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한의 1928년 체포부터 1936년 석방까지의 과정은 제3차 조선공산당(ML파) 활동에 따른 투옥과 일제에 굴하지 않는 치열한 옥중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체포와 제3차 조선공산당 재판 과정
체포와 미결 생활: 1928년 2월 2일, 일제의 대대적인 조선공산당 검거 선풍 속에서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3년간의 미결수 상태로 서대문형무소 등에 수감되었으며, 차디찬 유치장 생활과 밤낮없는 심문으로 인해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1심 판결: 1930년 6월 25일 공판이 시작되었으며,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당내 비중을 반영한 최고형인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2. 대전역 만세 시위와 옥중 투쟁
대전역 만세 사건: 1932년 7월 9일, 일제가 사상범들을 격리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에서 대전형무소로 이감시키던 중, 최익한은 대전역 플랫폼과 개찰구에서 '조선공산당 만세'를 선창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전 시장을 지나갈 때는 적기가를 부르며 저항 의지를 보였다.
법정 투쟁: 이 사건으로 보안법 위반 혐의로 별도 기소된 최익한은 재판 과정에서도 기개를 꺾지 않았다. 그는 공판 공개를 요구하는 한편, 형무소 내의 부당한 대우와 불법적인 고문 실태를 폭로하며 당당한 태도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비판했다. 이 투쟁의 결과로 1933년 1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추가되었다.
3. 옥중 생활과 가족의 비극
가혹한 수형 환경: 최익한은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도합 약 8~9년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삼부자의 투옥: 최익한이 수감 중이던 1934년, 그의 장남 최재소와 차남 최학소마저 울진 적색농민조합 사건으로 체포되어 각각 함흥형무소와 김천소년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특히 장남 재소는 출옥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는 비극을 겪었다.
4. 석방
만기 출옥: 최익한은 본래의 6년형과 만세 사건으로 추가된 1년형을 모두 마치고 1936년 1월 8일 아침 대전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했다.
출옥 직후: 출옥 당일 마중 나온 동생 최익래와 서울로 올라온 그는,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서대문형무소와 김천소년형무소에 갇혀 있던 두 아들을 면회하며 애틋한 부성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앞에서 보았듯이 장남 최재소는 그뒤 옥사하였다.
최익한의 이 시기 활동은 단순한 수형 생활을 넘어, 이송 과정에서의 시위와 법정 내 폭로 등을 통해 자신의 혁명적 신념과 항일 의지를 끝까지 지켜낸 시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