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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공부방

장안편사(활쏘기)놀이의 이해

작성자박용민(다나꺼)|작성시간09.10.30|조회수316 목록 댓글 0

  

10월30일 육사 화랑정에서 장안편사가 개최되었습니다.

전통을 생각하며 장안편사에 대하여 글을 옮김니다.

 

 

  장안편사 놀이 보존회 임시총회 소집요구 보충자료


[장안편사]의 현대적 복원


-국궁사풍 연구-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활로 나라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궁이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왕도로 정한지 6백년이 되는 [서울 정도 600년-1995년]행사에 활쏘기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단순한 체육경기로 변해버린 궁도대회를 개최할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서울에서 성행했던 편사(便射0의 사풍을 되살려 보자는 뜻에서 {장안편사]의 현대적 복원을 [서울 정도 600년]행사로 이룩 하려는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민간에게도 활쏘기가 권장 되면서 서울 장안에는 수 많은 민간사정(활터)이 생기고 사정(射亭)과 사정간에 편사가 성행했다. 하지만 도성 안팎을 막론한 서울의 모든 사정과 한량이 참여하고 엄격한 선수선발전을 거쳐 진행된 [장안편사]는 그 규모와 조직과 격식,그리고 대중적인 인기도에서 볼 때 가장 장엄한 편사의 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울 장안에는 도성 안팎에 무려 48개의 민간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활쏘기 열기가 얼마나 왕성 했던가를 알 수가 있다.


지금 서울에는 9개 사정과 2개 직장 사정을 모두 합쳐도 3백명 미만의 궁도인이 있을 뿐이고 그 중 쉬지 않고 활쏘기를 하는 사람은 1백명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각종 편사로 궁술의 기량을 겨루던 射風은 쇠퇴하고 8.15 해방 이후 서울 시내 [6 사정편사] 6.25 이후 [3 사정편사] 등을 거치면서 60년대에 이르러서는 편사의 풍습이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지금 조선시대 편사의 유습이 소멸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일부지방일 뿐이다.

우리는 수천년 내려오는 우리의 민족궁인 각궁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는 활쏘기문화의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이다.

가장 오래고 가장 우수한 민족궁을 지금도 생활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지만,우리 조상들이 쏘던 활쏘기의 사풍은 너무 쉽게 버리고, 단순한 현대적 체육종목으로만 변질 시켰다는 것을 반성 하지 않을 수없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우리의 활과는 비교도 안되는 못난 활을 가지고도 옛 사풍(射風)을 엄격히 고수하고 있는 까닭에 진가를 나타내고 외국인들에게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사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흰티에 흰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고 체육경기화된 궁도대회만을 할 것이 아니라,1년에 한번 쯤은 [장안편사]와 같은 격식의 전통적인 편사놀이를 할 수 있었야 하지 않을까?


한복차림에 편띠별로 색깔이 다른 두루마기를 입든가, 아니면 장안편사용 도복을 우리민족 고유의 의상미를 살려 만들어 입든가, 우리민족의 옷차림으로 우리 민족궁을 옛 사풍 그대로 쏘는 우리의 멋을 찾아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싶다.


이래서 [서울 정도 600년]행사로 [장안편사]를 복원 한다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오늘날 서울에서는 해마다 3~4회씩 서울 시내 궁도인들이 모두 참가하는 각종 궁도대회를 열고있다.


우리 궁도인들이 좀 어렵지만, 옛 사풍을 지키기 위해 노력만 한다면 1년에 한번 정도는 옛[장안편사]식 놀이를 충분히 재현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기생과 악공을 동원하는 것이 어렵다면 노래방식 기계로도 대치 할 수가 있고, 거기한량이나 고전 등의 묘기는 어느정도 훈련을 시키면 가능할 것이다.


*거기한량(擧旗閑良)-화살이 맞는대로 살받이(과녁터)에서 기를 들어 알리는 한량

*고 전(告傳)-과녁 가까운 곳에서 화살의 적중여부와 떨어지는 방향을 알리는 사람


우리 민족 전통의 활을 쏘면서, 우리 조상들이 지켜 온 사풍을 버린다는 것은 우리 국궁을 쏘는 궁도인의 죄악이 아닐까?


이런 견지에서 93년 8월, 우리 황학정은 [서울 정도 600년] 행사로 [장안편사놀이]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한 바 있다.


