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그 아들이 죄인, 탕자, 배신자가 아니라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죽었다가 살아온 내 아들”이며 “He was lost, but now he is found.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는 결코 다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하늘의 별 수만큼 지었어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면 다 용서하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죄악을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무조건 용납하십니다. “그 돈 다 어디에 썼니? 무슨 염치로 돌아왔니?” 그런 말 결코 하지 않으시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축제의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큰맘 먹고 “형제가 잘못하면 7번까지 용서할까요?” 했을 때 “7번뿐 아니라 7번을 70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2)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용납 못할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자신의 수준으로 낮추어 놓고 스스로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위기상황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을 단순히 부인한 정도가 아니라,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막14:71)고 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끝까지 베드로를 찾아가 그가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베드로가 회개하였을 때 주님은 그를 다시 받아 주셨고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셨으며, 그의 남은 생애를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실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대의 의인으로 인정받고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가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잠을 자다가 아들들한테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를 음란한 사람으로 오해하여-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다는 말은 출애굽할 당시에 이스라엘을 따라 나온 다른 인종들과 잡족들의 불평불만이 거세지자 그들을 위한 중간지도자로 그 구스여자를 세우기 위해 그를 불러 상담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음란한 사람으로 오해하여 비방하자 하나님께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1-3)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을 비방하며 공격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나병에 걸렸지만, 그들이 그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다만 그 사안의 중대함을 일깨우기 위해 이스라엘백성들 전체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1주일간을 근신하게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 그들을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군 다윗이 그렇게 겸손했지만 사탄이 그 마음을 동요시키니까 교만하여, 하나님보다 자신의 군대를 더 의지하기 위하여 군대의 수를 세었다가 7만 명이나 죽었고, 또 나라를 평정시키고 한가롭게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시험에 들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남편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 나가 죽게 한 엄청난 죄를 범했으나, 그가 그 죄악을 지적받았을 때 눈물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용서하시고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악을 범하고 그것을 지적받았을 때, 입술로는 자신이 범죄하였다고 인정하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존심과 위치를 지키려는 욕심으로,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삼상15:30)라는 말을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그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며 회개한 것이 아니고, 단지 회개하는 척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된 다윗은 사울왕 보다 더 크고 흉악무도하며 팔염치한 죄악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실수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그가 진정으로 뉘우치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다 용서해 주시지만, 아무리 작은 죄악일지라도 건성으로 회개하고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간다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악을 범하였을지라도 다윗과 같이 진정으로 그 죄악을 뉘우치고 버리며 하나님께로 나아와 용서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용서받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4장 5-8절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주보다 더 넓고 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제한하고 남을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히틀러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할 때 독일의 지하 감옥 벽에 손톱으로 쓴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 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생각대로 제한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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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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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성은 | 작성시간 18.08.20 아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병천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2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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