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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스크랩] 경술국치일에 냉정하게 성찰을...

작성자문대식|작성시간20.08.21|조회수231 목록 댓글 0

                                     1910년 8월 29일 경복궁에 휘날리는 일장기 !!!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한일합방조약 조인을 한 경술 국치일입니다.
서울교대 안천(安天) 교수의 저서 《황실은 살아있다》를 보면
“1911년 8월 22일, 옥새 뺏기던 날, 고종이 데라우찌에게 따귀를 맞았다” 고 밝히고 “옥쇄 강탈한 데라우치는 국제 범죄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독립투쟁의 본거지가 황실이었고, 만주에 독립군을 양성하여 실제 군 통솔을 맡은 사람은 의왕이었으며,
1945년 8월 20일을 서울 탈환의 날로 잡았는데 5일 앞서 해방이 되는 바람에 일본 공격하려던 황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 어른 할것없이 일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뭅니다.

올림픽 축구팀이 일본을 이겼을 때 새벽시간 아파트에 울려퍼진 함성도 그게 일본을 이긴것 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며 일본에 대한 ‘국민적 감정’ 은 대물림 된 것입니다.

일제 36년을 살았던 분들은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겪었던 굴욕적인 고초의 DNA가 한국인 핏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가 되어 조선사람이 겪었던 온갖 수모와 굴종, 굴욕, 탄압과 압제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어 후손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것입니다.

징병(徵兵)이란 이름으로 조선 젊은이들에게 군복을 입혀 전장으로 내 몰았으며, 징용(徵用)이란 명목으로 조선사람을 탄광등

고통스러운 노역으로 내 몰았고, 조선의 젊은 여자들을 정신대로 데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적노리개가 되게했습니다.

조선땅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것은 전부 수탈해 갔으며 조선의 말과 글을 못쓰게 했으며 조상이 물려준 이름까지 바꾸게 했고,

가히 야만적인 수준의 압제였던 것입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비판은 널리 초등학생 에게까지 전이되어 있는데 왜 우리가 ‘식민지’ 가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욕하는 것만으로는 일본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근자 그들의 행태를 보면 일본은 사과할수 있는 민족이 아닙니다.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 했는가?

이제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를 알아야 해법을 찾을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상당부문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게 사실이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일본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일본과 우리의 국가적인 관계가 대등한 것이 되기 위해서도 성찰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졌던 약점을 알아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고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무역적자’는 한번도 바뀐적이 없습니다.

일종의 ‘경제식민’ 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찰’은 더 필요한 숙제가 됩니다.

진정한 독립국가는 경제에서도 독립적 이어야 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 할수 있었던 가장큰 이유는 일본이 조선보다 강했고, 국제적으로 그렇게 할수있는 여건이 만들어 졌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95) 입니다.

 

1876년 한일수호조약 체결이후, 일본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이에대해 청나라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등을 거치면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강화, 일본세력이 일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영국과 러시아도 한국진출을 기도하게 되어 한국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1894년 동학혁명을 빌미로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하자 일본도 출병, 7월에 군사적으로 충돌했고 8월 황해 해전에서 일본 승리,

전국의 대세가 결판났습니다.

1895년 4월 청나라의 전권대사 이홍장이 일본에 가서 ‘시모노세끼 조약’ 을 체결했습니다.

그 결과로 청나라는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요동반도, 대만, 팽호섬을 일본에 할양, 전쟁배상금 2억냥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요동반도 환부를 요구하는 3국의 간섭이 있자 일본은 부득불 이를 수락합니다.

 

다음이 노일전쟁(露日戰爭 1904-05)입니다.

조선과 만주의 분할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으로서, 일본은 선전포고와 동시에 여순항을 기습했습니다.

만주, 황해, 동해서 일본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더 이상 전쟁능력이 없어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강화조약 맺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러시아는 혁명이 촉진되었습니다.

 

세계의 예상을 뒤엎은 일본의 승리는 1905년 포츠머드강화조약을 탄생시켰습니다.

미국은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 승인받는 대가로 일본의 조선에 대한 보호조치를 인정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으며, 영국도

영,일 동맹을 개정하여 일본의 조선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포츠머드강화조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일본이 조선에 대해 정치, 군사, 경제에 관한 특수이익을 가지는 것을 러시아가 인정

하고 일본이 조선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도, 보호, 감리 등의 모든 행동을 러시아가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로서 일본은 조선식민의 국제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을사조약(乙巳條約)은 1905년(광무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하기 위해 한국정부와 강압적으로 체결한 조약입니다.

을사보호조약, 한일협약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하기 위한 예비적 음모로서 이또오 히로부미 보내어 한국의 외교권을 접수하고, 일본

통감부(統監部)를 설치한다는 등의 5개 조문의 협약안 체결을 강요, 헌병을 동원하는 등 강압적 분위기에서 8대신중 5대신의

찬성을 얻어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하야시 고스께 공사 사이에 체결, 조인된 굴욕적인 조약입니다.

 

을사조약의 기본적인 내용

 

① 일본 외무성이 한국의 외교에 대한 관계및 사무를 통리,지휘한다.

② 금후 한국정부는 일본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제조약, 약속은 하지 못한다.

③ 일본이 한국외교의 관리를 위해 한국황제 밑에 1명의 일본인 통감을 둔다.

 

굴요적인 내용입니다.

이후 일본은 한국의 국권침탈을 미화, 한일합방(韓日合邦)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화(植民地化).

 

1910년 일본은 육군대신 데라우찌를 새로운 조선 통감으로 임명했습니다.

그의 임무는 문서상의 합병(을사조약)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임한 즉시 황성신문, 대한민보,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기관을 정간시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그뒤 총리 이완용과 더불어 병합안을 만들어 8월 22일에 조약에 조인했습니다.

