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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스크랩] 독립신문 창간호 전문

작성자문대식|작성시간20.08.11|조회수146 목록 댓글 0

창간사

제1차 세계대전 후, 한국에서 위대한 3.1대혁명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때로부터 한국의 독립문제는 한국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현안의 일환이 되었다. 중일전쟁, 유럽전쟁, 태평양전쟁이 잇달아 터진 후, 한국의 독립문제는 국제적인 중요성을 더욱 나타냈으며 세계정치가들은 동방의 반도로 점차 눈길을 돌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시기에 우수한 민족대표들이 조직한 정치기구이다. 임시정부가 탄생함으로써 한국역사상 민주정치의 신기원을 열어놓았다. 3.1운동 후, 세계혁명이 저조한 시기에 임시정부는 국외에 망명하여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피눈물로 가득 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암흑과 가시덤불을 헤쳐나간 후 광명의 대로가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한국임시정부는 다시 한번 선명한 자태로 국제정치무대에 등장했다. 한국임시정부에 대한 국제적인 승인을 쟁취하는 것은 3천만 한국인민들의 가장 우렁찬 구호가 되었다.
독립신문은 3.1운동시기에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사업을 정확히 반영한 혁명간행물이었다. 상해에서 최초 발간하고 198기까지 계속하여 출판하였었다. 독립신문이 3천만 한국인민들에게 일으킨 작용은 마치 만장의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 우뚝 서있는 등탑과도 같다.
지난 기나긴 암흑 속에서 이 밝은 등탑은 폭풍에 의해 꺼졌으며 우리가 운전하던 배도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바람이 그치고 파도도 잔잔해졌다. 우리는 이미 꺼진 등탑에 다시 불을 붙여서 방향을 잃은 배들에게 앞길을 가리켜준다.
지금 한국혁명의 객관적 형세는 3.1운동 때보다 더욱 유리하다. 한국임시정부의 국제적 지위는 3.1운동 때와 못지 않다. 따라서 독립신문의 복간(復刊) 역시 자연스러운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우리는 독립신문을 부활시킬 뿐더러,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하고 독립신문의 역사적 전통을 발양하여 3.1 대혁명이 못다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우리의 독립신문은 한글 판만 있었고 중문 판은 없었기에 우리는 한글 판을 계속하여 출판하는 동시에 중문 판 창간호도 출판하려고 준비하였다.
현재 세계 반 파쇼전쟁 중, 한국의 독립운동에 세계에 알려진 것이 너무 적어서 우리 독립신문은 여러 나라 언어로 출판되어야 하며 특히 중국어로 출판되어야 한다.중국과 한국은 화복을 같이 하고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우방으로서 역사, 지리, 정치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특히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서 똑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항전의 승리를 한국독립의 선결조건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모두 중국의 항전에 참가하여 중국군민과 함께 적을 소멸하기를 원하고 있다. 과거의 조선의용대와 현재의 한국광복군의 깃발이 중국의 각 전장(戰場)에서 휘날리고 있고, 아리랑의 노래는 화남(華南)에서부터 화북(華北)에 이르기까지 울려 퍼지고 있으며, 중국대지에 조선건아들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중국 측에서도 한국독립운동의 발전을 항전승리의 중요한 조건으로 보고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커다란 동정과 원조를 주었다. 여기에 대하여 우리 한국인들은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장(蔣) 위원장과 4억의 중국인민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강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욱 공고하고 확대된 한중 민족연합전선이 요구되며 특히 중국이 한국임시정부에 대하여 진일보로 원조해줄 것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한국국내의 반일투쟁과 중국국내의 한국독립운동의 구체적 정황, 특히 한국무장대오가 항전 가운데 이룬 공적과 한국임시정부의 사업진행 정황을 때때로 중국 형제들에게 보고하여 그들로부터 심적 지지와 한국혁명에 대한 동정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본 신문의 주요한 임무이다. 그리고 우리는 본 신문을 통하여 중국동포들에게 우리의 의견과 요구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중국동포들의 의견과 요구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한국민족에 관련된 역사, 문화 및 기타 혁명사료(史料)를 중국동포들에게 소개하여 한국문제를 연구하는 참고자료로 삼게 하려는 것도 본 신문의 임무이다.
마지막으로 본 신문의 임무를 완수하는데 우리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중한 두 나라 인사들이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지도해준다면 그것은 본 신문의 행운이자 중한 두 민족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루즈벨트(羅斯福), 처칠(邱吉爾) 5차 회담 태평양전국(戰局)에 대하여 중대한 결정을 내릴 듯

북아프리카동맹군이 대승리를 거둔 후, 영국수상은 5월 11일에 워싱턴에 도착하여 미국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과 개전 이후의 제5차 회담을 가졌다. 처칠(邱吉爾)의 수행인 가운데는 웨이벌(魏菲爾) 인도-영국군 사령 및 해, 공군 책임자 등이 있기에 중한(中韓)인사들은 루즈벨트(羅斯福)와 처칠(邱吉爾)의 이번 회담에서 태평양전국에 대하여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9일에 처칠(邱吉爾)은 미국 국회에서 연설을 하였으며 영국이 장차 대일공습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군역량으로 빠른 시일 안에 일본의 군사목표를 타격해야 한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다. 군사와 지리상의 곤란을 반드시 극복하여 일본의 군사 중심을 잿더미로 만드는 계획을 즉시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는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과의 남은 회담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영국은 중대한 전략에 따라 장차 대일공습에 참가할 것이다." 이어서 영국 수상은 20일 루즈벨트(羅斯福)와 처칠(邱吉爾)이 태평양 작전회의를 소집하여 태평양의 모든 지구에 대하여 검토한다고 하였다. 이곳 한국의 혁명 인사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이 이미 새로운 전환점에 왔으며 극동의 약소민족문제, 특히 한국독립 문제가 장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북아프리카동맹군이 대첩을 거두디 한국혁명단체, 영-미 지도자들에게 축하 전보 보내

이번 달(5월) 8일에 동맹군이 튀니스항을 점령한 후, 온 세상에서 칭송이 자자하다.이곳의 한국혁명인사들은 모두 매우 기뻐하고 흥분하고 있으며, 제2전장(戰場)이 개척되고 영국과 미국이 태평양에서 대규모의 공세를 발동하는 날이 멀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한국 각 혁명단체들은 잇달아 영국, 미국 지도자에게 전보를 보내어 축하를 표하였다.

