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의 성공 마인드
070826(주일오전)
성구 : 민 14:2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갈렙의 성공 마인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들을 예비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주님께서 옛날 애굽에서 사백 삼십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백 삼십년 종살이하던 백성을 모세를 통해 이끌어내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하나님의 선민들로 주님께서 옛 이스라엘을 택한 것처럼 여러분과 나를 미리 아시므로 또한 부르시고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행하시고 택하신 영적인 선민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풍성한 삶의 현장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을 예비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주 예수를 믿어 구원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풍성한 삶의 현장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음이라고 고린도 전서 2장 9절에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비한 이 축복 속에 누가 과연 들어가서 이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인도해 낸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백만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축복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다 사십년 동안 방황하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못 들어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세대 중에서 후손들을 거느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의 마음이 멸망당했던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갈렙과 같은 마음을 받아서 멸망받는 사람들과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지면 갈렙이 하나님의 예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것처럼 여러분과 저도 젖과 꿀이 흐르는 곳, 풍성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저는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갈렙의 그 색다른 마음, 하나님이 사랑하는 마음을 같이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갈렙과 같이 위대한 삶을 살도록 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갈렙이 다른 사람과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하셨습니다. 그 때의 정황에 대하여 모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신명기 1:19-40절의 내용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에서 발행하여 너희의 본바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곳을 정탐하고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회보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즉시 접수하라 하셨으나, 가나안 땅을 곧 바로 접수하기 보다는 그 땅을 정탐하고 나서 접수하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요구 그대로 그들의 두목 12명을 택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만큼만 역사해 주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115: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23)는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열두 두목을 택해서 가나안땅을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출발해서 가나안 땅을 40주 40야 정탐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10명의 정탐꾼이 본 관점과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이 본 관점이 서로 완전히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열 정탐꾼이 바라본 관점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이와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 정탐꾼이 와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기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는 무서운 말로써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이 부정적인 소식은 염병과 같이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낙심과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부정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본 사람들은 파괴적인 보고를 하고 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보고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물같이 낙심시켰고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부정적인 마음으로 사로잡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갈렙이 본 관점을 보십시다. 갈렙은 똑같이 출발하여 똑같이 40주 40야를 지났지만 갈렙은 완전히 긍정적인 자세로써 사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안돈하여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라" 이와 같이 백성들을 안돈한 것입니다.
언제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라 그 가운데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빛을 가지고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소망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흑암 가운데 빛이 일어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112편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 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언제나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서 사물을 바라보고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산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끝장이 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버리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러한 사람하고는 절대로 서로 손을 잡고 일하여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갈렙이 그의 동료들과 다른 것은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은 우리의 삶에 거대한 올무인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안위를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모험을 하고 뛰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위대한 모험적인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애 속에 인간의 잣대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의 잣대를 가지고서 인생을 재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간 열 정탐꾼들은 그들의 생애 속에 하나님의 척도를 갖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잣대를 가져가지 아니하고 인생의 경험과 이성을 가지고서 나간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말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했는데 믿음도 저버리고 말씀도 저버린 사람에게는 인간의 연약한 척도밖에 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그들이 말하기를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를 가지고서 우리의 주위와 환경을 재면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억압되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니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과 저는 이성이나 인간 경험으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즉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야 되며, 믿음으로 살아야 되며,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았으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척도를 가지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는 것 없어도 배짱을 내어 밀고 담대하게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의 두려움으로 눌리지 말고 환경을 눌려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위대한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간 동료들의 비참함은 바로 두려워한 것에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33절에 보면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럴 수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지 자기를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메뚜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이 본 관점까지 설명한 다음 저들이 우리를 보았을 때도 메뚜기처럼 보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메뚜기는 끝장났지요 뭐. 