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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한론의 주창자 사이고 다카모리(西?隆盛)

작성자문대식|작성시간20.04.05|조회수493 목록 댓글 0

 

사이코 다카모리(西?隆盛) (1828~1877)

일본의 무사, 정치가. 유신3걸 중의 한 사람.

 

 

  사츠마의 하급 무사 사이고 키치베에 다카모리(西?吉兵衛隆盛)의 장남으로 본래 이름은 타카나가(隆永)였으나 후에 개명하였다. 유신 이후에 관위를 받을 때 요시이 토모미츠(吉井友實)가 실수로 그의 아버지 이름을 적는 바람에 지금도 '사이고 다카모리'라고 부르고 있다.

 

본래 하급무사였으나 사츠마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의 눈에 들어 그의 측근이 되었다. 나리아키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실각하여 귀양갔다가 다시 복귀하였는데, 또 은퇴한 번주였던 히사미츠(久光)의 눈에 거슬리는 바람에 다시 귀양을 갔다. 후일 가로(家老) 코마츠 다테아키(小松帶刀, 후에淸廉로 개명)과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의 도움으로 다시 복귀, 금문의 변(1864년에 교토에서 쵸슈와 사츠마가 사상적,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무력충돌을 일으킨 사건으로 이때부터 사츠마와 쵸슈는 원수가 되었다.) 이후 요직을 맡았다. 후에 사카모토 료마의 중개로 원수였던 쵸슈와 삿쵸동맹을 맺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다. 에도성으로 진격했다가 카츠 카이슈와 담판을 짓고 에도성을 무혈입성하였다.

 





신정부 수립 이후에는 육군대장을 맡았으나 정한론(위키백과에는 단순히 조선의 개국을 주장했다고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을 주장하여 오오쿠보 등과 대립, 실각하였고, 1877년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을 주도하였다가 자결하였다.

 

인물에 얽힌 일화

  - '눈이 크다'라는 뜻으로 '우도메(うどめ)'라 불렸다 한다.

  - 키는 179cm, 몸무게는 108kg이었고, 담배는 피웠으나 술은 잘 못마셨다고 한다.

  - 뚱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여, 『사이고와 돼지 공주(西?と豚?)』라는 가부키도 전해지고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상

  사이고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아 대의명분론을 중요시하였고, 고학, 국학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전통'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짧게나마 양명학을 공부한 적이 있어 지행합일론의 영향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이고 다카모리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정한론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였던 요시다 쇼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에도시대 후기부터 국학자나 미토학자 등이 『니혼쇼키』 등을 인용하여 정한론을 주장했던 것으로 보아, 사이고 다카모리 뿐 아니라 당시의 많은 지식인, 정치인들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조선을 정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추측해본다. 다만 사이고가 성급했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보 요인들이 이와쿠라 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비웠을 때 조선 정벌을 천황에게 상주하였으나 한 달만에 귀국한 사절단은 즉각 사이고의 주장을 폐기하고 그를 실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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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목련꽃이 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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