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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씨리즈]13.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지옥에 던져지는 자(막 9:30-50,260612/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26.06.12|조회수9 목록 댓글 0

13.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지옥에 던져지는 자

260612(금요심야)

막 9:30-50

https://youtu.be/VXVWjgn7r6U 

우리는 지금 금요일 심야기도시간마다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가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은

 

I. 마가가 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개론

 

① 인류의 대속물이 되시려고 인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② 침례요한의 사역

- 죄로부터의 회개의 촉구(막 1:2-5)

-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막 1:7-8)

③ 물과 성령으로 침례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임하시면,

- 천사들이 수종들게 된다(막1:12-13).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막1:14-15).

- 말에 권세가 따르게 된다(막1:16-20).

- 귀신이 드러나고 떠나가는 진리를 가르치게 된다(막1:21-2).

- 안수하여 병을 고치게 된다(막1:29-34).

- 새벽에 전도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며 귀신을 쫓아내게 된다(막1:35-39).

 

II. 우리의 신학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막 1:40-45).

 

나병환자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치유에 대한 잘못된 신학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교정되고 나서야 그의 나병이 떠나가고 그의 몸이 깨끗하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만약 그가 질병을 통한 성화사상과 같은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치유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III. 우리의 믿음이 회복의 열쇠다(막 2:1-12).

 

우리가 질병(가난)으로부터 자유함을 입고 주님이 주시는 회복과 부흥을 누리려면

 

1. 죄악을 회개하고 죄 사함의 주님을 믿어야한다.

2. 치유(회복과 부흥)를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삽입장) 하나님의 나라인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실존적 성격을 선언하다(막 2:13-28).

 

예수님의 사역들이 소개되는 막 1:16-2:12과 막 3:1-12의 중간인 막 2:13-28이 소개되는 이유는?

 

막 1:16-2:12에서는 예수님의 권능과 치유를 통해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어지는 2:13~28은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어떻게 충돌하기 시작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서비스가 아니라, 율법주의적인 틀에 갇힌 낡은 종교적 전통을 뒤엎고 -

 

 죄인과의 식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은 '격리'가 아닌 '변화'에 있음을 보여줌.

 금식 논쟁: 하나님의 나라는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와 같은 기쁨의 시대임을 선포.

 안식일의 주인: 율법은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이며,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임을 천명.

 

-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혁명적인 사건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 갈등은 결국 3장 6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모의하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전개가 된다.

예수님의 권위가 사람들에게는 '복음'이었지만,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절묘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IV. 믿음의 순종이 회복의 실제를 준다(막 3:1-5).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회복의 실제를 맛보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믿고 담대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고,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을 알고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현세천국, 내세천국, 부요, 치유, 축복의 권세, 축사의 권세, 천사의 도움, 안수의 능력 등인데 이런 것들을 내 것으로 믿고 순종할 때 역사가 나타난다.

 

V.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인 병 고침과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시는 이유(막 3:7-19)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는가?(막 3:7-10)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인데(8절),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이란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었다(10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이유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헬. κηρύσσειν 선포)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13-15절).

 

VI.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막 3:20-35).

 

성령의 능력으로 전인치유를 행하는 성령사역자를 귀신들렸다고 함부로 정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무서운 죄인데, 그와 같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 때때로 거짓 선지자들조차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원수마귀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과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거짓 선지자에게 귀신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신들린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단지 거짓 선지자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VII.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취하라(막 4:10-25).

 

온 우주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또 그의 말씀으로 유지되고 통제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기 임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탄의 궤계를 꺾어버리고 말씀만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따라 행하여야 한다.

 

VIII. 선포하는 말의 권세(막 5:1-43)

 

마가복음 5장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취한 사람이 그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며 전진해 나갈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1. 군대귀신까지도 제어하고 쫓아내게 된다(막5:1-20).

2. 성령의 기름부음을 취하고 질병의 근원을 말려버린다(막5:25-34).

3. 두려움을 물리치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낸다(막5:21-24,35-43).

 

VIIII.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시시며 가르치시더라.”(막 6:1-56)

 

영적전쟁이란 진리대결이지 능력대결이 아니다.

우리에게 원수 마귀와의 영적전쟁이 있으나, 그 영적전쟁은 사탄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기도의 능력으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거짓과 기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진리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사탄의 거짓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전쟁이다.

 

X. 사람의 계명과 불신앙의 자리를 떠나야 산다(막 7:1-8:26).

 

하나님의 계명인 성경전체의 핵심강령은 “사랑”인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잃어버리고 외적인 행위규정으로만 사람을 얽어매는 사람의 계명을 유포시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계명, 사람의 교훈으로 양육을 받게 되면

1. 그 영혼이 죽게 된다.

2. 영혼과 육체 모두에서 실제적인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표적을 맛보지 못한다.

4.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과 치유를 경험한 사람도, 그런 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생활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경험하게 된 기적과 치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 벳새다는 불신앙의 마을이었기에 주님은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치유해 주셨고, 치유 받은 맹인이 불신앙의 그 마을에 다시 들어가서 불신앙의 말을 듣게 되면 치유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었기에 벳새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막 8:22-26).

 

XI.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27-9:1).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보통의 경우에 자기 십자가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게 되는 불이익과 고통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질병과 가난을 인내하고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문맥으로 볼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인데, 주님의 말씀에 항변하였던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그것과 반대되는(성경적이지 않은)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경험 등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따라가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XII.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는 세대여!(막 9:2-29).