한국임시정부가 당정군(黨政軍)수뇌자 회의 개최

′신탁통치′ 설에 대하여 토의

[4월 27일 중앙사 워싱턴 특별 전문] 시카고 썬지의 런던특파원의 보고에 의하면 루즈벨트(羅斯福)와 영국 외상 앤쏘니 이든(艾登)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졌으며 전후 평화계획에서 한국이 독립하기 전에 잠시 신탁통치를 한다고 하였다. 중경에 있는 한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몹시 놀랐으며 이번 달 x일에 한국임시정부는 긴급히 당정군(黨政軍)수뇌자 회의를 열고 이곳의 소문에 대하여 함께 토의하였다.

일본침략자들, 미국비행사들 잔혹하게 살해

한국임시정부 대변인 이를 통렬히 질책

미국비행사 8명이 작년 4월 18일에 도쿄(東京)를 폭격할 때 일본군 포로가 되었으며, 최근 일본은 이미 이들 8인을 사형하였다고 선포하였다. 이러한 야만적이고 비열한 소행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후 전세계는 모두 매우 분개했다. 기자가 어제 임시정부 대변인 모씨를 만나서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 모씨는 매우 격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작년 4월에 소련외상 몰로토프(莫爾託夫)가 각국을 소환하여 포로를 살해한 히틀러(希特勒) 침략자들의 죄행을 일일이 폭로했을 때 온 세상이 놀랐었다. 우리는 일본침략자가 지난 반세기 이래에 중한인민에 대한 잔혹한 살육행위의 야만적이고 악독한 정도가 히틀러(希特勒)보다도 수천 배나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미국비행사를 살해한 행위는 그들의 극악무도한 행위의 일면만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몰로토프(莫爾託夫)가 독일침략자의 죄행을 폭로하듯이 일본침략자의 죄행을 낱낱이 폭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에 미국비행기가 도쿄(東京)를 폭격할 때 3천만 한인들은 모두 통쾌해하였다. 지난 50년이래 한인들이 일본인에게 욕을 먹고, 맞고, 살해 당해도 바른 도리를 주관하는 자가 없었으며, 정의의 검으로 일본침략자에게 반격하는 자는 더욱 없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터진 후에야 일본침략자의 죄행을 심판하였다. 작년에 도쿄(東京)를 폭격한 것은 적들의 죄행을 징벌하는 가장 통쾌한 일이다. 우리는 침략을 반대하는 민족의 우호적인 마음을 담아 8명의 순국비행사에 대하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그리고 미국이 하루빨리 일본에 대한 공습을 진행, 더욱 큰 규모의 공군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도쿄(東京)와 적의 기타 도시를 폭격함으로써 8명의 순직비행사들의 영령을 달래주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 3천만 동포들은 미국과 함께 싸워, 세계문명을 소란시키는 이 잔혹하고 야만적인 국가의 역량을 소멸할 것을 결심한다."

재미한교들, 장[蔣-송미령(宋美齡] 부인 열렬히 환영

4월 1일의 로스앤젤레스의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소식에 따르면 장[蔣-송미령(宋美齡)] 부인은 3월 31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였으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장 부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원조해 왔었다. 미국한인연합회는 환영을 표하기 위하여 중한양국의 우의를 상징하는 기념메달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한국애국부녀단은 기념 컵을 선물하였으며, 캘리포니아 한국후비대(後備隊)는 양피지(羊皮紙) 한 장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난 후, 로스앤젤레스시청에서 중국국기게양식을 할 때, 한인연합회의 대표 김 부인과 송 부인이 함께 참가하였다.
신한민보는 이튿날에 본사평론을 발표하여 환영과 칭송의 뜻을 표하였으며 그 뜻을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장 부인은 한국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힘껏 원조하였으며 이에 재미 전체 한인들은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미국 하원의원 오브라이언(鳥伯陵), 한국 임시정부를 승인 주장

[미주항공소식]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는 4월 5일에 하원의원 오브라이언(鳥伯陵)씨의 제안을 받았다. 오브라이언(鳥伯陵) 씨는 미국정부가 정확한 입장에 서서 즉시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UPI 기자에게 담화를 발표하여 정부가 임시정부 승인에 대한 좋은 방도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오브라이언(鳥伯陵) 씨는 1942년에도 비슷한 건의를 제기했었다.
78차 의회 1차 회기
공동결의안 109호(H.J.RES 109)
하원
1943년 3월 31일
미시간주 오브라이언(O’Brien) 의원은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발의했으며 이는 외교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공동결의안
이 결의안은 미국이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 정부의 한국임시정부를 승인을 위한 미 의회 상,하원 결의안

