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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19) 제1장 개신교 선교 이전의 한국의 정황 3. 개신교의 한국 전래를 위한 노력 2) 국외에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 의한 활동

작성자이상기|작성시간13.07.23|조회수20 목록 댓글 0

3. 개신교의 한국 전래를 위한 노력  

 2) 국외에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 의한 활동

 

(1) 권서인들의 활동 

④ 백홍준, 이성하의 의주 전도  

백홍준은 1879년 수세 후 의주에 거주하면서 최초의 전도인으로서 복음을 은밀히 전파하였으며, 이듬해의 투옥사건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다. 그는 자신과 친구들이 우장과 봉천에서 가져온 한문 및 한글 복음서, 소책자들을 의주는 물론 구성, 삭주, 강계 등지에 반포함으로써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곳곳에 생기게 하였다.  한편 이성하 역시 의주 전도인으로 활동하였다. 서상륜, 서경조의 글에 의하면 이성하는 초기 번역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는 번역보다는 전도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다량의 한글 복음서를 책문을 거쳐 압록강 연안의 구련성까지는 가져왔으나 삼엄한 국경 경비 때문에 그곳 중국인 여관에 쌓아두었다. 그가 외출을 한 후에 의심을 품은 여관집 주인이 그의 짐을 풀어보고는 금서인 것을 알고 이를 압록강에 던져 떠내려 보냈고, 일부는 소각해 버리고 만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스는“성경이 던져진 물은 한국인들에게 생명의 물이 될 것이고, (성경이 탄)재는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술회한 바 있는데, 뒷날 그의 예언이 이루어져 압록강 일대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이성하는 성경 유입에 실패한 후 병을 얻어 전도인 직을 사임한 듯하다.  이성하가 성경반입에 실패한 후에 백홍준이 재차 시도하였다. 그는 변경에 도착하여 정세를 살펴보니, 성경을 반입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는 곧 시장에 나가 별 것 아닌 책들을 여러 권 샀다. 그리고 성경을 한 장씩 뜯어내어 돌돌 말아 긴 끝을 만들어 시장에서 사온 책을 묶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짊어지고 강을 건넜다. 관리는 책만 조사하고 별 것 아니므로 통과시켜 주었다. 집에 돌아온 백홍준은 책은 버리고, 책을 묶었던 끈을 풀어 다시 성경을 만들어 전도를 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의주 청년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전도하여 신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백홍준이 요리문답반을 운영하면서 더욱 신자들이 증가하여, 1885년에는 약 18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예배처가 생겨났다.  백홍준은 맥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로스 목사의 권서인으로 본국에 들어와 전도하다가 언더우드 목사에게 전도사로 임명을 받아 사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역을 하던 중 백홍준은 2년간 봉천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그 이유는 만주에 있는 선교사와 내통한다는 죄명이었다. 백홍준이 내통했다는 선교사는 로스 목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는 1894년 봉천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백홍준의 옥사를 두고 차재명은 그가 편찬한「조선예수교 장로회사기」에서 자연사한 것이라 기술하고 있으며, 김해연은「한국기독교회사」에서 백홍준의 죽음을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된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⑤ 서상륜의 서울 권서 활동  

서상륜은 1882년 4월에 로스로부터 세례를 받고 6개월간 봉천에서 성경 사업을 돕다가 10월 6일 권서인으로 의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서상륜의 성경 밀반입 행로에 대해 여러 책은 그가 국경에서 검거 투옥되었다가 친척 관리의 도움으로 밤에 탈출하여 의주에 도착, 전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른 듯하다. 서상륜은 국경 검문소에서 성경을 압수당했지만, 첫 밀반입이라 아무 일 없이 의주로 돌아왔는데, 며칠 후 검사관이 서상륜을 찾아와서 그 책들을 읽어본 결과 좋은 것들이므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옷속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서상륜은 이 우호적인 검사관으로부터 전해받은 성경과 소책자로 의주에서 전도하다가 경성(京城)에 잠도(潛到)하여 복음전포(福音傳布)를 경영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이 없어 곤란을 겪게 되었고, 이에 로스는 1883년 봄에 김청송을 통하여 수백 권의 성경을 전달했다.  서상륜은 김청송으로부터 전해받은 복음서를 서울에서 장사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은밀히 전도하였다. 그리고 김청송도 평양 권서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봉천으로 돌아갔는데, 이는 뒷날 평양교회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로스는 이보다 앞선 1883년 봄에 봉천을 지나가는 조선 북경 사절단에게 성경을 전달하려고 복음서 200권을 따로 준비해 두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883년 8월에는 6천 권의 복음서가 거의 배포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에 고무된 로스는 이듬해 1884년 봄 묄렌도르프 부인의 주선으로 인천 해관(海關)을 통해 6천여 권의 성경을 서상륜에게 전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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