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태백산맥>이라는 역사소설을 읽었다. ‘태백산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저 책이름만 말한다면 아마도 이름이 같은 다른 소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맥이름으로 사용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상징적인 용어가 되었다. ‘산맥’의 설정 자체가 백두대간을 산산히 갈라놓은 일제의 의도적인 용어라고 비판이 되면서도, 문학적으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우리에게 던져 준 메시지는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백산맥이라는 역사소설은 김사량, 김달수, 조정래 세 작가의 작품이 있으며 그 출발점은 김사량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왜 태백산맥을 선택했을까? 김달수와 조정래는 김사량을 이어받았으며, 민족을 잇는 상징적 용어로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김사량은 어떠했을까? 그는 실제 소설의 무대로서 택했다. 그러나 그 또한 상징성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소설에서 계속 유토피아를 찾아 이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태백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크게 밝다’는 유토피아적인 의미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문학에 어두운 내가 김사량의 이름을 들은 것은 항일운동과 문학 활동으로 뛰어난 김학철의 평전에서 2006년 그와 함께 조선의용군 출신이었던 작가로서 항일문학기념비가 만들어졌다는(2006년 하북 호가장마을) 대목과, 그리고 재일교포 학자 서경식 선생의 책(<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20세기의 인물 가운데 하나로서 그를 다룬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경식은 그에 대한 글제목을 ‘빛을 찾는 굴신운동’이라고 달았다. 屈伸이란 몸을 굽히고 편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그의 삶의 행태가 담겨 있다. 일제시기 반일운동을 하였고 일본으로 가서도 맹렬히 소설을 써서 유명한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으로 뽑힌 김사량이었지만 일제말기에는 친일문학의 의심을 받는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곧 목숨을 건 탈출을 하여 화북에 있는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에 참여하였다. ‘노마만리(駑馬萬里)’... 그가 당시 기록을 책으로 남긴 것처럼 나귀를 타고 만리길을 나아갔는데 친일문학에 몸을 담는 것처럼 하다가 곧바로 당시 가장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하던 대열로 뛰어든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인 김시종은 그의 문학적 행보를 ‘자벌레의 굴신운동’에 비겼다고 한다.
굴신, 그것은 호흡과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 원리이다. 이를 사회 원리로서 비유한다면... 굽힘의 강요 속에 펼침, 뻗댐을 실천하는 민중운동, 농민운동으로 견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땅에 붙박혀 힘들게 굽히고 살았던 농민.. 지주에 국가에 굽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떨쳐 일어났으며 그 힘은 강했다. 우리 근현대사의 장중한 저항은 농민의 펼침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멀리는 임진왜란의 의병에서, 농민전쟁, 의병전쟁, 3.1운동. 그리고 틈새마다 일어났던 농민들의 봉기... 그래서 그는 앞선 시기 저항운동을 담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써서 그가 내면적으로 굴신을 품고 있음을 내비추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 굽히고 굽히다 목이 굳고 허리가 굳어 그저 비굴로 일관하던 사람들이 많던 시절, 그는 굽히는 듯 하다가 혼신의 힘으로 몸을 펼쳤다.
바로 그 소설, 태백산맥을 간단히 더듬어 보려고 한다. 태백산맥, 현재는 백두대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우리 국토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세 종류의 태백산맥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하나의 지역이 여러 역사의 현장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의 주인공은 대한제국 육군 中敎 출신의 윤천일이다. 그는 김옥균파로써 갑신정변에 참여하여 가장 치열하게 활동하였으나 반란에 실패한 뒤 서울을 탈출하여 화전민이 사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 곳에서 화전민들을 설득하여 결국 유토피아로 점지한 곳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담았다. 두 과정에서 모두 항상 추격하는 포교들과 방해하는 동학교도를 물리치고 이동하는 데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어쩌면 이 과정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노마만리’와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태백산맥일까? 김사량은 이 글을 쓰기 위해 별도로 준비기간을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두해 전에 화전민에 관한 글을 썼던 적이 있으므로(1940년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가마 연봉의 화전민 부락의 실태 조사를 하였고, 그해 가을에는 기행문 ‘산가 세시간’과 이를 번역한 ‘화전지대를 가다’라는 글을 썼다) 그 경험을 연결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화전민이란 김사량이 보기에는 ‘하늘에 활을 당기고 땅에 칼날을 박는 반역의 무리’였다. 가장 낮은 층이면서 반역을 꾀할 수 있는 층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의 글 속에는 의문도 적지 않다. 첫째는 윤천일(그리고 그의 두 아들)과, 화전민 집단을 철저하게 지도와 피지도의 관계로 설정한 것인데 왜 이렇게 설정하였을까, 그리고 이렇게만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하는 점이다. 물론 무관 출신으로 갑신정변에 앞장섰던 그가 화전민을 지도할 수는 있지만 일방적으로 이들이 지도받는 처지로만 그리는 것은 민중의 성장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둘째는 이 시기에 이들이 찾는 유토피아가 과연 있을까 하는 점이다. 윤천일이 화전민들을 이끌고 도착한 검봉... 아마도 태백산맥의 어느 곳일텐데, 이곳이 왜 유토피아일까? 비옥한 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수탈에도 피해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보이며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라고 설정했을 수도 있다. 또 하나 동학을 화전민을 수탈하고 윤천일의 활동을 방해하는 魔敎, 악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학과의 결합에 따라 그의 두 아들 日童과 月童의 활동이 나뉘게 설정하였는데(그뒤 후속편이 나오지 못해서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혹자는 이 글을 쓰던 시기에 화전민을 대량 살인한 백백교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이 사건은 일제가 조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점은 1880년대 동학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가 갑신정변 개화파에 대해 영웅적으로 묘사한다든가, 당시 국제정세와 우리의 처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살던 시대에는 당시 사용되지 않던 용어, 이를테면 동아시아, 민족 등이 들어가는 점도 의욕이 앞섰다고 봐야겠다.
이런 점들을 일일이 열거하면 전체적으로 당시 시대상을 잘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소개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화전민층을 보듬고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려는 점, 그 속에 담긴 민족의식, 향토에 대한 애정, 작가가 일제에 대한 저항을 망명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그가 가진 역사적 무게는 대단하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하였듯이 일본에서 촉망받는 작가일뿐 아니라 재일교포 사회에서 저항문학의 뿌리를 내린 첫 세대로서 그를 이은 저항문학이 그뒤로도 계속 이어져 왔다. 또한 그가 해방후 북한에서 활동하였으며, 조선의용군 출신이어서 남북한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문학적 재량과 활동은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과정에서 종군하였다가 행방불명이 된 점도 그의 삶과 연결된다고 하겠다. 아마도 그를 뒤이어 김달수, 조정래가 민족문학을 내세운 작품으로서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도 그의 활동을 기리는 점도 있을 것이다.
‘태백산맥은 없다’고 하지만, ‘소설 태백산맥’은 이렇게도 다양한 우리 역사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