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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이야기

시원하고 풍요로운 공간에 대한 답변: 모곡리 주택

작성자목기연|작성시간23.08.02|조회수118 목록 댓글 0

모곡리 주택은 산자락 아래 경사지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던 작은 마을과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밀집시켜 만든 주택 개발지역이 만나는 경계에 있다. 두 개의 작은 필지가 단 차이를 두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남겨져 있었다. 건축주는 정돈된 주택 개발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이 두 필지를 합필해 넓은 땅을 만들었다. 멀지 않은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건축주는 아파트와는 달리 집 안에 들어왔을 때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과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는 거실, 그리고 여유 있는 마당과 정원, 텃밭을 가진 넓고 시원한 보편적인 전원주택을 희망했다. 모곡리 주택은 일상적 생활 패턴을 가진 삶의 터전은 아니다. 마치 여행을 온 듯한 기분으로 쉼표를 찍어보는 곳. 우리는 이를 위해 일반적인 주거 공간의 효율성과 기능적인 시스템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긴 호흡으로 집을 거닐며 어디든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더불어 주변 자연환경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다른 인접한 주택의 채광과 조망을 해치지 않고 어떻게 조화롭게 함께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었다. 현재는 열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전면에 들어설 다른 주택에 의해 시야가 차단될 가능성도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관을 돌아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먼 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남향의 빛이 하루 종일 집 내부로 드리웠으면 했다. 또한 각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가 각 실을 연결하는 기능적 역할뿐 아니라 각 공간들을 향한 여정의 한가운데 있기를 바랐다. 이 여정은 집 안에서의 여정을 넘어, 멀리서 굽이치는 도로를 달려와 집 앞에 도착하고, 두 개의 다른 질감으로 표현된 콘크리트 벽을 돌아 현관문을 연 후, 내부로 들어와 각각의 방들로 들어가기까지, 하나의 흐름을 의미한다. 복도 공간은 그 여정의 중심이다. 복도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집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의 풍요로움은 달라질 수 있다. 복도를 뒤편으로 배치하고 방들과 거실이 남향으로 위치하면, 그 복도는 연결의 기능이 주목적이 되어 길고 좁은 형태로 남겨진다. 이는 다른 영역과의 순수한 통합을 이루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향을 향해 긴 복도를 먼저 배치하고 복도의 뒤편으로 거실과 주방, 침실 등 주요 실들을 배치했다. 복도를 전면에 배치하여 외부의 조망을 집 안 깊숙이 들여오고, 모든 공간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통합된 복도 공간을 통해 너무 넓은 뷰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광활한 풍경이 주는 피로함과 강한 남향의 채광이 주는 과도한 밝음으로 인해 공간이 주는 안락함은 사라져버린다. 더불어 강렬한 빛은 그림자와 빛으로 구분되어 공간의 형태를 잃어버리게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도의 앞쪽으로는 세 개의 작은 실과 외부 공간을 교차했고, 뒤편으로는 거실을 중심으로 두 개의 중정을 배치했다. 교차로 배치된 공간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깊이감을 더해주고 강렬한 빛을 흐트러뜨려준다. 산란된 빛은 각각의 내부 공간에 부딪혀 다양한 농담(gradation)을 가진 빛들로 변화한다. 변화된 빛은 빛과 그림자라는 강한 명암(contrast)의 대비로 잃어버렸던, 본래 우리가 원했던 공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한다. 강한 빛으로 선명한 공간은 아니지만 농담으로 차분하게 배경이 되는 공간들로 인해 우리의 감각은 풍요로워진다. 

경계의 깊이 

모곡리 주택은 위에서 바라보면 크고 작은 중정들이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구분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켜켜이 중첩된 공간들로 내외부가 전환된 듯한 느낌이 든다. 모곡리 주택에서 경계는 영역을 구분 짓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건축물의 내외부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에 의해 유동성을 지닌 영역 설정을 의미한다. 그 경계에서 공간은 깊이감을 지니게 된다. 깊이는 치수로서의 크기가 아닌 공간의 질을 의미한다. 외부의 빛과 그림자는 내부의 그늘과 이어져 새로운 경계를 형성하고 넘나드는 빛, 바람, 소리로 경계는 해체(break)가 아닌 해제(release)가 된다. 거실을 중심으로 배치된 세 개의 중정과 거실 전면에 남향으로 배치된 복도에는 해제된 경계의 영역이 있다. 이를 통해 중정-거실-복도는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된다. 연결의 기능을 넘어 공간에 확장성을 부여하고 넓게 펼쳐져, 먼 산의 풍경까지 받아들이게 한다. 침실-중정-거실-주방-중정-옥상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공간들의 물리적 경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이 물리적으로 구분된 공간들이 시각적으로 인지된 공간으로 치환되면 긴장감을 가진 공간으로 전환된다. 모곡리 주택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부부의 욕실은 가장 안쪽에 위치하지만 중정을 통해 가장 열려 있는 거실과 맞닿아 있다. 또한 부부의 침실에서는 시선이 막힘없이 넘나들 수 있어 현관 앞에서 강아지가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방의 음식이 끓는지, 거실에 음악이 켜져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반대로 거실에서는 중첩된 외부 공간에 의해 침실 내부의 움직임은 어렴풋하게 보일 뿐이다.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방향으로 중첩되어 시각적으로 연결된 공간들이 가지는 긴장감은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오랜만에 모곡리 주택을 방문해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 보았다. 사방으로 중첩된 공간에서 익숙함과 동시에 생경함을 느꼈다. 하나의 종류로 말할 수 없는 빛과 하나의 감촉으로 말할 수 없는 바람, 소리, 풍경 등이 시시때때로 변화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자연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제된 경계들로 인해 마치 프리즘의 내부에 있는 것 같았다. 건축주는 이 집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집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어디든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늦은 점심 후에는 외부 평상에 멍하니 앉아 변화하는 빛과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들을 보며 하루가 가는 것을 느끼고 반응한다. 마치 여행을 온 듯이. (글 안영주 / 진행 박지윤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이소우건축사사무소(김현수, 안영주)

설계담당 김혜진, 이주은, 이다경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1,228.6㎡

건축면적 249.43㎡

연면적 249.43㎡

규모 지상 1층

주차 2대

높이 5.5m

건폐율 20.3%

용적률 20.3%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유로폼 노출콘크리트, 콘크리트 정치기, 벽돌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페인트, 원목마루

시공 도해건설산업

조경설계 조경상회

가구 데이웍스(기민석)

 

김현수, 안영주

김현수와 안영주는 창원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소우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로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이소우’는 ‘Eu sou aruiteto(나는 건축가다)’라는 포르투갈 말에서 왔다. 매우, 훌륭한 등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건축가로서
건축을 할 수 있는 동안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소우건축사사무소는 도전적인 건축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창원을 기반으로 건축 공모전과 전시 및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작인 이타라운지는 2020년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고, 2012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의도된 비움’란 주제로 전시했다.

 

글 안영주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이소우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출처 SPACE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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