한국의 정신은 정복할 수 없다

한국청년회, 네덜란드 대사관 비서 고뤄퍼이(高羅佩) 씨 초청 강연회

고뤄퍼이(高羅佩)박사는 중화민국 23년에 일본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에 가서 일할 때 한국을 경유하였으며 중화민국 30년에 일본을 떠날 때에도 한국을 경유하였다. 또한 일본 재류 7년간 한국에 선,후로 5차례나 다녀갔으며 한국문제에 대하여 매우 큰 취미가 있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한다. 한국청년회는 4월 24일에 고뤄퍼이(高羅佩) 박사를 초청하여 한국견문을 강연하게 하였다. 고뤄퍼이(高羅佩) 박사의 연설은 3개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첫째, 풍경: 그는 금강산, 경성(京城), 평양, 대구 등지를 여행하였으며 경치가 너무나 수려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 하였다.
둘째, 문명: 한국 문명은 명(明)나라의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 몽고, 시베리아, 일본의 장점만 취하였다. 한국의 건축, 조각, 대련(對聯), 조선목판고서(古書) 등에서 모두 중국과 일본에 없는 우수한 특점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국민: 중화민국 30년에 한국을 경유할 때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야만적인 통치를 목격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어를 제한하는 것이다. 일본통치자들은 조선 소학교(초등학교)에서 매주 일본어를 8시간 가르치고 한국어는 1시간밖에 가르치지 않으면서 한국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도쿄(東京)에서 승용차를 탓을 때 운전사가 한인인 것을 발견하고 일본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운전사는 지금은 일본인의 통치를 받고 있지만 한인들이 꼭 일본인을 싸워 이기어 독립을 이룩한다고 확신한다고 하였다.
이것으로부터 일본인은 한인을 압박할 수는 있어도 한인의 민족정신은 소멸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은 4천여 년의 유구한 문화와 역사가 있기에 한민족의 정신은 절대 정복할 수 없다.

미국, 애크런(愛克倫) 시(市), 한교(韓僑)

주영환(朱永焕)씨의 3.1절 기념성황

[미국 신한민보(新韩民报)소식] 애크런(愛克倫) 시의 유일한 한교인 주영환(朱永焕) 씨가 3월 1일에 특별히 기념만찬회를 열어 근처에 사는 벗들을 초대하였다. 만찬회에는 시장 하터(哈特)씨, 천주교신부 카룰(開魯爾)씨 등 정치·군사·문화 각계의 저명 인사 수십 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먼저 주씨가 독립선언을 낭독하고, 다음으로 근간에 일본인에 의하여 한국으로부터 축출당한 카룰(開魯爾)신부가 일본의 한국인 학대 상황을 보고하였는데 듣는 사람들이 모두 분개하였다. 그 다음으로 하터(哈特) 시장이 한국이 전도가 유망할 것이라고 연설하였다. 마지막으로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과 헐(赫爾) 국무장관에게 하루빨리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여 적극적으로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할 것을 청원하였다. 동시에 공화당의 상원의원 타이푸터(太甫特)씨, 버둔(渤頓)씨와 공화당의 하원의원 루위(魯宇)씨에게 같은 요구를 제기하였다.

안남(安南-베트남) 혁명지사 여송산(黎松山) 동방약소민족 단결 호소

최근에 안남(安南-베트남) 혁명지사 여송산(黎松山)씨, 양실산(楊實山)씨가 운남성(雲南省)에서 중경으로 왔으며 이번 달 8일에 한국청년회에서는 여송산(黎松山)씨를 특별히 요청하여 베트남의 혁명문제를 강연하게 하였다. 여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베트남에 대한 통치정책은 베트남 민족의 단결을 분화하는 것이다. 베트남을 3개 지역으로 나눈 것이 마치 3개의 나라처럼 매 구역의 통치형태가 모두 틀리다. 왕정을 실시하는데도 있고 총독정치를 실시하는데도 있으며 각 구역을 내왕하려면 반드시 여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곳은 프랑스인이 직접 통치하고 어떤 곳은 베트남 왕후(王侯)가 직접 통치하고 프랑스인이 간접적으로 통치한다. 그리하여 베트남인민들은 프랑스 제국주의자들과 베트남봉건왕후(王侯)들 사이에서 이중압박을 받고 있다. 베트남의 혁명운동은 1927년의 베트남 국민당운동이 실패한 후, 사회민주당, 사회급진당, 공산당 등의 운동이 적극적으로 발전하였다. 1936년에 이르러 프랑스인민전선(人民戰線)정부가 성립된 후 안남(安南-베트남)에 대한 통치정책이 다소 개선되었으며 베트남 혁명운동도 그 영향을 받아 위에서 말한 4당이 안남(安南)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였으며 반 프랑스운동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1939년에 달라디에(Daladier) 집권 후, 베트남 혁명운동에 대하여 극렬히 압박하여 각종 단체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였다. 하지만 이런 고압정책은 오히려 더 많은 베트남인민들이 혁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일본 강도들이 베트남에 침입한 후, 베트남 인민의 적은 일본강도로 변했으며 간고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베트남 민족혁명운동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黎) 씨는 동방약소민족은 공동의 적을 싸워 이기기 위하여 반드시 단결하여 공동으로 분투하자고 호소하였다.

한국독립당 제3차 전당대표대회 개최

한국독립당대표대회가 이번 달(5월) 8일에 중경 모처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홍진(洪震), 유동열(柳東說), 조완구(趙碗九), 조소앙(趙素昂), 김의한(金毅漢), 양소벽(楊少碧), 이상만(李相萬), 김자동(金紫東), 안훈(安勳), 김관오(金冠吾), 이준식(李俊植), 정정화(鄭貞和), 김응만(金應萬), 송면수(宋冕秀), 송철(宋哲), 최상철(崔相哲), 심광식(沈光植) 등 17명이 참가하였으며 당과 정치, 군사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주도 면밀한 토론을 가졌으며 전체 민족의 단결문제에 관한 가장 완벽한 방법을 찾고 있다.

