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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스크랩] 매헌 윤봉길의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어등산나무꾼|작성시간15.12.14|조회수393 목록 댓글 0

어릴적부터 사육신중의 한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을 흠모하여 자신의 아호도 한문선생이었던 매곡 성주록이 지어준 매헌(梅軒)이라고 한 윤봉길 의사(1908-1932)는 만주에서 독립투사의 집결지이며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기위해 청도(칭따오)에 들려 세탁소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며 1930년 10.18일에 어머니(배용순 여사)에게 집을 떠나올 때 가졌던 마음을 이 편지에 썼다.

 

한국애국단 입단선서후 사진 -의거 3일전인 1932.4.26 모습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올림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왕사를 회고하니 새삼스럽게 세월 빠른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어머니의 하서(下書)를 봉독하는데 구구절절에 훈계하신 말씀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뼈끝까지 아르르하여 지며 인정없는 이 놈의 눈에서도 때아닌 낙숫물이 뚝뚝뚝뚝 그리고는 잠잠히 앉아 경과사를 되풀이 하여 봅니다. .....

천사만려(千思萬慮)하여 보았으나, 시대 경제고통은 점점 커가는 반면에 우리 가사(家事)는 점점 작아진다. 이것이 어느 놈의 행동인가? 나는 여기에 역경을 밟으려는 결심에 효시였다. 두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려가며 혼자 항상 부르짓기를....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理想)을 이루기 위(爲)하여 산다.

理想은 무엇이냐. 目的의 成功者이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만물주(萬物主)가 되는 나도 理想의 꽃을 피고,

目的의 열매가 맺기를 自信하였다.

그리고 우리 청년시대(靑年時代)에는

父母의 사랑보다,

兄弟의 사랑보다,

처자(妻子)의 사랑보다도

一層 더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覺悟)하였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江山과 나의 父母를 버리고도

이길을 떠나 간다는 決心이였다.” .......

 

..그러므로 최후 결론은 저도 역경에 분투하는 몸이라 비(非)운명설을 주장하고 싶으나, 과거의 역사상 증명을 보아 운명설을 전혀 부인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다 운명에 맡기시고 안심하시기를 복망하옵니다.....

1930년 10월 18일 자상서(子上書)

 

<주>이때 나이 23세

 

 

 

중국 상해 루신공원 의거현장에 세워진 기념비석 

 

1932년 4.29일 상하이 천황 탄생일(천장절) 기념행사때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일본의 주요 요인들을 암살하였다.이로 인해 총사령관 시라카와와 상하이 일본 거주민 대표였던 가와바타 등이 죽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국영사 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사는 24살의 꽃다운 청춘에 가마니에 무릎 꿇린 채 팔을 네 곳이나 묶인 다음 10미터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정조준 당해 처참히 젊은 생을 마감하였다. 수많은 의사 열혈지사들이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하셨다는 사실과 민족과 나라가 없거나 강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삶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개석 국민당 총통이 "우리 중국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 명의 조선 청년이 했다"고 감탄할 만큼 조선의 항일과 독립의지가 세계만방에 알려졌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 인근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으며, 해방이 되기 까지 중국 남부를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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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choyeung 서양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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