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イエス様を見つめましょう。
본문: 히브리서 12장 1절~3절
1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こういうわけで、わたしたちもまた、このようにおびただしい証人の群れに囲まれている以上、すべての重荷や絡みつく罪をかなぐり捨てて、自分に定められている競走を忍耐強く走り抜こうではありませんか、2. 信仰の創始者また完成者であるイエスを見つめながら。このイエスは、御自身の前にある喜びを捨て、恥をもいとわないで十字架の死を耐え忍び、神の玉座の右にお座りになったのです。3. あなたがたが、気力を失い疲れ果ててしまわないように、御自分に対する罪人たちのこのような反抗を忍耐された方のことを、よく考えなさい」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의 연습을 위한 시리즈 설교 두 번째 주일의 말씀을 나눕니다. 지지난 주일에는 우리에게 이미 임재하신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였는데요. 우리의 육신적 감각이 느끼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미 임재하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우리 삶에 임재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일상에 대해서 증언하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이미 함께 살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히 12장이 시작되기 앞서 11장에는 믿음의 본이 되는 수많은 조상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삶의 튼튼한 기둥으로 삼아 영생에 속한 인생을 살았던 선배님들입니다. 믿음의 본이 된 선배들의 이름 이후에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첫 구절은 “그러므로”인데요. 이유는 히 11장에서 이렇게 많은 믿음의 본보기가 있기에 우리도 믿음으로 살 수 있다고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이 되어준 선배들의 모습과 그 삶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믿음이 있으니 순교나 손해 보는 것쯤은 능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믿음의 결과에 대한 놀라운 열매가 있다보니 본의 아니게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어떤 대단한 실력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이 적은 것을, 혹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정도가 약한 것을 안타까워하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노력한다고 강해지고, 노력하지 않아서 연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연스레 마음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의 가치를 믿는다고 할 때, 돈의 힘에 대해서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겨우 알게 되는 것인가요? 우리 가족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내 마음이 돈을 믿고 의지하며, 가족의 사랑을 믿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발견하여 실감나게 체감하고 나면 그냥 믿어지는 것이지요. 그 일이 점점 쌓이면 더욱 굳건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노력의 결과로 쟁취하는 타이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연스레 생각으로 믿어지고, 몸으로 믿어져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의 본이 되신 신앙선배들과 같은 믿음의 증거들이 강물처럼 넘쳐흐르시길 축복합니다.
1절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믿음의 증인들이 구름 떼와 같다고 말씀하면서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달려가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좀 전에 믿음은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왜 우리는 달음질을 하라고 하실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이 약한 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처럼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믿음이 무뎌지고 연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물 흐르듯이 믿어진 것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은혜로 받는 감동도 또한 쉽게 흘러 떠내려 가 버리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듣고, 복음이 믿어지는 것은 놀라운 은혜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감동을 지키려면 최소한 우리의 반응이 필요한 것입니다. <슬라이드 그릇> 그래서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기억하며 믿음을 지키는 연습과 훈련을 달음질 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내리는 빗물을 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2절에는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핵심 메시지이며, 우리가 뜨겁게, 그리고 신실하게 매일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할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시편 16편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다윗은 주님께서 항상 자신의 오른편에 계신다고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믿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정한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고백하고 인정하였기에 저도 종종 예배를 집례하면서 나무 십자가를 손에 쥐고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의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분명히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면, 내가 그분을 의식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의식하는 것이 곧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십자가를 붙들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마음을 추스르며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잠언은 온갖 지혜와 삶의 노하우가 기록되어 있는 문서입니다.
잠언 3:6에는 이렇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정하면 세속의 폭풍 속에서도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분명하게 열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생각하고, 그 일에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길과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진로와 선택 앞에서 고민하게 될 때 꼭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가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바라보고 계신 것을 의식하며 선택을 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존경하는 어떤 선배 목사님은 쉬워 보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길이 아니라, 어려워 보여도 바른길을 선택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합당할 때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바른길이라면 좀 더 어려운 형편으로 선택하면 주님께서 더욱 분명히 역사하신다는 경험도 들려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기쁨이 되는 길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길을 선택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현실에서는 흔들리지만, 주님과 함께 안심하며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을 바라보는 일에 관하여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니리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새로운 힘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달음박질을 해도 곤비하지, 즉 지치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자고 명령하는 이유를 이사야에서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시면 달리면 달릴수록 지치지 않고 더 잘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의지하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하나님께서 기쁨이 되었던 “에릭 리들”이라는 영국의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 달린다”고 사람들에게 증언하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1924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 참여하여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종목인 100미터 달리기의 결승이 주일에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일에는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100미터 경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의 선택과 결정에 고국인 영국의 언론과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00미터 결승 출전권을 동료에게 양보하지요. 그리고 자신은 평일에 열리는 200미터와 400미터 경기에 나가기로 합니다. 결과는 100미터에서는 에릭의 동료가 금메달을, 에릭은 200미터에서 동메달,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고국인 영국에 선물하게 되지요. 당시 그의 일에 대해 보도한 신문의 표현은 이러했습니다.
Not for crowds, not for country, not for fame, not for glory.
He ran for GOD.
그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국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영광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달렸다…
라는 것인데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달렸던 그에게… 대중의 사랑, 고국의 인정, 명예와 영광스런 자리까지 오롯이 채워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지금 현실의 문제에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영적인 대비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바울은 살전 5:2에서 주님의 날, 즉 이 세상 종말의 날이 도둑처럼 임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마지막 날이 닥칠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징조들이 있겠고, 지금도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징조가 있다고 곧바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재림하시는 당사자이신 예수님도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성경의 약속처럼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세속에 속한 불신자들은 불안합니다. 안심하지 못합니다. 걱정와 염려가 앞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바울은 성도인 우리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4-5)
느닷없이 일이라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이라도 성도인 우리에게는 도둑처럼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 한국에서 친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선물을 들고 찾아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기 위해서 전혀 티를 내지 않던 친구가 집 문 앞에서 있다면 얼마나 반갑고 기쁠까요?
십여 년 전에 한국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광고를 찍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롤모델로 삼고 있던 유명인이 자신의 일터나 학원에서 일이 끝나기까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일이 끝나면 함께 대화를 나누며 집에 데려다 줍니다. 학원에 끝나면 함께 야식도 먹습니다. 그 영상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은 자신의 롤모델을 직접 만나는 순간의 기쁨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고, 느닷없는 만남이지만…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만남이 될까요?
예수님의 재림은 물론 예상할 수 없이, 느닷없이 일어날 일이지만, 우리에게 그 어떤 만남보다 기뻐하고 행복할 만남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는 일보다 세상일에 우선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주님을 도둑이 찾아오는 것처럼 부담스럽고, 두렵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바라지 않고, 세상의 것들만 바라고 구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도둑처럼 찾아오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반가운 친구의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찾아오시길 원하십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과 만남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망의 현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매일 새로운 힘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속의 광풍 속에서도 흔들려도 안심하며 일상생활을 삽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앞날의 불안이나 막연한 두려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세상의 헛된 명예나 즐거움보다 주님께 예배하는 감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일상 가운데 사소한 것들이 차츰 감사의 제목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실감하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의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유일한 길이며, 주님의 복음이 믿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광야 길을 걷든, 꽃길을 걷든 매일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