중한문화협회(中韓文化協會), 전후(戰後) 한국문제좌담회 개최

이번 달(5월) 9일 오후 1시에 중한문화협회는 중소문화협회 다관(茶館)에서 ′전후 한국문제좌담회′를 열었다. 회의에는 한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규식(金奎植), 장건상(張建相), 조소앙(趙素昂) 및 중국정계와 학계의 지명인사 사도덕(司徒德), 호추원(胡秋原), 정희맹(鄭希孟), 왕곤륜(王崐崙), 진정비(陳正飛) 등 7,8십 명이 참가하였다. 먼저 사회자 사도덕(司徒德) 선생이 회의의 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오늘 5.9는 일본강도가 북양(北洋)정부에 ′21개 조항′의 요구를 제출한 날입니다. 우리가 이 날에 전후 한국문제좌담회를 여는 것은 매우 의의가 있습니다. 일본침략자의 동아시아대륙에 대한 침략은 1910년 한일합병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의 대전이 끝난 후에 한국이 독립을 얻지 못하면 이번의 전쟁의 목적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독립문제는 전후 평화의 관건이며 여러분들이 많은 의견을 발표하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난 후,곧 엄대위[(嚴大衛), 본명 엄항섭(嚴恆燮)] 선생을 청하여 한국독립문제에 대한 각국의 여론을 보고하게 하였다. 엄대위[(嚴大衛), 본명 엄항섭(嚴恆燮)] 선생의 보고가 끝난 후 사회자는 작년에 국내로부터 피난해 온 장건상(張建相) 부장에게 한국국내의 정황 보고를 부탁했다. 장 부장은 국내 각 계층이 전시의 무한한 압박을 받고 있고 일반인민들의 반일정서가 드높은데 대해 간단히 서술하고 나서 비분강개한 어조로 한국인민의 반드시 독립하려는 의지를 나타내었다. 이에 따라 회의분위기도 점차 긴장해졌다.
다음, 사회자는 호추원(胡秋原) 선생에게 발언을 요청하였으며 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지위와 체코의 서유럽에서의 지위가 비슷합니다. 만약 한국이 독립하지 못하면 중국 동북(東北)의 안전이 보장 받지 못합니다. 그 어느 나라가 먼저 한국을 점령하면 동아시아를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서 인접국가들을 정복하려면 한국부터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삼민주의′를 실시하는 국가로서 약소민족을 지원해주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독립을 동정하고 지원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절대적인 독립을 주장합니다. 첫째는 객관적인 수요에 의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절대적인 평화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나 개인적으로는 신탁통치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민족에 대하여 신탁 통치하려면 반드시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수천 년 이래 줄곧 독립국가였으며 3백 년 전의 대일전쟁 중에서 이순신(李舜臣)의 해군이 휘황한 전적을 얻었으며 그가 발명한 철갑선은 세계군함의 시조입니다. 셋째는 한국인민은 독립정신이 있습니다. 한국인민은 수십 년간 영웅적 반일투쟁을 견지하였으며, 독립을 위하여 한국임시정부를 수립한 것도 노예가 되려 하지 않는 한국인민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신탁통치를 반대합니다." 호 선생의 발언은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장내의 사람들을 격동하게 하였으며 여러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호 선생의 발언이 끝난 후 사회자는 외무장관 조소앙(趙素昂) 선생의 발언을 요청하였다. 조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평양전쟁 후 세계는 한국문제를 중시하고 우리도 영-미 전략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영국은 런던의 각 망명정부에 대하여 독립지위를 보장해주었기에 우리 한국망명정부에 대해서도 신탁통치를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인민은 모든 힘을 다하여 태평양전쟁의 승리를 얻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민은 위압과 무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혁명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20여 년 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폭발하기 전에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탁통치 설(說) 때문에 우리의 독립정신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조 선생의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또 한번 열렬한 박수가 터졌다. 외무차장 왕해공(王海公) 선생도 보충의견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사회자는 정희맹(鄭希孟) 선생의 발언을 요청하였다. 정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독립과 전후(戰後) 일본′문제는 동맹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전제로 해서 토론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후(戰後) 평화문제를 토론할 때 민족평등이라는 공동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한국문제에 대하여 다른 원칙을 적용한다면 이는 커다란 착오입니다. 한국을 신탁 통치한다는 논조가 바로 한국문제에 대한 다른 원칙이 아닙니까? 왜냐하면 벨기에가 독일의 침략을 받음으로써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났으며, 각국은 유럽의 평화를 위한다며 모두 벨기에의 독립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극동의 평화를 위한다면서 왜 한국을 신탁통치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서방에는 고급적인 평화가 있고 동방에는 저급적인 평화가 있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 한국을 완충지대로 삼아서 한국을 희생시킵니까? 가령 각국이 일본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면 왜 일본을 신탁통치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일본을 신탁통치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전략상으로부터 말해봅시다. 만약 한국이 극동에서 처한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면 유럽과 지중해와 극동의 중요한 군사거점에 대하여 모두 신탁통치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방면으로 보던 간에 한국독립을 주장해야 하는 이유만 있지 신탁통치를 찬성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 선생의 발언도중에 몇 번이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으며 회의분위기는 고조에 달하였다. 정 선생의 발언이 끝난 후 사회자는 이경수(李敬水)선생을 발언하게 하였으며 이 선생은 아주 간단명료(簡單明瞭)하게 이번 전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를 소멸하고 동아시아 각 민족의 독립과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진정비(陳正飛) 선생도 아주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영 일부 인사들은 전통적으로 완고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문제에 대하여 극히 착오적인 관점을 가집니다."
왕곤륜(王崐崙)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이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국가가 전쟁에서 패하거나, 중국이 한국을 지원하지 않거나, 동맹국이 다른 국가를 압박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제 생각에는 이 세가지가 모두 성립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중국은 한국독립을 지원하기만 했지 한국을 관리하려 않습니다. 소련도 약소민족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면서 한국을 관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경제상의 원인으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면 일본이 한국을 관리한 것을 옳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틀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후에 한 개 국가가 독립할 수 없으면 세계의 화근을 심어놓은 것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동맹국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민족이 더욱 정성 어린 단결을 하여 피 흘려 싸워 한국의 독립을 얻고 한국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를 감동시키기를 희망합니다." 왕 선생의 다채로운 연설은 또 한번 장내인사들의 극도의 흥분과 열렬한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사인소(謝仁釗)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이 자유를 얻지 못하면 중국은 영원히 침략을 당합니다. 우리는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것은 바로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번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이 독립을 얻지 못하면 이번 전쟁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고 중국의 항전도 완전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일본에게 침략기회를 주는 착오적인 관점으로서 중국은 이 관점을 절대 찬성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 착오적인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동방의 스위스가 되기를 희망하며, 우리가 중국에서부터 반격하여 한국경내까지 쳐들어가 일본침략자를 소멸하기를 희망합니." 사 선생의 강연은 또 한번 온 장내의 열렬한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회의가 거의 끝날 때 김규식(金奎植) 부장이 한국측인사들을 대표하여 회의발언자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렸으며 중국항전과 동맹국의 승리 및 중한 두 민족의 영원한 협력을 축원하였다. 마지막으로 외교부의 진요성(陳堯聖) 과장이 한국독립과 중한협력문제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말하였다. 다섯 시가 거의 되어서 중한양국인사들의 넘쳐나는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끝났다.

