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다산 정약용 서세 100년을 전후한 시기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조선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며 실학 연구의 토대가 마련되던 시기였다. 당시의 분위기와 최익한의 참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다산 서세 100년 즈음의 분위기
조선학 운동의 전개: 1931년 신간회 해소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틀면서, 정인보와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는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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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연구의 확산: 정인보가 1929년 성호 이익에 대한 글을 쓴 것을 시작으로 안재홍, 현상윤, 백남운 등 여러 지식인이 신문과 잡지에 실학 관련 글을 기고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여유당전서》 간행: 이 운동의 정점은 1934년부터 1938년까지 진행된 《여유당전서》의 교열 및 간행이었으며, 이는 실학의 체계를 세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술적 논쟁: 한편에서는 김태준, 신남철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조선학 운동이 다산을 종교적으로 미화한다(다산종, 다산몽)고 비판하며 보다 엄밀한 역사적 접근을 요구하기도 했다.
2. 최익한의 참여와 성과
행사 불참과 뒤늦은 합류: 최익한은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1935년 말까지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1935년에 열린 공식적인 다산 서거 100주년 기념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출옥 후 집필 활동: 1936년 1월 8일 출옥한 최익한은 곧바로 조선학 운동에 합류했다. 이는 조선학운동의 선도자인 정인보, 안재홍과의 관계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정인보와 안재홍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이었고 최익한은 사회주의자였으나, 두 사람은 최익한을 한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시도하는 뛰어난 학자로 인정했다.
안재홍과 최익한은 농촌 중산층 출신, YMCA 교육,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유학, 신간회 활동 등 인생 행로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안재홍이 《조선일보》 주필로 있을 당시 최익한이 해당 신문에 많은 글을 기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친분과 안재홍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익한은 학문적으로 정인보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듯하다.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연재할 때, 전서를 치밀하게 읽어가며 의문이 생길 때마다 정인보를 찾아가 하나하나 질의하고 논담하며 연구를 심화시켰다. 정인보는 당시 실학의 계보와 틀을 잡은 권위자로서 최익한의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친분은 각자의 스승에 대한 예우에서도 나타난다. 1924년 최익한이 스승 곽종석을 위해 지은 만사를 정인보가 《동아일보》에 실어주었고, 1939년에는 최익한이 정인보의 스승인 이건방의 별세에 대해 만사(輓詞)를 지어 신문에 발표하기도 했다. 서로의 학맥과 인격을 깊이 존중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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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연구의 협력적 성과: 정인보와 안재홍이 중심이 된 신조선사에서 《여유당전서》를 간행(1934~1938)하자, 최익한은 전서가 완간된 직후 이를 직접 다룬 본격적인 연구물인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발표하여 조선학 운동과 실학 연구의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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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정인보와 안재홍이 조선학 운동의 장을 마련하고 자료(여유당전서)를 집대성했다면, 최익한은 이들의 학문적 지도와 교유 속에서 현대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을 접목해 실학 연구를 완성시킨 조선학 운동의 핵심적인 3인방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최익한은 잡지 《신조선》의 요청으로 「다산의 일사와 일화」, 「다산의 저서총목」 등을 작성하며 다산 연구를 시작했다.
독보적 성과 〈여유당전서를 독함〉: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938년 12월부터 1939년 6월까지 《동아일보》에 65회에 걸쳐 연재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이었다. 이 글은 《여유당전서》가 완간된 후 이를 직접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물로, 일제강점기 실학 연구의 최고 성과로 꼽힌다.
최익한은 전통 유학의 깊은 조예와 근대 사회과학적 소양을 결합하여, 다산을 '세계사적 시각을 갖춘 서학자'이자 진보적인 사상가로 재해석해냈다. 해방 후 실학 연구자인 홍이섭은 이 글이 "다산 이해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고 극찬하였다.
결론적으로 최익한은 100주년 당해년도의 기념행사에는 옥고로 인해 참여하지 못했으나, 출옥 후 당대 실학 연구의 정점을 찍는 저술을 남김으로써 조선학 운동을 학술적으로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아가 월북한 뒤 1955년 북한에서 발간한 **《실학파와 정다산》**은 다산을 중심으로 실학 사상 전체를 체계화한 저작으로, 남북한 학계 모두에서 한국 사상사 및 실학 연구의 초석을 쌓았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요약하자면, 최익한은 조선학 운동 내에서 실학파를 학문적으로 범주화하고 다산 연구를 근대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핵심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