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고민
120401(종려주일)
로마서3:23-26
미국 남북전쟁 때 한 젊은이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입대하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부모님과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서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마침 한 동네에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도 안 계신 청년이 그 젊은이를 대신해서 군에 가겠다고 나서서 대신 입대하여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자기 대신 나가 싸우다가 전사한 그 청년의 무덤에 비석을 세워주고 거기에다 “He Died For Me, 그는 나를 위해 죽으시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로 죽어주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앞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진 채찍질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사 온 몸이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시는 그 엄청난 고통을 받으시고 처참하게 죽어주신 그 사랑은 너무나 큰 사건이어서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대속의 사랑
“구속”(redemption)이란 말은 “값을 치러준다”라는 뜻이고 “대속”(atonement)이란 말은 “대신 죽어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순수한 인자, 즉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in the place of us) 죄 값을 치러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타인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남북전쟁 때 한 청년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군대에 나가 전사한 것은 대단한 사랑이요 희생이지만, 그것은 같은 인간끼리 대신 죽어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오 권능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신데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잔혹한 로마 군병들의 쇠갈고리 채찍에 온 몸이 찢겨나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매를 맞으시고, 최후에는 극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 십자가의 형틀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온몸이 찢겨지셔서 물과 피를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흘리며 죽어주신 것입니다.
어느 큰 농장 집에 독신 목사님이 살고 있었는데 농장 주인을 예수님 믿게 하려고 아무리 전도해도 듣지 않고 믿지 않으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농장 주인이 목사님의 방문을 두드리며 빨리 좀 나와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따라가 보았더니 닭장에 큰 암탉이 족제비한테 목이 물려서 피를 다 쏟고 죽어 있더랍니다. 그 주인이 그 암탉을 툭 치니까 죽은 채 쓰러지는데 그 품에는 병아리 여러 마리가 삐약삐약 하고 살아서 뛰어나왔습니다. 그 어미닭은 족제비 앞에서 뛰어 도망가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지만 자기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앉아서 족제비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많은 무리들이 “네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느냐” 하고 조롱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뛰어내려 살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고통을 참고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사랑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라는 말씀도 대속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씀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고민(dilemma)
하나님은 전능하신(omnipotent) 분이신데…….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게 하지 않고는 우리들을 죄악의 멸망에서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 그 자신의 성품(nature)이 일치할 때만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분이지 하나님의 본성, 성품과 배치될 때에는 전능하신 분이 못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해주며 복된 삶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동시에 공의(justice)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죄인들의 죄를 벌하여 지옥의 멸망에 던져 넣으셔야 하겠는데 그렇게 하자니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인들을 그냥 모두 다 지옥의 형벌에 던져 넣으실 수도 없으셨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전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자비(mercy)의 성품 혹은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죄인들을 다 구원해 내셔야 하겠는데(딤전2:4),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인들을 그냥 용서하고 구원해 주실 수도 없고,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인들을 다 심판해서 지옥형벌에 던져 버려야 하겠는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러실 수도 없으시고······. 하나님은 심각한 고민(divine dilemma)에 빠지신 것입니다. 공의(justice)를 살리자니 하나님의 자비가 소리치고 하나님의 자비(mercy)를 살리자니 공의가 소리치기 때문에 공의와 자비를 서로 절충(compromise)하지 않고는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인을 무조건 용서한다면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의로우신(righteous) 분이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죄를 벌하시며 동시에 구원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신(substitution) 죄의 값을 치르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가 죽어야 할 대신에 죽어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 한 사람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구원받을 만한 의인이 아니라, 죄인중의 괴수였었지만 그가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음으로 고백하였기에, 주님으로부터 “Truly I say to you, today you shall be with Me in Paradise.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구원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바울이 잘 설명했습니다. 죄인이 구원함을 받은 이후에는 거룩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적어도 죄인이 구원함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거나 공을 세우거나 할 필요는 없게 된 것입니다. 대속의 사업으로 완성해 놓으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돈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은 것을 믿음으로 올라타고 원하는 층의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구원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은혜” (grace)로 주어지는 “선물”(gift)은 모두 값을 내지 않고 믿음으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이 유리도 깨고 기물을 많이 파괴하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이 기물을 파괴하면 그 학생이 보상해야 된다는 교내규칙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실수로 그만 큰 유리창을 깼는데 전혀 그 값을 물어낼 수가 없는 가난한 학생입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 자신이 그 값을 물어주고 그 학생을 용서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공의(justice)와 하나님의 자비(mercy)가 다 충족이 되었고 둘 다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롬 3:23-26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메시아 대속의 예언과 성취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을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B.C. 695-750)를 통해서 자세히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1] 우리 대신 버림 받으심(53:1-3)
(사 53:1-3)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간고”는 “비통, 슬픔”을 의미합니다. “질고”는 “질병”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심을 의미합니다.