재중국자유한인대회

전후(戰後) 한국의 완전독립을 요구

어떠한 형식의 외래간섭도 반대

…(원본판독불가)…

한국 각 혁명단체 연합, 주최

재중국자유한인대회선언

…(원본판독불가)…

각국지도자들에게 드리는 전문

전세계 반 파쇼투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더욱이 소련 동부전선 및 북아프리카전장(戰場)에서 빈번히 첩보가 들려올 때, 중경에서 열린 자유한인대회에서는 먼저 우리의 용맹한 동맹군의 대승리를 경축하며 동시에 동맹국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숭고한 경의를 표한다. 본 대회는 여러 각하께서 금후 모든 동맹국의 군민을 계속 영도하여 독일·이탈리아·일본 파쇼군벌을 소멸하여 각 민족이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 얻고 전 인류가 영구적인 평화와 행복을 향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각하께 우리 민족의 진정한 뜻과 요구를 아래와 같이 요구합니다.
1.우리는 우리민족의 영구적인 생존발전과 전 인류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완전독립을 요구합니다.
2.우리는 전후(戰後)의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설(說)이 우리민족의 염원과 어긋나고, 동맹국의 대일작전방침에 해로우며, 루즈벨트(羅斯福)-처칠(邱吉爾) 선언의 기본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단호히 반대합니다.
3.우리는 동맹국의 승리와 일본침략자의 패망을 확신하며 더욱 단결하고 노력하여 반일대혁명을 적극적으로 발동합니다.
4.동맹국이 우리 민족을 대일작전의 주요역량으로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물자지원을 해주고 먼저 우리 임시정부의 국제적 합법지위를 승인해주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25년(1943년) 5월 10일
한국 각 혁명단체 연합, 소집체
재중국자유한인대회
주석단(主席團):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
한국애국부인회
한국청년회

대회결의안

1.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며 신탁통치 혹은 기타 어떠한 형식의 외래간섭도 반대한다.
2.우리는 중·소·영·미(중국 소련 영국 미국) 등 동맹국과 확실하게 협력하여 파쇼침략자를 타도할 것을 요구한다.
3.우리는 혁명진영을 다시 정돈하여 자력갱생의 길로 나아간다.
4.우리는 전후의 완전한 독립을 얻기 위하여, 더욱이 임시정부의 국제적 합법지위를 빨리 얻기 위하여 계속하여 노력한다.

각지의 동포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친애하는 동지, 동포 여러분!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최근까지 1년 이래, 영-미 여론계가 전후(戰後)의 극동문제를 토론할 때, 일부 소수인사들이 한국문제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잘못된 기사를 언론에 발표하였습니다. 이런 언론들은 우리 전체 민족의 요구와 어긋나며 루즈벨트(羅斯福)-처칠(邱吉爾) 선언의 기본정신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간행물인 ′행복′과 ′아시아′ 등 잡지에는 뜻밖에도, 한인은 행정능력이 없고 지도자도 없어서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는 등의 기사가 공개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우리 혁명기구 및 각 개인은 즉시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시카고 썬지에는 영국 외상 이든(艾登)이 백악관을 방문하여 루즈벨트(羅斯福) 대통령과 전후 세계평화계획을 토의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는데, 그 중 한국문제에 관한 결정을 보자면 전후 한국이 독립하기 전에 한국을 신탁 통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우리 임시정부는 즉시 각 동맹국정부에 전보를 보내 반대의사를 밝히고 전후의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였습니다. 동시에 중경의 한국 각 혁명단체와 전체 동포들은 자유한인대회를 소집하여 선언을 발표하고, 4개 조항의 중대결의안을 통과하였으며, 대회의 명의로 각 동맹국지도자들에게 전보를 보내어 우리 민족의 뜻과 요구를 간절하게 천명하였습니다.
동지, 동포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도 여러분이 계시는 곳에서 한인대회를 열고 우리와 같은 조치를 취하기 바랍니다. 이러한 조치는 우리 민족의 정치적 각성을 제고할 뿐더러 동맹국의 작전방침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아래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하겠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1.이른바 신탁통치 소식은 미국 썬지 기자가 영국 런던에서 취재하여 얻은 소식이며 영-미 정부 당국에서는 아직 이 소식을 정식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 당국도 이 소식의 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 영-미를 상대로 이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대한 조치를 취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각 동맹국에 우리의 전후 완전독립요구를 다시 한번 전달하기만 하면 됩니다.
2.영-미 등 동맹국이 아직 우리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우리가 동맹국에 참가하도록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의 가장 친밀한 전우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그들과의 협력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3.동맹국에 우리 임시정부의 국제적 합법지위를 승인하도록 요구하고 신속히 물자 지원할 것을 요구합니다.
4.우리는 혁명진영을 다시 정돈하여 민족의 내부단결을 강화하고 자력갱생의 길로 용감히 나아갈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지, 동포 여러분! 우리는 각 동맹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튼튼한 단결과 자력갱생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완전한 독립과 철저한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임시정부의 깃발 아래서 한 사람처럼 단결하여 승리의 앞길을 향하여 용왕매진(勇往邁進) 합시다!
마지막으로 동지, 동포들의 건투를 빕니다.
대한민국 25년 5월 10일
한국 각 혁명단체 연합, 소집체
재중국자유한인대회
주석단(主席團) 총주석: 홍진(洪震)
주석: 김기원(金起元)
김규광(金奎光)
유월파(柳月波)
김순애(金淳愛)
한지성(韓志成)

