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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청태산, 추억 혹은 '따뜻한 얼음'

작성자신팔도강산|작성시간22.12.19|조회수40 목록 댓글 0

청태산 정상 남쪽 조망. 화면 왼쪽으로 가장 높이 보이는 산이 백덕산이다.

“아이와 장독은 얼지 않는다”고 했다. 집 안에 놀거리라고는 없고 학원 따위도 없던 시절―그때 아이였던 우리들에게는―겨울이 통째로 장난감이었다. 추위 걱정은 고스란히 어른들 몫이었다. 초저녁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번이고 창문에 시린 코를 대고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곤 했다. 특히 반가운 것은 밤새 몰래 내린 ‘도둑눈’이었다. 그날의 아침은 참으로 찬란했다. 모름지기 아침은 그래야 하는 법인데.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현대인의 신앙을 추문으로 만들어 버린 히말라야 산속 왕국 부탄. 이 매력적인 나라에 첫눈이 오면 모든 관공서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첫눈 내리는 날은 축제일이다. 부탄 사람들은 첫눈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절대 배신당할 일 없는 긍정, 그 낙관의 키는 히말라야보다 높다. 혹독한 추위와 폭설을 뜨겁게 안아버리는 가슴에 발을 들이밀 정도로 염치없는 불행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따뜻한 얼음’도 있다. 그 얼음은 겨울나무의 가슴속에 있다. 겨울나무는 몸 안의 세포와 세포 사이에 얼음주머니를 만든다. 에스키모의 이글루 같은 것이다. 그것이 세포들이 얼어 죽지 않게 단열과 보온 작용을 한다. 또한 그것은 봄이 되면 몸속 곳곳으로 녹아 흘러 봄날의 아침을 나비처럼 춤추게 한다.

아이와 부탄 사람들 그리고 나무의 겨울나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추위를 아니 겨울 자체를 온 가슴으로 껴안는다는 것이다. 온전히 겨울과 혼연한다. 추위는 대상화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경지다. 물고기가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

나무의 생태는 철학적이다. 그래서 곧잘 나무의 품성을 군자에 빗대곤 한다. 무엇보다 나무를 나무답게 하는 것은 ‘수직성’일 것이다. 곧추 하늘로 향하는 모습만으로 경외감을 일으킨다. 겨울나무의 수직성은 한결 단단하다. 그래서 겨울나무는 가장 나무답다. 잎도 꽃도 열매도 없이 오로지 나무로만 존재한다.

청태산 북쪽 능선의 참나무 숲에 핀 서리꽃(상고대).

 

참나무, 대기 중 물방울과 바람을 꽃으로 바꾸어

모든 겨울 숲이 그러하듯이, 청태산 잣나무숲은 위엄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범접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 사이로 나무 데크가 지그재그로 놓여 있다. 숲길은 큰 나무의 줄기를 형상화한 동굴로 시작된다.

어떤 사람들은 숲 초입의 구조물과 데크로드를 보고 지나치게 인공적이라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모습으로만 보자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물론 유모차, 휠체어도 무리 없이 지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임을 이해한다면 곧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다(이런 의도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숲속 데크로드다).

인공 숲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사람이 만든 숲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비록 사람이 심기는 했지만 키운 건 자연이다. 적당한 바람과 햇빛, 때맞추어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나무는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정도의 폭풍우가 없었던 행운까지 더하여 오늘의 숲이 되었다.

청태산 능선의 억새꽃 위에 핀 상고대.

청태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참나무 우듬지에 핀 서리꽃이 눈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잣나무숲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화전을 일구던 곳이었다. 화전이 금지된 이후 1970년대 초반 잣나무를 인공 조림했으니 나이를 따지면 40대 중반이다. 사실 이쯤 되면 인공과 자연의 경계는 모호하다. 인공을 폄하하거나 반대로 인간의 능력을 자랑삼을 일도 아니다. 인간의 손길을 기꺼이 거두어 준 자연에 감사할 일이다.

