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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심야]하나님의 음성 듣기[14] _그분의 성전 안에서 간구하기(시27:4,231006/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23.10.06|조회수46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음성 듣기[14] _그분의 성전 안에서 간구하기

231006(금요심야기도)

시 27:4

그분의 성전 안에서 간구하기

 

하나님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도 사모했습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주님을 사모했는지, 즉 그분의 성전에서 얼마나 간구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바깥뜰, 안뜰, 지성소가 있는 성전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는 영(지성소), 혼(안뜰), 육(바깥뜰)을 갖고 있습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그분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 즉 지성소에 살고 계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스티브 탐슨의 이야기입니다.

 

초신자 시절에 나는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한 가정에서 금요일 밤에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했는데, 나는 그날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모든 것에 갈급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경배한 후 개인적인 삶의 문제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로 주님을 찾곤 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주님은 각 사람에게 매우 명료하게 말씀하셨다. 실제로 우리 중 5-6명이 기도하고 모두 같이 주님께 구체적인 질문을 드리면, 대개 정확히 응답을 받았다. 음성을 구절로 듣기도 하고, 그림을 보거나 말씀을 받았다.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비록 각자 응답을 받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놀랍게도 메시지는 동일했다.

 

내가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밤에 가졌던 기도모임이 기억난다. 다 같이 영적 필요를 위해 기도한 후, 나의 멘토가 자동차를 구입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은 함께 구입하려고 고려하던 자동차를 두고 기도했는데, 어떤 사람이 척추가 구부러진 말 그림을 보았다. 그들은 그 자동차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동차에 대해 기도하자, 이번에는 슈크림 빵을 보았다.

 

다음날 나의 멘토가 중고차 가게에 가서 영업사원에게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러자 영업사원이 “테스트 주행을 원하시나요? 엔진을 보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나의 멘토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그 차를 사겠습니다.” 그는 종이에 서명하고 그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수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차를 몰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감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님이 실제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련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통해 나는 성령님이 어떻게 그분의 백성들과 소통하시는지를 빠르게 배웠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분이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도하라 그리고 듣기를 기대하라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던 어느 날, 영적으로 성숙한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성장할수록 그분의 목소리가 더욱 희미해집니다.” 그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시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주님은 나에게 결혼 관계와 같은 개념을 이해시켜 주셨다. 나는 주님과 오랜 시간 함께할수록 그분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당신이 배우자에게 날마다 자기를 소개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당신은 배우자에게 “저를 기억하세요?”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 모두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친숙해짐으로써 그분의 음성을 인식한다.

 

기도는 양방향 대화이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를 듣기 원한다. 만일 한 사람만 말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대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립서비스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막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분은 우리와의 소통의 주파수가 열리기를 원하신다.

 

기도에만 그치지 말고 들으라. 그런 다음 들린 것이 희미할지라도 그것을 신뢰하라.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당신을 괴롭게 하는 일이 있으면, 주님께 그 일의 연유를 구하라.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그러면 당신 안에 거하시는 그분이 보여 주실 것이다.

 

한때 주님은 내가 사역 초청에 응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분은 내가 일정기간 기다리기를 바라셨다. 몇 달 후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나는 주님께 여행과 사역을 재기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난로 옆에 서서 요리를 천천히 젓고 있는 요리사의 모습을 영으로 보여 주셨다. 즉시 나는 주님의 뜻을 이해했다.

 

해방이 가까웠으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분이 마침내 해방을 주시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때가 되자 주님은 다음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나는 기다림의 시간 이후 신선한 기름부음과 새로운 능력을 경험했다.

 

구하면 받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일어나며, 그분의 말씀은 무슨 뜻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아서 많은 것을 놓친다.

 

어느 날 나는 교회 안에서 성령님의 운행이 부족하고, 개성과 재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를 주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순종하는 그릇을 찾고 있다.” 이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능만으로는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기름부음 없이 재능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주님은 또한 “타고난 능력은 성령의 열매를 낳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우리가 악한 영의 저항에 자주 부딪히는 이유에 대해 여쭤 보았다.

이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항이 너의 영을 강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종류의 저항이나 갈등에서 보호하셨다면, 우리는 결코 영적으로 강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으로 육체의 힘을 키우듯 영적 훈련이 영의 힘을 기른다. 영적 성장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훈련을 지켜본다고 해서 강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구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지혜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 그분을 곤란하게 하거나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상하게 응답하실 것이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밭의 가라지의 비유”, “밭에 심은 겨자씨의 비유”,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그 비유들의 의미를 주님께 여쭈었다.

 

(마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참고적으로, 저는 주님이 말씀하신 그 세 가지의 비유가 똑같은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기에, 제자들은 맨 앞의 비유인 밭의 가라지의 비유만을 설명해 달라고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 임하는 현세천국의 영역에는 주님이 뿌리시는 좋은 씨와 같은 의인된 천국의 아들들과 마귀가 뿌리는 가라지와 같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 뒤섞여 있지만, 추수 때와 같은 이 세상의 종말심판을 거친 후에 오는 내세천국의 영역에는 오로지 의인들만 있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갈급했을 뿐 아니라,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리든, 그분은 매우 흔쾌히 응답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도 결코 나무라지 않으신다.

 

듣고 배우라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생은 수업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오는 생각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알고 인식한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여러 가지를 불어넣으실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드물다.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구할 때라야 그분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한번은 텔레비전 쇼에서 프로그램 사역과 관련하여 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 프로그램의 대표는 막대한 영향력과 시청률이 예상된다고 설명하면서 나의 저서와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였다.

 

전화 통화를 마칠 때,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커다란 문은 하나님이 뜻하신 길이 아니었다. 내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더욱 기도하자, 그분은 내 손이 묶여 있는 그림을 보여 주셨다. 나는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처음에는 실망하고 화가 났다. 그렇지만 곧 기쁨이 찾아왔다. 주님이 나를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내가 장거리 여정으로 크게 고생하지 않고 내 모든 신경계가 시련을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시다. 나는 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으며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거절하실 때이다.

 

그분은 더 좋은 무언가를 갖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것을 활용하고 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신다.

 

반대로 겉보기에 매력이 없는 작은 모임에 초대받았다. 그러나 초대를 허락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자, 주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사람들의 삶을 놀랍게 변화시키셨다. 이로써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이 온전히 확증되었다.

 

우리가 자연적인 생각과 겉모습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잠재적 축복을 우리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주님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아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었는지, 준비되지 않았는지를 아신다.

 

나는 사무엘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좋아한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훨씬 훌륭한 관점으로 보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고, 그분의 음성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 과에서는 우리가 천국으로부터 오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나타나는 능력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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