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겁고 힘든 짐
일부러 방문을 열어 두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꼭 우리 둘째 놈 오줌 누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오후 네 시. 이렇게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날은 소주 생각이 간절한 손님들이 많을 텐데 빨리 이 글을 써버리고(?) 포장마차에를 나가야 할텐데, 마음만 바쁘다. 이번 기행의 작가ꡐ구효서ꡑ에 대한 작가 연구는 원래 내 몫이 아니었다. 처음 작가연구를 하기로 약속한 친구가 중간에 포기한 이유로 내 스스로 짊어진 아주 무겁고 힘든 짐이다. 벗어 버려도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는, 그러한 무거운 짐을 난 왜 끝까지 내려놓질 못하는가. 그건 내 스스로의 약속이고, 또 오늘 작가 ꡐ구효서ꡑ를 만나 달구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그에게 내일 선운사엘 같이 가자고 조르고 있을 그 누군가가 있고, 핏물 같은 동백꽃이 흐드러지는 선운사의 밤에, 풍천장어의 고소한 맛과 동백꽃잎 빛깔 같은 복분자술이 있는 밤에, 작가와 함께 술잔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난 결코 이 무겁고 힘든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2. ꡐ구효서ꡑ와의 인터뷰
87년 정식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려 논 이후로 왕성한 집필력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수많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에 대한 이력은 이 글 말미에 부록으로 붙여 놓은 작가연보에서 그의 자세한 이력과 작품을 따지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가 소설을 써 오면서 가졌던 마음의 변화와 고민, 또 소설에 대한 생각들을 작가 스스로 밝힌 몇 몇 글에서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자. 먼저, 그는 등단 후 그동안 생계의 수단으로 삼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직업소설가의 길을 스스로 자청하여 자신을 소설만 생각하도록 옭아 매었다. 그후 꾸준히 소설만 쓰면서 10여년을 살아왔다. 그의 가장 최근의 심정을 들어보자.
"소설을 쓰다 쓰다 안돼서 소설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스물 아홉 때였을 것이다. 느즈막이 대학이라는 걸 졸업하고 취직도 안되고 그저 원고지나 붙안고 보내는 세월이 아깝고 두렵고 창피했다.(중략) 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억울해서였다. 비록 지나온 삶이 구차하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칼끝으로 뚝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소년기부터 궁글려온 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일에 닥치든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나는 거의 부지불식간에 소설적인 시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보려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비록 내 서러운 삶에서 직접 비롯된 슬픔과 고통일지라도 늘 애써 소설이라는 차단 막을 통해 그것들을 바라보려고 했기 때문에 쉽게 눈물을 질금거리거나 센티해지지 않았다. 독서와 여행과 실연과 방황에서 오는 적당히 시고 적당히 쓴맛들도 하나의 훌륭한 맛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저 뒤에 올 내 소설이 그것들로 인해 풍요로워 질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요컨데 내가 그때까지 살아 올 수 있었던 힘은 매우 불분명하긴 한 거지만, 어쨋든 내 소설이라는 것이 내 기대 속에 확고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 소설을 스스로 포기하고 무너뜨린다면 내 지나온 과거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의 삶이란 것도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운 좋게도 서른이 많이 넘지 않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어서 나는 청소년기적 삶의 방식이나 사고의 유형을 별다르게 수정하지 않고 십여 년 동안 십 수권의 소설집을 내며 살게 되었다.(중략)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소설과 현실을 잘 분간 못하는, 분간하려 하지 않는 나의 이 오랜 맹증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내 기억 속의 많은 일들이 소설과 섞여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픽션인지 구분할 수 없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소설을 쓰면서 사는 사람에겐 그 모든 것이 다 인생에 포함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 1998년 6월 장편소설『오남리 이야기』 작가의 말 중에서 -
이렇듯 작가는 어쩌면 평탄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이야기꾼으로서 직업소설가로 살아오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형식을 갖춘 문체, 플롯, 주인공과 사건, 구성과 배치, 주제의 건전성 등등 정형화된 소설 형식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 때 그의 소설 만드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겠다. 영등포쯤에서 상당히 숨이 막혀 있었다. 서울이란 곳은 가끔씩 숨을 못 쉴 정도가 된다. 그날 내가 ꡐ숨통ꡑ이라고 찾아간 곳은 동작동의 국립묘지였다.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곳이 그곳이었다는 말이다.
