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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1-2> 장병윤의 귀농이야기- 생태적 담론

작성자누마루|작성시간19.12.09|조회수50 목록 댓글 0

귀촌 <1-2> 장병윤의 귀농이야기- 생태적 담론

흙 속에서 실현하는 자립과 순환, 공생의 가치

- 귀농은 생명의 근원인
- 흙으로 되돌아가고
- 삶의 가치·방향 바꾸는 일
 
- 생태적인 식의주 위해
- 자급·자생하려는 노력과
- 소모적인 소비 줄여야
 
- 우주의 기운 받은 뭇 생명
- 서로 연결돼 돌고 돌며 순환
- ‘살리는 농사’ 해야하는 이유
 
- 더불어 산다는 공존의 자세
-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이
- 지속가능한 공동체 삶 지름길

귀농은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옮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가치와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농촌공동체로 들어가 구성원이 되는 것을 넘어서, 생명의 근원인 흙과 마주하는 것이다. 귀농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요즘은 귀농자 스스로 집을 짓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주거공간의 자급이다. 산청에 귀농해 유정란 양계를 하는 박상호 씨의 흙푸대집 짓기에 손을 보탠 필자가 흙푸대 벽체에 황토를 바르고 있다.
인간에게 흙이란 어떤 존재일까. 흙을 생각할 때 드는 느낌들로 어떤 게 있나. 너그러움 푸근함 부드러움 싱그러움 여유로움 정직함 평화 고향 어머니 생명력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더러움이나 불편함, 거칠고 낯선 느낌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람과 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류가 두 다리로 일어서서 첫발을 뗀 곳이 대지였고, 그곳에 정착해서 농경 생활의 새벽을 열었다. 흙은 인류의 오래된 삶터이자 뭇 생명의 근원이다. 사람은 흙에서 난 것을 먹으며 성장하고 죽어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흙과 제대로 만나고 있는가. 삶의 근원인 흙으로부터 격리된 채 사는 것은 아닌가. 문명의 세례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흙은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존재하기 십상이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은 흙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흙과 대면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텃밭이라도 경작하면 몰라도 흙과 만나기 어려운 게 도시민들의 일상이다. 현대 도시는 온통 시멘트로 점철된 인공구조물로 이뤄져 있다. 그 속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아가면서 흙냄새를 맡고 흙의 질감을 느낄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

근대는 흙으로부터 인간의 소외인지도 모른다. 마르크스는 근대자본 체제의 성립을 인간이 대지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산업혁명 이후 농장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에서 임금노동자가 됐다. 알몸뚱이뿐인 그들은 힘겨운 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상품과 화폐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자급적 생활양식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근대 이후 기계론적 사고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부정하고 인간을 땅으로부터 단절시켰다. 세상의 주체로서 인간은 객체인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개발하고 훼손해 끝내 황폐화시켰다. 귀농은 땅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이 다시 땅으로 회귀해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필자가 원주 가느개마을 집 텃밭에서 여주 덩굴을 손보고 있다.
귀농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숨 막히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은퇴자도 있고 소모적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자녀의 교육을 위해 귀농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경제적 가능성을 농업에서 찾기도 한다.

어떤 귀농이 되었든 흙과 대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문명의 그늘에서 잃어버린 생명력을 되찾는 일이다. 흙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근원을 자각할 때 비로소 물질에 치여 피폐해진 일상을 치유할 수 있다. 인생 2막의 새 여정을 열면서 생태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귀농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급과 순환, 공존의 가치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가치가 삶 속에서 실현될 때 우리는 행복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급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연 내가 자급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현대인에게 자급이란 말처럼 괴리가 큰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한다. 내일 당장 시장의 기능이 멈추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근대 이전에는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 삶터를 마련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자급의 영역에 속했다. 가족 단위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길쌈을 하고 이웃과 힘을 모아 집을 지었다. 마을공동체를 통해 대동의 놀이와 미래세대의 교육이 이뤄졌다.

