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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이야기

귀납과 누적, 바람의 언덕

작성자목기연|작성시간23.08.02|조회수118 목록 댓글 0

 귀납과 누적

 

건축주 여섯 명을 상대로 단독주택 여섯 채를 설계한 프로젝트다. 건축주들은 국내 모기업의 전현직들로, 같이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 은퇴 시점이 되면 바다가 보이는 좋은 땅에 함께 집을 짓고 살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그 약속은 이 프로젝트로 현실이 되었다.

 대상지는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제주 서귀포시의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이다. 바닷가에는 어부들이 사용하는 작은 포구가 있고 그 동쪽으로는 ‘난드르(대평)’라 불리는 넓은 벌에 주거지와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대상지의 서쪽은 계곡이며 그 너머로 박수기정이라 불리는 잘 알려진 기암절벽이 있다. 북쪽으로는 산줄기의 경사가 계속되어 제주 최대 규모의 오름인 군산에 이른다. 즉 전체적으로 북서쪽은 막히고 남동쪽은 열린 지세다.

초기 단계에서 단지가 아닌 여섯 채의 단독주택으로 진행할 것을 결정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유기적 연관 관계를 갖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즉 개별적으로는 각 건축주의 필요와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한 마을로서의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또한 마을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각각의 단독주택 영역 안에 배치하고 이를 마을 내에서 공유하자는 것, 또한 마을과 그 너머의 영역 간에 담장과 같은 물리적인 경계를 두지 않고 외부인의 시선과 접근을 어느 정도 선에서 허용하자는 것도 합의를 보았다.

 무엇보다 마을의 경관적 배경을 제공하는 박수기정으로의 시선을 다수의 통경축을 통해 최대한 개방하여 전면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도 그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서로 뜻을 함께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상황이었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섯 개의 대지는 거의 같은 크기로 구획했고 경관, 공공 요소의 배치, 접근성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종합했을 때 장단점이 치우치지 않도록 조율 과정을 거쳤다. 이후 건축주들 간의 (양보를 포함한) 내부 토의를 통해 각 필지의 소유주를 정했고, 그 기본 구도를 프로젝트 완성 시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갔다.

 여섯 채의 집은 종횡으로 방향을 달리하며 박수기정과 태평양을 향한 경관에 대응한다. 마을로서 필요한 공유 요소, 즉 공동 주차장, 마을 마당, 수공간, 옥외 자쿠지, 공용 가스 탱크, 인접 지역으로의 접근로 등은 각 대지에 골고루 부여되었다. 가장 낮은 남동쪽에서 가장 높은 북서쪽까지, 여섯 채의 집을 연결하는 마을의 공용 통로가 여러 번 꺾이면서 이어지고 그 주변에는 제주의 토종 식물을 식재한 조경 공간을 배치했다.

각각의 집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계획했다. 원래는 계단식으로 구성된 밭이었으나 원지형을 최대한 회복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갖게 되었다. 지하층은 이러한 대지의 경사를 최대한 이용, 일부를 외부로 노출하고 그 앞에 개별 옥외 공간을 조성하였다. 특히 박수기정 쪽에 배치된 집들에서는 지하층과 옥외 공간에서 박수기정의 드라마틱한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지하는 철근콘크리트구조이고 1층은 철골로 일부를 보강한 경골목구조인데, 경골목구조의 벽체가 지하까지 내려가 중공벽을 형성한다. 즉 철근콘크리트 박스에 경골목구조를 끼워 넣은 것 같은 방식이다. 벽체는 레인 스크린(rain screen) 방식으로 구성했고 외피는 탄화목(Thermowood)이다. 탄화목을 벽체뿐 아니라 지붕에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목재 위주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기본계획 단계에서 두 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를 각각 세 명의 건축주가 선택하면 다시 그 틀 안에서 개별적으로 설계를 다시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체 재료나 배치 등에 있어 유기적 통일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각 집의 개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접근이었다. 도중에 몇 차례의 의견 조율을 거치면서 그 조합이 달라졌으나 결과적으로 통일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원칙은 비교적 준수되었다. 무엇보다 전체적 통일성에 대해서 그 어느 건축주도 원칙에서 반대가 없었다는 점이 기억할 만하다.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로 인해 전체 대상지를 세 번에 걸쳐 여섯 개의 대지로 분할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결과 여섯 채의 집을 짓는 데 무려 4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최신 정밀산업의 배경을 공유하는 건축주들이 건축이라는 오래된 분야를 접했을 때 발생하는 문화적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이내믹한 의견 교환 및 상호 학습의 과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제주 현지 작업자들과의 소통과 협력 또한 큰 변수였는데, 다행히 김혜영 목수가 이끄는 목조팀의 안정적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다.

카멜리아 힐 전망대 

보목동 주택 ©Kim Yongkwan

 

바람의 언덕은 지난 2012년부터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제주에서 진행해온 다섯 개의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과정이 복잡한 사례다. 여타의 프로젝트는 각각 하도리와 보목동의 단독주택, 제주의 대표적인 수목원인 카멜리아 힐 내부의 한옥과 전망대 등이다. 이 프로젝트들과 바람의 언덕은 서로 형태나 재료 등이 매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제주의 지역성을 다루는 태도다. 제주의 지역성을 미리 정의하고 그에 맞춰 건축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제주석을 공통적으로 많이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종종 이야기되는 ‘안거리’, ‘밖거리’ 같은 제주 전통 주거 공간의 형식도 차용하지 않았다. 재료와 기술의 발달, 생활 방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지역성 논리는 더 이상 구심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그런 논리를 동원한 결과가 오히려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사례도 많다. 역으로, 기존의 지역성 논의로부터 자유로운 개별 사례들이 귀납적으로 모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지역성의 확장에 더 관심이 있었다. 물론 개별 프로젝트와 함께 이러한 접근 방식 또한 평가의 대상이 되리라 믿는다. (글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 진행 김정은 편집장)​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황두진건축사사무소(황두진)

설계담당 홍진표, 신병호, 최우선, 우경선 /기본계획 협업 및 A동 실시설계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914번지 외 5필지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A ‐ 472㎡ / B ‐ 467㎡ / C ‐ 471㎡ /

건축면적 A ‐ 93.04㎡ / B ‐ 92.61㎡ / C ‐ 92

연면적 A ‐ 157.36㎡ / B ‐ 149.68㎡ / C ‐

규모 6채 / 지상 1층, 지하 1층

주차 각 1~2대

높이 약 4.9m

건폐율 A ‐ 19.71% / B ‐ 19.83% / C ‐ 19

용적률 A ‐ 19.71% / B ‐ 18.48% / C ‐ 18

구조 경골목구조,철근콘크리트조

시공 1차 ‐ 새롬건설 / 2, 3차 ‐ 건축주 직영+원하우징

설계기간 2017. 3. ~ 2021. 3.

시공기간 2020. 1. ~ 2021. 10.

건축주 이진하 외 5명

Schematic design collaboration + construction docu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황두진건축사사무소

글 황두진

사진 돌로레스 후안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정은 편집장

출처 SPACE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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