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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대하여(인광이 가져온글)

작성자무구|작성시간06.08.05|조회수289 목록 댓글 0
 주 머 니



1. 한국의 옛 주머니


 오늘날 우리는 간단한 물건들을 옷에 달린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지만 우리 조상들은 옷에 호주머니가 없었으므로 따로 만든 주머니를 차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옷에 달린 포켓(pocket)을 우리의 주머니와는 다른 오랑캐 주머니란 뜻으로 호(胡)주머니라 하였다.

 주머니란 돈이나 작은 소지품을 넣을 수 있도록 헝겊이나 가죽 따위로 만든 작은 자루 모양의 물건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끈을 꿰어 허리에 차고 다녔다.

 이런 주머니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특히 여성들이 외출시 핸드백을 사용하면서 그 가치가 희박해졌고, 의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일상용품으로서의 주머니 사용은 더욱 줄어들었다.



2.주머니의 역사


 주머니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 조(景德王 條)에 돌날로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婦女)의 짓을 좋아하여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귀가(貴家)의 부녀자 (婦女子)들이 여러 가지 채색의 실로 짠 끈과 금방울을 달고 향낭차기를 즐겨했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주머니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

태종 17년 7월의 기록을 시초로 하여 조선 초의 기록은 대부분 중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예물로 주머니를 청한 내용이다. 특히 세종 2년에는 중국 사신이 여러 차례 돈피(豚皮), 녹피(鹿皮), 전피(皮), 흑서피(黑鼠皮) 주머니등을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성종 9년 1월 조에도 성절사(聖節使)가 우리나라에 물건중에서 중국 황제가 수놓은 주머니를 요구한다고 전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왕이 중국 사신에게 주머니를 선물로 내리기도 하였다. 세조실록 5년 11월 조에 따르면 야인(野人) 김마신합과 그의 일행 11인에게 채낭(彩囊)을 하사하고, 13년 9월 조에는 중국 사신에게 약을 담은 약낭(藥囊)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궁중에서 제작한 주머니는 궁낭(宮囊) 혹은 줌치라고 불렸으며, 궁중에서 만든 주머니는 비록 조그만 물건이지만 상의원(尙衣院)의 나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궁중용 주머니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단에 세련된 자수와 매듭을 장식한 품격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귀한 예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백성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스러운 주머니를 차는 것을 경계했다.  (세종 28년 5월에 집현전의 논의 내용 : 유품 조사와 유음 자제 외에는 채견(彩絹)주머니 사용을 못하게 함. 영조 33년 12월 조에 사치 억제를 위해 무늬 있는 비단 주머니 사용을 금함) 반면에 왕실에서는 신분에 따라 차등은 있었지만, 별다른 제약 없이 화려한 주머니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한편 새해 첫 돼지날과 쥐날에는 궁에서 여러 대신에게 볶은 콩을 주머니에 넣어 하사하였고, 왕비는 재상가의 어린애들에게 액을 면하고 한해를 잘 지내라는 뜻으로 황두(黃豆) 볶은 것을 홍지(紅紙)에 싸서 오방 낭자에 넣어 보냈으며, 가례(嘉禮)시나 5월 첫 해일(亥日)에는 대내에나 왕비의 친정, 기타 종속들에게 연내 행운을 축복하는 뜻으로 주머니를 사송(賜送)하는 풍습도 있었다.

 민간에서는 붉은 바탕에 수놓은 주머니를 평생 세 개 이어서 차게되면 후세에 좋은 곳으로 간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노인들은 붉은 색의 자수 주머니 차는 것을 즐겼다. 그 이유는 수(繡) 음(音)이 같은 (壽)가 목숨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어른께 드리는 주머니에는 장생(長生)을 기원하기 위해 십장생무늬를 수 놓았다.

돌이나 환갑 잔치에도 주머니를 선물하는 것이 통례였고, 새댁이 첫 근친을 갔다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는 '효도 주머니' 라 하여 손수 정성껏 지은 주머니를 시댁 어른들께 드리는 것이 효도였다. 혼례에도 팥 아홉 알과 씨가 박힌 목화 등을 넣은 두루 주머니를 함(函)에 넣었으며, 이것은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방에 따라 내용물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반면 상(喪)을 당하게 되면 탈상할 때까지 왕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소색(素色) 주머니를 차야 했으며, 장례시는 수의를 지을 때 오낭(五囊)이라고 하는 다섯 개의 주머니를 만들어 고인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 등을 담아 관 안에 넣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풍속이다.