 

교리적인 성경지식과 성경적인 믿음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말씀은 그 안에 영적인 실체인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법도, 기준, 방법 및 원리를 보여주는 계시의 그릇이지 자구적인 율법조문들의 나열 같은 것이 아니다. “새 언약의 일꾼... 율법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성경의 진리를 정확히 듣고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성되고 그와 같은 영적인 믿음만이 영의 세계에서 통하는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3번째 시간으로 막 9:30-50을 본문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영생)에 들어가는 자와 지옥에 던져지는 자”라는 주제의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막 9:30-32을 보시면, 한 어린 소년에게서 말 못하고 못 듣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지나가시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3번째로 말씀해 주셨지만(막 8:31,9:9,9:31) 제자들은 여전히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 부(富, 재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교정하라(막 9:33,41).

 

본문 막 9:33 이하에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라는 말씀이 기록됩니다. 막 2:1 이하에도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마 9:1 이하에는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Jesus stepped into a boat, crossed over and came to his own town)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오거늘...”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를 지나 예수님의 본 동네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도 없었고 너무도 가난하게 생활하셨다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가르침들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사셨는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지상생애 동안에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 재정적으로 가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시는 동안 내내 가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가난하게 되셨습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최고의 희생을 하셨을 때 가난하게 ‘되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놓고 서로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그 옷이 좋은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십시오. 그분은 목수의 아들로서 비교적 가난하게 성장하셨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사역을 하셨던 약 3년 6개월, 즉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던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의 기간에도 가난하셨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오해가 기독교 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지게 되었고, 그 결 과 가난이 경건의 한 면이나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인은 재정적으로 부요케 되면 안 되는 듯한 나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까? 그런 오해의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눅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은, 전도여행을 하시는 동안 전도여행에 동참하여 주님을 따르겠다는 어떤 사람에게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따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집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눅 8:1-3)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세계적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요 13:27-29)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some thought Jesus was telling him to go and pay for the food or to give some money to the poor./NLT

 

예수님은 재정적으로 풍성하였기에 돈 궤를 맡은 사람이 따로 있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재정을 맡은 자의 주요 업무였다는 말씀입니다. 돈 궤를 맡은 가룟 유다는 도둑으로서 예수님의 돈 궤에서 돈을 마구 빼돌렸습니다.

 

(요 12:6) 『...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돈 궤에는 돈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막 8:19-21)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필요하실 때면 언제나 경제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즉 신성을 가지셨기에 그 분에게만 가능했었던 일들이었습니까?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도 그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그런 것들이 가능했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악한 죄인들 대신에 그분의 자녀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욥 27:16-17) 『[16] (악인)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전 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재정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인 심고 거둠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부흥의 복이 우리에게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고후 9:6-11)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예수님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인 심고 거둠의 법칙을 따라서 큰 부흥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셨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가난하게 사시는 일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들에게 온 세상의 재물을 다 모아 주시는 분이시라는 다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막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사 60:1-5)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 61:1,6,7)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2. 누가 큰 자인가?(막 9:34-41)

 

주님의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를 쟁론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헬. to- honomati mou, 내 이름을 위하여)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자기 자신의 명예나 기분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 아니고, 37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헬. to- honomati mou, 내 이름을 위하여, 38절의 말씀처럼 en to- honomati sou, 당신의 이름으로)” 제자들이 말한 바,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 즉, 적극적으로 주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겸손하게 영접해주고(받아주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8절의 말씀처럼, 그 사람이 비록 이름 없는 무명의 사람이고, 주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힘입고 사랑으로 행할 때에 귀신들을 내쫓는 권능까지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존경을 받는 큰 자로 부상하게 될 것입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어린 아이까지도 영접해주는 겸손한 사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랑의 사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본문 막 9:41의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말씀처럼,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됨으로 큰 사람, 부흥하는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골 3:23-24)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엡 6:5-8)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3.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지옥에 던져지는 자(막 9:42-50)

 

예수님께서는 서로 누가 크냐를 토론하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섬김과 겸손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큰 자요 상 받을 자임을 말씀하신 이후에 숨도 안쉬시고 곧 바로, 42절에 “그렇지만(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 Καὶ 수사학적 강조법, 앞에서 말한 내용과 명백히 불일치하는 어떤 내용을 추가하는 구실. On the other hand,/MSG)”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에 관한 말씀들을 심각하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섬김과 겸손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상을 받게 될 것이고 큰 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만(헬. Καὶ )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막 9:42)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42절의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한다(헬. σκανδαλίζω, 성내다. 범죄케 하다. 불쾌하게 하다. 걸려 넘어지게 하다.)”는 그 말은 σκάνδαλον( 덫, 함정, 걸림돌)에서 유래되었고, 43,45,47절에서는 범죄하게 한다는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43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45절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47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42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는 타인을 실족하게 하거나(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실족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43,45,47절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을 실족하게 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질 것이고, 그리고 그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으며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을 결코 가벼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영생을 얻고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고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겨주고, 어린 아이 하나까지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영접하고(받아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치유해 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향하여서는 범죄의 요소들을 사정없이 찍어버리고 빼버리고 포기하며 성결과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말을 선한 행위로 구원받게 된다는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진정으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삶이 바로 이상과 같은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고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겨주고, 어린 아이 하나까지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영접하고(받아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치유해 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향하여서는 범죄의 요소들을 사정없이 찍어버리고 빼버리고 포기하며 성결과 거룩을 추구하는 것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마 3:8-10)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 2:14-17)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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