우리는 한국을 신탁통치하는 것을 반대한다.

전세계 반 파쇼전쟁이 반격의 승리의 단계에 오고, 동방의 피압박민족이 영-미의 해·육·공군의 극동의 일본침략자에 대한 대규모반격을 초조하게 기다릴 때, 그리고 자유해방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3천만 한국인민이 동맹국이 한국의 독립지위를 정식으로 승인하기를 간절하게 기다릴 때, 갑자기 불행한 소식이 전해왔다. 그것은 바로 중앙사(中央社)의 4월 27일 워싱턴 전문으로서 영-미 정치지도자들이 토의하여 작성한 전후(戰後)계획 중 "한국이 독립하기 전에 잠시 신탁통치한다"는 문제이다. 우리는 특별히 고려하거나 토론할 여지도 없이 전후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반대한다. 지금 나는 한국임시정부 선전부장의 자격으로 한국임시정부와 한국인민을 대표하여 세계를 향하여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를 밝힌다.
1.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는 한국인민의 이익과 자유의지에 어긋난다. 한국은 5천 년의 휘황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방의 오랜 국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한국의 고대문명은 유럽 각국에 뒤치지 않으며, 우리의 적인 일본의 고대문명은 한국으로부터 주입 받았다. 그러나 19세기 말기에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매우 낙후했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친 후 열강들은 한국문제에 대하여 일본과 감히 다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침략자들은 무력과 간교하고 악독한 수단으로 1910년에 한국을 합병하여 일본의 독점적인 식민지로 만들었다. 한국은 멸망했지만 유구한 문화와 역사가 있는 우리 단군자손들은 적들의 잔혹한 압박 속에서도, 앞사람이 돌진하면 뒷사람이 바짝 따라나가면서 몇 십 년 동안 하루와 같이 용감하고 어려운 반일투쟁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면 망국 당시의 유명한 각지의 의병운동, 3.1대혁명, 광주학생운동, 원산대파업, 각지의 노동자·농민 운동 및 수십 년간의 동북조선인민의 무장투쟁과 해외의 정치활동 등은 모두 한국혁명사에서 피로 씌어진 한 페이지일 뿐더러 동방의 피압박민족의 해방사에도 찬란한 빛을 증가시켰다. 온 세상을 통쾌하게 했던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살, 일왕을 저격한 김지섭(金趾燮)과 이봉창(李奉昌), 시라카와(白川)를 폭사시킨 윤봉길 열사 등은 모두 우리 한민족의 영웅적 기개와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는 혁명정신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민족은 죽기를 결심하고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민족이며, 독립자격과 능력이 있는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폭발한 후 우리는 우리의 힘이 약해 중국의 항전과 영-미의 항일전쟁에 크게 공헌하지 못하였지만 중국과 영-미의 항전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으며 더욱이 중국과 영-미가 승리할 때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독립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의 우군과 함께 신성한 항일전장에서 뜨거운 피를 흘리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에서 선후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을 건립하여 각 전장을 전전하며 투쟁하면서 우리 한국혁명 건아들의 장렬한 희생으로 대단히 감동적인 중한연합항일의 시사(詩史)를 엮었다. 이 뿐만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내에서 우리 한인들의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동북지방에 한국인의 뜨거운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것은 한국인민은 자신의 독립을 위해 싸울 뿐더러 동맹국의 승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을 증명한다.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인의 최고의 이익은 독립이며 한인의 모든 노력과 투쟁, 유혈희생은 모두 독립을 위해서다. 동맹국을 협조하여 싸우는 것 역시 독립을 위해서다. 때문에 우리는 일찍부터 동맹국에 우리 한국의 독립지위를 요구하였으며 전후에는 우리가 더욱 많은 힘과 권리를 가지고 동맹국에 한국의 독립지위를 승인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볼 때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는 한국인민의 이익과 자유의지에 어긋나며 모든 노예 되기 싫어하는 한국인은 모두 반대한다.
2.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는 대서양헌장과 동맹국의 작전 이익을 위반하였다. 우리는대서양헌장의 기본정신이 각 민족의 독립을 존중하고, 각 민족이 자신의 국가정치형식을 선택할 자유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다가 현명한 영-미 정계인사들이 이미 대서양헌장의 원칙은 태평양의 각국에도 적용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지금 동맹국의 전쟁은 혁명적 반 파쇼전쟁이다. 이 전쟁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의 목적처럼 세계의 식민지를 분할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각 민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다. 때문에 영-미의 유명인사들은 오래 전부터 "식민지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외쳤다. 그러나 우리가 유감을 느끼는 것은 영-미 책임당국이 식민지 문제에서 아직도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미의 소수 정치가의 눈에는 한민족이 자격이 없고 행정능력은 더욱 없어서 독립국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방어, 준비하고 태평양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잠시 한국을 신탁 통치하여 한국을 완충지대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일본침략자의 궤계(詭計)에 넘어간 틀린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침략자는 늘 세계를 향하여 한민족은 독립자격이 없다고 선전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통치의 합리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다.