 그 밖에도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풍속 중에 돌띠 (돌을 맞은 아이에게 까치 두루마기나 오방장 두루마기를 입히고 그 위에 둘러주는 것으로 길이가 길고 넓이가 한 뼘 가량 되며,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여러 가지 장생(長生) 무늬를 수 놓는다.) 에 오곡 주머니를 달아 주는데, 붉은 팥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도 있겠지만 아기가 평생동안 끼니 걱정 없이 살기 바라는 염원이 함께 하였다.


 이와 같이 주머니는 실용성과 장식성, 주술성까지 결합되어 생활의 한 부분을 이루었고 현대까지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3. 주머니의 종류와 특징


 가. 형태에 따라


 ㉠ 귀주머니

 한자로 각낭(角囊), 궁중에서는 줌치라 한다. 긴 네모 주머니 양편에 삼각형의 귀가 달린 모양의 각형 주머니이다. 귀주머니는 마름질부터 바느질까지 모두 직선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 조상들의 선의 미학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삐죽이 나온 '귀'를 연상하게 하는 모진 귀부분은 전체적인 형태에 안정감을 제공하고

균형미를 이룬다. 또한 입구 주름의 어느 위치에서 끈을 꿰느냐에 따라 귀의 각도와

주머니의 형이 달라진다.

 구조상 가장 닳기 쉬운 양쪽 모서리인 두 '귀'와 중앙부 하단인 '배꼽' 은 다른 배색 감으로 (혹은 같은색으로) 따로 감싸듯 한 겹 덧대고 그 가장자리를 곱게 상침을 놓아 주머니 원형에 부착시켰다. 이는 제일 마찰이 심한 부분을 보강하는 실용적 효과와 아울러 장식적 효과까지 가지고 있다.


㉡ 두루 주머니

 한자로 협낭(夾囊), 일명 염낭이라고 한다.

 펼친 모양은 직사각형의 아래 양각만 둥글게 굴린 모양이지만 입구에 주름을 잡아 끈을 꿴 후 그 끈을 조이면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이 만들어진다. 입구 주름은 보통 5,7,9,11개 등 홀수로 접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의 음양 사상에서 오는 일반적인 기수 선호 감정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구에 주름을 귀주머니 식으로 접은 것도 있으며, 이런 모양은 궁중용 향낭에서 볼 수 있다.


 ㉢ 약 주머니

 긴 사각형의 천을 사선으로 접어 솔기를 맞물려 바느질한 것으로, 몸통 중앙에 주름을 잡아 끈을 꿰고 나머지 부분을 앞으로 넘기면 삼각형의 뚜껑이 만들어진다. 이 주름을 인해 주머니의 형태는 직사각형에서 완만한 곡선의 어깨선으로 변형되어 부드러운 곡선 느낌의 직선 형태를 지니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만든 필낭도 전해진다.


㉣ 직선 형태 주머니

 직사각형의 주머니를 만들고 입구에 주름을 잡아 만든다. 필낭이나 사각형 약 주머니가 여기에 해당한다.

수저 주머니, 부시 주머니 등은 사각으로 만들되 입구에 주름을 잡지 않고 끈만 꿰어 만든다.

버선본 주머니는 정사각형의 보자기를 만든 후 네 귀퉁이를 중심을 향해 접어 작은 정사각형을 만들고 그 중심점에 매듭 단추를 달아 여미게 만든 것으로 보자기와 주머니의 중간 형태이다. 버선본 주머니를 제외한 직선 형태의 주머니들은 두루주머니나 귀주머니에 비해 크기가 크다.



