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181021(주일오전)
눅 4:16-27
여러분들은 가난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 혹은 복들 가운데 때때로 가난도 포함되어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자(人子) 즉 사람으로 오셔서 첫 번째로 선포하신 설교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임을 보아서 굉장히 중요한 설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18-19절에 이사야 61장1-2절의 말씀인,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며 설교를 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22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에 대하여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자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마디씩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말씀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눅4:22)
오늘의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들 가운데 이 사람들처럼 놀랍게 여기기나, 혹은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눅4:6-7절의 기록처럼,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모든 권세를 사탄에게 빼앗게 버린 채 가난하고 병들고 찌든 삶, 저주스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죄는 없으시되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지신 인자(人子), 즉 사람으로 오셨기에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신 분이셨으나 갖가지 기적들과 능력을 행하실 수 있었던 까닭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에 그런 사역을 행하셨다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은 진실이지만, 지상생애동안에는 모든 신성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사람으로 사역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그의 모든 신성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이신 예수님이 성령을 힘입었기에 그 모든 공적인 사역들을 능히 잘 감당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와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강림하셨습니다(눅3:21-22).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 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의 모든 시험을 다 물리치셨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경을 읽으려고 서셔서, 이사야 61:1-2의 말씀인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며 설교를 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사역은 성령님의 임하심 안에서 풀어지는 기름부음으로 되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고 예수님께서 고쳐주시자 그가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듣고 말하기를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2:25-28)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으로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셨고,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사역이셨으며(요1:33), 성령으로 명하시는 사역이셨습니다(행1:2). 예수님의 공생애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성령을 힙 입는 사역이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 동일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과 동일한 사역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요 14:12-17)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인자이신 예수님께 성령님이 임하시고 그분에게 기름부음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참고적으로 물질적 가난(결핍)은 궁극적으로 정신적 가난(결핍)으로 잠식되어질 수 있습니다. 가난은 그저 조금의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저장강박이라는 마음의 질병으로 연결되어질 수 있고, 500원 천원에 목을 매는 불안으로 포로된 인생, 눌린 인생, 더 이상의 앞을 보지 못하는 인생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행복론은 사실상 물질적 결핍과 그로 인한 좌절로 인해 무너져가는 마음에 대한 방어기제요 현실부정일 수 있습니다. 듣기에 불편할지 몰라도 물질이 부족하면 정신도 망가져 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일 것입니다. 강박과 집착을 버리고 달관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것도 사실 ‘내가 달관한 것일까 아니면 달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태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서두에서 질문드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 혹은 복들 가운데 때때로 가난도 포함되어 있을까요?”에 대한 성경적인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 혹은 복들 가운데 가난이란 없습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 실제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사역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 4:23-25)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가난한 자들은, 헐벗고 굶주렸기에, 대부분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며 시름시름 앓아야 했었고 귀신들리고 간질하고 중풍병에 걸려도 이렇다 할 변변한 치료조차도 받을 수 없는 열악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가난의 저주가 계속해서 대물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임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셨고, 그 성령님이 인자이신 예수님께 임하셔서 예수님은 그 성령님을 힘입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신 복음,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에 기록된 복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악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진다는 말씀입니다.
(사 1:2,3,18,19,20)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실 이 복음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셨던 그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출 23:25-26)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는 복의 근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지 않으므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할 때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하게 되고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게 되며 능욕 대신에 몫을 얻어 즐거워 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 61:6-7)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이상과 같은 소식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여질 복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게 하시려고 임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셨고 기름부음을 주셔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그러한 복음을 전하는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이 바로 그 복음을 가르치는 사역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은 모두 다 그러한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난함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살았던 그 모든 문제들이 예수님 안에서 다 해결되는 기적들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의 모든 연약함과 질병이 떠나감으로 건강이 회복되었고, 배고픔과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오순절 성경강림 이후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로 그들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가운데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행2:43-47,4:32-35).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악을 회개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과 부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아 부요케 되어지지 결코 가난하여지지 않는다 말씀합니다.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잠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가난의 극치에서 이 복음을 믿고 기도하여 그 복된 삶을 성취하며 살아간 대표적인 사람이 야베스입니다.
(대상 4:9-10, 개역) 『[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히. yabbech; 슬픔)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히. ocheb; 고통, 슬픔)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은 가난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거나,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엄청난 부동산을 주셨습니다. 온 지구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성에는 다 안차셨는지, 동쪽의 에덴에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고 온갖 과실로 풍요로운 정원을 따로 만들어 선물로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저주가 내리기 전까지 이 땅에는 가난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은 죄악의 결과이지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가 아님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원수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기에 그가 서 있는 땅에 저주가 임했고 그 결과로 찾아온 것이 가난입니다.
