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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주일예배 2026.06.21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6.06.21|조회수21 목록 댓글 0

주일예배 2026.06.21
마가복음 14:66~72
"배신자가 배신자에게"

● "배신에도 순종하시는 주님"
오늘 마가복음 본문은 가룟유다를 필두로 한
제자들의 배신과 예수님의 행하심이
교차로 보여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과
그 와중에 일어난 가룟유다의 배반
그리고 예수님의 붙잡히심과 또 제자들의 배반,
예수님의 심문당하심과 살고자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베반으로 쉼 없이 이어집니다.
이 연속된 배반의 사건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십니다.
제자들은 배반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주님으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셨는지를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역시 부르심의 삶에
진정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하는 기도 대신
허락된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충만함을
간구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 예수님처럼 은혜로 우리의 삶의 저리에서 감당해 내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은 성도로 제자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 "가룟유다의 배반"
가룟유다는 현실적인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명분에 따른 일들을 감당함에
모두에게 신뢰를 받던 인물이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현직 세리였던
마태같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는 돈궤를 맡은자였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북쪽 변방 갈릴리 출신이 아닌
유다 남쪽의 그리욧(가룟) 출신으로
언어 문화 현실감각이 변방 출신의 제자들에 비해 세련되고 탁월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함이 그의 열정이
그의 외적인 세련됨이 사람들눈에는
그가 신뢰할만하게 보였을지라도 성경말씀은 그에 대해 다르게 말합니다.
가룟유다는 맡은 돈궤에 대해
배신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작은 배신의 반복은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작은 배신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듣는 자였고
여전히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하나였고 보내심 받아 사역을 담당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중 일부는 돈을 훔치는 자로
또 하루 중 일부는 귀신을 쫓고
전도를 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가룟 유다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거룩함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작은 배신의 반복과 무뎌짐은
겟세마네의 뻔뻔한 입맞춤까지도 행하는
무뎌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를 망가뜨리는 죄악은 크게 경보를 울리며
소란스럽게 우리 삶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 영혼을
조용히 갉어먹고 사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죄에는 작고 크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
지금 작은 돈을 훔치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룟유다가
되어 갔던 것처럼 우리 삶에 허락한
회개하지 않은 작은 죄가 결국
회개 없는 큰 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커지는 죄에 대해서는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지은 죄에 대해 깨닫게 하실 때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신뢰를 두려워 하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 6:70~71. 12:6)

● "배신자들의 이야기를 통한 격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마가복음에는 가룟유다와 함께
다른 배신자들을 말합니다.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그 담대했던 고백들이 무색할만큼
제자들은 두려움에 예수님을 내팽겨쳤다라는
수치스러움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 거의 발가벗고 도망가는
제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인물입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마가
본인이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또한 예수님과의 관계를 추궁당하자
관계의 부인을 넘어 저주까지하는 베드로의 수치스러운 현장 역시 기록합니다.
복음서를 가장 먼저 기록했던 마가는
자신과 제자들의 수치스럽고 은밀해야 할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로마에 의한 기독교의 잔혹한 핍박앞에
많은 믿음의 성도들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처럼 부인한 자들도 있었고
떠나서 그 수치스러움에 괴로워하는
성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자신들과 동일한 수치를
경험한 자들에게 자신들의 배신이야기로
믿음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린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 역시 예수님을
배반했던 자들이라는 약점을 드러내며
그런 우리를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하셨다는
말씀으로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내것인 것처럼
자랑하는 자가 아닌 내 삶의 약함을 통해
오늘을 있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말하는 자들입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오늘을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약함이 결국 수치로
끝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누리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셔서
동일한 약함가운데 고통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31. 50~52)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마가복음 14:64~65)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누가복음 22:31~32)

● 오늘도 말씀을 통해
"배신자가 배신자에게"
가롯 유다의 배신은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넘겨준다.
예수께서 “내가 잡히리라” 라고 말씀했음에도,
유다는 “내가 죽을까?” 라는
자기 보호 본능에 휘둘림 당한다.
예수님의 체포·고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시작된다.
유다 본인은 회개 후 자살
“피의 밭”이라는 저주의 상징이 됨.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예수께서 체포·재판을 앞두고
“누가 나를 부인하겠는가?”라고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 선언했음에도
실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두려워서 부인한단.
‘두려움’이 ‘배반’의 씨앗이 된다.
“나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교만이 순간적인 위협을 피하려는
방어적 반응을 촉발한다.
‘과신’이 배반을 가능하게 된다.
대제사장·산헤드린이
예수 제거를 강력히 압박하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압박감을 가져온다.
‘압력’이 ‘부인·맹세’를 끌어낸다.
예수께서 미리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예언’이 베드로의 배반을
‘배반이 배반을’이라는 순환을 완성된다.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예언을 기억, 울며 통곡한다.
배반 뒤에 ‘진정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배신은 인간의 연약함에서 비롯되지만,
베드로는 회개와 부활의 은혜로 회복했고,
가롯 유다는 회개 없이 파멸했다.
우리는 매 순간 ‘배신’이라는
선택의 무게를 인식하고, 진정한 회개와
용서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가롯 유다처럼 두려움과 탐욕에 휘둘려
배신을 저지를 수 있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베드로의 통곡이 우리에게
회개의 모델을 보여 주듯,
우리의 실수와 배신을 눈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빛으로 치유받게 하소서.
매일 작은 회개의 발을 내딛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오늘도 예수님 덕분에 좋은날 되세요^^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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