(중략)
그런데 한숨 돌리고 난 나는 엉뚱한 상념에 붙들렸다. 저 많은 죽음들 모두는 과연 이 곳에 묻힌 걸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혹시, 혹시 말인데, 이곳에 묻혀 있는 걸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영혼은 없을까. (중략)
「전장의 겨울」은 자신이 그 묘지에 묻힌 사실을 마땅찮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영령을 살려 내어ꡐ그 전쟁ꡑ에 다시 투입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잖은가. 어떤 일에든,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그 일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한국 전쟁에 동원된 국군 병사들 모두가 하나 같이 구국의 충정에 불탔다고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ꡐ그 전쟁ꡑ은 형제부모 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삼 년을 싸운 이상한 전쟁이었는데. (중략)
정치권력을 위해 이념을 이용한 것뿐이라고 ꡐ그 전쟁ꡑ을 회의하고 증오했던 병사. 눈보라 치는 능선에서 처참하게 산화한 그 병사를 살려내어 새삼스러이 오늘 전선으로 다시 내 보낸 나의 냉혹한 처사는, 감히 말하건대, 화해의 몸짓 뒤에 숨은 냉전의 얼음벽을 깨부수려는 작은 몸짓이라 하겠다."
- 1992년 2월 장편소설『전장의 겨울』 작가의 말 중에서 -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인 이야기로써의 소설과 그 창작법에 대해 회의와 두려움을 갖게 된다. 기존 문단의 정체된 형식주의와 수요를 창출하는 소설에 대한 갈망,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옭매인 소설들에 대한 독자들의 외면, 등등 문학과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갈등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시도를 종용한다. 뭔가 대박을 터트려야겠는데, 그 동안 써 왔던 소설은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달라지고 싶었다. 뭔가 다르게 새로운 대응을 해야함을 느꼈다. 반항이 아닌 새로운 변화. 작가는 그러한 시도를 한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줄곧 이런 소설을 써도 되는 건가 하는 번민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지. 이런 것도 소설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였지.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 명백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무슨 열정인지, 나는 꽤 많은 분량이 되도록 이런 작업을 계속 해 왔다. 그래. 이건 어떤 작품의 모양새를 갖추기 이전의, 작업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이것도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럽지만 줄기찬 바람만 있었을 뿐. (중략)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후회하기엔(후회라니) 아직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라도 나는 전향적 반성 정도를 하게 될 것이다. (중략)
자본주의의 생산, 유통, 소비 구조안에서는 예술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이 상품일 수 밖에 없겠다. 난해하면 난해하다는 차별성이 상품가치를 획득하고 자본주의 자체를 해체하고 전복하려는 서사들조차 위대한 자본주의는 가차없이 상품화시켜 시장에 내놓는다." (하략) - 1993년 6월 창작집『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그는 그렇게 열심히 써냈다. 문예잡지에 글도 써내고 창작집도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청탁도 들어왔다. 들어온 청탁은 절대 거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ꡐ아파트도 한 채 마련ꡑ하고ꡐ쌀통에 쌀이 가득ꡑ찼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왜. 그는 이야기꾼이니까. 끊임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는 이제 ꡐ소설에 먹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이런 고민을 들어보자.
