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는 세대여!
260605(금요심야)
막 9:2-29
우리는 지금 금요일 심야기도시간마다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가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은
I. 마가가 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개론
① 인류의 대속물이 되시려고 인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② 침례요한의 사역
- 죄로부터의 회개의 촉구(막 1:2-5)
-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막 1:7-8)
③ 물과 성령으로 침례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임하시면,
- 천사들이 수종들게 된다(막1:12-13).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막1:14-15).
- 말에 권세가 따르게 된다(막1:16-20).
- 귀신이 드러나고 떠나가는 진리를 가르치게 된다(막1:21-2).
- 안수하여 병을 고치게 된다(막1:29-34).
- 새벽에 전도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며 귀신을 쫓아내게 된다(막1:35-39).
II. 우리의 신학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막 1:40-45).
나병환자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치유에 대한 잘못된 신학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교정되고 나서야 그의 나병이 떠나가고 그의 몸이 깨끗하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만약 그가 질병을 통한 성화사상과 같은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치유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III. 우리의 믿음이 회복의 열쇠다(막 2:1-12).
우리가 질병(가난)으로부터 자유함을 입고 주님이 주시는 회복과 부흥을 누리려면
1. 죄악을 회개하고 죄 사함의 주님을 믿어야한다.
2. 치유(회복과 부흥)를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삽입장) 하나님의 나라인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실존적 성격을 선언하다(막 2:13-28).
예수님의 사역들이 소개되는 막 1:16-2:12과 막 3:1-12의 중간인 막 2:13-28이 소개되는 이유는?
막 1:16-2:12에서는 예수님의 권능과 치유를 통해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어지는 2:13~28은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어떻게 충돌하기 시작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서비스가 아니라, 율법주의적인 틀에 갇힌 낡은 종교적 전통을 뒤엎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혁명적인 사건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 갈등은 결국 3장 6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모의하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전개가 된다.
예수님의 권위가 사람들에게는 '복음'이었지만,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절묘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IV. 믿음의 순종이 회복의 실제를 준다(막 3:1-5).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회복의 실제를 맛보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믿고 담대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고,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을 알고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현세천국, 내세천국, 부요, 치유, 축복의 권세, 축사의 권세, 천사의 도움, 안수의 능력 등인데 이런 것들을 내 것으로 믿고 순종할 때 역사가 나타난다.
V.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인 병 고침과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시는 이유(막 3:7-19)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는가?(막 3:7-10)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인데(8절),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이란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치신 것이었다(10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이유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헬. κηρύσσειν 선포)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13-15절).
VI.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막3:20-35).
성령의 능력으로 전인치유를 행하는 성령사역자를 귀신들렸다고 함부로 정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무서운 죄인데, 그와 같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 때때로 거짓 선지자들조차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원수마귀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과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거짓 선지자에게 귀신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신들린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단지 거짓 선지자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VII.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취하라(막4:10-25).
온 우주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또 그의 말씀으로 유지되고 통제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기 임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탄의 궤계를 꺾어버리고 말씀만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따라 행하여야 한다.
VIII. 선포하는 말의 권세(막5:1-43)
마가복음 5장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취한 사람이 그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며 전진해 나갈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1. 군대귀신까지도 제어하고 쫓아내게 된다(막5:1-20).
2. 성령의 기름부음을 취하고 질병의 근원을 말려버린다(막5:25-34).
3. 두려움을 물리치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낸다(막5:21-24,35-43).
VIIII.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시시며 가르치시더라.”(막6:1-56)
영적전쟁이란 진리대결이지 능력대결이 아니다.
우리에게 원수 마귀와의 영적전쟁이 있으나, 그 영적전쟁은 사탄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기도의 능력으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거짓과 기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진리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사탄의 거짓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전쟁이다.
X. 사람의 계명과 불신앙의 자리를 떠나야 산다(막7:1-8:26).
하나님의 계명인 성경전체의 핵심강령은 “사랑”인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잃어버리고 외적인 행위규정으로만 사람을 얽어매는 사람의 계명을 유포시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계명, 사람의 교훈으로 양육을 받게 되면
1. 그 영혼이 죽게 된다.
2. 영혼과 육체 모두에서 실제적인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표적을 맛보지 못한다.
4.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과 치유를 경험한 사람도, 그런 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생활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경험하게 된 기적과 치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 벳새다는 불신앙의 마을이었기에 주님은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치유해 주셨고, 치유 받은 맹인이 불신앙의 그 마을에 다시 들어가서 불신앙의 말을 듣게 되면 치유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었기에 벳새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막 8:22-26).
