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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이 되어

작성자石박사|작성시간23.09.26|조회수118 목록 댓글 0

[우리가 물이 되어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전문


주로 물의 상징은 ‘생명, 죽음, 정화’ 등의 이미지다.
이 시에서는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의 자신의 바람을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빗물과 강물과 바다의 이미지는 시인이 소망하는 물의 만남이다.
우리가 지향해 가야 할 삶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시에서의 ‘물’은 1연에서는 가뭄을 해소해 주는 ‘생명의 원천’의 이미지로,
2연에서는 ‘강물과 바다’로 구체화되면서 흐름을 통해 ‘비인간적이고 문명화된 불순물’을 다 걸러내어 마침내 순수한 존재로 나타난다.
오랜 가뭄 속에서 고통받던 이들이 단비를 만나 기뻐하듯이, 우리는 키 큰 나무를 적시는 시원한 빗물 같은 그런 만남을 통해 마음의 오랜 갈증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과 대립적인 이미지를 지닌 것은 1연의 ‘가뭄’과 3연의 ‘불’이다.
‘가뭄’은 물, 즉 생명이 고갈된 상태를 말하며, ‘불’은 죽음과 파괴, 소멸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생명의 파괴를 의미한다.
시적 화자는 세속적 욕망과 타인에 대한 증오, 순수하지 못한 열정은 인간 자신을 파괴하여 결국엔 황폐화된 삶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는 대결과 투쟁, 그 뒤에 이루어질 평화의 세상을 말하고 있다.
이 시는 이기주의, 무관심, 물질적 가치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이러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가정법 형식을 통해 만나고 싶은 열망, 만남에 대한 기대를 ‘물’과 ‘불’의 이미지로 나타내는 작품이다.
‘물’은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는 생명의 기원인 동시에, 다른 것들과 섞여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로 흘러감으로써 삶의 다른 세계를 맛보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3연에 오면 지금은 ‘물’이 아닌 ‘불’로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로 상징되는 조화로운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태워 버릴 필요가 있기에 ‘불’로 만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화자가 지향하는 ‘넓고 깨끗한 하늘’이란 바로 완전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새로운 창조적 만남의 공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강은교의 초기 시는 허무주의가 주요한 모티브다.
후기로 오면서 어둠과 비극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적극적인 현실 인식 속에서 삶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와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쓴이: 김민정 박사/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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