"아. 또 무슨 얘기를 쓸까. 소설을 써 주십사 청탁을 받았을 때 창 밖을 내다보며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린 말입니다. 무슨 얘기를 쓸까. 아파트 공동 화단에 개나리가 움트고 회양목 새순이 참새 혓바닥만큼 내미는 걸 바라보면서 그런 고민에 빠질 때면 이 소설가라는 직업이 참 어이없어 집니다. (중략)
소설다운 소설을 써 보겠다는 순수한 의지 따위는 이미 오래 전에 바래 없어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로 생존해야하는 현실 앞에서는 그저 맥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지요. 소설다운 소설을 생각해야 되고 오늘도 창가에 서서 아. 또 무슨 얘길 쓸까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격동의 세월일수록 생존을 일차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과거 우리는 수십 년 혹은 십 수 년 동안의 격동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시절에는 소설도 그만큼 절박한 주제에 매달렸습니다. 정치권력을 얘기했고, 대내외적인 모순을 얘기했고, 계급과 역사와 해방과 혁명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조건 짓는 요소라는 게 흔히 들어왔던 몇몇 개의 정치 경제적 모순 구조만은 아닐 거라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못 잊어 하며 평생을 우울하게 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개개인의 삶을 결정 짓는 요소란 40 억 개도 넘을 것입니다. 격동의 십 수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너무도 분명한 대의명분 혹은 거대 서사만을 갖고 싸워 왔습니다. 개인적인 사연과 아픔 따위는 도외시되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상처 입은 영혼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해일처럼 다가온 풍요의 신세대, 락카페, 신촌 일대에서도 상처는 여전히 양산되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도처에 있는데 그들을 위무 해줄 사람과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소설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거나 그러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다만 그들에게 접근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카메라처럼 눈을 뜨고 그들을 저 만치서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었지요. 전 그들의 결락된 현상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멀뚱히 눈을 뜨고 일 년 정도 그들의 소외와 방랑과 우울한 눈빛을 그저 바라만 봤습니다. 그러자니 전 시대의 미덕이었던 치열성과 치밀성과 치중성 등 이른바 3 치가 제 소설에서 빠져나갔지요. 맥없는 소설이 돼 버렸지만 저는 불만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저라는 한 직업소설가가 제 소설로부터 객관적 거리랄까 뭐 그런 걸 조금은 확보한 거 같으니까요. 앞으로의 욕심이라면 독자에게 파고 드는 소설보다 스며드는 소설을 쓰고 싶은 것입니다." - 1995년 봄 창작집『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작가의 말 중에서 -
이제 그는 소설이라는 것에 초월한다. 집착과 번민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 그것은 자신의 문체, 형식, 고정화된 소설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린 것이다. 자신으로부터의 객관화는 그의 소설을 더욱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글이라는 것은 쓰는 이의 사고와 감상과 경험과 태도 따위를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 드러내는 방식이다. 하여 글쓰기란 기본적으로 쓰는 이의 임의성이 우선되게 마련이다. 글이란 어디까지나 쓰는 자 자신의 의사대로 쓰는 것 아니겠는가. (중략)
그러한 글과 글쓰기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확신과 태도들이 죽어 버리길 바랐다. 언어를 매체로 하여 표현되는 이성에 대한 믿음을 해체하고 파기하고 싶었다. 확고부동하다고 생각 해 왔던 것들을 배반하고 싶었다. 한 때는 목숨까지 걸고 지키고자 했던 신념들, 그것 마저 버림으로써 나 자신 죽는 걸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체로 거듭나기를 바랐다는 말과 같다. 내가 갖고 있던 확신들을 버림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회의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중요하다. 내가 갖고 있던 확고한 신념이라는 것이 혹시 누군가의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내게 주입된 <남의 것>은 아니었는지. 그 동안의 삶이 무언가를 하루하루 내 안에 쌓아 온 것이었다면, 이 소설을 쓰던 삼 백 몇 날은 하루하루 비워가던 나날이었다. (중략)
소설을 쓰는 순간만큼은 소설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소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세속적인 기대들을 하나 하나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쓸 때의 내 모습, 내가 거듭나고 싶은 모양이란,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란,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기는 것과 같은 일은 아닐 것이다. 글쓰는 이에게 있어선 글을 쓰는 순간 이외의 시간은 전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내가 죽어 문학사에 내 이름이 남은들 그것이 나와 내 소설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름지기 글을 쓰는 자란 글쓰는 현재로서만 존재의 전부를 삼을 터."
