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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40년 9월 15일 한국광복군 창군 선언문과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작성자문대식|작성시간20.06.11|조회수309 목록 댓글 0

 

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국가보훈처, 구글, 소소한 카페



한국광복군 친필이 적힌 태극기

(광복군 대원 문수열이 미국 특수부대로 옮겨갈때 전우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면 준 태극기)


<한국광복군 창군선언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원년(서기 1919년)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 원수의 특별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22년(서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함을 자에 선언한다.


한국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과거 30년 간 일본이 우리 조국을 병합 통치하는 동안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정신은 불명예스러운 노예 생활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자비한 압제자에 대한 영웅적 항전을 계속해 왔다. 


영광스러운 중화 민족의 항전이 4개년에 도달한 이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갖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할 시기가 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중화민국 최고 영수 장개석 원수의 한국 민족에 대한 원대한 정책을 채택함을 기뻐하며 감사의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우리 국가의 해방운동과 특히 우리들의 압박자 왜적에 대한 무장 항행의 준비는 그의 도의적 지원으로 크게 고무되는 바이다. 


우리들은 한·중 연합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극동 및 아시아 아 인민 중에서 자유·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22년 1940년 9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 김 구




광복군 창설의 주역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


오인은 삼천만 한국 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국,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이

일본을 격패하게 하고, 동서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복하여,

이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한국 전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였으니, 한 개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에 선전한다.


2.1910년의 합방 조약 및 일체의 불평등 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며, 반침략 국가의 한국에 있어서의 합리적 기득 권익을 존중한다.


3.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군을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혈전한다.


4.일본 세력하에 조성된 창춘, 난징, 정권을 절대 승인치 않는다.


5.루스벨트, 처칠 선언 외 각조를 견결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키 위해, 이것을 적용하여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원축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주석 김 구

외무부장 조소앙

대한민국 23년 12월 10일



광복군 성립전례식 당시 연설을 하는 백범 김구(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 기념사진






영국군과 협정을 맺고 버마전투에 참가했던 광복군 별동대


국내진입작전 협의를 마친 김구 주석과 미국 OSS총책임자 도노반 소장


광복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광복군 3지대 산동지구 특파단 대원들


광복군 2지대 대원들과 미군 OSS


선서식하는 한국 광복군 대원들


2지대 대원들이 만든 한국광복군 영문약자


광복군 사열식


한국광복군 제5지대 성립전례식 기념사진


광복군 청년공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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