영-미가 한국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없다면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실질적인 유력한 지원을 하여, 일본강도와 결사적인 혁명투쟁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일본의 붕괴를 다그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동맹국이 승리한 다음에도 한국이 독립국가가 되어야만 일본침략자의 야욕을 근본적으로 소멸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 독립 강성 국가가 되지 못하고 영-미의 해·육·공군에 의거하여 한국을 관리한다면,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처럼 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한국의 신탁통치 문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민의 영-미에 대한 희망과 호감을 약화시키고, 일본침략자들이 한국인민에 대하여 영-미를 폄하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총괄하여 말하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는 대서양헌장의 원칙과 동맹국의 작전이익에 어긋난다. 우리는 우리 한국 인민 뿐 아니라 모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반 파쇼인사들이 이 주장을 반대할 것이라고 믿는다.
위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제는 우리의 영·미·중·소(영국, 미국, 중국, 소련)에 대한 희망과 우리자신의 노력 방향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영-미의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의 결정을 단호히 반대하지만 영-미를 의연히 우리 한국의 우군으로 여기고 있으며 의연히 이들의 공동작전에 협력한다. 그것은 태평양에서의 영-미의 적이 바로 한국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오직 영-미가 일제와 하루라도 싸운다면 우리는 하루의 힘을 다하여 이들을 옹호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니들이 한국 문제에서 틀린 의견을 버리고, 우리 한국의 독립지위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유력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여, 우리가 대규모의 항일전쟁을 발동하여 동맹국의 전쟁승리를 재촉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중-소(중국 소련) 양국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소 양국은 모두 약소민족에 대한 지원을 대외기본정책으로 하기 때문이다.
손중산[(孫中山), 본명 손문(孫文)] 선생은 예전에 "우리는 약한 것을 돕고 기운 것을 바로 잡아 줘야 우리의 천직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특별한 지지와 지원을 표시하였다. 한국임시정부가 수립할 때 그는 전보를 보내와 축하하였다. 지금 장[蔣-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이 중산(中山) 선생의 혁명정신을 계승하여 한국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중국항전이 터진 후,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은 장 위원장의 지원하에 성립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장 위원장은 일찍이 대서양헌장을 태평양과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하였었다. 중국입법원(立法院) 원장이며 중한문화협회 이사장인 손철생[(孫哲生), 본명 손과(孫科)] 선생도 각국이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민중과 여론 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한국의 독립을 동정한다. 러시아의 레닌(列寗) 선생은 약소민족의 해방을 주장하는 세계에서도 유명한 혁명 전도사이다. 레닌(列寗) 선생은 일찍이 한국혁명과 한국임시정부에 대하여 매우 큰 지원을 하였었다. 지금 스탈린(斯太林) 선생이 레닌(列寗) 선생의 유업을 계승하여 세계 피압박민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소 양국 정부와 인민이 모두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반대할 것이라고 완전히 믿는다. 동시에 우리는 중-소 양국이 한국 문제에 대하여 영-미에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여 이들로 하여금 빨리 착오적인 관점을 시정하게 할 것을 희망한다.
우리의 영·미·중·소(영국 미국 중국 소련)에 대한 희망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지원에 완전히 의존하여 한국의 독립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인의 운명은 한국인민의 노력에 의하여야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자력갱생의 정신을 향상시켜야만 난관을 이겨내고 곤란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른바 신탁통치의 문제는, 한국의 독립의 앞길에 나타난 한 갈래의 바람에 의해 몰려온 음산한 기운이 태양을 가린 것과 같아서, 사람들을 초조하고 걱정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비관해 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우리 한국 인민은 이 기회에 더욱 단결하고 더욱 분발하여 유혈혁명투쟁과 군중의 조직역량으로 영-미의 한민족에 대한 신임과 존중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영-미의 한국독립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열렬히 갈망하고,이들의 지원과 지지가 바로 한국독립운동이 성공하는 주요조건의 하나라고 인정하지만, 이 때문에 이들의 지원과 지지만이 우리의 독립이 성공하는 유일하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인 노력이 객관적 환경에 많이 뒤떨어진 것에 대하여 반성해야 한다. 우리 임시정부가 전 민족 최고통일기구가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를 확대 발전시켜야 하며, 우리의 한국광복군 역시 확대, 개조를 필요로 한다. 더욱이 국내외 혁명군중을 조직 발동하여 대규모의 항일투쟁, 나아가서는 항일전쟁을 진행하는 것이 당명 우리의 최대 급선무이다.우리가 이러한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영-미의 지원을 얻을 수 있고, 한국의 독립은 완전할 수 있다.

