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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안경(040229주일오전)

작성자부흥맨|작성시간04.03.05|조회수560 목록 댓글 2
믿음의 안경

민수기 13: 30 - 14: 10

I. 서론

오산교회에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예배당 정면의 스크린이 뿌옇고 글씨가 잘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빔프로잭트의 전구가 낡아서 조도가 많이 떨어졌구나! 그렇다면 전구를 빨리 갈던가, 글씨를 더 크게 해서 잘 보이게 해야 되는데...’ 그리고 어느 날 직원회의 때, 예배 시에 정면 스크린의 글씨들이 잘 안보이는데 전구를 새것으로 갈든가 아니면 글씨를 크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모든 직원들이 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 ‘우리는 잘 보이는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전도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안과에 가보세요. 목사님 시력이 문제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시력검사를 하고 난 후, 안경을 써보았습니다.
‘와~... 이럴 수가.... 이렇게 잘 보이다니....’
그동안 잘 안보이던 주변여건들이 환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안경을 꼭 쓰고 다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들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주었습니다. 밝은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늘도 희미하고 사람도 희미하고 내가 가야할 세상도 희미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밝은 세상을 어둡게 볼 수밖에 없는 어두운 우리의 눈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믿음의 안경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의 안경을 쓴 사람에겐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영생의 길이 보입니다. 추한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어두운 세상이 밝게 보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인이 되었다 하면서도 이 믿음의 안경을 쓰지 못해 만사를 어둡게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II.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 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요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전에 자기 가족 무덤으로 사용된 몇 평 남짓 막벨라굴 외엔 자기 땅을 갖지 못했고 이삭도 야곱도 이 가나안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가나안을 아브라함 씨족에게 주었더라면 큰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필시 주변 강대국들이 아브라함 가족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약 400년간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품안에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애굽을 일컬어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 품, 혹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것이라고 부릅니다. 400년 종살이가 끝나고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그 땅을 정탐하는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요 영적 선민이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예비하셨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신앙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기쁨과 환영과 신앙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자를 눈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면 후자는 믿음의 안경을 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 그 가나안 땅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고 하니, 민수기 13장 2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불신앙으로 거부한 일단의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의 눈으로 쟁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장애물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목표와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곤충연구가로 유명한 쟝앙리 파브르가 날벌레를 연구하다가 그들의 우매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날벌레들은 앞에 무엇이 있으면 죽자사자 따라다닙니다. 기아상태에서 질식하여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는 겁니다. 가까운 곳에 먹을 것이 있건만 방향 없이 무턱대고 행동하는 놈이 날파리입니다. 여러분 날파리 보셨지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분주히 날아다니는 벌레가 날파리, 하루살이 일 겝니다. 주체성 없는 놈이지요. 곤충 가운데도 보호색 곤충이 있다고 합니다. 초목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는 보호색 곤충은 대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눈이오나 밤이나 낮이나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곤충들이 오래 살고 건강합니다. 세상 돌아가는데로 보호색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목표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분주하게만 뛰어 다니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신앙인입니다. 독야청청, 푸른 신앙인 그가 건강한 신앙인이지요. 목표 없이 헛수고하는 사람은 날벌레와 같은 사람입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군사도 없이 병력도 없이 돈도 없이 그토록 강력한 대영제국으로부터 당신의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까?" 간디가 대답합니다. "내게는 내 조국을 해방시켜야 되겠다고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는, 믿음은, 군사력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III. 두 개의 눈(관점)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 가운데 열 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13장 18절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13장 31절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13장 32절-33절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포기합시다" 철저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보고 외에는 아무 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눈, 믿음의 안경을 가졌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14장 7절-9절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이것 보십시오. 이들 두 사람도 다른 열 사람과 똑같은 땅을 보았습니다. 같은 산야 를 탐지했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보고 왔습니다. 그러나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열 사람은 인간의 눈, 불신앙의 눈으로 상황을 보았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신앙의 눈,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의 안경을 쓰고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의 시각 여하에 따라서 펼쳐지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날마다 부딪히는 커다란 난관과 인생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살아가십니까? 시각여하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병원 같은 병실에 두 사람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안쪽 침대에 있던 사람은 조용해서 묵상하기가 좋고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창가의 환자는 밖이 산만하여 혼란스럽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침대를 바꿔 주었지요. 안쪽으로 바뀐 불평환자는 이번엔 보이는게 하얀 벽뿐이니 우울증에 시달렸고 미치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나 창가로 옮겨진 감사환자는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건강을 꿈꾸었고 부지런히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이 세상 한켠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한히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게지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문제가 아니더란 말입니다. 위치와 환경의 문제가 아니더란 말입니다.

불평하다 보면 불평도 체질화되어 집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 기뻐하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상황여하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IV. 불신앙의 눈

우선 약속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정복하지 못한 불신앙의 눈을 살펴보십시다.

가나안 정복을 그토록 불가능한 일이라고 열을 내어 외쳤던 그들을 살펴보십시다. 그들의 태도를 성경은 건전한 평가이거나 일리 있는 관찰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악평"이었다고 단언합니다. 13장 32절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불신앙의 눈은 상황을 악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계산에 넣지 않는 삶, 인간이 가진 자원과 능력만 영악하게 계산하고 따지는 주판놀이에는 언제나 불가능뿐입니다.

