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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원문

2025-11-23 약함이 강함이 된 사람(히 11:32)

작성자김수옥목사|작성시간25.11.22|조회수38 목록 댓글 0

약함이 강함이 된 사람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니 슈퍼’, ‘작은 거인이라는 표현입니다. 상반된 표현을 하나로 합쳐 겉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능력, 영향력, 역할은 전혀 작지 않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사사기에는 작은 사람이지만 큰 사람으로 명명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제를 다루게 될 기드온입니다.

 

기드온 하면 우리는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미디안 군사를 물리친 하나님의 용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결코 영웅도 위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사기 612절 말씀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11절을 들여다보면 이 큰 용사여!’라는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드온의 소심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농사지을 때는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추수 때만 되면 쳐들어와서 힘들여 농사지은 것을 홀딱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배부른 날이 없이 언제나 굶주림으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밀과 보리를 타작하려면 넓은 들판에서 도리깨질하고 바람에 티끌을 날리며 곡물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였다고 했습니다. 포도주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밀폐된 장소에서 즙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지금 밀 타작을 가장 반대되는 상황에서 하는 것입니다. 미디안 족속들이 두려웠던 것이죠. 언제 자기가 수고한 곡물을 빼앗길까 두려워 포도주 틀에서 은밀하게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호칭으로 불릴만한 상황은 절대 아닙니다. 기드온은 스스로 타고난 용사도, 위인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제 용사가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1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비록 낮은 자였지만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겸손에 있었습니다.

겸손이란 내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또한, 이루신 분이 무너뜨릴 수 있음을 시인하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분이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당신은 돈을 벌 만큼 많이 벌었음에도 어떻게 쉬지 않고 도전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답변하기를 나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은 10층 건물에 들어서면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놀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일 새롭게 와 닿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크게 성공하고 자랑할 만한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쫄딱 망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교만하여 까불다 보면 이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짐을 알고 있기에 매일 나를 낮추고 겸손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고백입니까? 내 자랑이 아닙니다.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빼앗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세우시고 그에게 군대를 조직하여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고자 그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는 호칭이 주어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강한 마음도 전략을 세우는 지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면 전혀 나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시고 이끌어 가셨다면 우리 믿음의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르심의 큰 뜻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이 있기 전에 나에 대한 엄청난 계획을 세우시고 한 발자국씩 인도하며 나를 만들어 가십니다. 나를 부르신 그분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스스로 비하해서도 안 되고 남을 쉽게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함으로 나를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내 성향 내 자질로는 도무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능히 이뤄 가실 것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극도로 증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공회에 넘기고 진멸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좇아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힘입어 커다란 공적을 이루고 다른 사람에게 큰 칭찬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낮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로마 시대에 적군과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돌아오는 장군에게 많이 시민과 귀족이 창여하는 개선식(triumph)이 이뤄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선장군이 전차를 타고 영광스럽게 행진할 때 뒤에 한 노예 혹은 동반자가 있어서 조용히 속삭였다고 합니다. “뒤를 돌아봐라! 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혹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표현으로 자주 요약되기도 합니다. “Memento mori”는 문자 그대로 너는 언젠가 죽는다, 혹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인식하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은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네가 미디안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이지요. 기드온은 군인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벌채또는 벤다는 뜻인데 이 이름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런 농사짓는 환경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군대의 수장이 되어 미디안 족속을 쳐서 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7년 동안 미디안 족속에게 수많은 학대를 받았고 그들의 농산물들을 샅샅이 앗아간 것도 이들입니다. 이길 수 있으면 진작 물리쳤어야 했지 이제 농사를 짓던 그에게 무슨 힘이 있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단 말입니까? 의심이 안 들래야 안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당신이 여호와 사자가 맞소?” 하면서 사사기 6: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했습니다. 이에 기드온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외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한편 기드온이 이렇게 탄식의 소리를 발했던 것은 사람이 여호와를 대면하여 볼 수 없고, 또한 보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은 자기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할 때 찾아옵니다. 자기가 계획하던 것이 끝나 모든 소망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도 않고 담대한 믿음도 주춤거립니다. 사사기 6:23에서 이 말씀에 여러분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죽지 아니하리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리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죽을 것 같고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데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여호와 샬롬을 고백합니다. 평강의 여호와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을 지니고 내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한데 정작 우리에게 남은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샬롬입니다. 이것은 내가 영원히 소유하게 될 자산입니다. 왜 샬롬이 우리에게 귀중한 자신이 될까요? 샬롬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 대한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23:4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개장수가 교인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아무리 맹견(猛犬)이라도 이분이 나타나면 꼬리를 내리고 잠잠합니다. 하도 신기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는 아무리 크고 무섭게 생긴 개라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뱀을 잡는 땅꾼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을 두려워하면 잡지 못합니다. 내가 먼저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그다음에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타납니다. 지팡이란 셰베트라고 합니다. 이것은 양 떼를 모으거나 계수할 때와 보호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막대기는 미쉬에나로 비유적인 표현으로는 사람이 의지하는 무엇을 말합니다만 이것은 양 떼를 해치고자 덤벼드는 짐승을 격퇴하는 도구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시편에서 두려움의 환경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그 두려움에서 내 마음이 벗어날 때 비로소 주님은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의 가는 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의 권세를 추방해 주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네 삶의 모습은 더 하면 더했지 하나 변한 것 없습니다. 한 집 걸러 한 집은 이런 콩가루 집들입니다. 그냥 눌러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내 팔자려니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뭐 하러 그렇게 사냐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개를 피하여 도망쳤는데 나중에는 사자가 나를 먹겠다고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나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성령 안에서 평안이 주어집니다. 이 평안은 무엇으로 손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일렁거리는 두려운 환경에 처하였더라도 성령께서 내 안에 이를 능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게 하실 때 우리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는 절대 평안이 주어집니다. 이런 신앙의 결실로 인하여 우리의 삶 뿌리에 흐르는 우상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 족속에게서 구원하기 위하여 큰 용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더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 우상을 찍어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버지의 소유 중에 아끼는 두 마리의 수소가 있었는데 그 중에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보다 눈에 보이는 신인 바알을 숭배하였습니다. 이것을 찍어내야 기드온은 영적인 성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주는 우리의 혈과 육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아버지의 우상숭배의 저주가 기드온에게 흘러들어 왔기에 이것을 잘라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적인 축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을 통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육에 속한 우상을 깨트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에게 나타난 큰 용사는 받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전쟁 경험도 없고 군인들을 통솔한 적도 없는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증거를 달라고 합니다. 기드온의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관하여 확인 절차를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 같은데 때로는 광명한 천사같이 나타나는 사탄의 거짓이 숨겨져 있는 것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는지 마귀에게서 나왔는지를 확실하게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사기 6: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습니다.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게 된 것을 확인햇습니다. 이런 증거를 받고도 기드온은 또 다시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사시기6:40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내게 베푸신 약속을 늘 점검하고 확신 있게 나가는 것을 하나님은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자칫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기 위하여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말라기 3장에서 십일조를 드릴 때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소득의 십일조를 기쁘시게 받으실 것에 관한 확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기 위하여 시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모든 것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작은 믿음을 큰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연약한 마음을 용납하시므로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며 성숙하여지고 가계에 흐르는 우상숭배의 저주를 끊어버림으로 하나님께 큰 용사로 부름을 받은 증거를 구합니다. 결국,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손길에 의하여 300명의 적은 인원으로 미디안 군대 135,000명을 전멸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음을 기드온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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