청태산(1,200m)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방림면의 경계에 솟은 높은 산이지만 산행지로는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다. 1991년 청태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고 1990년대 말 이후 등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 산을 찾는 사람도 조금씩 늘어났다.

청태산은 해발 1,200m라는 높이에 비해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삼을 경우 1시간 30분 안팎이면 된다. 자연휴양림이 자리한 곳이 이미 해발 800m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점이 매력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겨울 산행에 한정하자면 매력적인 면이 도드라질 것이다. 큰 무리 없이 설경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눈이 많이 내리는 데다 고도가 높아서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아서 겨우내 눈을 즐길 수 있다.

잣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데크로드를 벗어나면서부터 숲은 자연림으로 바뀐다. 길은 산의 북서쪽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황벽나무, 느릅나무, 단풍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이다. 숲 아래로 속새의 가늘고 푸른 줄기가 빼곡하다. 속새는 높은 산의 습한 곳에서 자란다.

청태산 정상 남동쪽 조망. 대미산 능선 뒤로 멀리 백두대간의 산들이 첩첩하다.

능선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숲은 대부분 참나무로 바뀐다. 아침 산그늘에 누웠던 길이 능선에 이르자 한순간에 풍광이 바뀐다. 참나무가 대기 중의 물방울과 바람을 꽃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상고대다.

상고대는 눈꽃과 다르다. 눈꽃이 뭉실뭉실하다면 상고대는 포슬포슬하다. 눈꽃과 달리 상고대는 얼음 결정이 살아 있다. 햇빛이 상고대 위에서 잘게 부서져 반짝인다. 별빛에 바람이 지날 때의 반짝거림 같은 것이다.

상고대는 나무와 바람의 귓속말이다. 나무는 가만히 귀를 열고 바람이 전해 주는 먼 바다, 먼 산 그리고 이웃 나무의 안부를 듣는다. 내 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눈으로는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하다.

내 마음 한 귀퉁이에도 상고대가 피었으면…

상고대의 옛말은 산고대다. ‘대’ 자의 모음은 ‘아래 아’와 ‘ㅣ’로 쓰인다. 한자어로 목가(木稼), 수가(樹稼), 수개(樹介), 수괘(樹掛), 수빙(樹氷), 수상(樹霜), 화상(花霜)이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화상(花霜)이라는 말에 특히 눈이 간다. 조선 숙종 대에 편찬된 중국어 단어집인 역어유해(譯語類解)나 조선 순조 대에 실학자 유희가 지은 박물서에도 화상(花霜)이 나오는데, 무기(霧氣), 즉 안개가 나무에 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상. 꽃서리 혹은 서리꽃. 시적 상상력이 반짝인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고대로 하여 능선은 황홀경이다. 길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눈과 상고대 핀 수림, 그 위로 깔린 구름은 허공에 핀 커다란 꽃이다.
정상 주위의 참나무는 1,000m가 넘는 여느 산과 달리 제법 키가 크다. 이곳을 지나는 겨울바람이 아주 강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맞은편 산기슭 낙엽송 숲의 상고대는 눈꽃과는 다른 섬세한 풍광을 펼쳐 보이는데, 그 너머로 아득히 푸른 산은 하늘에서 너울거린다. 그 산에서 나를 보면 나 또한 무기(霧氣)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이 겨울, 내 마음 한 귀퉁이에도 상고대가 피었으면 좋겠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의 잣나무 숲은 오늘의 나를 유년의 겨울로 데려다 주었다. 그 아이는 부탄의 첫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겨울나무 속의 얼음주머니가 나무의 생명을 지키는 온기라면, 사람에게 추억은 팍팍한 ‘여기의 지금’을 견디게 하는 ‘따뜻한 얼음’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월간산 글·사진 윤제학 동화작가· 월간山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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