사람으로도 안보고 자기를 메뚜기로 보는 그 만큼 두려움으로 벌벌 떠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한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 성령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물을 측량해서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욥의 일생을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열심히 또 충성스럽게 신앙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에 사탄이 가져다 준 두려움을 받아들이자 말자 사탄이 그 두려움의 도화선을 타고 들어와 하나님의 축복들을 파괴해 버리고 사탄 마귀의 저주들을 그에게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두려워 한데로 자식들 열 명 다 잃어버리고 재산이 다 파산해 버리고 온몸 전신이 다 병들고, 아내로부터 “너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는 저주의 소리를 듣고 가정 파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욥의 사건을 통하여 두려움의 결과가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이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115:16)라는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우리의 말의 수준에 따라 우리들을 도와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이 나중에 철저히 회개하고 그 믿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믿음으로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서셔서 그로부터 일체의 저주를 다 거두시고 그를 다시 받아들여 치료하고 축복해 주어서 과거보다 더 갑절로 축복해 주신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한 민족을 보더라도 그 민족이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모험적인 민족은 언제나 흥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언제나 뒤로 물러나고 나는 할 수 없다 못한다 하는 인생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민족은 이 역사를 통해서 식민지 정책으로 늘 짓밟히고 남의 민족에게 늘 착취와 압박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복음이 위대한 것은 복음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넣어주어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두려워해서 절을 하고 바닷물이 두려워서 절을 하고 조그마한 호수만 있어도 용왕이 두려워서 절을 하고 해와 달 일월성신을 보고 절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복음이 들어간 서양민족들은 복음의 말씀을 따라서 ‘해와 별과 달과 산천초목이 모두다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니 사람이 그중에 제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과 바다의 물고기를 모두 다 지배하라.’는 위대한 인간 자아의 지식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사람이 하나님 다음으로 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관리권을 임명받은 우리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을 얻어서 바다를 정복하고 바다 밑을 정복하고 산을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고 그리고 태양계를 향해서 까지 나갈 수 있는 믿음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의 인간승패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풍성한 삶의 현장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도우심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던 이스라엘 삼백만 백성들은 그것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믿음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갈렙은 그의 생의 속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플러스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척도로써 사물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성경 말씀을 보면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 14장 8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따른 기적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모여서 아무리 입술로 주여! 주여! 말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지도 아니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시를 당하고 난 다음에 주께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역사하실 리 없습니다.
민수기 14장 11절에 기적을 믿지 아니하고 인간의 척도로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을 향해서 주께서 말씀하기를 "How long will these people reject Me(=treat me with contempt. NIV)? And how long will they not believe Me, with all the signs which I have performed among them?(NKJV)“이 백성이 어느 때가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으면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믿어요? 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다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믿고 나올 필요가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멸망시킨 10명의 정탐꾼과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저들이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저들이 하나님의 이적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팔이 짧아 우리를 도와주지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못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인본주의로만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시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멸시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 위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도 변함없는 사랑과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일어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기도하며 믿음의 자리에 설 때에 기적적으로 죄사함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병고침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귀신은 쫓겨 나가며 기적적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변화되며 기적적으로 죄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믿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적인 손길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생애 속에 믿음과 기적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애 속에 일어난 것처럼 일어날 줄 믿습니다.