 나. 쓰임새에 따라


 주머니에 담기는 물건의 이름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각종 향을 담은 향 주머니, 환약을 담는 약 주머니, 부적을 몸에 지니기 위한 부적 주머니, 부싯돌과 담배를 담아 둔 부시 주머니와 쌈지, 군대 동원증표로 쓰이던 발병부(發兵符)를 넣던 병부 주머니, 붓을 보관하는 필낭(筆囊), 도장을 보관하는 도장 주머니, 혼수(婚需)로 만들어 가던 은수저를 넣기 위한 수저 주머니, 가족들의 버선본을 넣어두는 버선본 주머니, 돈을 넣는 돈주머니 등 주머니의 쓰임새만큼이나 많은 주머니의 명칭이 있고 용도에 따라 각기다른 모양과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다. 장식에 따라


 주머니를 장식에 따라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머니의 몸체 부분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는 대신 사용된 소재의 미를 살리는데 중점을 둔 주머니이다.

 이 경우에는 소재의 재질감이나 직조 문양을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이색(異色)의 안

을 사용하거나 기존 소재 위에 다른 소재 혹은 같은 소재의 장식을 덧붙이거나 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하여 만든다. 때로는 덧붙인 천 위에 상침을 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스티치(stitch)도 매우 훌륭한 장식적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주머니의 몸체 부분에 금박장식을 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자수 장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머니에 금박 장식을 한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 궁중에서는 금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자수의 가장자리를 금사 징금수로 두르거나 무늬 전체를 금사징금수로 꾸미기도 하였다. 자주 여닫아야 하는 주머니의 특성상 손을 자주대면 망가지기 쉬운 금박

보다는 내구력 있는 자수를 애호하였던 까닭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진주낭자이다. 진주낭자는 왕비가 사용한 것으로 금사로 수를 놓았고 그 위에 천연 진주를 달아 장식하였는데 호사스럽고 화려하다.

 주머니의 몸체에 어떠한 장식을 하였던 간에 주머니 끈과 매듭 또한 중요한 장식적 역할을 하였다.

주머니와 끈과의 색채 조화. 그리고 주머니의 모양과 매듭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배합이 가능하였다. 더군다나 여성들의 주머니에는 괴불, 침낭, 타래버선, 안경집, 자물쇠 등을 닮은 작은 은(銀) 장식과 연밥 장식 혹은 별전(別錢)등을 주머니에 덧달아 꾸미기도 하였다.





라. 소재에 따라


주머니의 겉 천으로 명칭을 삼아 구분할 수 도 있다.

사용된 소재에 따라 갑사(甲沙) 주머니, 숙고사(熟庫沙) 주머니, 모본단(模本緞) 주머니, 명주(明紬) 주머니, 무명 주머니, 가죽 주머니, 종이 주머니 등이 있다.

주머니의 소재는 용도에 따라 달랐으니 돈을 넣는 돈주머니는 튼튼한 가죽 주머니를 많이

사용했고, 담배를 넣는 담배 쌈지 역시 튼튼하고 변색이 덜 되는 가죽이나 종이 등을 애용했다.

또한 계절에 따라 복식의 소재가 변하듯이 주머니도 계절에 따라 소재와 색상을 달리했다. 여름에는 숙고사나 갑사 주머니를, 겨울에는 모본단이나 양단주머니를 즐겨 찼다.




 4. 색채


 우리나라의 복식은 평상시에는 백의나 옥색과 같은 담백한 색을 즐겨 착용했지만 의복의 액센트가 될 수 있는 주머니는 옷과 대조를 이루는 화려한 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주머니에 주로 사용된 색상은 적, 청, 자, 남, 연두, 분홍, 옥색 등의 화려한 원색과 백색, 흑색의 무채색 등 음양오행 사상에 근거를 둔 기본 색들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홍색 바탕의 주머니 수가 가장 많았다. 물론 상(喪)을 당하면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남녀 모두 일체의 색채를 금하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흰 무명주머니를 찼다. 이것은 장식에서 보여지는 철저한 유교적인 색채 제약이 주머니에서도 그 흐름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음양오행 사상에 근거한 우리 조상들의 색채 감정이 제작법에 그대로 드러난 예가 오방낭이다. 오방(五方)이란 다섯 가지 방위를 오색(五色)으로써 구분하는 것으로 동(東)은 청(靑), 남(南)은 적(赤), 중앙은 황(黃), 서(西)는 백(白), 북(北)은 흑(黑)으로 나타낸다. 또한 각각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을 상징한다.