- 1996년 7월 장편소설『비밀의 문』 작가 후기 중에서 -
그의 이러한 각성은 한 차원 높은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제 그는 그야말로 글을 쓰는 현재, 순간만이 중요하게 된다. 이야기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글로써의 이야기를 쓴다. 큰이야기도 아니고, 긴장된 스토리 전개도 아니지만 인간들의 존재와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을 쓴다. 나 아닌 남,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시각의 포인트가 주어진다. 타인의 내면 세계를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는 그의 소설을 차분하고 심도 있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다만,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던 처음의 소설세계에서, 이제는 타인의 중심세계로 시점 이동이 자유자재다. 그리고 그도 이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4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 시점에서 작가의 심중을 들어보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차를 타고 소래 포구며 하일 염전이며 수리산 산자락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누워 노오랗게 핀 애기똥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까닭 모를 눈물이 나왔다. 피어나고 스러지는 것, 밤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 불어오는 서풍에 속절없이 허연 잎을 뒤집는 거제수나무만이 현실이었고, 그런 것들만 눈에 띄었다. 점심 시간에 맞춰 서캐처럼 허옇게 쏟아져 나오는 빌딩의 남자들은 차마 바라 볼 수 없었다. 애써 책상에 앉았다가도 어느새 밤이 오면 무병을 앓는 처녀처럼 양말도 신지 않고 거리를 배회했다. 포장마차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들. 술 취한 음성으로 털어놓는 남자들의 하루 무용담을 지나다 들을라치면 내 일이 아닌데도 덜컥덜컥 비통해졌다. (중략)
이 삶이 꿈이든 꿈이 아니든, 그것이 행복이든 행복이 아니든, 어차피 주어진 터전 위에 나서 자라고 늙어 가는 것이라면 끝까지 헤어나지 못할 무명에나 풍덩 빠질 것을. 문득 문득 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중얼거리기는 왜 중얼거리게 생겨 먹은 것인지 인간이란. 갈수록 우연과 불연속적인 것들에만 눈이 커지고, 지금까지 움켜쥐었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찮게 여겨지면서, 나는 그런 나에게 동조할 만한 남자 하나를 소설에서 만들고 싶었나보다. 남자. 그는 어떻게 떠나는지. 어떻게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지. 일탈은 과연 꿈인지, 아니면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일이 일탈인지."
- 1997년 6월 장편소설『남자의 서쪽』 작가의 말 중에서 -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우리의 이웃, 이 현실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 난 삶을 조근 조근 이야기해 줄 모양이다. 나말고 너. 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송승환보다 잘 생긴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3. ꡐ구효서ꡑ소설세계의 변화
작가 구효서는 현재까지 창작집 세 권, 장편소설 열 권 등 열 몇 권에 달하는 책을 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적지 않는 그의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여 간단하게 정리하기란 시도 자체가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 십 여 년 동안 창작해 낸 그의 작품들을 어떠한 기준을 두고 분류해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그와 같은 시도는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가의 작품들이 일관된 성격을 유지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러한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이미 그는 도퇴 되거나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과 무용성을 내포하고 감히 작가 구효서의 작품들을 분류 해 보려는 의도는 작가의 창작의지가 무엇이며, 어떠한 변화를 통해 작품들에 반영되었는지를 찾아보려는 의도에서이다. 내용과 형식 등 소설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일일이 구분하여 찾아보기에는 능력과 시간이 모자라고, 원하지도 않으므로, 작가가 작품을 쓸 때의 고민, 작품에 나타내고자 하는 메세지들, 그러한 여러 요소들이 빚어내는 전체적인 맛 등을 통해 어설픈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
1). 고향, 내 어릴 적 기억들 (내 안에서 나를 보기)