흙푸대집 세면장의 벽체를 쌓고 있는 필자 .
귀농은 문명의 풍요와 편리 속에 잃어버린 자급의 본능을 자극한다. 두어 마지기의 논농사를 지으면 주식이 해결되고 수십 평의 텃밭은 온갖 식재료를 제공해 준다. 텃밭 한쪽에 우리를 만들어 닭을 치면 신선한 단백질원을 얻을 수 있다. 면화나 삼베를 재배하진 못하지만 천연염색을 한 천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 가족끼리 이웃끼리 어울려 집을 개조하거나 짓기도 한다.

자급의 한 축은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우리는 세상의 자원이 무한한 것처럼 여기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인류는 20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수십만 년에 걸쳐 축적된 화석연료와 자연자원의 상당량을 소비했다. 풍요와 편리를 향한 무한욕망이 미래의 삶까지 거덜 내고 있다. 자급과 함께 소모적인 소비를 줄이는 일이 한시가 급한 이유다.

순환의 가치는 생명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이 중요하다. 해월 선사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설파했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스민 밥을 하늘인 사람이 먹는다. 밥은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다. 쌀 한 톨에 햇살과 바람, 비 우주의 기운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람의 배설물이 잘 익혀져 좋은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의 기운을 받아 자란 작물이 다시 밥상으로 오른다. 선인들은 생명의 순환을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고 함축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순환의 틀 속에서 돌고 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내밀한 순환의 이치가 담겨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

도시에는 순환의 고리가 단절돼 있다. 푸른빛을 자랑하는 가로수도, 고층 아파트 단지의 보기 좋은 정원도 그 밑에는 두꺼운 콘크리트 층으로 땅의 생명력을 차단하고 있다. 인위적 관리가 되지 않으면 자생할 수 없는 구조다.

우리 농업도 순환의 가치를 실현하는 ‘살리는 농사’가 돼야 한다. 비료와 농약에 전적으로 의존해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사공장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의 기운을 받고 농부의 마음이 담긴 온전한 순환 가운데 열매를 맺는 농사가 절실하다. 더는 흙을 착취하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농사,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약속하는 농사가 귀농의 목표로 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존. 더불어 산다는 덕목은 지속 가능한 농촌공동체를 담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농촌은 소멸의 단계에 이르렀다. 농부들의 나이가 고령화되고 농토 또한 황폐화되고 있다. 공존은 순환의 고리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사는 일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열린 관계로 소통할 때 가능하다.

귀농자 상당수는 공존의 가치를 가볍게 여긴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 정착하기보다 외곽에 터전을 마련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을 멀찌감치 터를 잡고 마치 딴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전망 좋은 언덕배기 밭을 사서 토목공사를 한 뒤 전원주택을 짓고 마당에 잔디까지 심는다. 한창 농사일로 바쁜 철, 이웃들은 눈코 뜰 새가 없는데 느지막하게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뜰에서 기지개를 켠다. 물 좋고 산 좋다고 떡하니 둥지 틀고 마을공동체와 담을 쌓은 귀농은 소모적인 도시의 삶을 이전한 데 불과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불편할 것이라는 선입감을 가진 이들을 종종 본다. 경험에 비춰본다면 기우일 뿐이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 얼굴을 맞대 소통하고 세상살이를 향한 공감대를 이루는 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지름길이다.

귀농이야말로 연로한 구성원을 대체해 쇠락하는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농촌의 미래다. 농촌공동체가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협동작업을 시도하고, 도시에 판로를 확보하는 등 도농 상생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도 귀농자들의 몫이 돼야 한다.

자립과 순환, 공존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도모하자. 땅에 뿌리내리고 이웃과 관계 맺으며 필요한 것을 직접 기르고 만드는 자급적 삶에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불편을 받아들이는 몸의 노고 속에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느린 삶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새로운 발길을 내디딜 때, 당신의 귀농은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불온한 시대적 흐름에 맞서는 거센 바람이 될 것이다.

전 언론인·부산귀농운동본부 운영위원
출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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