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낙연공원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乐然公園
독립운동가 한낙연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 설명 한낙연은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에서 태어났다. 원명은 광우이며, 자는 낙연樂然이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정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못했다. 1914년 소학교를 졸업한 후 전신국과 세관에서 일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세관 근무기간 동안 한낙연은 많은 외국서적을 접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다. 특히 미술에 관한 전문서적도 찾아보면서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한낙연은 1919년 룽징에서 3·13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시위에 쓰일 현수막을 교회당에서 제작했다. 만세운동 이후 고향을 떠난 뒤 상하이에서 전차회사와 인쇄공장에서 일하면서 상해미술전문학교를 입학해 그림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예술을 이상실현의 도구로서 인식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사고적 특성을 갖게 됐다. 1929년부터 프랑스 파리 유학하며 서양화 수업을 받았으며, 국제반파시즘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유럽 각국을 다니면서 시야를 넓혔고, 여러 차례 개인 회화전을 가졌다.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이후 이탈리아에서 이 소식을 접한 한낙연은 프랑스 파리에서 석간신문사 촬영기자 신분으로 반파시스트 선전사업에 종사했다. 그 뒤 양후청楊虎城 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반공』이라는 잡지에 그림과 글을 실어 항일운동에 가세하였고, 1943년부터 1947년까지 실크로드를 답사하면서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묘사하거나 벽화를 모사하며 고고학적 연구를 했다. 또한 유화와 수채화로 농민들의 가난을 체험하고 있는 듯 진솔한 모습을 그렸다. 그러한 작품에는 작가의 서민적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1947년 7월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