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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신앙생활에 중도란 없다 하십니다(왕상18:19-24,210620/이병천목사).

작성자지구촌사랑|작성시간21.06.20|조회수190 목록 댓글 4

신앙생활에 중도란 없다 하십니다.

210620(주일오전)

 

열왕기상 18:19~24

 

 

지난 2,014년 10월 3일, 금요일 새벽에 저는 너무도 선명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제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마치 일제강점기의 순사처럼 큰 칼을 찬 경찰서장이 칼을 뽑아 들더니 저를 죽이려고 휘둘렀습니다. 장도(長刀)로 저를 죽이려는 것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단도(短刀)로 저를 위협하며 저의 신분을 조회하더니 경찰서로 끌고 갔고, 경찰서에는 이미 10여명의 목사님들이 끌려와서 취조를 당하고 있었으며 저도 그 취조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교회에서 설교를 하되,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거나 오늘날에도 치유와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의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협박과 회유로 강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러한 설교를 하면 즉시 체포하여 총살로 즉결사형을 집행하겠다는 언질과 함께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였습니다.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마음으로 경찰서를 나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차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제 아내가 있는 곳으로 힘겹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꿈을 깨었습니다.

 

혹여 앞으로 이런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면 참으로 끔찍하겠다는 부담감이 밀러왔습니다. 혹여라도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순전한 신앙을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더군다나 정상적인 목회와 설교를 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디모데전서 2:1-5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딤전 2:1-5)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상의 말씀이 떠올랐고, 나라와 민족, 정치지도자들을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해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지난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은 차별금지법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동안 국민적 저항에 6번이나 부딪혀 번번히 실패했는데, 이번에 7번째로 또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일 국회의 법사위를 통과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절대적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국회의 의결을 거친다면,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일들이 한국기독교계에 후폭풍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평등법, 혹은 차별금지법은, 이미 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 영국과 미국 등의 선례를 볼 때, 표방된 말과는 정반대로 “위헌적 불평등법으로, 심각한 역차별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주의 독재법으로 악용”될 수 있으며, 기독교를 말살시키려는 매우 사악한 악법중의 악법임을 알고, 우리가 목숨이라도 걸고 막아내야 사안입니다.

 

중국에 중용(中庸)이란 중요한 철학사상이 있는데 “과불급(過不及), 즉 극단을 피하여 지나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중도의 길을 걸으라.”는 아주 중요한 사상입니다. 이는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의 저작이라고 하는데, 후에 주자가 주석을 붙여 사서(四書)의 하나가 되면서 유가의 덕목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뜻 깊은 철학사상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중도가 용납되지 않는 유일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제일 중요한 구절을 인용하여 전체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2:29-30)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with all your heart) 목숨을 다하고(with all your soul) 뜻을 다하고(with all your mind) 힘을 다하여(with all your strength)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여기에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주”라고 하셨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는 “전체”(all)를 다하란 말씀이지 60%나 90%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60%만 넘으면 PASS라는 식의 의미가 아닙니다. 100%의 전체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의미입니다.

 

1. 하나님 앞에 중도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불러놓고 영적대결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불러다 놓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엘리야 한명이 450대 1로 송아지를 각을 떠서 벌여 놓고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신이라고 대결전을 벌이는 마당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 편도 아니고 바알신의 편도 아니고 중간에 서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엘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열왕기상 18장 21절에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였는데, 백성들은 이미 바알신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여호와 편에 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많은 사람의 칭찬보다 한 분 하나님의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극단주의자다,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욕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한 바보와 극단주의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말은 하면서도 다른 종교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야지 극단주의로 나가면 안 되고 독선주의로 나가면 안 된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열광하며 외치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고 평등법인 것입니다.