주로 등단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작품 군으로 작가의 고향을 소재로 한 소설들과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꾸며진 소설들이다. 등단 작품인「마디」를 비롯하여「이장」,「노을은 다시 뜨는가」등 고향과 가족에 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때 쓰여진 작품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무슨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따위를 미처 생각지도 못 할 시절에 나도 모르게 쓰여진 것들 중 일부다. 우선 내 얘기를 써야겠다. 어떻게든 그걸 써 버린 다음 다른 걸 쓰더라도 쓰자는 생각에서 썼던 것들이다. 짐승의 새끼로 따지자면 문열이 같은 것이어서 가장 못생기고 선병질적인 소설들이지만 가장 나 자신을 닮고 있어서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아직 문학이라는 들판으로 나오기 이전의 배냇적 소설들이라고 해야 할까. 비록 직접적으로 고향을 다루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하여튼 그 때의 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모양새나 분위기란 것은 생래적인 어떤 것들이었다.“
- 1996년 7월 자작선집『그녀의 야윈 뺨』의 작가의 말에서 -
또한 같은 책에 실린 문학평론가 '양진오'씨의 해설에는 이 때의 소설들에 대한 평으로 ꡐ귀향형 플롯ꡑ이라고 평한다. 선배들에게서 이미 그 효력을 검증 받은 플롯으로 이는 기본적으로 삶의 의미를 탐색해 보려는 의도와 결부되어 이루어지는 구성법이라고 한다. 특히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한 장편소설 『라디오 라디오』에서 분단의 쓰라린 현실을 묘사하면서 이데올로기와 이념 등 정치권력과는 상관없이 피해자로서의 우리들을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집 앞 고추밭을 매다가도 심심치않게 탄피가 쏟아져 나왔다. (중략)
산에 오르면 이북이라는 데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우리 집 외양간에 있는 소와 하나도 다름없는 소가 북쪽 땅의 들판을 어슬렁 어슬렁 지나갔다. 그들의 대남 방송은 하루종일 계속 됐다. 제일 잘 잡히는 라디오의 사이클이라는 것도 평양방송이었다. (중략)
대포 소리가 나든 말든, 찢어 죽이자고 소리를 치든 말든, 우리는 한 개의 딱지를 따는 게 더 절실했고, 누구네 집 참외가 제일로 맛있게 익었나가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우리들에게 오롯이 남아 있던 것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던 식욕이었고, 어른들에겐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성욕이라는 것. 가장 원초적인 것들. 가장 원초적인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념 따위는 개나 먹어라 였다. (중략)
길고도 지루한 원색적인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쳐왔지만 나와 내 어릴 적 고향 친구들은 그 유치한 이데올로기에 새끼발가락 하나 물들지 않았다. (중략)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과거이면서 내겐 거의 완벽한 거리를 두고 추억할 수 있는 먼 과거인 것처럼 되어 버린 유년. 그 유년을 라디오라는 매개를 통해 회상하려 했던 것은 그래도 라디오가 아직은 그 때와 지금에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대중적 선호품인듯 싶어서다. (중략)
라디오. 그것은 아직은 언제든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추억의 물품임엔 틀림없다." (하략) - 1995년 12월 장편소설『라디오 라디오』 작가의 말 중에서 -
2). 권력에의 두려움 (내 안에서 밖을 보기)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과 정확하고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던 작가가 90년대에 들어와서 보여준 일련의 실험적인 글쓰기의 작품들이다.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스프링클러의 사랑」,「죽은 시인의 사회」,「아이 엠 소피스트」,「테러, 테러리스트, 테러리즘」,「공습경보-우리드마으에」,「아래 문건을 기각함」등이 이에 해당되는 작품들로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 구조 속에 도입하거나, 비서술적인 자료를 나열하는 일, 그리고 컴퓨터 화일 등의 문건을 그대로 소설의 문열로 활용하는 가치 중립적인 글쓰기의 시도들이다. 우선 작가의 변을 들어보자.
"다음으로 실린 것들은 태내에서 빠져 나온 나의 문학적 자아가 세상을 보고 깜짝 놀라 두려워하는 가운데 쓰여진 것들 중 일부다. 형식도 그만큼 분열적이다. 나를 감싸고 있던 아기주머니가 이제는 권력이란 것에 장악된 세상으로 대체 됐던 것이다. 눈을 두는 곳곳에 권력과 권력적인 사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서식들에 서식하는 권력의 애벌레들을 보았을 때는 정말로 소름이 끼쳤다. 형식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던 것은 아마 두려움과 그에 대한 엄살 때문이었을 것이다."
- 1996년 7월 자작선집『그녀의 야윈 뺨』의 작가의 말에서 -
그는 전통적인 소설 법이 정형화된 기존 문단에 대해 억압적인 규범으로 인식하고 일부러 그에게 익숙한 소설 문법을 거부한다. 그는 소설은 정형화가 아니고 무엇이든 정형화된 것들은 억압만이 남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탐구하고 집중하게 된 주제도 권력과 그 주체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서의 권력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른 젊은 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이제는 소설을 달리 써야한다는 실험의식을 충동하기에 이른다. 내가 변해야 세계가 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발전한 그의 실험을 통해 그는 거대 서사에 대한 회의와 반발에 치열한 싸움을 한 것이다.