지금 이 계획안은 종로구에서 그 시행을 위한 예산과 집행에 관한 최종 심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서울 정도 600년]행사로 채택되든 안되든 우리 궁도인들은 합심해서 [장안편사]만은 복원 계승 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황학정 총무 ,언론인 金 鏶)

  ※ 1994년 황학정 발행 [국궁1번지] 37쪽~38쪽 참조






                [장안편사 놀이]계획(안) 


1.목적과 취지


목적: 조선시대 서울에서는 활소기문화의 꽃이었다고 할 수 있는 [장안편사]를 복원하여 오늘의 궁도와 접목시켜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


취지: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활을 가장 잘 쏜 민족이며 우리민족 고유의 각궁(角弓)은 세계의 어떤 민족궁보다도 우수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활쏘기 문화속에 원형대로 보전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자기 민족 고유의 활을 아직도 실제로 쏘고 있는 민족은 우리 이외에는 일본과 몽골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활쏘기 문화는 찬란했던 민족무예를 계승,발전 시키기 보다는 현대적인 체육경기로만 변형되어 발전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민족무예로서의 활쏘기 전통은 단절,소멸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우리의 활과는 비 할수 없이 못난 그 들의 민족궁이지만 민족무예로서의 전통적인 격식과 사풍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때문에 서울 천도 600년행사를 계기로 우리 궁도인들은 소멸되고 있는 민족무예로서의 전통과 사풍을 계승 하고자 [장안편사]를 복원 하려는 것이다.


복원대상으로 [장안편사]를 택하게 된 이유는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대왕이 온 국민에게 호국무예로서의 활쏘기를 권장한 이래 근 300년에 걸쳐 민간인들의 활쏘기 문화가 번성한 시기에 벌어진 각종 편사(便射) 가운데 [장안편사]만이 서울 장안의 모든 사정(射亭 활터)이 참여하는 대중적이고 조직성과 격식을 갖춘 편사이며 관,민이 합동하여 치른 가장 권위있는 편사였기 때문이다.



2.장안편사의 원형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활쏘기 전성기에 서울에는 도성(都城)안에만도 24개의 사정이 있었고 성밖의 서울지역에도 역시 같은 수의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성 안팎을 합치면 48개나 되는 사정들이 제각기 [터편사]나 [골편사], 또는 [남북촌편사] 등 대소편사를 하며 궁술을 연마했지만 [장안편사]는 모든 사정을 참여시켜 세편으로 갈라 엄격한 선수 선발전을 거쳐 서 시행한 편사이다.

편을 가르는데 있어서는 도성안이 한 구역이 되고 도성 밖은 남대문 밖에서 아현동 고개를 잇는 선에서 서대문,홍제동,창의문밖과 북한산에 이르는 지역이 한 구역이 되고 또 서강,마포,용산,한강,뚝섬,왕십리,동소문밖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한 구역으로 둘로 나누었다.


그래서 이 세구역은 제각기 수사정(역사와 전통이 있는 중심사정)이 중심이 되어 편사에 나갈 응사원(應射員선수) 15명씩을 3회에 걸친 중회(衆會선발전)를 통해 선발 했다고 한다.


초중회(初衆會 1차 선발전)에서는 우선 구역안 각정 사두(射頭-활터 최고 우두머리)와 원로들이 모여 수띠(편대의 우두머리)를 먼저 선출하고 나서, 편사와 똑같은 격식과 진행으로 3순(1순 5발)을 쏘아 구역안의 한량 중 18명을 선발 했다.


이때 수띠는 덕망있고 사풍에 숙달한 고참 한량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뽑았다.


초중회가 끝나고 재중회(再衆會2차선발전) 날짜를 정하고 역시 편사와 똑같은 격식과 방법으로 3순을 쏘게하여 18명중 16명을 추리고,또 날을 잡아 3중회(3차 선발전)를 같은 방법으로 실시하여 14명을 추려 수띠와 함께 15명의 응사원을 최종선발 하였다.


이래서 각 구역에서 선발된 편사응사원(선수)들은 각기 수띠의 명령지시에 따라 출전준비와 훈련을 하게 되는데 대중회(大衆會장안편사 본경기)에 나가기 전날에는 고사를 올리고 잠도 같이 합숙을 하고 나서 편기(便旗)와 정기(亭旗)들을 앞세우고 위세 당당하게 편사장에 나갔다고 한다.


