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사
양장
레닌, 스탈린 등과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트로츠키가 쓴 '혁명의 기록'.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적군을 지휘하는 군사위원장이었던 트로츠키는 혁명의 주역으로서 러시아 혁명의 모든 과정과 그 법칙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를 세 권으로 집필했는데, 이번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 권으로 편집된 것이다. 이 방대한 책에서 트로츠키는 혁명 시기 계급투쟁의 양상, 혁명의 역학,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다르면서도 전형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모습 등을 자세히 서술했다.
여기에 더해 여성해방, 연속혁명론, 인민전선, 이중권력, 극우 쿠데타와 파시즘, 공동전선, 혁명의 조건과 혁명정당의 역할, 민족 문제 등 혁명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담아냈다. 또한 노동계급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리며, 일개 농민, 병사,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자 : 레온 트로츠키 (Leon Trotsky)
역자 : 볼셰비키그룹
대중은 비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행동으로 나아간다. 이들의 분노는 처음에는 식량 공급에 대한 항의로 표출됐고, 때에 따라 지역 차원의 봉기로 이어졌다. 시장이나 광장에서는 공장에서 근로의 짐을 지고 있는 노동자들보다 여성, 노인, 청소년 들이 보다 대담하고 독자적으로 투쟁했다. 5월에 모스크바에서는 대중운동이 독일인 학살로 변질된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대부분 경찰이 보호하는 도시의 인간쓰레기들이었다. 그러나 공업도시인 모스크바에서 이런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불만에 찬 소읍의 인민에게 자신의 구호와 규율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각성된 상태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전쟁의 최면을 깨고 파업투쟁의 길을 연 것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식량 공급에 대한 항의 투쟁이었다.
적대감과 두려움의 압력이 커짐에 따라 조정의 중세적 미신은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 전체를 뒤덮는 구역질나는 악몽이 연출됐다.
1905년 11월 첫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차르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토볼스크 지역에서 우리는 신이 보낸 사람 그레고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시베리아의 농민 라스푸틴이었다. 그의 머리에는 말을 훔친 벌로 구타를 당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적당한 순간에 나타난 이 “신이 보낸 사람”은 곧 보조 역할을 해줄 관리들을 찾아냈다. 아니, 그들이 그를 찾아낸 셈이었다. 이렇게 황후에게 딱 빌붙어 있는, 그리고 그녀를 통해 차르에게 단단히 매달려 있는 새로운 친위 파벌이 형성되었다.
2월 혁명은 혁명조직들의 반대를 뚫고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의 가장 억압받고 핍박받은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스스로 합의하여 선두에 나섰다. 물론 이들 중에는 병사의 부인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길게 늘어선 빵 배급 줄이 혁명을 촉발시킨 마지막 자극이 되었다. 이날 남녀 모두 합쳐 9만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데모, 집회,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전투성을 드러냈다. 시위는 대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비보르크 지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페트로그라드 쪽으로 옮아갔다. 비밀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다른 곳에서는 파업이나 시위가 없었다. 이날 경찰을 돕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으나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들과 대치하지 않았다. 노동자든 아니든 상관 없이, 여성의 무리는 빵을 요구하며 시 두마 건물로 몰려갔다. 그러나 이것은 염소 수컷에게 젖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도시 여기저기에 붉은 깃발이 등장했다. 깃발의 구호는 노동자들이 왕정이나 전쟁이 아니라 빵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본문 중에서
“트로츠키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으나, 그의 생각은 차가웠고 비전은 분명했다. …… 투쟁의 참여는 그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하게 만들었다. …… 『러시아 혁명사』는 규모와 힘의 측면 외에 트로츠키 자신의 혁명관을 충실히 표현한 점에서도 그가 쓴 최고의 저술이다. 혁명에 대한 명석한 해석, 그것도 혁명의 주역으로서 사실적인 내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세계 기록문학사상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이작 도이처 (영국의 역사가, 정치평론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시 엘 아르 제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