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여기십니까?
흔히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라는 얘기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이긴 자의 것입니다. 패자는 그저 그런 전설을 이야기 할
뿐이지요.
역사를 기록할 때 사관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곧 역사이며, 지금 순간에도 수많은 역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린 그 중에 하나 또는 여럿을 택해 기록해야 합니다. 하나의 사건이 여럿을
바꾸거나 여럿에게 영향을 미친것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걸 선택할 때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사관의 주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역사관이라 말합니다.
식민지하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입니다.
세계는 19세기에 비로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부끄럽게도 우리 손으로 기록되어진 것들이 아닙니다.
관우, 장비, 유비는 누구나 알지만
석주 이상룡, 우당 이회영, 합니하 어딘가에 묘비조차 없이 묻혔을 독립투사들은
어느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없어합니다.
앞서 얘기했듯 역사는 승자의 몫입니다.
승자는 어떤 면에서 ·왜·였으며, 거기에 빌붙은 친왜파들 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태껏 제대로 역사교육을 받지 못해온 것입니다. 해방 후 지금껏 사회곳곳 요직에 자리잡고
기생해온 작자들로 인해 우린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날조를 했고, 그들은 숨겼습니다. 반쪽짜리 역사를 교과서를 통해 배웠고 지금까지 그들은
우리가 온전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온갖 구실로 덮어두려하고 있습니다.
당시 선비들은 철저하게 서양이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합니다.
석주 이상룡은 안동의 대 유림으로 아흔아홉 칸 임청각의 주인이었지만 왜가 쳐들어와 나라를
유린하자 모든 가산을 정리하고 심지어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의 신주까지 다 묻어버립니다.
나라를 되찾고 제를 올려도 된다며 오로지 새나라 건설, 조선의 복건을 위해 서간도로 이주를 합니다.
우당 이회영의 백부는 영의정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대 명문가의 자손이었습니다.
그 또한 모든 노비를 해방하며 ·너희는 이제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투사다·라며 따르길 희망하는 자를
모아 서간도로 이주를 했습니다.
진성이씨 퇴계14대손 6형제 모두 독립투사. 동산 유인식, 단재 신채호
의성김씨 김병식. 일송 김동삼. 백하 김대락. 심산 김창숙 외 40세대 200여명의 지식인들이
독립의 행렬을 걸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말의 선비들이라 배워온 그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경술국치에 스스로 자결한 이만도 수십 일의 단식으로 아비를 잃은 후손들 그들 모두가 우리가
배워온 부패한 선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서간도에 최초의 독립기지를 세우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신흥강습소라 불리 우는 좌, 우파의 이념을 뛰어넘는 보편적 아나키즘을 받아드린
그들에게 후에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라 비하하며, 매도하였습니다.
신흥강습소를 통해 배출 된 독립투사들은 후에 숱한 전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김좌진. 홍범도 등 그들의 무공은 뛰어났습니다.
그중 홍범도는 왜놈들과 가장치열하게 싸웠으며, 가장 많은 승리를 했습니다.
왜놈들을 그 이름만으로 벌벌 떨게 했다는 그는 임전불퇴의 백발백중의 전사였습니다.
백전백승의 그를 우리역사는 그저 일자무식 촌부로 알고 가르칩니다.
왜, 일까요? 후에 그는 자유시 참변이후 제야강을 건너 소련으로 넘어갑니다.
이 하나의 이유로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갑니다.
이 짧은 글로는 부족한 독립투사들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해방이후 승자들이 누구였는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네모 간에 답을 적어 넣으며 자라난 자들의 인생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본인들의
네모 칸이 채워지게 됨을 이제라도 각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