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 서 있는 자. 境界線に立っている者。(2021년 9월 19일 주일예배)
본문: 사도행전 16:1~5
16:1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3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생각해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5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
1. パウロは、デルベにもリストラにも行った。そこに、信者のユダヤ婦人の子で、ギリシア人を父親に持つ、テモテという弟子がいた。2. 彼は、リストラとイコニオンの兄弟の間で評判の良い人であった。3. パウロは、このテモテを一緒に連れて行きたかったので、その地方に住むユダヤ人の手前、彼に割礼を授けた。父親がギリシア人であることを、皆が知っていたからである。4. 彼らは方々の町を巡回して、エルサレムの使徒と長老たちが決めた規定を守るようにと、人々に伝えた。5. こうして、教会は信仰を強められ、日ごとに人数が増えていった。
지난 주일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각자에게 주어진 전도여행의 길을 나섰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생겨나는 갈등이나 이견 등에도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것을 기도하고 소망하며 순종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만나는 인연은 이 땅의 모든 문화적 환경과 혈통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뛰어넘는 저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감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마지막 기착지는 ‘더베’였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바로 이 곳입니다. 그리고 더베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곳이 루스드라이지요. 바울은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거꾸로 더베에 들렀다가 루스드라를 거쳐서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오늘 루스드라에서 특별하고 각별한 만남을 갖게 됩니다. 바로 평생의 동역자이며, 목회사역의 제자, 그리고 아들과 같이 여기게 된 디모데라는 젊은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디모데가 바울을 만나게 된 때는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다고 말합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바울이 1차 전도여행으로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믿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만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친정어머니인 로이스도 함께 복음을 믿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생활이 아들 디모데에게 자연스레 전수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아버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애석하게도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이 디모데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이 너무도 명확합니다.
저도 실은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셨기에 제가 믿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할머니께서 열심히 믿으셨고,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만나는 할머니께서는 시골교회의 교회학교와 여름성경학교에 성실히 보내 주셨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친가 쪽 시골에 가지 않아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지만, 결국은 할머니의 기도 응답으로 제가 스스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었지요.
가정 안에서 믿음생활이 대물림되는 일에 있어서 어머니나 혹은 할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들께서도 절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가정은 이른바 ‘다문화가정’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이방인이었지요. 아마 디모데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인의 헬라어,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아는 환경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2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마치 일본에서 한 쪽 부모가 일본 분이신 가정에서 자라는 우리 교회 다음세대들과 같은 입장이지요. 또 부모의 국적은 한국이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문화와 그 교육적, 정서적인 배경에서 자라나는 경우도 넓은 의미에서 다문화 가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디모데는 지금 우리 자녀들이 혹은 우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다중적인 문화와 정서적 환경 안에서 복음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이중적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서적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 미국의 이민 2세대 혹은 1.5세대에 관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과 사회의 괴리와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해서 일탈하는 이민자 자녀들을 취재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여전히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고정관념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서 그들의 정체성 혼란과 마음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가정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과의 의사소통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가정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자녀들이 일본인들의 정서와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기는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지 문화가 다르고 혈통이 달라서 겪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한 사춘기 소년과 어머니의 대화를 들어 보십시오.
“사춘기가 찾아온 아들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아들은 거울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못 생기게 삐져 나온 덧니가 마음에 걸렸다.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치아 교정 좀 해줘요." 엄마는 아들을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안 돼! 돈이 많이 들어. 크게 불편 없는 데 그냥 살아." 아들은 불만에 찬 소리로 말했다. "이게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았잖아요." 그러자 엄마가 어이없어 하며 한마디 했다. "내가 너를 낳았을 때에는 이가 없었거등."”