 

교리(Doctrine)란 말씀은 “독선”이란 뜻이 있습니다. 다른 신,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미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기 와서는 이런 설교를 하고 저기 가서는 저런 설교를 하는 사람은 이중인격자요, 위선자입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들이며, 두 얼굴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코에 악취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이중 잣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교회를 떠나게 되고, 이중 잣대의 설교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태도는 성경의 진리 안에서 명명백백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단순하고 바보같이 보였지만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보시는 불의 사자였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사람이 다수다”(One with God is a majority)라고 한 말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엘리야 한 사람이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대결해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귀하게 보셨으면 죽음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을 보내어 회오리 바람과 함께 곧 바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겠습니까?

 

성경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숭배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죄라고도 합니다. 마치 한 아내가 자기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 혹은 아내의 다른 죄, 다른 잘못은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은 절대 용납이 안 되는 잘못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이혼의 유일한 조건이 바로 그것입니다(신24:1-4).

 

그래서 기독교 역사상 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다른 신에게 절하면 목숨을 살릴 수 있었지만 목베임을 당해 죽고, 화형을 당해 죽고,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가 죽을지언정 다른 신이나 우상 앞에 절대로 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협박과 회유책에 넘어가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 장로교회에서 열린 총회에서 홍택기 총회장은 “신궁요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이다.”라고 선포하고 많은 목사들이 신사참배를 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신 수많은 목사님들은 6.25전쟁의 참변은 주의 종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면서 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출애굽기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신명기 4: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하셨고, 고린도전서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나 다른 신 섬기는 것을 얼마나 가증히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 18:10-14)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2. 복음에 중도란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교리는 십자가의 대속의 교리와 부활의 교리입니다. 이 교리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다른 종교의 어떤 교리도 이 복음을 희석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써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인자(人子)로 오시되,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으므로, 죄 없는 깨끗한 피를 가지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대속(atonement)의 피를 쏟아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신 분이십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씻을 수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atonement)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makes atonement).”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로 우리가 죄를 용서 받고 씻음 받는 것이지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복음을 명확히 깨닫지 못한 사람이며, 십자가 복음만이 영혼을 구원하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즉 피뿌림이 없이는 죄사함 받고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는 “테 텔레스타이”라는 말인데 세상 믿는 모든 사람의 죄의 값을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지은 모든 원죄는 다 없어진 것입니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45-47)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용서되었으므로, 자기가 선택하여 지은 죄가 없는 유아는 죽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이고, 또 성인이 되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전에 지은 죄는 다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 지은 죄는 그 때 그 때 자백하고 돌이킴으로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요일1:7-9). 그리스도 예수님은 둘째 사람으로 오셔서 첫 사람 아담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끝내시고, 성령님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인류의 시조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의인으로써 우리 죄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으므로, 예수님 외에 다른 데로도 구원 받을 길이 있다는 사람은 결코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행 4:12) 『(베드로가 이르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거나,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하는 식의, 복음에 중도의 길이 있다는 표현은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큰 이단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님도 믿지만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고 바로 잡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갈 1:7-8)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믿음이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에 대한 회개가 전제된 믿음을 말합니다. 복음에는 다른 중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복음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저주 받을 일이요 십자가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입니다.

 

(마 7: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 2:17,20,26)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상의 말씀과 같이 살아있는 참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말과, 복음도 믿고 행함도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은 서로 다른 말입니다. 복음도 믿고 행함도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구원은 예수님의 피공로로 값없이 받지만, 구원 받은 자로서 생활규범이 있어야 하므로, 시간의 7분의 1인 주일성수와 수입의 10분의 1인 십일조를 드리지만 이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감격으로 자원함으로 드려지는 헌신인 것입니다. 타계하신 교황 故 요한바오로 2세와 현직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아무 종교를 믿어도 착하게만 살면 구원 받는다”고 했고, 타계하신 한국의 故 김수환 추기경도 “아무 종교를 믿어도 착하게만 살면 구원 받는다”고 인터뷰한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말한 천주교의 거성들이 과연 구원 받았고 또 구원을 받게 될까요?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착한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음 직전에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을 때에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예수님께서 구원을 확인해 주셨는데,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무망하신 분이시며 실언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강도는 진실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받고 지옥은 안 갔지만 천국에서 면류관이나 무슨 상급은 못 받았을 것인데, 그런 상황에 대하여 성경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3:15)는 말씀과 같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①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고,