김규식(金奎植)

한국혁명청년 김광(金光) 병사하다

한국혁명청년 김광(金光) 동지가 이번 달(5월) 20일에 구거야[冓格掗] 폐병요양원에서 서거하였다. 김광(金光) 동지는 올해 34세이며 한국독립당의 중요간부로서 어릴 때부터 혁명에 참가하여 힘껏 투쟁하였으며 혁명이론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깊다. 수년간 서북(西北)에서 광복군 모집 사업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피로가 쌓여 병이 되어서 작년 겨울부터 중경에 돌아와 휴양하였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이곳의 한국혁명인사들은 모두 무척 가슴 아파하였으며 곧 장례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한국청년, 국제축구 자선경기 참가

손[孫-송경령(宋慶齡)] 부인은 하남(河南)의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중경(重慶)시 체육협회가 주최하는 국제축구 자선경기를 발기하였다. 경기는 이번 달(5월) 16, 17일에 천동사범(川東師範) 구장에서 열렸다. 첫날에 관중 천여 명이 구경하러 왔으며 시합에는 한청(韓靑), 동평(東平), 호성(滬星-상해 스타), 영련(英聯-영연방) 등 4개 팀이 참가하였다. 군악대의 연주 속에서 중·한·영(중국, 한국, 영국) 3국 국기를 장내에 게양하였다. 첫 시합은 한청(韓靑)과 동평(東平) 사이에 벌어졌다. 전반전에 동평이 6:0으로 한청을 앞섰으며 후반전 끝날 때에 가서 한청이 겨우 한 골을 만회하였다. 동평은 중경(重慶)시의 강 팀으로 오랜 기간의 실전경험이 있고 기교가 뛰어나다. 한청은 중경에서 처음으로 시합에 참가하였으며 혁명사업 때문에 연습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한청의 져도 용기를 잃지 않는 정신은 국제인사들의 깊은 찬탄을 자아냈다. 첫 경기가 끝날 무렵에 군악소리가 크게 울리며 손(孫) 부인이 구장에 들어섰다. 15분 후 영국대사 세르무어(薛穆) 부부도 구장을 찾았다. 조금 휴식한 후, 한청, 동평, 호성, 영련 등 4개 팀의 선수들이 줄지어 장내에 서있었고 손(孫) 부인과 세르무어(薛穆) 부부는 미소를 머금고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자선 경기를 하는데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윽고 세르무어(薛穆)가 시구(始球)를 한 후, 호성과 영련 사이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영련이 두 골을 먹었으며 후에 영련이 다급히 쫓아갔으나 패국을 돌이키지 못하고 최종 9:3으로 호성이 대승을 거두었다. 이튿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구경하러 온 관중이 만 여명이며 유시(劉峙) 총사령이 시구를 하였다. 경기는 매우 격렬하고 긴장되었으며 소련 대사 파니우슈킨(潘友新)이 군사대표단 요원들과 함께 경기를 구경하러 왔다. 이날의 첫 경기는 한청과 호성이 치렀으며 한청의 연락 실책으로 인해 5:3으로 호성이 이겼다. 두 번째 시합은 영련과 동평이 치루었는데 영련이 유달리 용맹했음에도 동평에 패하였으며 결과는 6:3으로 동평의 승이었다. 대회에서는 특별히 우승기 4개를 준비하여 끝날 때 유시(劉峙) 총사령이 친히 4개 팀에 수여하여 기념하도록 하였다.

성도(成都)의 한교가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반대하다

(중앙사)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설이 전해진 후, 각지의 한인들은 모두 놀라움을 표하였다. 성도의 한교 이영무(李英茂), 이사영(李士英), 최복성(崔鍑城), 정일진(鄭一真), 정희경(鄭熙景), 김명진(金明鎮), 여상현(呂相賢), 최동선(崔東仙), 손극(孫克), 이준철(李濬哲), 김중진(金重鎮), 김문(金文) 등 12명은 최근에 우리 임시정부당국과 각 당파에 전보를 보내 신탁통치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함을 표시하고,정부와 각 당파가 더욱 긴밀히 협력하여 혁명무장역량을 신속히 확충하고 동맹국의 작전에 협력하여 유혈혁명투쟁과 독립전쟁을 전개, 동맹국이 빨리 우리 한국독립의 지위를 승인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였다.

공산국제[共産國際-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가 해산하다

이번 달(5월) 24일 중경(重慶)의 여러 신문들은 모두 가장 큰 표제로 코민테른을 해산하였다는 소식을 게재하였다.(모스크바 22일 전문) 이곳의 한국혁명인사들은 적극적인 환영을 표시하였으며 열렬한 분위기에서 모두 이 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흥미진진하게 토론하였다. 24일 한국 임시정부에서 주간회의를 열 때 모 중요책임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발표하였다.
1.코민테른은 그들 내부의 원인으로 해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미·소(영국, 미국, 소련)가 더욱 단결하기 위하여, 파쇼를 소멸하는 전쟁 중에서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의심과 불신임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이번의 공산국제의 해산으로 히틀러(希特拉)의 이간정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각 동맹국의 국내내부의 단결과 한국내부의 단결도 중대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2.제3국제(공산국제-코민테른)의 해산은 스탈린(斯太林)이 새로운 국제형세 하에서 수립한 정책이다. 제3국제(코민테른)는 지난 제2국제의 ′조국을 보위′하는 전쟁노선을 반대하기 위해서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코밐테른의 최대의 임무는 각 민족과 각 국가의 노동자들을 불러일으켜 ′조국을 보위′하는 반파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하여 스탈린(斯太林)이 공산국제를 해산한 것이다. 지난날 제3국제는 제2국제 내부의 와해와 분열 때문에 성립되었고, 지금의 제3국제의 해산은 새로운 형세에 적응하기 위한 자발적인 해산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운동의 진보한 표현이자 스탈린의 지도,지위의 공고함을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런 주의(主義)를 신앙하더라도 자신의 역량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하나의 민족이 대외전쟁 중에 공고(鞏固)한 단결과 단체역량이 없으면 승리를 바라보지도 말아야 한다. 금후 우리 한국인은 공산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모두 자신의 역량을 양성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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