셋째로, 갈렙은 역경에 대한 태도가 틀렸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주를 버린 사람들의 역경에 대한 태도는 바로 민수기 14장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원수들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역경과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원수마귀 사탄의 장난과 왜곡된 감정이입으로 알고 담대하게 물리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될 것을 믿고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절망시키려고 그들을 잡혀 먹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애굽으로 피난 가야할 것이라고 원망하며 자포자기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다가오는 당혹스러운 환경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언제나 장미꽃 환경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의 폭풍우처럼 보이는 것들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러한 악한 환경 속에서도 갈렙의 태도를 보고서 왜 하나님이 갈렙을 사랑하고 그에게 풍성한 것들을 주셨는지 우리는 알아보며 우리도 그와같은 마음과 태도를 가짐으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러분 갈렙이 보여준 역경과 그 환난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탁월한 태도인 것입니다. 갈렙은 원수도 우리의 밥이고 역경과 어려움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밥으로 주신 것이다. 역경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여서 역경 앞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고서 뒤로 물러가자고 하는 사람하고 역경이 다가올 때 야 이거 감사할 일이다. 주께서 내 앞에 밥상을 차려 놓았다. 이것을 먹고 믿음, 소망, 사랑이 자라나라고 밥상을 차려놓았다. 여러분 사람이 성경을 읽고 믿음 얻는 것은 하나의 이론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론적인 믿음이 실제적인 힘을 얻고 진실로 무엇을 얻는 실제적인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역경과 시련의 환경을 만남으로 실제화 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시험과 환난을 만날 때 더 강해지고 실제화 되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은 작은 시험을 통해서 큰 믿음은 큰 시험을 통해서 이것이 실제로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해서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들을 허락해 주심으로 그것이 실제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실력이 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물을 통하고 불을 통해야 실제적이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 이것을 통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뒤로 물러가면 이 사람은 절대 믿음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시험과 환난은 우리의 밥이다. 여러분 자녀를 길러봐서 잘 아시죠. 밥을 두고서 자꾸 투정하는 아기는 아주 몸이 빼빼합니다. 밥이 질다. 밥이 되다. 반찬이 없다. 싱겁다. 이런 아이는 언제나 몸이 약합니다. 그러나 무슨 밥이든 가져다 놓으면 눈이 번쩍하도록 다 훓어 먹어버리는 그런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튼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밥이 들어올 때 이 밥을 자꾸 감싸고 먹어야 합니다. 또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배속에만 넣으면 먹고 난 다음 소화불량이 걸려서 소화를 못 시키고 말면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 여러 가지 역경과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는 갈렙과 같이 이것을 우리의 밥으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의 믿음 안에 있는 우리를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만다. 그러므로 나의 이성과 나의 생각으로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하셔서 결과에 가서 유익되게 만들어 주실 것인즉 그러므로 우리의 밥이니 시험과 환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그러고 난 다음 그 가운데서 끝까지 인내하고 주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무엇을 보든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유익을 이루어 더욱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영원한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갈렙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래서 갈렙은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자세로써 바라보았고 갈렙은 사물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갈렙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과 고통은 밥이라고 해서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서 믿음으로서 그것을 받아먹고 소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갈렙은 힘을 얻고 또 얻고 위대한 힘을 얻은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갈렙은 다른 사람과 마음이 달랐다. 온전히 나를 쫓았다. 그러므로 내가 예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와 그 자손을 인도해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잘나면 자손이 함께 축복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못나면 자손도 함께 고통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렙 한 사람이 잘나니까 갈렙의 후손들조차 모두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그 인물이 잘났다. 그가 교육을 많이 받았다. 옷을 잘 입었다. 그 혈통이 좋다. 그 가문이 좋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도와주자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빈민가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인생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공평하게 주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공평하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족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자소관이나 부모를 원망하지 말고 일어나서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은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오늘 여러분과 제 마음을 회개해서 언제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절망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늘 인생을 비관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는 그러한 것을 완전히 회개하고 여러분께서 사물을 바라보면 언제나 성경에 약속하신 그 믿음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그래서 소망차고 기쁨과 기대에 꽉 들어찬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서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역경에 굴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고 역경이 오면 무릎을 꿇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나에게 믿음의 힘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귀한 밥상을 준비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것은 나의 밥입니다. 받아서 내가 잘먹고 소화시키겠습니다. 여호와여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어떠한 역경이라도 받아서 이를 소화해 버리고 그래서 더 믿음에 힘을 얻으면 이러한 사람을 주님께서 손잡고 오늘날에도 기사와 이적을 가지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가 예비하신 곳에 아직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땅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주님과 플러스된 함께 한 인생을 살아서 평범한 인생으로 패배하지 말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오는 인생이 되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열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갈렙과 같은 마음을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고, 우리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겠다고 하셨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멸망 받은 삼백만과 같이 되게 하지 마시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마음의 자세를 취하여서 우리 몫에 대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로 다 들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 다 승리자가 되어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