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씨리즈]14.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31/이병천목사).
작성자이병천목사작성시간26.06.19조회수10 목록 댓글 014.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60619(금요심야)
막 10:1-31
우리는 지금 금요일 심야기도시간마다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가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은
I. 마가가 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개론
① 인류의 대속물이 되시려고 인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② 침례요한의 사역
- 죄로부터의 회개의 촉구(막 1:2-5)
-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막 1:7-8)
③ 물과 성령으로 침례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임하시면,
- 천사들이 수종들게 된다(막1:12-13).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막1:14-15).
- 말에 권세가 따르게 된다(막1:16-20).
- 귀신이 드러나고 떠나가는 진리를 가르치게 된다(막1:21-2).
- 안수하여 병을 고치게 된다(막1:29-34).
- 새벽에 전도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며 귀신을 쫓아내게 된다(막1:35-39).
II. 우리의 신학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막 1:40-45).
나병환자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치유에 대한 잘못된 신학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교정되고 나서야 그의 나병이 떠나가고 그의 몸이 깨끗하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만약 그가 질병을 통한 성화사상과 같은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치유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III. 우리의 믿음이 회복의 열쇠다(막 2:1-12).
우리가 질병(가난)으로부터 자유함을 입고 주님이 주시는 회복과 부흥을 누리려면
1. 죄악을 회개하고 죄 사함의 주님을 믿어야한다.
2. 치유(회복과 부흥)를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삽입장) 하나님의 나라인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실존적 성격을 선언하다(막 2:13-28).
예수님의 사역들이 소개되는 막 1:16-2:12과 막 3:1-12의 중간인 막 2:13-28이 소개되는 이유는?
막 1:16-2:12에서는 예수님의 권능과 치유를 통해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어지는 2:13~28은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어떻게 충돌하기 시작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서비스가 아니라, 율법주의적인 틀에 갇힌 낡은 종교적 전통을 뒤엎고 -
죄인과의 식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은 '격리'가 아닌 '변화'에 있음을 보여줌.
금식 논쟁: 하나님의 나라는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와 같은 기쁨의 시대임을 선포.
안식일의 주인: 율법은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이며,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임을 천명.
-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혁명적인 사건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 갈등은 결국 3장 6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모의하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전개가 된다.
예수님의 권위가 사람들에게는 '복음'이었지만,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절묘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IV. 믿음의 순종이 회복의 실제를 준다(막 3:1-5).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회복의 실제를 맛보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믿고 담대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고,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을 알고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현세천국, 내세천국, 부요, 치유, 축복의 권세, 축사의 권세, 천사의 도움, 안수의 능력 등인데 이런 것들을 내 것으로 믿고 순종할 때 역사가 나타난다.
V.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인 병 고침과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시는 이유(막 3:7-19)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는가?(막 3:7-10)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인데(8절), 예수께서 행하신 큰일이란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었다(10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이유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헬. κηρύσσειν 선포)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13-15절).
VI.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막 3:20-35).
성령의 능력으로 전인치유를 행하는 성령사역자를 귀신들렸다고 함부로 정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무서운 죄인데, 그와 같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 때때로 거짓 선지자들조차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원수마귀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과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거짓 선지자에게 귀신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신들린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단지 거짓 선지자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VII.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취하라(막 4:10-25).
온 우주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또 그의 말씀으로 유지되고 통제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기 임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탄의 궤계를 꺾어버리고 말씀만을 정확히 듣고 믿음으로 따라 행하여야 한다.
VIII. 선포하는 말의 권세(막 5:1-43)
마가복음 5장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말씀을 정확히 듣고 취한 사람이 그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며 전진해 나갈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1. 군대귀신까지도 제어하고 쫓아내게 된다(막5:1-20).
2. 성령의 기름부음을 취하고 질병의 근원을 말려버린다(막5:25-34).
3. 두려움을 물리치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낸다(막5:21-24,35-43).
VIIII.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시시며 가르치시더라.”(막 6:1-56)
영적전쟁이란 진리대결이지 능력대결이 아니다.
우리에게 원수 마귀와의 영적전쟁이 있으나, 그 영적전쟁은 사탄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기도의 능력으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거짓과 기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진리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사탄의 거짓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전쟁이다.
