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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서 만난 공의

작성자石박사|작성시간23.08.31|조회수72 목록 댓글 0


《동네 도서관에서 만난 공의》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의 정릉으로 목회지를 옮기며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부천에서도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그 성과가 눈에 띌 만큼 좋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대별 사업들이 제법 많았고, 되짚어보면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손으로 모를 내기 위해 강원도를 찾아가기도 했고, 가을이 되면 낫으로 벼를 수확하기도 했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는 어르신들을 모셔 ‘우리 얼굴 예쁠시고!’라는 행사를 갖기도 했습니다.
짚신을 비롯하여 어르신들이 만들 수 있는 옛 물건들을 만들어 전시를 하고, 판매가 되는 것은 물건을 만든 분께 돌려드렸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인 결과겠지요,
시에서 하는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어 원하는 책을 구매할 수 있는 배려를 몇 차례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도서관이 있고, 언제라도 찾아가 책을 읽거나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근본적인 혜택이라 여겨집니다.  

서울로 오며 마음은 그랬지만, 도서관을 만드는 일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서울 성북구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도 도서관이 잘 갖춰진 지역이었습니다.
도서관도 곳곳에 많고, 어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해도 아무 도서관에나 반납을 하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지하철역에도 책을 반납하는 곳이 있어, 다 읽은 책을 반납하기 위해 책을 빌린 도서관을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독일에서 살면서 코로나로 인해 고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딸이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며칠 시차 적응의 시간을 보낸 딸은 근처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빌려왔습니다.
서너 권의 책을 들고 돌아오는 딸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일은 몇 번 더 이어졌는데, 그러던 중에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리려고 했더니 대여가 안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반납 기한을 넘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참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알아보니 기준이 있었습니다.
책을 빌려 간 뒤 반납을 늦게 하면, 늦은 날 수만큼 책을 빌리는 날이 제한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마땅한 기준이라 여겨졌습니다.
늦은 만큼의 날짜만 지나면 다시 빌릴 수 있는 것이니, 다음부터는 명심하기에도 좋은 교육적인 면도 있다 싶었습니다.
책을 빌려준다는 이유로 아무런 기준이 없다면 도서관의 기능은 엉망이 되고 말겠지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도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지킨다면 이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더 큰 기준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닐까요? 

[글쓴이: 한희철목사/ 정릉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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