즉 오방낭이란 주머니를 다섯칸으로 나누어 중앙에는 황색, 동쪽에는 청색, 서쪽에는

홍색, 남쪽에는 백색, 북쪽에는 흑색의 각기 다른 색의 천을 이어 만든 것으로 오방(木 . 金 . 火 . 水 土)의 운행 묘리를 담고 있는 주머니이다.


 오방낭이 아닌 대부분의 주머니는 자수 주머니로써 단색의 천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자수의 색상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혹은 금박이나 자수와 같은 부가적 장식이 전혀 없는 주머니의 경우라도 매듭끈, 안감과 겉감, 앞면과 뒷면 등의 색상을 달리함으로써 다양한 색채 조화가 가능하였다.



  



5. 문양


 주머니에 나타난 문양의 표현은 사용된 소재 자체의 조직에서 나타나는 문양과 금박이나 자수와 같이 부가적인 장식에 의한 문양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금박은 양반층 이상에만 허용되었던 호사였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주머니 문양은 자수에 의한 것이다.


 주머니에 나타난 문양의 종류는 크게 동물문, 식물문 중심의 자연문과 길상어문(吉祥語紋), 기하학문으로 나눌 수 있으나 좁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거의 단독 형태로 사용되지 않고 한 공간에 여러 종류의 문양이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나타난다.


 이는 한 종류의 문양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여러 종류의 문양이 함께 보여짐으로써 의미 전달을 좀 더 강하게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비사실적이고 기호화된 추상적 표현보다는 자연스러운 사실 그대로의 구상 표현이 많아 한편의 동화 속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우화적 표현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머니에 나타난 문양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오복(五福)을 담은 꽃광주리에서 피어난 추상적인 꽃가지와 꽃송이의 표현, 꽃무늬와 함께 등장하는 새와 나비, 그리고 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문이다. 이러한 무늬들은 소박한 자연주의적 성격을 보이며 수(壽) . 복(福) . 부(富) . 귀(貴) . 강(康) . 녕(寧) .희(喜)등의 길상어문과 함께 베풀어져 복락(福樂) 기원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주머니에 장식되는 문양은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문양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 즉 길상 의미와 복락 기원이라는 민간 신앙적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장수의 의미를 지닌 수(壽)자를 문양화하여 직설적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이와 함께 장수의 상징들인 해(日), 바위(石), 물(水), 소나무(松), 대나무(竹), 불로초(不老草), 학(鶴), 사슴(鹿), 거북이(龜), 구름(雲) 무늬 중 필요한 문양들을 모아 한 장식 공간에서 구성하였다.

십장생 주머니는 장수에 대한 애절한 염원이 표출된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문(牧丹紋), 다자다복(多子多福)을 상징하는 연꽃문(蓮花紋), 절개를 상징하는 국화문(菊花紋), 매화문(梅花紋)도 길상의 의미를 나타낸 것들이다.

그 외에도 복(福)과 동음이의어인 '복(蝠)'자로 쓰여 복을 지켜준다는 박쥐 문양, 부부 화합을 나타내는 원앙새, 다산을 의미하는 석류 등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장수하고 싶어하는 현실 위주의 길상 사상이 문양으로 표현되어 주머니의 주술적 의의를 한층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머니는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있는데, 보통 끈의 매듭 장식이 있고 없음으로 구분이 된다. 문양이 앞면과 뒷면 양쪽에 나타날 경우 동일한 문양의 표현을 회피하고 있는데, 이는 획일적인 단조로움을 피하고 질서 속에서 변화의 조화미를 부여한 조상들의 감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옛 주머니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넣어 두던 소중한 생활 용품이다.

물론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 주머니만 사용한 것은 아니고 보자기 혹은 각종 안경집, 부채집과 같은 각종 집, 함(函)등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주머니는 평면적인 보자기, 늘 일정한 부피와 모양을 갖고 있는 집이나 함과는 달리 그 자체가 크기와 모양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넣어 두는 물건에 따라 장소의 융통성이 있는 생활 용품이다. 주머니와 상자의 장점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져 언제 어디서나 차고 다닐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주머니는 오늘날에도 일부 사용되고 있지만 이동성이 증가한 현대 사회에서 더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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