X. 사람의 계명과 불신앙의 자리를 떠나야 산다(막 7:1-8:26).
하나님의 계명인 성경전체의 핵심강령은 “사랑”인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잃어버리고 외적인 행위규정으로만 사람을 얽어매는 사람의 계명을 유포시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계명, 사람의 교훈으로 양육을 받게 되면
1. 그 영혼이 죽게 된다.
2. 영혼과 육체 모두에서 실제적인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표적을 맛보지 못한다.
4.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과 치유를 경험한 사람도, 그런 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생활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경험하게 된 기적과 치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 벳새다는 불신앙의 마을이었기에 주님은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치유해 주셨고, 치유 받은 맹인이 불신앙의 그 마을에 다시 들어가서 불신앙의 말을 듣게 되면 치유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었기에 벳새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막 8:22-26).
XI.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27-9:1).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보통의 경우에 자기 십자가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게 되는 불이익과 고통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질병과 가난을 인내하고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문맥으로 볼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인데, 주님의 말씀에 항변하였던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그것과 반대되는(성경적이지 않은)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경험 등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따라가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XII.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는 세대여!(막 9:2-29).
교리적인 성경지식과 성경적인 믿음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말씀은 그 안에 영적인 실체인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법도, 기준, 방법 및 원리를 보여주는 계시의 그릇이지 자구적인 율법조문들의 나열 같은 것이 아니다. “새 언약의 일꾼... 율법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성경의 진리를 정확히 듣고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성되고 그와 같은 영적인 믿음만이 영의 세계에서 통하는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XIII.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지옥에 던져지는 자(막9:30-50)
참된 경건과 가난은 전혀 무관한 것이고, 오히려 예수님의 경우처럼 참된 경건은 부요를 가져다준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집을 가지고 계셨고,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세계적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셨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김과 겸손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큰 자요 상 받을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는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든지, 범죄의 요소들을 찍어내 버리지 아니하면 결국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므로, 그럴바에는 차라리 그의 목에 연자맷돌이 달려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4번째 시간으로 막 10:1-31을 본문으로 하여,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주제로 본문의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막 10:1-31절을 보시면, 1-12절에 이혼에 관하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 13-16절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 17-25절에 재물을 천국은행에 예치하고 100배로 돌려받는 방법, 26-31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와 내세에 동시에 임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봅니다.
1.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막 10:1-12).
오늘의 본문 막 10:1-12절을 보시면 이혼에 관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계신, 예수님께로 다가와서 시험하여 묻기를,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명하였느냐?”(막 10:3)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5-9)하셨더니 바리새인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그 자리를 떠나가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의 핵심은, “결혼을 제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을 허락하였습니까?”라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답변은 “이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닌데 사람들이 너무도 완악하게 이혼을 원하기에 간음이라고 하는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이혼을 허락해준 것에 불과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 19:8-9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헷갈려하는 제자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님은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자기 욕심을 챙기려고 아내나 남편을 버리는 자는 간음을 행하는 악한 자라를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 성경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진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본심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창 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9:1-2)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창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애 3:22,23,32,33,39,40)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렘 29:7,11,12,13)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의 평안함이라는 것을 전제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처럼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지만 그 말씀에 담긴 여호와 하나님의 본심을 읽지 못하고, ‘왜 그렇게 기록이 되었을까?’라는 의구심만 증폭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2.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3-16).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어둠의 권세와 능력이 떠나감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막 10:14-15) 『[14] ...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헬. δέχομαι,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받다. 받아들이다/ 받아들이지; 새번역)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천국은행에 예치하여 100배로 돌려받음으로 불황을 예비해가라(막 10:17-25).
본문 마가복음 10장 17-25절에 영생의 문제를 안고 예수님을 찾아 온 젊은 부자가 등장합니다.
(막 10:17-25)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본문의 이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그 의미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 것을 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이 젊은 부자의 자아를 깨뜨리시거나, 혹은 영생을 얻으려면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청년도 역시 예수님께서 그렇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오해하고 예수님을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이 등장하는 전체 문맥을 보셔야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 우리가 본문의 이 말씀이나 혹은 그 어떤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인 요한복음 10:10의 절대적인 진리를 반드시 확고하게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예수]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 구절과 상충되는 듯한 것이 있다면 읽기를 즉시 멈추고,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그 구절을 중심으로 전후문맥에 주의하여 그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것을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들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진리를 붙잡으면, 욥을 미혹시키고 그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사탄의 미혹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치명적인 속임수를 묶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탄의 속임수를 경계하지 않으면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가난과 질병 속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 분문에 등장하는 젊은 부자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없었다고 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임을 기억하십시오!