꼭 부모와의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서 불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혈통과 문화에 속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 자식 간의 소통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언어와 혈통과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자녀들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자라기 때문에만 일탈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는 그런 다문화가정에 살았지만, 복음을 믿고 거듭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성품을 갖추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고, 그 사람됨이 그가 살던 ‘루스드라’만이 아니라 이웃도시인 ‘이고니온’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인지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문화의 이중성과 혈통의 이중성, 그리고 정서적인 이중적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어중간하고, 어정쩡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환경을 선교적인 비전을 위해 허락하신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디모데는 그 후로 평생을 바울과 함께 사역하며 복음을 전도하였습니다. 그가 유대인의 혈통과 이방인의 혈통을 모두 물려 받았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서라면 무슨 환경이나 여건이나 모두 활용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2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강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것마저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다문화가정 출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젊은이가 위장병을 포함한 어떤 지병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병약한 체질의 청년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민간요법으로 위장병에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하라는 권고를 할 정도였지요.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딤전 5:23)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에서 이렇게 권고하는 것인데요.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보면서 바울이 음주를 권하였다고 착각합니다. 음주를 권한 것이 아니라, 약으로 포도주를 활용하라는 것이었지요. 당시에는 의약품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민간요법들을 활용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디모데와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걱정과 염려를 할 정도로 디모데는 질병에 대한 약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약점으로 보이고, 불안함으로 보이고, 좌절할 이유로 보이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가장 강력한 사명의 무기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야 말로 디모데는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를 떠나야 할 바울을 위해 준비해 두신 비장의 카드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을 보십시다.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너무도 귀하여 그저 무한히 퍼주고 또 퍼주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때때로 실망하고, 화가 나고, 억장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육신적인 나약함도 있을 것입니다. 정서적인 걱정과 염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육신적이고 세상의 가치관과 그 시선으로만 보면 자녀들이 혹은 다음 세대들이 답답해 보이고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일본선교와 세계 선교를 위한 비장의 카드로 단련해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비장의 카드인 것을 믿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자녀는 다 우리의 자녀입니다. 육신적인 가족관계로 직접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선교사명을 위해서 연단하고 계시는 사명자임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그에게 할례를 받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바울의 권유를 따라서 할례를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혈통을 따라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율법의 명령을 자원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미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이방인 성도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어머니의 혈통에 따라서 유대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결정을 통해 예수님의 정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1)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선을 행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세속의 사람들은 ‘권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권리를 챙겨 갖는 것을 이익과 유익이라고 평가하지요. 하지만, 그런 권리를 챙기지 못하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만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주변에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예수님의 제자라면 세속적인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양보할 수 있는 선한 능력과 자유가 있다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선교여행을 출발하는 시점에서 디모데가 자원하여 할례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장의 히든카드로 준비된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속의 가치관이 말하는 권리와 권한을 누리도록 가르치기 전에 본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입장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선을 위해서, 선교적인 마음에서 자원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영어에 ‘엑스트라 마일’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서비스를 덤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건축설계기업 ‘팀 하스’의 하형록 목사님이 쓰신 [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 P31]란 책에 등장하는 표현인데요. 책의 내용 중에 일부를 잠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매일 실천해야 하는 세 가지 핵심가치(Core Value)가 있다. 첫째가 엑스트라 마일이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비욘드 도어’(beyond door) 즉 문 밖까지 배웅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잘하는데 미국 사람들은 손님이 문을 나서면 바로 문을 닫아 버린다. 엑스트라 마일은 배웅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을 위해 한 걸음 더 나가는 의미다. ... 그럼 일하는 현장에서 엑스트라 마일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예를 들어 계약을 할 때 우리는 현장에 10번 나가기로 했으면 10번 다 성실하게 해준다. 그러다 고객이 한두 번 더 현장에 나가 달라고 요구하면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두 말 없이 그대로 한다.
많은 회사들이 10번 나가겠다고 했으면서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 또 추가로 나가 달라면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고객은 계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뒤다. 그러면 다음 계약은 보장하기 어렵다. 우리 회사와 일을 해본 고객은 반드시 다음에도 우리를 찾는다. 일이 끝난 뒤에도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엑스트라 마일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모시로 만든 고급 제품을 띠까지 둘러 보낸다는 것도 엑스트라 마일이다. 장사할 때는 이렇게 덤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커피 한 잔 사다 줄래.’라고 말할 때 커피만 사다주는 것이 아니라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쿠키까지 사다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문한 것이 이외의 것인 ‘쿠키’가 바로 엑스트라 마일이다. ‘물 한 컵 가져다 줄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컵에 물만 받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마신 후에 입을 닦을 수 있도록 냅킨까지 챙겨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초로 선을 베푸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엑스트라 마일의 실천이 몸에 배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로 우리 자녀들의 앞길을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당장은 조금 손해를 보는 일처럼 보이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선을 더욱 베푸는 태도와 자세가 우리의 자녀들을 위기와 혼란의 환경에서 천사들의 도우심을 받는 ‘비장의 히든카드’가 될 것을 믿습니다.
다문화 가정 출신의 디모네와 함께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사항을 전하며 이방인 교회들을 방문하며 교회들을 튼튼히 세워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교회들이 숫자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단점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약한 것이 곧 하나님의 강함을 나타낸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도무지 상황이 나아지는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 좌절하게 될 때... 자신의 세속적인 시선을 회개하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어서 한심스러운 자신의 환경으로 짜증날 때... 자신의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만 평가하던 가치관과 태도를 회개하고 이런 환경과 여건을 사명의 자리로 맡기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더 큰 위대한 자리로 이끄시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혈통이나 문화, 정서적으로만 이중적 환경에 있다고 해서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경계에 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와 이 세속의 나라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에 서 있기도 합니다. 특별한 환경이 따로 있고, 특수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 여건, 형편, 그리고 시대에 살아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고 하는 고유한 사명의 자리에 경계인으로 서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삶이 아니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 참 자유의 삶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혹 지금까지 이런 참된 자유를 믿지 못했다면 주님께 회개하고 다시금 마음과 생각을 추스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히든카드를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본을 보이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