② 복과 상급은 행함으로 받고,

③ 능력과 은사는 뜨겁게 기도해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① 중생(Regeneration)은 즉시(immediately)받고

② 성화(Sanctification)는 점차적으로(gradually) 이루는 것이고,

③ 영화(Glorification)는 예수님 재림 시 부활하고 변화 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데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50% 포함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50%감소될 것이고, 10% 포함되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10% 인간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사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시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3. 기독교 신앙과 공산주의에 중도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마귀 사탄의 사상입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을 혼동하고 있음을 봅니다. 북한으로 보내는 그 많은 돈과 양식과 물품이 굶주린 백성에게 전달된다면 얼마든지 보내야 하겠지만, 그 많은 물자나 돈이 굶주린 자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졸개인 김정은에게 가서 그 돈으로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만들어 남한을 위협하고 세계를 위협하는 일에 쓰이고 있다면, 그것을 즉시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공산주의(Communism)가 마귀의 사상(Satanism)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성경에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①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이며, 주님의 교회들을 파괴합니다.

북한에 있던 남한보다 더 많던 교회들을 다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많던 목사와 신자들을 죽이고 혹사시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상극인 것처럼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앙은 정반대입니다. 둘 사이에 중도란 있을 수 없습니다.

 

② 마귀는 살인자라고 했습니다(요8:44).

공산주의는 살인자들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빙자하여 모택동이 죽인 사람이 6천 4백만 명이고 스탈린(Stalin)이 죽인 사람은 4천 5백만 명이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인 사람은 7백만 명이 넘고,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 공산당은 지금도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 600만 명을 독가스로 죽인 히틀러(Hitler)도 사탄의 영에 잡힌 사람입니다.

 

③ 마귀는 도둑질하는 놈이라고 했습니다(요10:10).

공산화 혁명을 핑계로 많은 사람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고 도둑질했습니다. 성경은 청지기의 사명을 말씀하셨지 강제로 남의 것을 빼앗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④ 마귀는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다(요8:44).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 참소, 이간질입니다. 공산주의와 그들을 추종하는 좌파들은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말을 바꾸면서 언어의 혼란을 일으켜 사회를 혼란시키며 케이아스(chaos), 혼돈의 세계로 만듭니다. 적화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혼돈시키며, 친북, 반미, 좌파는 “진보”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종북좌파 운동권은 거짓말을 잘 만들어 내면서 언어의 혼란으로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적화통일을 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귀의 수법입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보고 경제적인 이익만 얻을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손잡고 그 무엇도 용납할 수 있다는 물질위주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실용주의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자는 사상인데 이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단체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못한 길은 아무리 큰 유익이 주어진다 하여도 포기하는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셨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마 4:8-10)

 

우리는 마귀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와는 타협도 중도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도란 없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상 바알, 복음적인 삶과 율법적인 행위, 기독교신앙과 공산주의 이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성도가 단 한 분도 안 계시기를 존귀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합시다. 율법적인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감격 안에서 온전한 주일성수와 온전한 십일조성수를 합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공산주의를 대적하며 물질적 실용주의를 몰아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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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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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성은 | 작성시간 21.06.21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중도가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에서 더더욱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병천목사 | 작성시간 21.06.22 아멘!!! 할렐루야!!!
  • 작성자새벽나라 | 작성시간 21.09.04 중도는 중도포기해야합니다. 신앙은 중간도 포기도 없습니다. 할렐루야!!!
  • 작성자새벽나라 | 작성시간 21.09.04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더불어공산당과 주사파정권이 심히 근심스럽습니다....탈북자성도를 만나서 5.18에 대한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지만박사의 얘기가 사실입니다. 그 탈북자 성도는 현재 선한목자교회 다닙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리 되었는지 통탄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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