3). 소설가의 운명 (나의 밖에서 나를 보기)
이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그가 사회 속에서 직업소설가로 살아가는 고충을 연작 형태로 발표한 작품들이다. 「노래」,「개 소문」,「영혼에 생선 가시가 박혀」,「자공, 소설에 먹히다」등인데, 특히 우화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역설적인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설과 세상에 대해 약간의 여유를 얻었을 때에 쓰여진 것들이다. 생래적 감상이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세상을 조금은 우화적으로 볼 수 있게끔 되었을 때 몇 편의 중단편이 나왔다. 그 소설들은 기존의 소설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이른바 소설적 원칙들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져 있는 것 같아서 지금 보아도 조금 느긋한 기분이 들면서 웃음이 나온다."
- 1996년 7월 자작선집『그녀의 야윈 뺨』의 작가의 말에서 -
여기에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소설가들에게 부여된 고전적인 이미지 혹은 이상주의적인 이미지를 박탈 해 버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지. 이제 소설가는 의미로 꽉 찬, 인류의 보편적인 의미를 창조하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문단의 권력에 조류하고 생계의 수단으로써의 직업에 불과하다는 시대적 좌절감을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4). 기행 형식의 작품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기)
의외로 이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이 많다. 물론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자주 다뤄지는 형식이지만, 그는 그 특유의 재주로 주변의 많은 소재들을 펼쳤다가도 어느새 독자들을 자기의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발휘한다.「누각을 찾아서」,「당신의 바다는」,「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카프카를 읽는 밤」,「나무 남자의 아내」 등이고, 장편『남자의 서쪽』과『내 목련 한 그루』등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잘 못 읽히면 혼란스러운 감을 주기도 하지만 여행에서 얻는 주변 사물들에 대한 의미 부여가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와 메세지를 도와주는 기능을 하게끔 한다.
5).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밤 (타인의 눈으로 타인을 보기)
이제 작가는 자신도 타인도 모두 풀어준다. 진정한 객관화를 이루어 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이제 타인의 삶에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들판 위의 여자」,「편지 읽는 여자」,「노을」, 「빈 가을에」,「그녀의 야윈 뺨」,「덕암엔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테라스에 앉은 조라」,「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등과 최근 장편「오남리 이야기」와 「내 목련 한 그루」도 여기에 중복된다.
"비로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존재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쓰여진 것들이다. 물론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나의 삶이 자리잡고는 있지마는 그것은 언제나 타인의 삶에 대해 연민을 갖고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그 동안 나의 소설 쓰기란 나로부터 타인에게로 시각과 관점 따위를 점차 옮겨가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참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를 점차 버려간다는 것은 곧 철이 들어간다는 얘길 테니까."
- 1996년 7월 자작선집『그녀의 야윈 뺨』의 작가의 말에서 -
작가는 자신으로부터 타인에게로의 관심 이동이 철이 들어가는 징조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끊임없는 소설 쓰기의 관심이자 주제이다. 90년대 후반부터 그의 이러한 탐구는 이제 사회와 개인과의 갈등 관계에서 후기 산업사회의 수많은 익명적 삶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와 사연에 주목한다. 현대의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익명적 삶을 강요한다. 아무도 나 아닌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처해 있다. 작가는 그러한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한 상처입고 황폐해진 영혼들에게로의 그의 관심과 드러냄은 진지한 그의 소설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공할 것이다. 문학은 영혼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거니까.
4. 봄비가 밤새 내리는데....
이상 구효서의 소설세계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분류해 보았다. 이 어설픈 시도가 작가에게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심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 소설가의 소설 쓰기를 곁눈으로나마 따라가 봄으로써 그의 작품을 대하는 손길이 잦아진다면 그로서도 뭐라 탓하진 않겠지?