열 사람의 보고를 잘 관찰해 보면 하나님 얘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이 두 사람의 짤막한 보고 가운데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눈을 가지지 못한 그들은 문제를 과장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능력이나 자원을 비굴하리만큼 왜곡하고 맙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상대는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았다" 이 얼마나 비굴한 자학이었으며 잘못된 열등감이었습니까? 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시각은 염병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퍼져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하며 괴로워했습니다.

14장 1절부터 보십시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이 광야에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광야에서 죽기를 원하느냐. 광야에서 죽게 해 주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해 주리라.”

좀더 나아가 보십시다. 신앙적인 보고를 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를 향해 군중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4장 10절입니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자만 가지고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은 약속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눈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에겐 승리는 아무런 약속을 주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기적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눈은 늘 세상과 환경을 불가능한 도전으로만 생각합니다.

만사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긍정적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이것은 이래서 맛이 없고 저것은 저래서 몸에 안좋다고 얘기하며 밥을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이래서 맛있고 저것은 저래서 몸에 좋다고 그러면서 밥을 먹습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도 보면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결혼은 연애의 꽃이요 열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고 말 합니다. 그것이 진리인양 떠벌리고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혼해서 후회 하지 않습니다. 설사 결혼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앙적 태도를 한마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고 나무라십니다.

환경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믿노라고 하면서 조금만 어려워지면 물러서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반석이 터져 샘물이 쏟아져 나올 때 그들은 믿는다고 얘기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만나가 내려지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에 부딪히니까 힘든 일에 부딪히니까 그들의 믿음은 맥을 추지 못하고 후퇴하고 맙니다. 삶의 난제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문제를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 보십시다. 문제 앞에서 그들은 먼저 포기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악평했습니다. 여기에 머문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문제자체보다 문제를 과장하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내 이들은 삶의 현장, 믿음의 대열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믿노라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시각을 갖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10:38)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 세상 살아 갈 때 어려움 만날 수 있지요. 태산 같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을 때가 있지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에 울 때가 있지요. 그러나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믿음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안경을 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정복하며 악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V.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산 사람

이제 믿음의 안경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바라본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9절) 이 얼마나 당당한 외침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의 능력이 내게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지 못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내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뀌어 집니다.

사람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면 황량한 사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그 땅을 보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바뀌어 집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합지졸을 데리고 가나안을 정복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 무한한 힘이 용솟음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동행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을 감동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이미 여러분에게 주어 졌습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세상은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루즈벨트는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 여호수아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수많은 글들 가운데 여호수아서를 가장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강하라 담대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읽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을 부둥켜 쥐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땅을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미래를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게 부딪히는 인생, 불가능을 정복하기 원합니다.’ 그는 과연 장애를 디디고 일어섰습니다. 세계적인 대공항을 극복하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미래는 바로 당신의 밥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밥은 클수록 좋은 것입니다. 밥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사나이 대장부가 밥이 크다고 밥그릇 끌어안고 우는 사람 봤습니까? 정히 먹다가 못 먹으면 남기면 그만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왜 두려워하십니까?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왜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까? 왜 짜증을 내며 살아가십니까? 삶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갈렙은 미래의 땅 가나안을 보고 외쳤습니다. "야, 이 땅 아름답구나. 이 땅은 내 밥이다. 내 땅이다. 나는 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든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세상 살다보면 역경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외치십시오. "야, 이것 정말 감사하구나. 하나님께서 내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으셨구나. 이것 꿀꺽 삼키고 나면 더 큰 은혜를 주실 거야. 이 태산 넘고 나면 축복의 땅이 펼쳐 질 거야. 이 고난의 강이 갈라지고 나면 하나님의 약속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될 거야." 믿어지시면 "아멘" 하십시다.

VI. What then? (결과)

불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과 믿음의 안경을 가진 사람들의 결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불신앙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았던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14장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반면 믿음의 안경을 쓰고 가나안을 바라보았던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어지는 24절 말씀입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 자손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 할렐루야!

1960년대 초 미국에 등산하는 청년들 가운데 세계의 최고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려는 수차례의 시도들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일단의 청년들이 다시 정복하기로 결심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몇몇 심리학자들과 기자들이 이 젊은이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이번에는 이 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첫 번째 청년이 대답하기를 "글쎄요" 두 번째 청년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청년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청년은 "한번 해 보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청년 짐 위트카는 "I can do! 나는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5월 1일 네 명의 친구들의 목숨을 그 산길에 파묻고 차가운 얼음장 밑에 두고 위트카는 홀로 8,880m 에베레스트 정상에 미국의 성조기를 최초로 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외쳤습니다. "I can do, you can do, every body can do.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한 해의 삶의 정복을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했습니다. 여러분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드는 수많은 난제들이 여러분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빼고 계산을 하면 언제나 불가능 밖에 해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시면, 여러분이 걸어가는 그 길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 정상에 여호와 닛시! 승리의 십자가 깃발을 보라는 듯이 꽂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I can do! 외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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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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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ade | 작성시간 06.12.08 God! Don't make me a person who has a lot of complain. I want to be happy with you always.Thanks for my situation and I am happy with you.I wish your miracle and your love.
  • 작성자Jade | 작성시간 06.12.08 My glasses of faith make m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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