드디어 1910년 8월 29일, 순종(純宗)으로 하여금 나라를 양위하는 조서(詔書-임금의 명령을 적은문서)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사직이 끝나는 순간이었으며,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식민화를 위해 통감부대신 총독부(總督府)를 설치 입법, 사법, 행정, 군사 통수권을 한손에 쥐고 행사했습니다.

이후 1910년 8월 29일을 국치일(國恥日) 이라고 부릅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치욕적인날 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총독부의 대외비 조사자료.(‘조선인의 사상과 성격’ - 1927년 편집, 발간)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조선인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에 나타나는 국민성 파악에 나섭니다.

이 대외비 책 편집자는 무라야마 지쥰이란 일본 지식인으로 도쿄의 제국대학 졸업후 28세에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었습니다.

대외비로 발간된 이 자료의 제2편은, ‘조선인의 성격’ 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우리에게 중요한것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1910년대의 한국인의 성정에 대한 연구기록임과 동시에 우리가

‘성찰’ 해야하는 우리들의 객관적 ‘단점’ 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라는 점입니다.

일본인 입장에서의 기록인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볼때 당시 조선인의 취약점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가치를 가질수 있습니다.

한편 이 자료에서 지적된 조선인의 단점들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이에서 발견되는 것들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①조선인의 성벽(굳어진 성미나 버릇)

   방종, 사치, 낭비, 사행(요행수). 이는 조선인 대부분의 성벽이다.

   근검노력의 자세가 결여되어 빌붙어 생활하려고 하며 이는 그들을 망치는 이유이며 사상의 악화로 치닫게 하는 결함이다.

 

②표면적, 형식적인 것을 즐긴다.

   조선의 불교는 그 내면적 진리를 고려하지않고 다만 표면의 문자대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절 짓거나 적을 물리치는 기도

   등에만 몰두한다.

   유교도 전적으로 동일하다.

   인, 의, 충, 효 등의 내면적 연구를 홀시하고 예의에만 구속받는 고착적이고 형식적이다.

 

③부화뇌동(줏대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

   일반적으로 조선인을 부화뇌동의 민족이라 일컽는다.

   자기의 주의도 없고 정견도 없이 감정에 격하는 악벽이 있기 때문이다.

   이조 500년의 실패는 그들이 이지를 누른채 사물의 중심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로지 부화뇌동으로 치달은 결과다.

   그들의 생활은 빈궁결핍해 졌고, 그들이 육성시킨 것은 부패, 무질서, 혼란, 박해, 압제였다.

   그것이 이렇게 오늘날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④모방성.

   조선인은 모방성이 풍부하다.

   구미사상 같은 것은 아무런 심사숙려도 없이 통째로 삼키듯 곧바로 믿고 받아들여 그 사이에 틈새를 발견하면 곧장 돌진하여

   자신들이 먹고사는 밑천으로 삼고자 한다.

   특히 이런 폐단은 청년들 사이에 많이 보이는데 이는 그 사상이 견실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⑤무기력.

   조선의 현재상태는 내지화(일본화) 한것도 아니고 조선다운 맛도 없이 어느쪽도 아닌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경성체류중 만나본 귀족, 명사들도 웬지 기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⑥비겁, 회색, 보신술.

   조선인의 현재생활은 침체할대로 침체해 어느면에서 보나 생명력있는 활동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 원인은 용기가 결핍된 비겁함에 있으며, 수백년간의 당쟁시대의 공포로부터 유래된 보신술이다.

   책임져야 할 언행은 일체 삼가며 누군가 먼저 말하고 행동하기를 기다렸다가 형편을 살피본다음 서서히 시도하는 것을 양책

   으로 삼게된 것이다.

 

⑦진지함의 결여.

   조선인은 음모도 교묘하게 획책하며 말도 감언이설로 잘 할뿐더러 기획도 멋지게 한다.

   하지만 실력은 없다.

   또한 어떤일을 잘 마무리 지을수 없는 것이 현재 조선인의 실정이다.

   조선인에게 가장 모자라는 것이 이 진지함이다.

 

⑧체념.

   조선인은 어떤일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진지함이 모자란다.

   일이 잘 안될 경우에는 체념하고 그만둔다.

   결말을 제대로 내지않고 그냥 내버려두며 기필코 끝을 보겠다는 진지함이 없기 때문에 일을 완수하는 경우가 없다.

 

⑨의뢰심.

   조선인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의뢰심이다.

   어디에 무엇인가를 부탁하려는 생각이 많다.

   그러나 부탁했던 일이 성사되면 찾아와 감사하는 일은 거의없다.

   부탁하려는 의뢰심 때문에 뇌물이 따르게 되며 그 뇌물이 착복되는 경우도 생긴다.

 

⑩독립심.

   조선의 독립은 국민성이 합치하지 않는다.

   조선 3000년의 역사를 펼치면 어느시대에나 어떤 대국에 따르는것이 일관된 사실임을 알수있다.

   이것이 조선의 고착된 사상이 되어온 까닭에 순전한 독립을 유지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결국 이것은 일본으로 하여금 당초의 취지에 의해 합병을 실행하게 했다.

   그들의 자고이래 역사를 보면, 조선이 순전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위치나 민족성에서 생각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수 있을것이다.

 

이상은 일본인 입장에서의 기록이지만, 좀더 객관적으로 읽어보면 그 안에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자료입니다.

근자 이대통령이 일왕의 방한과 사과에 대해 말하자 일본이 일어나 ‘일본국민에 대한모욕‘ 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걸 적반하장 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들은 반성도, 사죄도 할 수 없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강해져야 합니다.

광복과 함께 ‘국치일’ 에 대해서도 냉정히 ‘성찰’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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