(창 3:17-19)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저주”라는 것이 어떤 새로운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복(blessings)”이 없는 상태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복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모든 좋은 것들이 뭉쳐진 것입니다. 생명, 빛, 사랑, 평화, 진리, 부유함, 건강, 풍성한 소산, 기쁨, 희망 등등 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야고보서 1:17)이며 그것이 바로 복입니다. 그 복을 잃었을 때, 아담은 가난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믿고 섬긴 조상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신명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가난해 질 수가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과 질병은 저주의 결과라는 것이 흑과 백처럼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난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가난은 저주의 결과라는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 더 이상 가난을 경배하지 말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풍성한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복은 죄악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알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복된 소식, 즉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결단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모든 저주의 멍애가 부러지고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사 10: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사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짊어지어야 할, 가난의 저주를 대신 담당해주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갈 3:13-14)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가난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자유 하게 해 주신 예수님 안에서 하루 빨리 가난을 극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고, 또 가난한 자들에게 그 복된 길을 있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가난도 좋은 가난은 없습니다. 그 어떤 가난도 복이 되는 가난은 없습니다. 비록 가난이라는 저주 속에서도 하나님의 복이 나타나며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마음이 의로운 자에게 더 긍휼을 베푸시지만, 그가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싸우지 않는 한 그는 가난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비록 지금 가난 속에 있다하더라도, 저주의 결과로 주어진 가난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유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직을 행하며, 남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일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어 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는 이 복음은 성령님의 임하심, 즉 성령님의 기름부음 안에서만 선포되어질 수 있고, 또 깨달아질 수 있고,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눅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가난을 벗어나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첫째,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십시오.
성령님이 도우심이 임할 때, 돈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는 이 단순한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반대로 사탄의 미혹에 빠질 때 돈에 대한 잘못된 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돈의 노예가 되거나 돈을 터부시하게 되는 것은 둘 다 사탄의 미혹에 빠진 결과임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재정의 위치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신약 성경 안에 믿음에 관한 구절은 215개이며, 구원에 관한 것은 218개인데, 금전과 재정의 청지기직과 책임에 관해 다루고 있는 구절은 2,084개나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코카콜라는 코카콜라를 위해 목숨을 건 선교사가 단 한사람도 없지만 이미 세계 복음화(?)를 다 이루었으나, 기독교는 예수생명을 위해 목숨을 건 선교사님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아직도 세계복음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요한 한 이유가 재정의 결핍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생명이 땅 끝까지 전파되려면 흘러넘치는 재정의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목회자들로 하여금 재정에 대한 설교를 못하게 하거나 재정에 대한 왜곡된 시야를 갖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집어넣어서 가난이 마치 경건의 필수조건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재정에 대한 관심을 악한 것으로 치부해 버림으로 재정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거나, 혹은 반대로 재정 그 자체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어 버리는 고도의 사악한 궤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재정적으로도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소원입니다. 왜 일까요? 우리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이며(마7:9-11),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마6:19-34),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눅6:38), 세계복음화를 위한 자금을 조달해야(마24:14)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재정을 풍성하게 부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며, 또 그 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죽은 영혼들을 구원해 내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재정적으로 부요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재정적인 면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6:19-33)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본문 25-26절에 등장하는 사렙다의 한 과부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재정적인 가난을 벗어나 부요하게 된 사람입니다. 왕상 17:8-16에 보시면 사렙다의 그 과부는 굶어죽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명령과 엘리야 선지자의 요청에 따라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 선지자에게 드리고 난 후, 밀가루와 기름을 차고도 넘치게 더해주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 6:1-15에도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하나님의 일에 드린 소년은 보리떡과 물고기를 12광주리 가득 차게 더해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믿기로 그 때 거둔 12바구니의 떡과 생선은 12제자의 손에 들리어져 그 소년의 집으로 보내어졌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100배의 수확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생선과 떡을 주님께 드린 그 소년은 생선과 떡을 100배로 돌려받게 된 것입니다.
영락 교회를 설립하신 故 한경직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영락 교회를 건축할 당시에 교인들의 수가 대략 150명 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서 성전기공예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경직 목사님은 그 당시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우리의 물질을 바쳐야 합니다.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위해서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 기공예배에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뒤에 기공예배를 드리는 날 150명의 교인들 가운데 53명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십일 먹을 양식만 남겨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그 뒤 30년이 흘렀습니다. 교회설립 30주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한 번 조사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다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십일 동안 먹고 난 뒤 그 뒤에는 다 굶어죽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53명이 하나같이 한국의 300대 재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설교닷컴 : http://www.biblei.com -
셋째, 성령의 사람인 선지자의 가르침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눅 4:24을 보시면, 선지자로서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불신하고 대적하는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사람들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선지자의 말로 받지 않으면 그 선지자를 통한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역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막 6:4-5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기름부음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자들에게만 역사한다는 말씀입니다.
(대하 20:20)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그래서 오늘 본문 눅 4:24-27의 말씀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눅 4:24-27)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엘리야선지자와 엘리사선지자의 말을 믿음으로 받은 사렙다의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만이 성령님의 기름부음 안에서 선포된 복음을 듣고 순종하여 재정의 부흥과 치유의 권능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깨끗한 부자』라는 책(pp.169-170)에 등장하는 부산에 있는 모교회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200명의 교회가 50억의 교회성전을 건축하는데 그 장로님께서 혼자 2/3 이상 그러니까 30억 원 이상의 돈을 건축헌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교만하게 보일까봐 노심초사 목사님 곁에서 겸손하게 처신하시던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교회를 위하여 그 헌금을 드리고 나서 IMF가 터졌습니다. 그 장로님의 회사는 제품의 대부분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었는데 IMF경제난으로 환율이 급상승하는 바람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을 벌어 공장 부지를 만여평이나 더 확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과 공장 직원들에게도 큰 간증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은 우리를 모든 가난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포로 됨(묶임)과 눈 멈과 눌림과 모든 채무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믿고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그 복음을 들고 나아가 가난한 자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11월 25일 추수감사주일 한영혼사랑예배가 가난한 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복된 삶으로 바꾸어지는 기쁨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