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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원문

2023-10-15주일) -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정체성(막 8:27~33)

작성자김수옥목사|작성시간23.10.14|조회수45 목록 댓글 0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정체성

마가복음 8:27~33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덴마크의 동화 작가였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단편 동화인 <미운 새끼 오리>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연못가에서 살고 있던 엄마 오리가 알들을 품고 있었는데 오리의 알들이 부화하여 나오는 과정에서 외모가 다른 모습을 한 새끼 오리도 태어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변을 맴돌고 있던 오리들로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받게 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새끼 오리는 자신이 오리가 아닌 백조였음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동화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은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혼돈을 겪게 된다는 교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관계성을 통하여 말하는 예도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것으로 말하는 때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교육받아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지혜를 짜내고 세상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인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Big Bang 이론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 하고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인류가 생겨나고 우주가 태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사람이 태어났고 인류의 근원에는 작은 아메바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는 논리입니다.

 

어떤 목적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우연히 탄생한 생물학적 근거로 사람을 평가하면 공허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채워보려 하지만 결국에는 무의미와 공허함으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하나님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바르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빼버린 나라는 존재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언제나 흔들리며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의 계보와 족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현손, 증손, 손자와 아들이라고 기술합니다.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생명의 근원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라는 표현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의 혈통에 대한 족보를 언급합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부터 시작하여 눅 3: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고 하였습니다. , 예수 안에 우리의 생명이 감추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음을 가져야 나의 정체성을 옳게 형성할 수 있고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두 번째는 그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믿음에 대하여, 세 번째는 예수님 안에 이뤄진 정체성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8:27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들이 들은 대로 대답을 합니다. 8:28에서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한 인식을 선지자에 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저들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憑藉)하여 책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불의를 저지르므로 돌이키지 않으면 너희에게 징벌을 내릴 것이라고 고함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두렵고 떨리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의 우상들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이해할만합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잘못을 조금만 하여도 징계하시고 야단을 치는데 주변에 너그럽게 보이는 우상들은 별로 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죄를 지어도 이에 대해 징벌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리로 마음이 빼앗겼던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아무리 말하여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생명에 담아 세상에 보내셨고, 그 사랑의 흐름을 사람을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 가이사랴의 본래 지명은 바네아스(Paneas)였습니다. 이는 헬라의 신 (Pan)에게 바쳐진 동네라는 뜻이었습니다. 헬라의 신 은 목양(牧羊)의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목양의 신을 상징하는 우상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분봉 왕 헤롯 빌립이 세운 가이사의 신전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 가이사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가이사랴에는 이런저런 우상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현재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압제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로마는 화려한 문명과 문화를 자랑하며 멋진 도시를 건설하여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역에서 예수님이 당신을 누구라고 여기느냐의 질문에 제자들은 선지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위축된 자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막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Who do you say I am?’ 너희는 나는 누구라고 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을 합니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마쉬아흐)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제사장, , 선지자의 역할을 하신 참 구원자 메시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님이 역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둘 사이의 본질이 서로 같을 때,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또한 살아 계신이란 의미는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화하기 위하여 오셨고,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바르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가 무엇을 하는 분인가를 제자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와서 자기 민족을 핍박하고 무시하는 로마제국을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유대인들에 심어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섬기도 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에 세상에서 왕국을 세우고 높은 지위에 어르게 될 것을 꿈을 꾸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오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8: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그런 세상의 영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당하고 죽어야 하며 또 부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다 알아듣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성급한 기질을 지니고 있던 베드로가 또 나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항변하다로 번역된 에피티마오 πιτιμάω 는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을 때나 귀신을 꾸짖을 때 쓰인 단어인 ‘rebuke’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고 귀신을 꾸짖어 내쫓은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자기도, 모두가 세상을 지배하는 자리에 우뚝 서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사람의 일' 이며 사탄이 원하는 것임을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개인을 향해 사탄이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지금 베드로와 제자들을 통해 역사하는 사탄을 뒤로 물러가라고 내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다스리셔야 하는데, 내가 주인 행세를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아직도 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자기를 정말로 따르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말씀해주십니다. 8: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는 자기 욕심을 비우는 것을 말합니다. ,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겪게되는 고통과 핍박을 말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고통과 고난이 올 때 도망가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 안에 이뤄진 정체성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람은 흙과 생기로 이루어졌습니다. 흙은 히브리 말로 아파르라고 합니다. 이것은 티끌, 먼지 라는 것입니다. 이는 땅에 속하여 흙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반하여 생기는 히브리어 루아흐 로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속한 영을 사람의 코에 불어 넣었더니 생령 , ‘living soul’ 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흙으로 표현한 먼지, 티끌은 작은 바람에 날아 다닙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기는 하나님께 속한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은 무가치한 흙과 영원성이 있는 생기로 채워져 있는 극단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이 극단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영원하고 가치 있는 생명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먼지처럼 흔들리며 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성도에게 가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인간을 창조하신 것과 비슷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 안에 담긴 성령을 제자들에게 베푸시는 모습입니다. 받으라영접하라는 뜻으로 성령을 받는다고 함은 어떤 능력을 받거나 도구적 수단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성령을 모셔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오셨고,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으며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을 죄에서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담긴 성령을 믿음의 성도에게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먼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는 죄에서 용서를 받은 성도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흙에 속한 처음 사람의 혈과 육을 이어받은 사람은 죄에 오염되고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정체성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고 사랑의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가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상에서 승리한 것처럼 우리 역시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면 세상에서 존재할 때 얻는 것에 더는 매이지 않습니다. 잘 살아도 못 살아도 낮은 자리이든 높은 자리이든 영원의 세계에 비하며 별 것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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