2] 우리 대신 죄와 징벌을 받으시고 질병과 슬픔을 거두심(53:4-6)
(사 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호리, 질병)를 지고 우리의 슬픔(마코오브, 괴로움)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마 8:16-17)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3] 우리 대신 죽으심(53:7-9)
(사 53:7-9)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곤욕과 괴로움을 당하시고 죽으셨고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낸 것까지 상세히 예언하였습니다.
(사 53:12) 『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대신 생명을 버려 죄를 담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마치 그 사건을 직접 본 것같이 예언한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며 그 받으신 고난 전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기에 다른 사람의 죄악을 담당할 수도 없고 자신의 죄도 대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 49:7-8)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왜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대속할 수 있고 우리를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죄 없는 사람이어야만 죄 있는 사람의 죄의 값을 대신 값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기 때문에 죄 없는 피를 가지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의 피로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가 아니고는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를 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죄 사함의 원칙은 피 흘림입니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을 대표하고 반대로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피만이 우리의 죄악을 씻어낼 정결한 피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 종교나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사랑하여 자기 자신을 나에게 주셨으니, 그것은 율법과 인간의 행위의 의에 대하여 터진 뇌성벽력 같은 반대이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비교할 수 없는 보화로 여길진대 네 모든 종교의식과 행위와 공로는 지옥으로 던져라. 그 이유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밖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어 화해시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과 영생의 길은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주간은 2012년전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었던 주간입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단번에 청산하셔서 우리들로부터 모든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시려고 그 온몸을 채찍에 맞아 찢기심으로 질병의 저주를 거두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사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모든 죄악을 멸해버리셨으며, 마지막 속옷하나 남김없이 다 빼앗기사 완전히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모든 가난의 저주로부터 자유하게 하사 부요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는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이 받았던 영생의 복, 재정의 복, 건강의 복, 장수의 복을 누리시며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 하시는 복된 한 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갈 3:13-14)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까닭에 우리가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이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의 고난까닭에 우리가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며 건강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 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마 8:16-17)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해지심 까닭에 우리가 모든 가난의 저주로부터 자유하게 되며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상과 같은 진리가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이 천국의 비밀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옥의 저주를 벗어나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달려 나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그 천국의 권세를 맛보며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연약함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건강과 치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가난의 저주로부터 벗어나 영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재정적으로도 부흥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이상과 같은 약속들을 실제로는 누리지 못하며 가난하고 병들고 찌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심지어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까?
(히 4:1-2)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막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3]...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눅 8:4-18)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100배의 결실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번 주간은 2012년전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었던 주간입니다. 우리들의 죄악을 단번에 청산하셔서 우리들로부터 모든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시려고 그 온몸을 채찍에 맞아 찢기심으로 질병의 저주를 거두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사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모든 죄악을 멸해버리셨으며, 마지막 속옷하나 남김없이 다 빼앗기사 완전히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모든 가난의 저주로부터 자유하게 하사 부요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는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이 받았던 영생의 복, 재정의 복, 건강의 복, 장수의 복을 누리시며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 하시는 복된 한 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주님의 복된 부활의 아침이 있었던 날로 부활주일입니다. 이번 부활주일에 우리는 천하보다도 더 귀중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한영혼사랑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해 내시며 그들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되 현세와 내세에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모진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복된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