XI.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27-9:1).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보통의 경우에 자기 십자가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게 되는 불이익과 고통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질병과 가난을 인내하고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문맥으로 볼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인데, 주님의 말씀에 항변하였던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그것과 반대되는(성경적이지 않은)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경험 등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따라가는 것 바로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2번째 시간으로 막 9:2-29을 본문으로 하여,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는 세대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본문의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막 9:2-29을 살펴보시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하여(눅 9:28참조)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용모가 희어져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 변화되신 사건과(눅 9:29참조), 그 높은 산(변화산)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있었던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내용과, 마을에 내려왔을 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는 제자들과 큰 무리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unbelieving/faithless generation/막 9:19)”라고 한탄하시며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답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I.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막 9:2-8)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그 곳에 임하였습니다(눅 9:28-29참조). 왜냐하면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실 것을 요청하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마 6:9-10). 우리 인생은 우리의 기도대로 우리의 말(言)대로 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마 21:22, 민 14:28). 예수님의 기도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이 그 곳과 주님에게 부어졌으며, 하늘나라에 거주하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났고,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였습니다(눅 9:31).
그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사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는데, 그 때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와 제자들 자신뿐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엿새 전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막 9:1)고 하셨는데, 그 말씀 그대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가운데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 나라와의 영적 교통 수단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할 것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따라 기도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 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히 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들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II. 교리적인 성경지식과 믿음은 다른 것이다(막 9:9-14).
변화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오시던 예수님은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제자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서로 문의하다가, 예수님께 묻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어려서부터 집에서 구약성경으로 교육을 받았고(신 6:7-9), 서기관들에게서도 구약성경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은 자구적(字句的)인 교리, 사람의 계명에 불과한 것들이었기에, 성경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실제적으로 무지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점을 지적합니다. ※참고적으로 문자적(文字的)이라는 말과 자구적이라는 말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자구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막 7:6,7,8,13)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사실 구약성경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어지는 구원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성경은 창세기~말라기까지의 구약 39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약성경을 제대로 알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알았나니 (구약)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요 5:38-39)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 너희가 (구약)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구약)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구약)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45-47)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눅 24:25-27)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구약)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의 성경교육을 담당하였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선포하신 말씀들을 보면 그 당시의 성경교육은 대부분 성경의 영적인 실제진리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자구적(字句的)인 가르침인 사람의 교훈(교리)들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막 7:6,7,8,1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눅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막 12: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사두개인)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마 23:13-15)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법도, 기준, 방법 및 원리를 보여주는 계시의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법도, 율례, 규례, 계명 등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언어라는 그릇에 담긴 영적인 실체를 전달하는 수단임을 아셔야 합니다. 단지에 꿀을 부으면 그것이 꿀단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단지가 성경말씀이기에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말씀이라는 자구적(字句的)인 그릇만을 가지고 그 안에 담겨있는 영적 진리의 본질을 쏟아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제자들조차도 그 부분에서 실패를 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셨지만, 동시에 성경말씀 안에 담긴 영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셨고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자구적인 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실체, 본질을 발견하고 먹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질 때 가능하게 됩니다(엡1:17-19,마11:25-27).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시도록 기도하며 성경말씀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엡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III. 믿음이 없는 세대(막 9:15-19)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성경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성되고 그와 같은 영적인 믿음만이 영의 세계에서 통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교리로 가득한 사람은 교리의 사람이지 믿음의 사람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 9:19)라고 탄식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교리의 사람들이었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잘 안다고 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적인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지 않는 그들을 항하여, “믿음이 없는 세대(unbelieving / faithless generation)”(막 9:19)라는 지적을 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IIII.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0-24).
영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믿는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23절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시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수 1:7-8)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진리의 말씀 안에서 복되고 형통한 삶, 권세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V. 말씀에 굴복당하는 귀신(막 9:25-27)
(막 9:25-27)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진리의 말씀 안에서 행하며 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 진리를 역행하는 어두움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선포할 때 더러운 귀신이 굴복하여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VI.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제자들이 당황하여 주님께 묻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VII.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삶 그 자체가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여”(19절)라는 말씀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는 말씀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29절)는 말씀은 같은 개념의 서로 다른 표현들임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란, 단순히 어떤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정도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행하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며 진리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됨을 알고 의지하며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관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마 6:6-10)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기도의 분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기도로만 악한 귀신들이 떠나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분량이 적은 기도이기에 귀신이 안떠나간다는 말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를 잘 살펴보시면 이상과 같은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막11:14)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화과나무로 하여금 열매를 맺어 사람의 먹거리가 되도록 지으셨는데(창 1:11,29) 그 말씀을 벗어난 무화과나무였기에 주님께서 그 무화과나무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날 뿌리째 말라 있는 그 무화과나무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막 11:22-24)『[22] ...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원어직역)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하나님의 믿음에 반대되는 것들에게)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인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란, 단순히 어떤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정도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행하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며 진리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됨을 알고 의지하며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막 9:25-26에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이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진리의 말씀에 역행하는 그 문제가 떠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떠나갈 것을 명령했고 그 귀신은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눅 13:10-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 ※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수님께 다가 섯을 때 안수를 받았고 그 즉시 치유되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와 같은 믿음에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