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청년(네휼류도프)이 자기 집 하인으로 있는 소녀(카츄사)의 순결을 가지고 한동안 군대에 가서 세월을 보내고 잊고 있었지만 그소녀는 인생의 방향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옮겨가고 타락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운명은 가혹하리 만치 그녀를 고난과 약탈 범죄자의 신분,살인자의 운명으로 몰고간다.결국 카츄사는 재판에의해서 종신형으로 언도받고 시베리아 감옥행으로 가게되고 그 재판이 있을 즈음 주인공은 배심원에 발탁되어 우연히 재판에 관여하게되면서 카츄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억울하게 살인자의 공모자로 낚인찍힌 카츄사를 보고 자기 때문에 그 순결한 처녀가 이렇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그 재판에서 무죄를 받기위해 상소와 결국은 황제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결국은 시베리아 감옥으로 결정이 나고 주인공 네휼류도프는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도중에 많은것을 경험하게된다. 불행하게 아무죄도 없이 투옥되어 옥고를 치루는 사람들도 많고 유전무죄,무전유죄로 인한 비리... 죄를 응징하기 위해서 그 많은 형벌이 있지만 죄는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주인공은 어떤 한계를 느낀다.
좁은 이동 형무소에서 냄새나는 변기통옆에 쪼그리고 칼잠을 자면서 또는 어깨를 옆으로 포개면서 자는 죄수들,티푸스의 전염병이 나돌고 더위를 먹어서 죽어가는 죄수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주인공은 인간의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구원이 존재할수있다는 생각을 부여하고 있다.
카츄사를 위해서 결혼을 하겠다던 주인공의 마음은 동료 죄수가 카츄사를 사랑하기에 결국은 배려를 하는 카츄사의 마음으로 결론은 나지만 그것은 더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카츄사의 표정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게된다.
아니 그런 환경속에서도 카츄사는 예전의 거리의 여자대신에 점차 우아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것은 주인공의 헌신과 같은 감옥동료중에 정치범으로 투옥된 여자의 사상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 얼마든지 극과극으로 변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죄를 지은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을 벌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리가 없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는 것 같다.그대신 사람들끼리 서로오가는 사랑이 그것을 구원할수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성경에도 왼쪽빰을 맞았을때 정반대의 우측빰을 대어주라고 말씀하신다.포도밭 비유를 들면서 그 포도밭을 일구는 사람은 그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고 말한다.
결국은 카츄사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결혼까지 할것이라는 주인공은 유형지 시베리아로 가면서 자신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자기가 알고 있고 또 이 유형지까지 오면서 보아왔던 인간의 비리,들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인간에게 준 성경의 말씀들로서 극복이되고 해결이된다는 것을 말미에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가 죄없는 자가 없는 것이며,그에따라 사람을 벌주거나 교정할수 잇는 사람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사람들을 몇 번이라도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사회와 질서를 존속시키고 있는것은 남을 재판하고 벌주는 이들 합법화된 죄인들 덕분이 아니라,이러한 부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주인공은 자기가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에 끝없이 괴로워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해결책을 얻고 기쁨을 느낀다.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을 해결할수있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정말 감동의 작품이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다?”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일곱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