마가복음 10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그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젊은 부자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다 지켜온 사람이었고 22절의 말씀처럼 “재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젊은이의 고백과 같이 그가 부자가 된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들을 다 지켜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이상의 말씀과 같이 바로 그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다 지켜 행하였기에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가 되는 방법과 그것을 지키고 더 확장시켜 나가는 진리에 대하여서도 말씀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젊은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부자는 되었으나, 부자가 된 이후에는 주변의 가난한 자들에게 흩어 구제하여야 그 부요가 계속 유지되어지며, 더 윤택하여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 11:24-25)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부요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지 않고 못 본 체 하는 자에게는 큰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 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본문 막 10:21절의 말씀과 29-31절의 말씀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는 헬라원어는,
“καὶ ἕξεις θησαυρὸν ἐν οὐρανῷ”는, 영어로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이 됩니다. “하늘에서”로 번역된 “ἐν οὐρανῷ, in heaven.”이 구조적으로 동사 뒤에 위치하다 보니, 형태만 보고 기계적으로 '장소의 부사구'로 번역하고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ἐν οὐρανῷ”는 문법적으로도 의미상으로도 '보화(θησαυρὸν)'의 출처와 상태를 제한하고 수식하는 형용사구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가장 탁월하고 올바른 접근입니다. "하늘에 있는 보화"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네가 가지게 될 것이다.”로 직역을 하던가, 혹은 확대해석으로,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네가 이 땅과 저 천국에서 가지게 될 것이다.”로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글킹성경은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가지게 되리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막 10:29-31)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러나 본문의 부자는 그와 같은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세속적인 자아를 깨뜨리시거나, 혹은 영생을 얻으려면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으로 착각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가게 됩니다.
(막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청년을 근심하게 만든 예수님의 이 말씀,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부자청년을 사랑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정적인 부요를 계속해서 누리고 더 많은 부요를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행할 것을 기대하셨기에 그 부자청년에게 해 주신 말씀이셨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에게 소유를 팔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고, 주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그를 축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그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멈추어 설명을 해주실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 주님의 요구가 무슨 뜻인지 진지하게 여쭈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질문을 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만일 그 청년이 언약에 관하여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언약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는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잠언 11:24-25의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는 말씀과, 잠언 28:27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는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 제안은 그 부자 청년 생애 최고의 재정적 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재정 시스템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여쭈어 보려고도 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의 자아를 부수어뜨리려 하신다고 가정하였습니다. 말씀 중심의 생각 대신에 돈 중심의 생각에 지배당하였습니다.
그 젊은 부자가 돌아가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이때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막 10: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고 인식해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직업적인 어부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척 이상의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하인들까지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충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경험해왔던 것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에서 가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재정을 관리하는 회계사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신문을 읽듯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케네스 코플랜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주님께서는 “이 청년이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유다는 돈을 사랑함으로 실패하였다. 그는 돈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갔다. 이 젊은 관원은 뛰어난 사업가였다. 그는 정직하고 어릴 때부터 언약을 잘 지켜왔다. 그는 회계직에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가 되는 어마어마한 기회에 등을 돌렸다.>
4.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와 내세에 동시에 임하는 것이라(막10:26-31).
본문 마가복음 10장 25-31절을 읽어봅시다.
(막 10:25-31)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30절에, “현세에 있어... 백배나 받되!”
우리 주님은 그 젊은 부자에게 그가 이미 소유한 재산의 백배를 현세에서 돌려주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박해를 겸하게 받게 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으로 백배의 부흥을 누리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은 사탄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재물을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받을 수 있는 재화는 그 한계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오직 그 풍성한 재화를 나누어주는 통로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것이 부흥을 누리는 완전한 열쇠임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의 영적인 법칙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법칙을 성공적으로 활용하셨습니다. 주님은 놀라울 만큼 가난한 자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셨으며, 그러므로 잡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유다가 방에서 나갔을 때, 그중 몇몇은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나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요 13:27-29)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예수님처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심고 거둠의 원리”에 따라 열심히 심고 현세에서 백배로 거두고 내세에서 영생을 거두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 현세에서 백배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믿고 기대하며 그와 같은 부흥의 길을 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26:12-15절에 명령하신 대로 구제십일조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로 하나님의 부흥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신 26:12-15) 『[12] 셋째 해 곧 십일조(=구제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