편기는 도성안은 청색,  남대문밖은 황색, 마포,용산 쪽은 백색이었다고 한다.


편사장(便射場)에 각 편띠가  도착해서 처음 상면을 할 때에는 다과(茶菓) 세상을 차리고 서로 예(禮)로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서로 사양하고 서로 공경하는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편사장에는 각 영문대장이 군막을 치고 참관을 하고, 각 정 사두와 구사장로(舊射長老)는 정자에 올라앉아 심판을 엄정하게 하며 영문(군병영)의 병사 수백명이 인산인해 를 이룬 구경꾼을 좌우로 갈라서게 하여 가운데로 화살길을 터 놓고 군중관리를  해서 편사장은 매우 엄숙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편사비용인 미전(米錢)과 상품으로 주는 포백(布帛)은 각 영문대장이 지급해서  아주 풍족하게 썼다는 것이다.


편사장에 나온 기생과 악공은 예복을 입고 색차지(色次知)로 선정된 한량의 지시에 복종토록 했으며 편사가 끝나 승자가 결정되면 기생과 악공을 승자편에 보내 흥을 돋우고 돌아갈 때 풍악을 울리도록 배려를 했다고 한다.

또 편사가 끝나면 파연(罷宴)이 있었는데 각 정 사두와 원로들을 정자대청에 들게하여 술을 권하며 서로 위로를 했다는 것이다.

편사가 늦어 날이 저물게 되면 주최측은  사정앞에 사롱으로 불을 밝히고 무겁(과녁터) 좌우에 장작불을 피우고 과녁 좌우 머리에 북등 하나씩을 달았고 각 편띠 군막에도 사롱 한 쌍식을 달아놓고 북등 열 개와 초 하나씩을 겹쳐 지급하여 돌아갈 때  불을 밝히게 했다고 한다.


3.복원계승상의 문제점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장안편사가 단절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전 舊조선 군대에서 활과 노(弩)를 무기체계에서 제외 시키게 된 때로 추측되며 1백년 이상이나 되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격식과 조직진행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세부적인 격식과 절차에 대해서는 경험자나 아는 이가 없다.


따라서 장안편사의 복원에 있어서는 문헌상의 기록을 존중하되 세부적 절차와 격식은 광복직후 6.25이전에 있었던 서울시내 [6사정편사]의 경험과 지금도 남아 있는 경기도 지방의 [터편사]유습을 참작할 수 밖에 없다.


또 활쏘기의 문화가 변질 쇠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활쏘기문화의 전성기에 있었던 장안편사를 복원하는 작업은 민족무예의 전통을 살리겠다는 당국의 정책적 의지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며 동시에 서울시내 전체 궁도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의가 따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장안편사를 복원 했다고 해도 그것이 1회용 연출이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활쏘기 문화 속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3~4년은 당국의 지원이 있어야 하고 궁도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4.현대 궁도와의 접목


우리의 궁도(국궁)는 민족무예의 전통계승과 현대적 체육경기 종목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은 민족무예의 전통 보다는 체육경기종목이라는 점에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각궁에 죽시를 쏘며 엄격한 예절과 사정(활터) 법도를 지키던 전통적인 사풍은 쇠퇴소멸하는 단계에 있으며 적중률에만 치중하는 신소재의 개량궁과 플라스틱 내지는 카본살이 판치며 직업적인 프로선수가 시.도에 고용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장안편사의 복원과  계승은 반드시 우리의 궁도가 민족무예의 전통계승을 경시하고 체육경기 일변도로 기울고 있는 현상을 바로 잡는데 이바지 해야 할 것이다.


민족무예의 전통을 잇는 [편사]와 체육경기인 [궁도대회]가 우리의 활쏘기 문화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상호보완을 하도록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이런면에서 장안편사의 복원의의는  매우 큰 것이다.




5.장안편사의 현대적 복원


우리 궁도계의 현실속에서장안편사의 원형을 최대로 살려 복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사항들이 고려 되어야 한다.


