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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몽고의장군 살리타가 당시 고려왕국(AD918~1392
)을 침입한다. 고려의 집권자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수도 개성에서 멀지 않은 서해의 강화도로 들어가 계속 몽고와 싸우기로 결정한다. 수전에 약한 몽고군은 섬에 있는 임시수도를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대신에 한반도 전체를 유린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의 대부분이 이때 파괴되어 버린다. 임금을 비롯한 집권자들은 국민을 단결시키고 마음을 한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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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모을 커다란 이벤트가 필요하였다. 불경을 나무판에다 새기려고 계획하였다.
불경을 새긴 목판을 만들면 부처의 초능력 힘으로 침략군을 물리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앞서 1011년경에는 목판을 만들자 우연의 일치로 침략군이 스스로 물러간 예가 있었다. 그래서 이 계획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1236년 드디어 나무를 베고 다듬는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 이후 1251년까지 16년간에 걸쳐 몽고와 전쟁을 하면서도 81,258장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불경을 새긴 목판이 만들어진다.
이 목판을 팔만대장경판이라 부른다. 경판에 새겨진 내용은 부처가 살아서 인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강연한 설교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외 스님들이 종교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계율과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서로 토론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장경이란 '불교의 성경'을 말하며, 경판의 숫자가 팔만여 장이란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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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 한 장 한 장은 긴 직사각형의 판자이다. 글자를 새긴 부분과 양옆에는 인쇄할 때나 보관의 편의를 위하여 만든 손잡이로 구성된다. 길이는 다섯 종류지만 68cm 혹은 78cm짜리가 대부분이다. 너비는 24cm, 두께는 약3cm정도이다. 무게는 사용한 나무의 비중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대체로 3.5㎏정도이다.
경판을 전부를 한꺼번에 쌓아놓는다면 높이 약 2,400m에 이른다. 길이로 이으면 약 60km에 달한다. 또 전체 무게는 약 280톤, 4톤 트럭에 싣는 다면 70대 분량이다. 부피로 계산하여서는 약 450m3에 달한다.
경판은 앞뒷면에 모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쪽 면에 322자의 한문글자를 새겼으므로 경판 한 장의 글자 수는 약644자이다. 그러므로 81,258장 경판 전체에는 약 5천2백만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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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잘 아는 학자가 하루에 7시간씩 읽는다고 가정할 때 약 30년이 걸리는 분량이라고 한다.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5백 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전체 글자수와 비슷하다. 글자를 새긴 목판유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글자 한자의 크기는 사방 1.5cm이며 2mm 깊이로 새겨져 있다. 숙련된 기술자가 경판 한 장에 글자를 새겨 넣은데 필요한 시간은 약 2주일이 걸린다. 적어도 연인원 110만 명 이상이 동원된 셈이다. 여기에 나무를 베어 판자를 켜는 등 보조인원까지 합치면 2백만에서 3백만 명이 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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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 만들기에 쓰인 나무는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전자현미경 조사로 대부분 벚나무와 배나무임이 밝혀졌다. 글자새김에 적당하고 주위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들이다.
지름 40cm이상의 나무를 선정한다. 경판의 나비가 24cm이므로 이보다 가는 나무는 경판목재로 쓸 수 없다. 늦가을에 베어 넘기고 응력을 없애주기 위하여 1년쯤 산에 그대로 둔다. 두 사람이 탕게톱(gang saw)을 가지고 올라가서 나무를 켠 다음, 죽데기는 버리고 판자만 가지고 내려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판자(raw wooden plate)는 한곳에 모아 소금물로 삶는다.
보관 과정 중에 할렬이나 비틀림일 생기는 것을 줄이기 위한 전처리다. 6개월 이상 충분히 자연건조 시킨 후 표면을 깨끗이 깎아낸다. 다음은 한지에다 미리 붓으로 써둔 불경을 뒤집어 붙인다. 마르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으므로 식물성 기름을 발라가면서 글자를 새겨 나간다. 새김이 완성되면 경판에다 먹물을 바르고 종이를 얹어 가볍게 두드렸다가 떼어내면 인쇄된 불경을 얻을 수 있다.
만들어진 경판은 인쇄를 몇 번 한 후, 일부 경판의 표면에만 옻칠을 하였다. 우루시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옻은 동양의 전통 페인팅 재료이다. 수분흡수를 막는 효과도 있으나 장식목적으로 옻칠을 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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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의 재료인 목재는 썩고 벌레 먹고 불타는 유기재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50년을 손상 없이 보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장기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과학적인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경판을 보관하는 건물부터 관찰해 보자. 남향으로 지어 햇빛이 잘 들게 함으로서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에 머물도록 했다. 건물내부는 불필요한 장식물을 전부 없애버려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였다. 또 건물 창문은 앞뒤, 상하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하였다. 산 쪽에서 내려오는 습한 공기는 적게 들어와서 빠져나갈 때는 빨리 나가버리도록 설계하였다.
또한 밑바닥은 마루를 깔지 않고 흙바닥을 그대로 두었다. 흙의 조습작용으로 자연적인 습도 조절이 되게 만들었다. 경판은 가로로 나란히 세워 10단 높이로 쌓았다. 경판의 손잡이는 취급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비틀림과 컵모양으로 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다. 또 손잡이는 경판 두께보다 두껍게 만들었으므로 아래위로 쉽게 공기가 움직이도록 하였다.
아무리 과학적인 설계로 보존하더라도 750년의 긴 세월 동안 화재와 도난 등 여러 가지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첫번째 위기는 1592년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이었다. 이어서 1950년의 한국동란 때는 폭격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750년이란 긴 세월동안 화재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해인사에는 7차례의 화재가 있었으나 팔만대장경판 만은 언제나 무사하였다. 불교신자들은 이를 두고 석가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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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은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새긴 후, 약 150년쯤 보관하고 있다가 1398년경 해인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해인사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남쪽으로 400km쯤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다. 오늘날도 교통이 불편한 이런 곳에 옮겨온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280톤이나 되는 경판을 옮겨왔다는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거가 거의 없고, 경판의 표면상태도 너무 깨끗하다. 그래서 일부학자들은 강화도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해인사 근처에서 새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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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은 아름다운 예술품은 아니다. 인쇄를 여러 번 하였으므로 시꺼먼 먹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무판자일 따름이다. 그러나 5천2백 만자를 한자씩 새겨나간 조상의 집념과 정성이 들어있어서 마주할 때마다 숙연하게 한다. 아울러서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보관하는 당시의 과학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비록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지만 금속활자와 함께 발달된 인쇄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유물로서 모든 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문화재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