이 잡문을 쓰는 동안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그리고 내 포장마차에는 어제 밤에도 손님하나 안 왔다. 오늘은 드디어 선운사엘 간다. 민박집 아줌마는 풍천장어 주문을 늦게 했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나는 오늘 풍천장어를 꼭 먹어 봐야겠다. 구효서처럼 뒷 씸이 없다는 욕을 안 먹을려면...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이 졸문이 오늘 선운사의 밤에 토론된다면 밤새 타이핑한 보람이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두령-
5. 부록. 작가 연보
1957 : 9월18일 경기도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675번지에서 부 구광수(具光壽) 와 모 강희임(姜熙任)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출생
1965 : 하점면 이강리 강후국민학교 입학
1971 : 강서중학교 입학
1972 : 가족이 영등포구 구로동으로 이주. 영도중학교 2학년 편입
1974 : 배재고등학교 입학
1978 : 목원대학교 국어 교육학과 입학
1985 : 목원대학교 국어 교육학과 졸업
1987 :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마디」가 당선 4월 18일 유영난과 결 혼, 단편「역전에서」<소설문학> 단편「가시나무 새」<문학과 비 평> 단편「공무도하가」<문학사상>
1988 : 단편「폐어」<동서문학> 단편「산길」<문학사상>
1989 : 중편「이장」<외국문학> 단편「부자의 강」<현대문학>
단편「고문관」<문예중앙> 단편「부적」<샘이깊은물>
1990 : 창작집『노을은 다시 뜨는가』(도서출판 판) 단편「노을은 다시 뜨는가」<현대소설> 단편「누각을 찾아서」<문예중앙> 단편 「자동차는 날지 못한다」<한국문학> 단편「들판 위의 여자」< 현대문학>
1991 : 장편소설『늪을 건너는 법』(중앙일보사) 장편소설『슬픈 바다』 (동아출판사) 장편「늪을 건너는 법」<문예중앙> 단편「스프링 클러의 사랑」<민족과문학> 단편「아이 엠 어 소피스트」<문학 과사회> 단편「테러,테러리스트,테러리즘」<작가세계> 단편「확 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현대문학>
1992 : 장편소설『전장의 겨울』전2권 모음소설 5 (모음사) 장편소설 『추억되는 것의 아름다움 혹은 슬픔』(문이당) 중편「영혼에 생 선가시가 박혀」<현대문학> 단편「공습경보 - 우리드마으에」< 현대문학> 단편「아래 문건을 기각함」<한국문학> 단편「노 래」<창작과비평> 단편「개소문」<소설과사상>
1993 : 소설집『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세계사) 중편「자공, 소설에 먹히다」<계간문예> 단편「당신의 바다는」<문예중앙> 단편「편지 읽는 여자」<민족과문학> 단편「깡통따개가 없는 마 을」<작가세계> 단편「카프카를 읽는 밤」<한국문학>
1994 : 장편소설『낯선 여름』(중앙일보사) 장편「낯선 여름」<문예중앙 > 단편「노을」<황해문화> 단편「빈 가을에」<샘이깊은물> 단 편「목신의오후」<현대문학> 단편「그녀의 야윈 뺨」<문학정신> 단편「덕암엔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동서문학> 단편「테라스 에 앉은 조라」<세계의문학> 단편「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제 27회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 장편「라디오 라디오」를 <소설 과사상>에 분재
1995 : 소설집『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세계사) 장편소설『라디오 라디 오』(고려원) 중편「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작가세계> 중편 「나무 남자의 아내」<현대문학> 단편「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문학정신> 단편「오후, 마구 뒤섞인」<작가세계>
1996 : 장편소설『비밀의 문』 전2권 (해냄) 『그녀의 야윈 뺨』 90년대 대표작가문제작 선집 (중앙일보사)
1997 : 장편소설『남자의 서쪽』문학동네 소설 2009 (문학동네) 장편소 설『내목련 한 그루』새로운 소설선 1 (현대문학) 단편『나무남 자의 아내』21세기 독서문고 2 (신원문화사) 짧은 소설집『꿈에 기대어』젊은 작가 짧은 소설 (하늘 연못)
1998 : 신작소설『오남리 이야기』(열림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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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d bell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2.02 '나무남자의 아내' 소설 파일올릴게요. 윗글은 sotkfkd님께서 올렸던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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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길섶 작성시간 10.02.02 "문학은 영혼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니까..."
와, 산두령님의 혜안이군요. 삶의 온갖 방식은, 암요!, 항상 사랑하는 데서 다시 시작하지요. -
작성자줄리아 작성시간 10.02.12 작가님들의 인터뷰가 그분들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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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d bell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2.14 줄리아님! 그이유는 소설에 빠져드는 시간을 마련한다는 전제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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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길섶 작성시간 10.02.24 은유나 작위 없이 저자의 육성을 바로 듣는 신선한 맛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