가.서울의 현재 궁도세력


1993년도에 등록된 서울시내 궁도인 수는 277명이며 사정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황학정(사직동)   65명

      석호정(장충동)   50명

      백운정(정릉동)   30명 (2009년 현재 폐쇄)

      관악정(신림동)   27명

      공항정(공항동)   30명

      영학정(양평동)   31명

      수락정(상계동)   26명

      삼성정(시흥본동) 12명 (2009년 현재 폐쇄)

      군자정(군자동)    6명 (2009년 현재 살곶이정)


나.장안편사식 편가르기


서울의 도성안을 한 구역으로 하고 성 밖을 두 구역으로 하는 지역단위 편 가르기는 오늘의 서울이 강남까지 크게 확장된 지리적 상황과 수사정이 될 만한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된 사정이 모두 성안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 하다.

또 인원 분포면에서도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장안편사에서는 창립역사가 오랜 정을 수사정으로 정한 예를 따라 황학정, 석호정, 백운정을 각각 수사정을 정하고 지역과 선수인원을 감안하여 3개정식 3편으로 가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고 또 운용면에서도 합당할 것 같다.

그리고 장안편사 때 3편의깃발을 황색, 청색, 백색으로 구분했던 것을 적용하여 황군, 청군,  백군으로 가르면 다음과 같다.


       황군               청군             백군

      황학정             석호정           백운정

      공항정             관악정           수락정

      군자정(살곶이정)    삼성정           영학정



다.장안편사식 선수선발


황, 청 백 각군은 각각 수사정에서 전체사원이 참여한 가운데 3차에 걸친 선수선발전을 통해 15명식의 선수를 선발, 장안편사에 출전 시키게 될 것이다.

1차 선수선발전에 앞서 각군은 소속정들의 사두와 원로(고문)들이 모여 수띠(선수대표)부터 덕망있고 활 잘쏘는  고참궁사 중에서 뽑은 다음 3순경기로 18명을 선발하고 2차 선발전에서는 16명, 3차에서는 14명을 추려 수띠포함 15명으로 편사 출전선수를 뽑는 장안편사식 선수선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선발전은 편사때와 똑같은 진행과 분위기속에서 치르게 함으로써 각 군 사정들의 사원단합과 편사 분위기에 적응토록 힘써야 할 것이다.



라.인원동원과  훈련


장안편사의 복원은 동원인원과 훈련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편사대원 획관, 획창,고전,거기한량 등은 최소한 10회 이상, 기생과 악공은 5회 이상,

실제의 편사와 같은 규모와 진행방식속에서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활을 쏘는 편사대원과 획관, 획창, 고전, 거기한량 등의 동작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흥을 돋우지 못하고 오히려 진행을 망치는 잡소리로 되고 만다.


장안편사에 동원되어야 할 인원은 최소한에서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편사대원   15명×3대     45명

           획    관    1명×3대      3명

           획    창    1명×3대      3명

           시    지    1명×3대      3명

           거기한량    1명×3대      3명

           고    전    1명×3대      3명

           시 운 반                 2명

           기    생                 3명

           악    공(삼현육각)        6명

           취사 및 인원지원        14명

           궁도인 참관자          200명



마.진행절차



장안편사를 황학정에서 하는 것으로 가정 한다면, 편사 당일의 진행 절차는 오전 9시 고사를 황학정 처마밑에서 지내고 여유있게 마련한 고사음식은 잔디밭에 一자로 길게 놓은 상위에 옮기고 황학정이 포함 된 황군편대가 편기와 정기를 앞세우고 정렬하고 악공과 함께 대기한다. 청군과 백군 편대는 9시30분 사직공원에 집합하면 큰 북 또는 징을 쳐 도착 했음을 황학정에 알리고, 도착신호를 받은 황군쪽에서도 역시 큰 북이나 징을 쳐 응답을 하고 나서 황군편대가 편기와 정기들을 앞 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마중을 나가 사직공원에서 청,백군을 인도하여 편사장에 입장한다.


입장한 편대원들은 편기와 정기들을 편사장 좌우에 나란히 꼿고 잔디밭의 긴 상을 사이에 놓고 대면, 상견례를 하며 가볍게 고사술을 음복한다.


이 자리에서 주최측의 인사말과 편사진행방법과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나면 편사원들은 물러나 자기편대의 천막으로 가고 잔디밥의 상을 치우고 나서 편사가 시작된다.


편사는 습사없이 정사(正射)로 시작되는데 처음 수띠 3명이 사대에 나가 궁력과 연령을 보아 서로 앞자리를 양보해 가며  자리를 정하면 획관이 발시를 명한다.


수띠 이외의 편사원들은 각편 2명씩 6명을 1대로 모두 7대로 편사해서 진행한다.


