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부르심을 받은 성도. 召された聖なる者。
본문: 로마서 1:1-7
롬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4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7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1.キリスト・イエスの僕、神の福音のために選び出され、召されて使徒となったパウロから、――2.この福音は、神が既に聖書の中で預言者を通して約束されたもので、3.御子に関するものです。御子は、肉によればダビデの子孫から生まれ、4.聖なる霊によれば、死者の中からの復活によって力ある神の子と定められたのです。この方が、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です。5.わたしたちはこの方により、その御名を広めてすべての異邦人を信仰による従順へと導くために、恵みを受けて使徒とされました。6.この異邦人の中に、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るように召されたあなたがたもいるのです。――7.神に愛され、召されて聖なる者となったローマの人たち一同へ。わたしたちの父であ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の恵みと平和が、あなたがたにあるように。
오늘부터 복음의 핵심을 전하고 있는 로마서를 강해합니다. 매주 말씀을 읽고 그 안에 중심이 되는 메시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역사 안에서 매우 각별하고 특별한 저력을 품고 있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 교회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적인 저력이 삶의 열매로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로마서가 누구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쓰셨다고 고백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성령님께 붙들려 붓을 들어 이 편지를 써서 보낸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에 속한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시려고 들어 쓰신 귀한 사도입니다. 그가 사도의 길에 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는 곧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의 종인 사도가 된 것은 바로 부르심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바로 이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대단한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두 부르심에 속한 자들이라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2장 1절, 베드로전서 2장 9절, 에베소서 1장 4절, 요한복음 15장 16절 등등입니다. 물론 오늘의 본문인 로마서 1장 7절에서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시지요. 성경에서 ‘부르심’이라고 표현하는 이 말씀은 흔히 ‘소명’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소명의식이 우리의 삶을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울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배 목사님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빈민가에서 10대 흑인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불행을 경험합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마약 중독자로 10대를 보내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곁길로 가기 쉬운 암울하고도 불운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는 타임지가 뽑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가난과 아픔 속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을 인생의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도, 지금의 부유함도 인생의 사명으로 여긴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이었다. 그가 섬기며 그녀가 속하여 있는 하나님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모델이 구약 성경의 "모세"라고 말했다. 그녀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면서 가난함도, 부유함도, 꿈도, 근심도, 자신에게 부닥치는 모든 것을 사명으로 받아 들였고 이 사명감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자신을 사명자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생은 결코 하찮아질 수 없다. 오프라 윈프리가 쓴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자서전에서 그녀는 네 가지 사명을 말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소명이라는 말은 영어로는‘Calling’이라고 하는 데 ‘왕이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에로의 부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소명을 받는 자는 부르는 자의 권위가 크기 때문에, 그 부름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소명에는 그저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사명이라는 말은 영어로는‘Mission'으로 어떤 책무를 맡은 자(혹은 소명을 받은 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의무나 책임 등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해야만 할 어떤 과업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소명 받은 자의 과업입니다. 소명이 없으면 사명도 없습니다. 사명감이 없는 자는 당연히 소명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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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위인의 삶을 통해서 그 인생의 업적보다 그 업적을 이루게 하는 부르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던 저에게 떠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Big Picture’라는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큰 사진, 혹은 큰 그림이라는 뜻인데요. 이 사진을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두가지 형태의 사진이 보이실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크게 하나의 예수님의 모습이구요… 실제로는 여러 장의 다른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그림이지요. 예전에 보았던 이 사진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올랐습니다.
각각의 조각난 사진도 각각 다른 모습의 예수님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런 이 그림들을 이렇게 저렇게 배치를 하면… 다시 커다란 한 장의 예수님 그림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흥미로운데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각자의 고유하고 다양한 삶이 하나의 큰 사명을 이루어가는데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먼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부르심, 즉 소명에 대해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는 로마의 성도들도 바로 그 부르심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소명을 받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2절부터 6절사이에 우리를 부르신 이유인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의 중심입니다. 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부르심에 응답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제가 여러분과 여기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여러분도 이 자리에 이렇게 잠자코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도저히 세속적인 상식으로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지요. 오직 우리가 살아 가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비정한지 부정적인 뉴스들이 넘쳐납니다. 삶의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과 갈등, 그리고 좌절과 실망하게 하는 소문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아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자신의 삶을 돌아 보아도 그렇게 우울해지고, 낙심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주변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사는 낙이 없다… 이런 푸념이 종종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혹시 그런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재미도 없고, 그저 죽지 못해서 산다… 이런 분들이 주변에 계십니까?
그런 이들에게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각자 제 각각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그림 안으로 부르신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양, 저런 모습으로 각기 다르게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때로는 다이나믹하게 혹은 무료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런 일상이 곧 주님의 부르심 안에 있다면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친히 부르셔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도 하셨지요. 주님의 뚜렷하고 또렷한 말씀이 믿어지시길 축복합니다. 조각조각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그림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큰 그림 안에 속하게 되는 과정의 시작을 우리가 부르심, 혹은 소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큰 그림 안에 속해 있는 것을 구원, 거듭남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그림 안에 속하게 된 거룩한 성도임을 믿습니다.
따라서 이제 성도는 사는 재미만을 따라서 살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람을 찾기 위해서 사는 수준도 넘어섭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간단히 포기하지 않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언제나 도전이 있고, 시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도전과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명에 알맞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모든 세대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린이와 청년들에게만 비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전과 사명은 연소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명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당신을 소명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은 각자의 다양한 삶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그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어떤 평판의 자리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 가는 능력이 오직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으로 초점이 맞추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