편사원들이 초순을 끝내게 되면 점심식사를 하고 식사후에는 막간으로 여무사(여자궁사) 1대 7명이 한복차림으로 나가 한 순(5발)만 쏜 뒤에 편사원들의 재순을 시작하는 것도 생각 할 수 있다.

편사가 끝나면 시상식을 한다음 기생과 악공을 승자편에 보내어 편기와 정기들을 앞세우고 퇴장 사직공원을 한 바퀴 돌며 풍악과 노래와 춤을 춘다.


주최측과 각정 사두와 원로들은 정자에 올라가 파연(罷宴)에 참석, 서로 노고를 위로하며 장안편사의 계승발전을 위해 협력 할 것을 다짐한다..(이하 줄임)


※ 1994년 황학정 발행 [국궁1번지] 39쪽~44쪽 참조


















    

                 [편사의 진행절차]


1. 편사는 선청(先請)한 亭이 먼저 해야 하고 편사기(旗)도 홍색으로 4마내지 5마로 준비하며 상대정은 청.황.백 등 다른 색으로 한다.


2. 옛날에는 편장, 부편장, 삼편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근래에는 편장 한사람만을 두는 것이 상례이다.


3. 편사를 주최하는 亭은 편사당일 편장님을 50미터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부터 편사장(場)으로 모셔오는 행사를 할 때 기생, 악공과  함께 본정 사원 전원이 농악, 풍물, 편사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한다.


4. 편사장(場) 정문 밖에는 솔문을 세운다. 요즘은 솔문 대신 축하 현수막도 무방하다.


5. 상대정(亭) 편장과 사원 전원도 50미터이상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모셔오는 행사를 한다.


6. 이 때 본정 편장은 현관 밖으로 나와 상대 편장을 마주잡고 대청으로 모신다음, 양 편장은 양 편장상 앞에 좌정하고 양 편장 가족과 친지들은 차례로 헌배한다.

종배는 양 정 종띠가 헌배한다.


7. 양 종띠는 궁시를 두손모아 높이들고 양 편장석으로 가서 큰 절을 하면서 [예사 하렵니다]라고  고하고 시사를 한 뒤 궁시를 역시 두손으로 높이 들고 큰 절을 하면서  금일 일기와 풍세를 보고한다.


8. 양 편장은 궁시를 갖추고 사대에 나란히 선다.


9. 이 때 사회자(획관,획창을 겸한 역할)는 과녁터(무겁)를 향해 연전(고전)을 부른다.[연전군, 연전군, 연전군아!..]하면 연전군은 긴 대답으로 [예에] 하고 대답한다.

옛 전통은 연전군이 가사,장삼,고깔을 쓰고 북을 울렸다.


10. 이어 사회자는 [팔도 명강산을 아뢰오렸다]한다.


11. 소리꾼이 엮음으로 흥을 돋운다.

   * 함경도 백두산은 두만강이 둘러있고

   * 평안도 묘향산은 대동강이 둘러있고

   * 황해도라 구원산은 예성강이 둘러있고

   * 강원도의 금강산은 해금강이 둘러있고

   * 경상도의 태백산엔 낙동강 칠백리가 둘러있고

   * 전라도라 지리산에 영산강이 둘러있고

   * 충청도의 계룡산은 고우 금강이 둘러있고

   * 경기도라 삼각산은 한강이 둘러있고

   * 삼각산 내린 줄기에 모산의 정기를 받아 좌청룡,우백호하고 청산에 일자로 제일 명당       에 과녁을 세우고

   * 좌우 편장님이 일승 일패 하시느라 활을 쏘시는데 원근 낙지하고 좌우 분지하는 살은       할 수 없지만 맞고 퇴축하는 살은 분명히 아뢰오렸다..


12. 이 때 연전군은 긴 대답으로 [예~에]한다.


13. 사회자는 본 편장 선사(先射)를 요청한다.본 편장 발시를 하면 [000편장 일시를 발사]라     고 호칭을 한다.


14. 상대 편장이 일시를 발한다. 역시 똑같이 호칭을 한다. 상대 편장은 상대측 사회자가 선     창을 한다.


15. 본 편장이 2시를 발사하면 이에 사회자는 [000편장 또 변이요 한다.기생은 000영감 이시      에 관~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 지화 지화자 지화자]순으로 호칭한다.


16. 사원 편사도 이에 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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